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변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잘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대대로 물려받으며 사용하는 명칭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고구려라는 이름을 우리가 대대로 물려받은 것처럼.
이런 것을 책상 머리에 앉아 옥편이나 뒤적거리다보면 자신의 작은 세계에 빠져 마치 그 작은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도록 훈련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품어야 할 의심 따위도 가지지 않고 그냥 그 세계로 다이브해 버린다.
강감찬(姜邯贊)의 경우도 그렇다.
이 글을 보도록 한다.
姜邯贊을 강감찬이라 명시한 최초의 기록 [클릭] 잊혀진미래님의 블로그에 링크
링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1909년의 기록에 강감찬이라는 한글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이 기록을 남긴 [신한민보]는 샌프란시스코 교민단체인 국민회의 기관지였으므로 해외에서 발간된 것이라 일제의 영향 운운할 것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불과 몇 년의 교육에 의해 뒤바뀌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 순진무구한 생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일제의 교육이란 전국민에게 행해진 것도 아니다. 또한 1909년은 아직 강제병합도 일어나기 전이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지 않는 해외에서 발간된 신문에 강감찬이라 실려 있다.
학자라고 자처하면서 제대로 조사도 해보지 않고 얼씨구나 하고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나 받자고 날뛰는 꼴. 정말 추하지 않은가?
추가
잊혀진미래님의 덧글 내용을 추가해 놓습니다.
漢書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 의 樂浪郡조를 보면 邯은 '한' 또는 '감'으로 읽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명에 따라 寒 또는 감(酉+甘)으로 발음한다고 안사고가 주석을 붙여 놓았습니다.
강감찬으로 읽는 것이, 일제강점기때 만든 것일거라는 것은 잘못된 억측에 불과합니다.
또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 가보니,
1908년 우기선이 편집한 강감찬전, 1913년 박건희가 편집한 고려강시중전, 1926 장도빈이 지은 강감찬전에서 분명히 한글로 강감찬이라 적고 있으며, 수많은 민간전설에서도 하나같이 강감찬이지 강한찬은 아닙니다.
중국의 강희자전에도, 邯을, 한, 감, 함으로 발음을 표기하고 있습니다.
잊혀진미래님의 노고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덧글
강감찬으로 읽는 것이, 일제강점기때 만든 것일거라는 것은 잘못된 억측에 불과합니다.
漢書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 의 樂浪郡조에 보시면 있습니다
또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 가보니,
1908년 우기선이 편집한 강감찬전, 1913년 박건희가 편집한 고려강시중전, 1926 장도빈이 지은 강감찬전에서 분명히 한글로 강감찬(강한찬이 아니라)이라 적고 있으며, 수많은 민간전설에서도 하나같이 강감찬이지 강한찬은 아닙니다.
중국의 강희자전에도, 邯을, 한, 감, 함으로 발음을 표기하고 있습니다
한국고전종합DB를 살펴보시면 알 수 있어영^_^))
그래도 초록불 님 같은 분이 있어 다행입니다 ~ :)
고어핀드님 / 견훤의 경우 진훤이 본 발음이었을 것이지만, 이 역시 후대로 오면서 "견"으로 발음이 굳어진 경우이기 때문에 진훤이라 읽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역사소설을 쓸 때나 참고할 내용이죠.
날씨좋다님 / 그래서 학자들은 항상 자기 주장에 신중해야 합니다. 재미는 없을지 몰라도...
머미님 / 루드라님 이야기가 맞습니다.
그런쪽으로는 지식이 없던 저로서는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되는군요...
꽤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령 견훤의 원 발음이 진훤이라는 것도 그런 경우가 아닐지 의심이 가더군요. 당장 무수한 참고 서적이 깔려 있고 인터넷까지 발달한 요즘만 해도 고구리와 강한찬을 줄기차게 우겨대는 분들이 계시잖습니까. ^^;
前漢書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
樂浪郡 ...남邯[孟康曰남(웹에서 표현이 안되는 군요)音男師古曰남音乃甘反邯音酣] 이라고 분명히 용례가 있을 뿐더러, 邯音酣 도 과연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동사강목 제5상의 892년조에 보시면, 甄(音眞)萱이라 되어 있습니다.
증보문헌비고와 완산견씨 족보에도 그렇게되어 있다는 데 직접 확인은 못했습니다.
이도학의, 궁예진훤왕건과 열정의 시대에 보시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초록불 // 견씨 족보 얘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저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오히려 그게 족보여서 더 믿기 어렵다는 거죠. 족보를 왜 믿기 어려워 하는지는 잘 아실 겁니다. ^^
예전 서울시장 양탁식씨가 '양택식'이 된 사연을 생각하면 '강감찬'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동사강목 : 진훤
증보문헌비고 : 진훤 (원출전은 동사회강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한편, 동사강목의 인용서목에 동사회강이 있으니. 아마 동사강목의 원출전도 동사회강이라 생각됩니다. 즉, 동사회강->동사강목, 증보문헌비고 : 진훤이라 읽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李源益 東史約에는, 한 술 더 떠, 甄字爲姓則音陳或稽 이라 하여, 진훤또는 계훤이라 하니 어느 장단에??......
1. 본문에 인용된 덧글 내용 중 [지명에 따라 寒 또는 감(酉+甘)으로 발음한다고 안사고가 주석을 붙여 놓았습니다.]라는 말씀은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酣(酉+甘) → 이 한자의 음가는 集韻에 呼紺切 音顑라 나오므로 [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운옥편에는 감과 함 모두 등재되어 있군요.
2. 邯을 [감]이라고 발음하는 믿을 만한 사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唐韻, 集韻, 韻會, 正韻, 廣韻 따위에 모두 [함]또는 [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헌을 보아도 동국정운에 [함]으로 나오고 이밖에 전운옥편, 자전석요, 신자전, 국한문신옥편에도 [한] 또는 [함]이지 [감]은 없습니다.
3. 姜邯贊의 본명은 姜殷川입니다. 邯을 [한]으로 보면 殷川과 邯贊의 발음이 비슷합니다. 殷은 [은] 말고도 [안]의 음가가 있습니다. 소리나는 대로 강안쳔 또는 강은쳔으로 이름을 지었다가 벼슬길에 나가고 나서 좀 멋있는 한자를 붙여서 姜邯贊[강한찬]으로 개명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고려시대 인물인 만큼 전승이 끊어졌을 수 있고, 구한말에 영웅을 재조명하다보니 착오로 [강감찬]이라 잘못 읽은 것이 굳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원래 강한찬으로 읽었다면 한글 표기가 강한찬으로 나오는 근거를 찾아야 하는 것이지, 중국 표기법으로 한이 맞으니까 한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