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의 창작물이라고 하자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민족이라는 용어가 얼마나 일반인들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린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부정적인 반응은 여러가지 갈래로 나타난다.
1. 민족이 없었다니? 그럼 고구려, 신라, 백제는 다 뭐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근대에 형성된 민족과 그 이전에 있었던 종족으로서의 ethnic group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의 논의는 쉽지 않다. 서강대 김한규 교수는 [역사공동체]라는 용어를 제안했고, 홉스붐은 historic-nation이라는 말을 했다. 또는 [민족체]. [준민족]이라는 용어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이런 반론이 들어온다.
2. 귀찮게스리! 같은 민족이 죽 지속되어 온 것인데, 왜 [민족]이라는 용어를 그렇게 싫어해서 다른 말을 만들려고 하는 거냐?
인문학에서 용어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한다. 여기서 민족이 왜 근대에 만들어진 용어인지 설명할 수는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민족이란 무엇인가? 세번째 [클릭]를 참고하기 바란다.
3. 곰팡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곰팡이가 없는 건 아니야! 니 말대로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에 나왔다고 해도 그건 그전부터 있던 민족이란 것을 그때서야 발견했다는 것 뿐이야!
이미 위에 링크한 글에서 설명했지만, 계속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자연현상이나 자연적인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XX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그 고등학교가 없었다면 당신은 그 고등학교의 학생일 수가 없는 것이다.
4.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한민족이라는 고등학교는 옛날부터 있었던 거라고!
그건 당신의 믿음일 뿐이다. 옛날에는 고구려인, 신라인, 백제인이 있었을 뿐이고, 고려인, 조선인이 있었다. 한민족이라는 것은 없었다.
5. 물론 한민족이라는 말은 없었지. 하지만 바로 신라, 백제, 고구려, 고려, 조선인이라는 게 한민족이잖아!
대개 여기서 서로 하는 말이 쳇바퀴 돌게 된다. 민족론자는 한민족이라는 말이 없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해당 용어가 없다고 해서 실체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면 좀 길고 복잡해지지만 상대가 [민족]이라고 믿는 실체를 깨부셔줘야만 한다. 그것에 대해서는 민족이란 무엇인가? 첫번째 [클릭] 포스팅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승복하지 못하고 "동아시아, 특히 우리나라는 달라!"라고 우기면 저 지루한 연작 시리즈(10편까지 있다.)를 다 읽게 하는 수밖에 없겠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이런 말로 반박을 가해 온다.
6. 민족이라는 말은 없었어도 그에 해당하는 말이 있었어! 겨레! 겨레라는 말이 있다고!
겨레. 겨레란 무슨 뜻일까? 사전을 살짝 찾아보자.
겨레 -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
과연 [민족]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사전에서도 [겨레=민족]이라고 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럴까? 다시 한번 보자. 저기에서 [같은 핏줄]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하다. 겨레라는 말은 본래 혈연을 나눈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국어사전 가지고 인문학이나 철학 따지려고 하면 매우 곤란하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겠다.)

황뎨의 겨레오 = 황제의 친척이오
겨레들이 모두 졔하고 = 친척들이 모두 제사지내고
먼 겨레 = 遠族 (혈통이 먼 일가)
겨레 만타 = 族黨衆多(족당은 같은 문중이나 계통)
이렇게 살펴본 바와 같이 겨레라는 말은 [민족]과 같은 뜻의 말이 아니다. 우긴다고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겨레라는 말은 민족과 같은 포괄적인 범위를 가진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을 하나의 집안=일가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것은 북한 정권이 50년 동안 추진해온 일이기도 하다.
[추가]
겨레라는 말이 과거의 좁은 의미에서 오늘날에는 거의 민족과 동격인 단어로 의미를 확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확장된 의미를 과거로 다시 보내서 과거부터 민족에 해당된 단어인 [겨레]가 있었다고 주장하면 안 된다. 더구나 겨레라는 말은 혈족을 의미하는 본 뜻이 있기 때문에, 인종주의적인 냄새를 풍기기에 아주 좋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볼드모트 추종자라 불러 마땅하리라.
덧글
쩌비님 / 민족이라는 관점을 벗어나면 세상이 더 풍요롭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불편한 진실일까요?
이녘님 / 이데올로기도 시대의 영향을 받지요. 유관순 열사의 시대에는 민족이라는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bumong님 말씀처럼 나라와 민족을 분리해서 사고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들을 그 시대의 관점에서 유리시키면 곤란할 겁니다.
bumong님 / ^^;;
음음.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조금 빗나가버렸네요. 민족이 허구라는 주장은 이제 거의 거역할 수 없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과연 그 허울을 벗겨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네요.
민족주의(내셔널리즘이 아닌) 내지는 "우리는 같은 백성"이라는 개념은 서양 보다 더 먼저 형성 된 것 같습니다.
사실 "민족", "단일민족"...이런 것은 실체가 불분명한데 말이죠 ;ㅅ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합리적이고 냉정한 비판보다 온정적이거나 양극단을 오가는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민족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배타적 집단주의가 더 큰 문제 같습니다. 민족 뿐만 아니라 국가, 이념, 인종, 지역 이런 것이 저 배타적 집단주의와 만나면 ...
이 민족이라는 개념이 특정 이념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이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인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혹은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국가주의 혹은 국민주의 민족주의따위로도 불리울 수 있기도 하고, 일단 특정한 이데올로기와는 다르게 개개인의 정체성의 범위가 발전하면서 이데올로기화된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애매한" 개념이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비합리적인 개념"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을 한국사에 적용하면, 내셔널리즘(민족주의) 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은 "구한말"이고, 그것이 대중화되지 않지만 17세기무렵의 서양의 세계관을 접한 실학자들에게서도 종종 보이기도 합니다. 후삼국을 끝으로 고려 이래 지속적으로 단일화된 "국가체제" 및 사회체제가 계승되어 왔다는 점을 들어, 혹은 고려시대에 삼국유사가 편찬되었다는 점을 들어 일단 근대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형성될 수 있는 배경"이 중세시대무렵이 형성되어가고 있던 것으로 보이며...
중세이전의 삼국 혹은 발해신라시대의 경우,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나, 삼국사기등의 기록을 볼 때, 그 시기는 정치적인 공동체가 확고하게 확립되었다기보다는 사회문화 공유가 진행된, 혹은 진행되고 있는 시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즉 "사회적인 공동체"형성은 고려이전의 시대, "정치적공동체"의 개념은 고려 및 근세조선에, "내셔널리즘"의 형성은 대한제국의 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따라서, 근대이후의 한국사회에서 인식되는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전근대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단 그 당시와 지금의 종교관이나 철학관이나 세계관이 지금과 너무나 달랐고, 지금과 같은 교육체제나 행정체제도 미약했던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념할 것은 민족 혹은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정체성의 이데올로기화"이며, 그것이 형성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시공간적인 시각이 형성된다는 것이고, 그 민족이라는 것을 주창하는 시점의 그 "주창집단" 은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간을 초월하여 역사적인 영역에까지 함부로 적용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역사속의 일정한 사회집단은(국가 혹은 지역, 혹은 사회 혹은 개개인) 그 사회를 지탱해온 수 많은 물적, 인적, 사회시스템적 요소들이 분명 존재하였고,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 시점을 기준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사에 왜곡되었던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대교린과 조공책봉이라는 국제관계입니다. 이것을 식민지로 인식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설명하자면 길어지는데, 우선 말씀드리는 것은 전근대 동아시아사회는 사대교린과 조공책봉이라는 것이 중심에 있었지 "사대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중심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묘청봉기의 경우도 사대파와 자주파등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 여기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글이 본의 아니게 길어지게 된 점 죄송합니다.
http://orumi.egloos.com/2735681
에 나오는 일련의 시리즈도 보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 우리민족이 역사가 흐르면서 단일화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는데요... 제가 틀린가요?
님이 예를 들어놓은 내용으로만 보아도 겨레는 피를 나눈 사람들의 의미로 통용되었다 해도 무방합니다. 민족이 피를 나눈 사람들의 국가적 단위의 집단성을 얘기하지 않나요? 말하자면 혈족들이 모여 백성을 이룬 것이 민족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겨레가 민족을 의미하는 순수 우리말이 아니라니... 이런 논리 얘기하면 논리적으로 당신이 틀렸기 때문에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식의 논리를 펴내는 사람이 국수주의네 환빠네 뭐네 이런 얘기한다는게 어째 좀 찝찝하군요.
저는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정보를 보고 그것이 객관성을 띄었는지는 판단할 수 있는데 앞으로 여기 종종 오게 될 것 같지만 님의 이야기가 객관성이 떨어져 국수주의네 하며 비난하는 님의 생각이 옳은 건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누차에 걸쳐서 말하지만 "환빠"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http://orumi.egloos.com/3994827
님과 같은 분이 정보를 보고 객관성을 판단한다는 게 어째 좀 찝찝하군요. 비난과 비판도 구분을 못하면서...
겨레 만타 = 族黨衆多(족당은 같은 문중이나 계통)
여기 님이 올린 자료에도 혈통이 먼 일가나 문중이나 계통으로 나와있네요.
그렇데몬 혈족개념의 포괄적 의미로 확대되었다는 얘기고, 그 확대된 개념이 민족이 되었다는 얘기죠.
언어라는 것이 처음에는 시간에 따라 그 의미가 변색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의미로 생성되기도 합니다. 같은 단어를 놓고도 시기별로 그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발음도 달라지기도 하죠.
우리가 자주 쓰는 '사랑'이라는 말의 어원을 밝히자고 보면 우리는 지금 사랑이라는 말을 근원적인 의미로만 써야 합니까?
대체 말이 안되는 논리를 펴시는데 참으로 억지스럽고 웃기고...ㅋㅋ
이런 분의 이야기를 듣고 아 맞다 맞다 하는 사람들도 정말 어이가 없네요. ㅋㅋㅋ
이런 개념이 20세기에 들어와서 확대되었다는 점은 이미 위 포스팅에 있습니다. 안 보이세요?
님이 말씀하시는 그대로 "언어라는 것이 처음에는 시간에 따라 그 의미가 변색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의미로 생성되기도 합니다. 같은 단어를 놓고도 시기별로 그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발음도 달라지기도 하죠."라는 것을 이 포스팅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님이 말씀하시는 "우리가 자주 쓰는 '사랑'이라는 말의 어원을 밝히자고 보면 우리는 지금 사랑이라는 말을 근원적인 의미로만 써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오늘날 우리가 어떤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당연히 오늘날 우리가 쓰는 의미로 써야하지만, 역사학에서 용어의 정의를 내린다면 역사적 근원을 따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기초도 모르시다니...
겨레라는 말은 '민족'의 순우리말이 아니고, 20세기에 들어와서 민족이라는 말과 같이 쓰이게 된 말이라는 이야기에요. 아시겠어요?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고 볼테르가 이야기했지요. 님이 ㅋㅋ라고 달고 있는 행위도 그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혈족의 방계적 개념이 민족으로 확장된 데에는 그렇게 성립될 만한 공통적인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당시에는 그래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는 것은 겨레 라는 친족단위로만 축소시켜 사용했다는 좀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혈족으로 구성된 집단들이 한 부족을 이루고 한 국가를 이루며 살아갔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말하자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통일을 해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한 데에는 비슷한 언어, 비슷한 외형, 비슷한 생활습관들로 인해 하나의 근접한 혈족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따라서 그러한 통일을 통해서 결국 겨레라는 말이 민족의 개념으로 확장되기에 충분할 것 같은데요.
당시 겨레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좀더 명확한 자료 검증 조사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님이 말씀하시는 겨레의 민족 개념이 20세기에서야 생성되었다는 의견으로 겨레라는 말이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 아니라는 입장은 저로서는 납득이 안갑니다.
문장이 매우 이상하군요. 오늘날 겨레라는 말에 들어있는 민족 개념은 20세기 이후에 생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위 포스팅은 "민족"이라는 말이 20세기에 nation의 번역어로 제공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어지게 되자, "겨레"라는 말이 있다고 들고나온 것을 반론하기 위해 작성된 것입니다. 낭만다람쥐님도 이제는 "겨레"라는 말이 "민족"이라는 의미를 과거에 지니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가 되시겠지요?
그런데 님이 갑자기 논점을 바꿔서 "민족" 자체를 문제화하고 있군요. 논점을 이런 식으로 이탈하면 곤란합니다. 뿐만 아니라 님은
>혈족으로 구성된 집단들이 한 부족을 이루고 한 국가를 이루며 살아갔던 역사적 사실
이라고 하는데, 국가형성사 자체에 대해서 이해가 전혀 없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드려야 할지 알 수가 없네요.
포스팅 5번에 있는 링크부터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연작포스팅이므로 통독하면 국가와 민족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조금 이해가 생길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님만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이 문제는 따로 한 번 포스팅하도록 하지요. (마는, 요즘 일이 너무 밀려서 빠른 시일 내에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님의 이야기가 어느정도 논리를 띄고는 있긴 하지만 결국 정확하지 않다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매우 간단합니다. 옛날 "겨레"라는 말에는 서구 번역어인 "민족"이라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두 단어가 같은 것이었다면 번역어가 생길 리가 없지요.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휴먼이라고 쓰지 않았던 것처럼...
거리가 먼 말이 아니었다라...
님에게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일본인들이 서구 단어들을 어떻게 번역했는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조어(번역어)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기존 한자의 의미를 바꾸지 않고 조합해서 쓴 경우, 두번째는 '자유'처럼 이전부터 있었던 한어의 의미를 바꿔서 사용한 경우, 세번째로는 '부동산'처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낸 경우이지요.
'겨레'라는 말은 어디쯤 해당될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겨레라는 의미가 그 당시 단순히 친족의 의미로만 사용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자료도 빈약할 뿐 아니라 겨레의 의미가 민족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만한 근거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겨레와 민족의 의미가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이 정확한 경계를 이루다가 갑자기 등장한 민족이라는 용어와 함께 쓰였다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구요.
겨레가 민족으로 확장되기에 충분한 의미로도 활용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말이죠.
그리고 말씀해주신 <번역과 일본의 근대>는 어떤 분의 책인가요?
가끔 식민사관에 쪄들어 있는 분들이 일본연구자와 학계의 자료들로 무장하여 논리화시키는 걸 봐서 말이죠. 그렇다고 제가 환국의 존재를 믿는다거나 부정한다거나 그 둘 중 하나의 입장은 아닙니다.
과연 님의 의견이 중립적인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이야기드렸잖아요.
>낭만다람쥐님이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겨레라는 말이 "친척" 이상의 용례로 사용된 전근대 자료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러니저러니 상상에 기인한 말을 하지 말고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하기 바랍니다.
겨레와 민족의 의미가 칼로 무 자르듯이 경계를 이루다...라니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는 하고 말하는 건가요? 아직도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데, "민족"이라는 단어는 번역어에요. 옛날에는 없던 단어라고요. 없는 단어가 무슨 경계를 이룹니까?
중립은 갑자기 왜 찾으세요? 여기에 객관은 있어도 중립은 없습니다. 부디 사용하는 용어에 개념을 잡기 바랍니다.
님이 저 위의 4가지 용례를 가지고 도식화시킨다는게 말이 안된다는 얘깁니다.
민족이라는 역어가 겨레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겨레라는 말이 민족을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중립이라는 얘기는 님이 주장하는 얘기가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한쪽으로 편협된 객관일 수도 있기 때문에 사용된 말이지요.
뭐 님의 사이트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데는 뭐라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면 덧글을 닫아놓으시던가요.
다른 사람의 의견 중 합리적인 얘기는 좀 들어야지 않겠어요? 주장만 하지 마시고..
님의 도식적인 설명은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자료일 뿐이지 사실은 비약되어 있잖아요.
민족이라는 역어가 나왔기에 겨레라는 말이 원래는 민족의 의미도 없는데 어느 순간에 우리가 순우리말로 대체해서 사용하는 것 뿐이라는 듯한 비약이요.
하지만 겨레가 님이 제시한 위 네가지 용례를 들여다봐도 민족이라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겁니다.
난독증이 있으신지... 경계를 이루는 말은 아니라는 말은 바로 위 설명과 같은 맥락이에요. ㅋ
겨레와 민족이 각각 그 의미하는 바가 칼로 무자르듯 뚜렷한 경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의미를 한정해서 님처럼 도식적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처음에 한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를 다시 쓰면 재미있으세요? 저도 다시 써드릴게요.
>낭만다람쥐님이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겨레라는 말이 "친척" 이상의 용례로 사용된 전근대 자료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러니저러니 상상에 기인한 말을 하지 말고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하기 바랍니다.
저쪽이 잘못했으니 우리도 잘못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는 어린이의 투정 같은 이야기입니다. 저들이 잘못할수록 우리는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노자가 3천년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굳은 것은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요, 정의는 정의를 통해 달성될 뿐입니다.
멋진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이 지적한대로 의로운 백이,숙제는 굶어죽고 안회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사악한 도척(도둑놈 척이라는 뜻으로 본명은 전척입니다.)은 산사람의 간을 꺼내 먹었지만 편안한 여생을 살다 갔죠. 멀리 갈 것 없습니다. 천황과 황족의 식민지배&전쟁범죄에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A급 전범 다수는 살아서 활개치지만(대표적으로 사사카와 재단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역사왜곡을 하는 곳인데 한국연예인이 거기 홍보한다는 사실에 멍했습니다.) 의친왕 강의 후손들은 곤궁하게 살고 강제로 징병된 조선인들은 B,C급 전범으로 몰려서 사형당했습니다.
악운惡運 : 죄를 지은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잘사는 운명.
"정의가 이루어지기는 합니까?"
2. 그리고 중국의 경우 그런 주장이 세계학계에서 먹히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시야를 너무 좁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3. 설령 희망이 없어보인다 해도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희망이 없어보인다고 패도를 선택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변절자들이 늘 하던 소리였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이 책의 머릿말에 대한 답은 없네요. 위의 링크는 이와는 관련 없지만 일본 인터넷에서 어떤 한국의 이슈에 대해 나눈 이야기입니다. 얘네들의 머릿속 편견을 초록불님은 환Q처럼 비꼴 수 있습니까?
<-댓글을 보니 이런게 생각납니다.
한국의 유대인음모론자들은 탈민족주의가 세계정부를 건립하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것도 뉴라이트가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그 근거라고 합니다. 이 정도로 한국에선 탈민족주의에 대해 놀라울만큼 무지하기에 잘못된 결론이 도출된 셈입니다. 근데 웃기는건 유대인음모론자들이 (유대인의 민족주의인)시오니즘을 비난하면서 프리메이슨에 대항하려면 민족주의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1. 표해록
(중략)
최부의 표해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요양에 도착한 이튿날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계면 이라는 중이 찾아 와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소승은 본래 조선사람으로 소승의 할아버지가 이곳으로 도망해 온지 벌써 3대째가 되었습니다. 이 지방은 땅이 본국의 경계에 가까우므로 본국 사람이 와서 거주하는 자가 매우 많습니다. 중국 사람은 겁이 많고 용맹이 없으므로 만일 도적을 만나게 되면 모두 창을 던지고 도망해 버립니다.
또 활을 잘 쏘는 사람도 없으므로 반드시 본국 사람으로서 귀화한 사람을 뽑아 정병으로 인정하여 선봉을 삼게 되니 우리 본국의 한 사람이 중국 사람 열명 백 명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 지방은 곧 우리 고구려의 도읍인데 중국에게 빼앗겨 속한 지가 천여년이나 되었습니다.
우리 고구려가 끼친 풍속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고려사(高麗祠)를 세워 근본으로 삼고 공경하는
제사 지내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니 근본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듣건대 '새는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여우는 죽을때 살던 굴로 머리를 돌린다'고 하였으니,
우리도 본국으로 돌아가 살고 싶습니다.
다만 본국에서 우리를 중국 사람으로 인정하여 중국으로 돌려보내면 우리는 반드시 외국으로 도망한
죄를 받아 목을 잘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무로 마음은 가고 싶지만 발이 머뭇거릴 뿐입니다."
(중략)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nightblack&logNo=13250314
2. 이덕일의 "역사사랑" 중에서
민족과 탈민족
(중략)
앤더슨의 이런 주장은 국내의 일부 학자들에게도 받아들여져 탈민족 논쟁이 일어났다. 민족은 근대 일본에서 민과 족의 합쳐져 만들어진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 들어서야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은 청의 왕도가 1882년 '양무재용기소장'에서 사용한 사례가 있듯이 일본에서 만든 조어만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원문에 민족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실록은 민족 대신 '아족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떄의 '아족류'는 '우리 민족',또는 '우리 겨레'로 번역하면 정확하다. 이 용어는 일본인,여진인 등 이민족과 구분하는 비교사로 주로 사용된다. 이에 비해 일가친척을 뜻하는 겨레를 이는 실록에서 '族',또는 '族人'으로 표기된다.
(중략)
초록불님은 국사책과 의견을 달리하시는 것 같은데 한가지만 인용하자면 김부식에 대한 평가가 국사책과 초록불님의 주장이 서로 상반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초록불님을 본지가 대략 2년정도 되는데 처음엔 쿠투넷의 이야기를 보고 진짜로 식민사학자인줄 알았는데 초록불님의 글들을 읽어보니 그게 쿠투넷의 매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선왕조를 올바르게 해명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유사역사가들에게 식민사학자 취급받고 있는 현실을 보니 서글프기 그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