DC 역갤에 들러보니 ㅉㅉㅉㅉㅉㅉ님이라는 분이 황제가 동이족이라는 이야기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쾌거를 이룩해 놓았더라.
[DC 역갤] 黃帝生白民...무지와 날조, 40년의 웃기지도 않는 촌극 [클릭]
위 글을 조금 정리해보면 그 내막은 이렇다. 유사역사학자의 이 황당한 주장은 중국학자 서량지徐亮之가 1954년에 출판한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 박사가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당시 같은 입학생인 중국 학자 서량지(徐亮之)가 한박사를 찾아와 말하기를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를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서량지)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겠으니 받아달라며 큰 절을 올렸다.
한갑수 박사는 1954년에 공군지휘참모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서량지는 대체 언제 책을 써서 1954년에 출판을 했단 말인가? 서량지가 정말 공군지휘참모대학을 나왔을까? 또한 저 이야기는 인터넷에 떠돌고 있기는 하지만 출전도 밝혀져 있지 않다. 서량지는 1952년에 중한관계사화中韓關係史話(홍콩香港:自由出版社)라는 책도 냈다. 대체 언제 미국에 있었던 것일까?
또한 그의 책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는 걸핏하면 동이족의 찬란한 역사를 증거하는 책으로 등장한다. 마치 고힐강의 [고사변]이 이용되는 것처럼.
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DC 역갤] 양심적인 중국 학자들? - 환빠들의 짝사랑과 오해들 [클릭]
서량지와 엄문명 [클릭]
史님이 번역해 놓은 번역문을 소개한다. (DC역갤의 글은 언제든지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증거로 삼기 위해 옮겨놓도록 하겠다.)
중국 선사시대 사회는 신석기 시대로 진입하여 더욱 번성하였다. 중국의 정통문화는 각종의 단원문화(單元文化)가 용주(鎔鑄)되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융합과정은 전체 신석기 시대를 관통하고 있으며, 금석(金石) 병용의 시대 혹은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서 이미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 중국의 신석기 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8종의 중요한 단원문화가 있었다. (중략) 더욱이 대서특필한 만한 것은 정치상으로 토템 연합에서 부족 연맹의 중앙기구가 성립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역사시대 중국이 찬양하였던 “대일통주의(大一統主義)”를 설명하는 것이며, 신석기시대에 이미 대일통주의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중국 신석기 시대 말기의 정치적 이하일체(夷夏一體), 문화적 동서교류는 오늘날 중국민족을 조성하는 골간(骨幹)이었으며, 중국 정통문화가 생육하게된 원인이었다. 동시에 동이족의 화평활발(和平活潑)함과 화하족의 관인강의(寬忍剛毅)함, 그리고 양대 부족이 선사시대에 혼합하여 이룩한 “정성스러운 단결”은 오늘날 대국(大國)의 기백을 가진 중국의 국민성을 조성하는 기본 요소였다. (徐亮之, <중국 신석기시대의 기본인식(中國新石器時代的基本認識)>, 《中國史前史話》pp.161-162.)
(전략) 그 정치이상은 채도문화, 대석문화의 서방 부족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동서의 “이하일통”(夷夏一統) “이하일가”(夷夏一家)의 원대한 이상은 중국 신석기시대에 이미 실현되었다. (후략) (같은 책, <회도문화와 동이(灰陶文化與東夷)>의 맺음말 부분, p.267)
이 글을 쓴 史님의 해석을 따르자면, 결국 서량지는 동북공정의 단초를 제공한 학자라 하겠다.
서량지는 시종일관 신석기 시대 중국문화의 “대일통주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중국 영토내의 모든 민족은 과거에도 기본적으로 중국민족이며, 그들이 역사적으로 현재 중국의 영토내에서 거주하였던 이상 현재의 중국영토는 과거에도 중국의 영토였다는 주장까지 도출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접습니다.

이것은 ㅉㅉㅉㅉㅉㅉ님이 스캔한 서량지의 [중국사전사화] 원문이다.
이 내용을 옮기면 이렇게 된다. 이미 ㅉㅉㅉㅉㅉㅉ님이 번역을 했으나 약간만 내가 손을 보았다. 이해를 못하는 바보들이 있어서.
有白民之國. 帝俊生帝鴻; 帝鴻生白民; 白民 銷姓. 黎食 ; 使四鳥 : 虎, 豹, 熊, 羆.」(同右) 按郝氏箋疏引賈逵 左傳註, 帝鴻卽黃帝, 謂此帝俊實指少典, 非. 蓋古籍流傳, 文字數變, 音近形訛, 易滋淆亂; 加之四裔典實, 先儒所輕 ; 幸得此經, 載其鱗爪; 又以不見儒家經傳, 往往荒誕視之, 不復知其乃另一文化體系及社會傳統, 摒除成見, 求其端緖. 而乃據經傳以證夷史, 事殊俗異, 鑿柄固宜. 卽如郝氏此疏, 帝俊卽少典, 帝鴻卽黃帝; 卽少典生黃帝, 固見於<帝繫>,<史記>; 黃帝生白民, 復見何書耶? 故知此經帝鴻, 自屬東夷故實; 其與黃帝同號, 或屬音近形訛 ; 不得因黃帝號帝鴻而强爲比附之. 又<逸周書 王會編> : 「白民乘黃」, 孔註 「亦東南夷」; 是白民乃夷人, 與帝嚳興於東夷及<山海經>白民乃帝俊之後合.
백민의 나라가 있다. 제준은 제홍을 낳고, 제홍은 백민을 낳았다 ; 백민은 성이 소이며, 기장을 먹었다 ; 네 조수(鳥獸)를 부렸다 : 호랑이, 표범, 곰, 말곰」(위와 같음 = 산해경 대황동경). 학씨(=학의행)의 주석을 살펴보면 가규賈逵의 좌전左傳 주註를 인용하여 제홍은 즉 황제라 했다. 말하자면 여기의 제준은 소전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였는데, 잘못된 것이다. 아마 옛 서적이 유실되어 전해지고, 문자가 여러 번 변했으며, 음이 비슷한 것으로 잘못 전해졌으므로, 쉬이 뒤섞이고 어지러운 것들이 불어난 것이다. 더우기 사방(四裔)의 전적은, 선대의 유자들이 경시하였다 ; 다행이 이 경을 얻었으나, 그 극히 적은 것만이 실렸다 ; 또 유가경전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종종 황당하고 허탄히 이를 보게 되었기에, 이것이 별개의 문화체계와 사회전통임을 다시 알 수 없게 되었으니, 기존의 견해를 배제하고서야,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경전에 의거하여 이夷의 사史를 검증하여 사적이 더욱 속되고 괴이하게 되었으며, (그) 근본을 파고들어가면 더욱 그러했다. 즉 학의행의 이 주석에서는 제준이 소전이고, 제홍이 황제라 했으나 소전이 황제를 낳았다는 것은 <제계>와 <사기>에만 보일 뿐이다; 황제가 백민을 낳았다는 말이 달리 어느 책에 보이는가? 고로 이 경(대황동경)의 제홍은, 당연히 동이의 전적(典籍)에 속함을 알 수있다 ; 그가 황제(黃帝)와 같이 불리게 된 것은, 음이 비슷한 것으로 잘못 전해진 것에 해당한다 ; 황제를 끌어다 제홍을 불러서는 안되는 것을, 억지로 같다붙인 것이다. 또 <일주서 왕회편>에서 '백민의 승황(乘黃)'이라 하고, 공조(孔晁)가 주를 달기를 '또한 동남이(東南夷)다' 라 하였다 ; 여기서 백민이 이인(夷人)이라는 것은, 제곡(帝嚳)이 동이에서 일어난 것과 <산해경>의 '백민이 제준의 후예'라는 것에 부합시킨 것이다.
“황제가 백민을 낳았다는 말이 달리 어느 책에 보이는가?”라는 말은 이런 말이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량지는 제홍과 황제는 아무 관련도 없으며, 당연히 백민과 황제도 아무 관련도 없으며 [산해경]에 나오는 제홍은 다만 이夷의 옛일(故)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말을 문정창은 아무렇게나 잘라서 써먹은 것이다. 이런 것을 가리켜 단장취의斷章取義(문장을 끊어 뜻을 취함)라고 부른다.
卽少典生黃帝, 固見於<帝繫>, <史記>; 黃帝生白民, 復見何書耶? 故知此經帝鴻, 自屬東夷故實;
위 문장을 문정창은 아래 붉은 부분만 끊어서 이용해 먹었다.
卽少典生黃帝, 固見於<帝繫>, <史記>; 黃帝生白民, 復見何書耶? 故知此經帝鴻, 自屬東夷故實;
요렇게 말이다.
帝繫史記는 [黃帝生白民, ...... 自屬東夷.]라 하였다.
이리 일이 진행된 것이다.
문정창 : 서량지의 책을 자기 입맛에 맞게 짤라붙여서 새로운 사료를 창조하시다.
임승국 : 아무 생각없이 문정창의 책을 베끼다.
정체불명의 유사역사학자 : 어於자를 집어넣다. 출전에 [초사]와 [사기](=[사기] 권 13)가 추가되다. (이 사람은 黃帝生白民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계]와 [사기史記]를 붙여 쓴 [제계사기]라는 책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위의 두 사람이 바보였다면 이 인간은 훨씬 악질적인 인간이라 하겠다.
류렬 : 북한의 국문학자. 남한 유사역사학의 낚시질에 걸리다. 黃帝生於白民....自屬東夷 [초사楚辭]
김성일 : 한자를 잘못 읽은 주제에 [제번사기帝繁史記]라는 책은 번역되지 않은 책으로 중국에 있다고 주장함
송호수 : [초사]에 나온다
안원전 : [초사楚辭]를 읽지 못해 [초사楚史]라고 쓰고 있다. [제계사기帝繫史記]라는 책도 주장하며 문정창이 해놓은 말줄임표도 사라져 그냥 [黃帝生於白民. 自屬東夷]가 되어버렸다.
그외 유사역사학자 신봉자들 퍼나르기 신공의 변종들 : [楚詞],[帝 史記] [帝史記] .......
재야의 망상사학 3 - 황제는 동이족 [첫번째 글 보기]
덧글
단장취의가 극에 달하면 이런 일도 생기더군요 -_-
아케나톤의 얼굴에 티우 이름만 따 망상을 전개하더랩니다
고대사만 하지 마시고, 고려사나 조선사도 다시 다뤄보세요!
글 쓰신지 3년이나 뒤에 이러한 댓글을 달아서 조금 송구합니다만,
정말로 우스꽝스러운 것은 "문화 류(柳)씨"의 경우 족보에서 바로 황제 헌원을 조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조상님들의 상상력 산물이라고 보긴 합니다만...) 거기 보면 중국의 전설적인 시조 황제의 자손으로 중국에서 한반도로 내려와 왕씨 성을 쓰다가 왕王 -> 차車 -> 그리고 마침내 고려 건국시 왕건에게서 류(柳)씨 성을 하사받은 것으로 되어 있지요.
저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학자 분들은 대체 "황제의 자손으로 [중국]에서 왔습니다" 라고 주장하는 문화류씨 족보는 어떻게 다루실 건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문화류씨의 자손인 저는 속칭 "짱꼴라"입니까, "배달민족"입니까? 껄껄껄...... 문득 저 북한 학자님이 만일 문화류씨라면 황제동이설에 반색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텁텁한 생각이 들어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