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파는 사람들 *..자........서..*

오늘 외출했다가 모 라디오 방송에서 웃기는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1980년대 이야기. 5월이 되면 많이 나오는 이야기긴 하다. 나온 게스트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이런 식으로 떠든다.

"그 시절에는 대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흘에 한 번은 경찰서에 잡혀가서 자고 나왔습니다."

맞장구 치는 DJ. (물론 김대중은 아니다.)

"정말 끔찍한 시대였군요."

다시 설레발 치는 게스트.

"지금은 상상도 안 되겠지만 80년대에 대학 다녔던 분들은 '그래, 그래' 하며 맞장구 치고 계실 겁니다."

맞장구? 헛웃음도 안 나온다. 1985년에서 1987년까지 서강대 총원 6천명 중 데모를 하는 인원은 5백 남짓이었다. 나머지 5천 5백은, 심정적 동조를 했을지는 몰라도 데모 인원은 아니었다. 물론 이들도 4.19나 5.18에는 더러 참여를 해서 그런 기념비적인 날에는 천 명 정도 데모를 하기도 했다. 내 기억에 가장 많은 수가 학내 데모에 나선 것은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이었던 1987년 가을이었던 것 같다. 한 2천명쯤 데모를 했는데, 학내에서 그렇게 긴 스크럼은 처음 보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80년대 학번이면 개나소나 다 민주화 운동했다고 설레발들이다. 아니, 설레발까지도 좋다. 하지만 위와 같은 뻥은 곤란하단 말이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가 섞여 나가니까 젊은 애들이 "에이, 말이 돼?"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글쎄, 그 시절 우리의 뇌 속에 공포가 한자락 깃들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뇌를 옥조르고 있었는지, 그게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뇌 속에 깃든 공포가 어떻게 심장을 짓눌렀는지, 어떻게 우리가 숨쉬는 공기마저 부담스러웠는지 이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그 공포는 물리적인 것으로 환산되는 것도 아니고, 꼭 현실 속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 공포가 예술적으로 잘 익으면 우리도 스티븐 킹 같은 작가를 한 명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런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이 내가 대학 때 만들고 싶었던 세상이기도 했다. 그런 것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는데, 대신 뻥쟁이들도 많이 얻은 것 같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형은 내게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선물했다. (당시는 판금서적이었다.) 그 시야말로 그 당시 대학생활의 공포를 잘 전해주고 있다고 해야겠다.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내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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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메르키제데크 2007/05/21 23:01 # 답글

    요사이는 확실히 운동권이라는 것이 캐리어화 된지 오래지요.

    밸리에서 봤을 때는 에어로빅 이야기인즐 알고 들어왔습니다. ^^
  • Honey 2007/05/21 23:04 # 답글

    저두 몸만들기 관련인 줄 알았습니다.^^;;
  • 초록불 2007/05/21 23:05 # 답글

    메르키제데크님 / 별 가치도 없는 캐리어지요...^^;;

    Honey님 / 본의 아니게 낚시글이 되어버렸군요.
  • 카시아파 2007/05/21 23:36 # 답글

    저도 몸짱 비판글이 아닐까 했다지요.... ;;;;;

    중고교 때까지 몰래몰래 읽고, 금관의 예수 노래를 원시 가사대로 바꾸어 불러보고, 대학 들어가서는 판금은 풀렸지만 또 언제 어찌 될 지 모른다는 두근거림에 샀던 여러 책들과 김지하의 시집. 이렇게 다시 보니 감회가 색다르네요. 하지만 91년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라는 사설을 발표해 혼란을 주었던 당사자이기도 했던 김지하. 10년 뒤엔 그가 어떻게 불릴 지 궁금합니다....
  • 이준님 2007/05/21 23:38 # 답글

    1. 선우휘의 소설도 그렇고 이태준의 해방 전후에서도 완곡하게 꼬집는 이야기지만 "일제 시대를 살았"다면 모두 독립운동가나 그런 간악한 일제의 만행~을 겪은 류로 나가는게 많지요. 역설적으로 그런 이유때문에 요새는 "일제 시대의 사회상"에 대해서 새롭게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만.

    2. 스티븐 킹의 경우는 "미국의 시골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생활속의 공포"가 근본적인 바탕이지요(초기작이 Castlerock-모씨의 이글루 주소와 비슷한?-를 무대로 한 이유입니다.) 다만 이 아저씨의 경우도 60 ~ 70년대의 히피문화와 반전운동을 회고하는 꽤 괜찮은 연작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작이 바로 펜서비스와 거꾸로 번역으로 악명높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Hearts in Atlantis)입니다.)
  • 이준님 2007/05/21 23:40 # 답글

    3. 오히려 스티븐 킹같은 작가가 한국에 나와서 80년대를 괜찮게 회고하는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물론 한국판 내 영혼의~를 지으면 인터넷에 올라와서 표적이 된다는데 한표입니다만.

    ps: 일본 우익들의 말이야 들을 가치도 없는게 많은데 가끔보면 "일제를 파는 사람들"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솔로몬 군도의 영국군의 압박) 아마 운동도 저렇게 팔면 역설적으로 다른 세력들에게 농락당할수 있겠죠
  • 시퍼렁어 2007/05/21 23:41 # 답글

    저는 선동문화는 그다지 관심도 없을 뿐더로 호감도 안가요 요즘 세태인듯 등록금 투쟁도 안습...
  • 초록불 2007/05/21 23:50 # 답글

    카시아파님 / 인간은 변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이준님 / 이미 농락당하고 있는 중이죠.

    시퍼렁어님 /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족한 거죠. 80년대는 학생들에게 쓸데없는 짐을 얹어놓았던 때였어요.
  • 슈타인호프 2007/05/22 01:12 # 답글

    서강대는 유독 참가율이 낮은 편이었지만, 다른 학교라고 해서 전원 참가~~는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강대도 81~83 연간은 그래도 제법 많았다는군요.
  • 초록불 2007/05/22 01:17 # 답글

    슈타인호프님 / 학생 비율로 보면 서강대는 참가율이 높은 편입니다. 절대 수자가 적을 뿐.
  • 파파울프 2007/05/22 05:20 # 답글

    이미 저때에는 시위는 별 세계의 이야기 였습니다, 처음 선배에게 속아(?) 시위에 참여 했을때 참가 인원이 백명? 그나마 정치 문제일때는 소위 골수분자 이외에는 아예 참가하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죠. 그리고 제가 일전에 말한 배신감으로 그곳을 떠난 뒤 군대까지 다녀오고 나서 보니 아예 시위 자체가 거의 없어 졌더군요.

    한번은 중앙에서 인문대를 거쳐 자연대로 올라와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데 도대체 논리도 없고 말 재주도 없이 그냥 나가자라고만 외치더군요 그 뒤로 참여숫자는 들고있는 깃발 숫자보다 적은 것 같았습니다.
  • 맑음뒤흐림 2007/05/22 08:29 # 답글

    1993년 쌀개방 시위때 참가... 앞에서 소리치던 넘들 막상 경찰과 대치하니 어디론가 사라지고, 저같이 단순가담자들이 어느샌가 젤 앞에 서서 경찰과 대치하게 되다가 결국 닭장차 타버렸습니다. 그게 투사인지 선동가인지 =ㅅ=
  • 부엉 2007/05/22 09:34 # 답글

    98년 즈음에도 이미 학생들이 단독으로 목소리를 낸다는것 자체가 힘들어졌었죠.
    사석에서나마 정치적인 문제를 거론하면 또라이 취급받았었으니까요.
    그나마 등록금 인상 반대같은 이슈일때는 길가다 돌아보기는 하더군요.
    지금 학교에 있는 후배들에게 들으면.. 정치세력으로서의 학생운동은 이미 끝났다고 보고 있는게 요즘입니다.
    어찌보면 마지막 세대에 걸친 입장으론 당연한듯 하면서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 초록불 2007/05/22 09:55 # 답글

    파파울프님 / 나는 이미 87년으로 학생운동의 역할과 사명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88년에는 저도 조용히 수업만 들었습니다...^^;;

    맑음뒤흐림님 / 고생했군요. 그런 선동가들이 있었죠. 나중엔 또 그걸 팔아먹는 인간들이 그 안에 꼭 있더군요.

    부엉님 / 언젠가 그 힘이 꼭 필요한 때가 되면 다시 나서게 되겠지만, 기성세대들이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잘해야 하겠지요.
  • 아케트라브 2007/05/22 17:38 # 답글

    어른들이 군대에기하는거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 초록불 2007/05/22 18:23 # 답글

    아케트라브님 / 정말 그렇겠습니다.
  • muplee 2007/05/22 18:29 # 답글

    서에는 많이 갔지만 보통 다른일로... =.=
  • 초록불 2007/05/22 18:36 # 답글

    muplee / 다른 일이라니? 설마 프락치? (농담 농담)
  • 샤도우 2007/05/23 08:36 # 답글

    1986년에서 1989년까지... 사실 길가다가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닭장차(전경버스)에 갖히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습니다... 저도 가다가 몇번 걸렸었는데... 1학년때라... 지들끼리 "신입생이자너... 걍 보내줘라..." 막 이래서 간신히 풀려난 적도 있구요... 제가 기숙사 생활할때 제 동기하나가 고향집에서 이불한채 짊어지고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다가, 전경들이... "아쭈 이새퀴... 철야농성 하려구 이불까지 싸들고 가네" 하더니 경찰서로 끌려가서 3일간 학교에선 행불처리 되었답니다...
  • 샤도우 2007/05/23 08:38 # 답글

    저는 사실 골수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87년 6월만큼은 열렬한 투사 였습니다... 내옆에 있던 학생들... 직격탄 맞고 막 쓰러지고... 지랄탄에... 하여튼 그당시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투사였죠... 과장없이... 우리과 60명중에 반이상이 모여서 같이 시내데모에 나갔으니까요...
  • 초록불 2007/05/23 08:44 # 답글

    샤도우님 /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죠. 집회가 있는 날, 검문에 꼭 걸리는 친구들이 있기도 했지만 대학생이 모두 잡혀간다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잖습니까? 사흘에 한번이라는 말은 일주일에 두번이나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말인데, 첫째로 데모가 그렇게 자주 열리지도 않았고, 둘째로 요시찰의 주요 운동권 인사가 아닌 일반 대학생까지 잡아넣을만큼 경찰이 한가하지도 않았죠. 데모 경험담이라면 저도 얼마든지 늘어놓을 수 있지만, 그러다가 신촌에서 기침한 사람이 왕십리에서 죽어버리게 되면 곤란합니다.
  • 초록불 2007/05/23 08:46 # 답글

    6월 항쟁의 특수한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일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저렇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거죠. 사실 심지어 그 6월에도 학과의 절반은 데모에 나가지 않았다는 말과 같은 이야기잖습니까...
  • 초록불 2007/05/23 08:48 # 답글

    과장을 하는 순간 진정한 공포는 사라집니다. 제가 무서워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죠. 독재에 대한 진정한 공포를 망각하면 독재는 언제 우리 곁으로 돌아올지 모릅니다. 저는 운동을 농담처럼 팔아먹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할텐데 말이죠. 정말 80년대에 공포와 맞서며 운동을 했다면 저렇게 이야기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 레오 2007/05/23 20:54 # 답글

    80년대의 로망을 동경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허허..
  • 초록불 2007/05/23 22:25 # 답글

    레오님 / 허허, 대학 1학년 때 내 친구는 날 붙잡고, "대학에 오면 낭만이 있을 줄 알았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죠. 로망이라...
  • 한도사 2007/06/01 16:02 # 답글

    고등학생때 김지하의 '타는목마름으로'와 '오적'을 읽고, 메아리 노래책을 섭렵했던 저는 지금 생각하니 빨갱이였었나봅니다. 하지만 그때만큼 이 詩가 절절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88년부터 저도 길바닥에 나갈일이 없어 한가해 졌었습니다. (군대에 갔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국에서의 학생운동은 87년으로 끝났다는데에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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