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는 동영상을 보았는데, 참 거짓말도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네모 안에 보이듯이 평정산(핑딩산)의 높이를 8611미터라고 한다. 거의 에베레스트 수준이다. 신문에 실렸다는 사진에는 이 엉터리 높이는 나오지 않는다. 평정산의 높이는 분명한 것이니 사기를 칠 수 없었던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국민 혈세를 받아 근무하시는 대한지적공사 조병현 지적재조사팀장은 저 하얀 테두리가 모두 백두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말로는 백두산맥이라고 써 놓았다. 대체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그렇게 주장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주장하는 천지가 평정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평정산은 흑룡강성 이춘시 철력현에 있고, 천지라 주장하는
댐 저수지인 고이빈수고庫爾濱水庫는 흑하시 손극현에 있기 때문이다. 대충 눈짐작으로 보아도 15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인 셈이다. 즉 북한산 정상에 있어야 할 연못을 대둔산에서 찾고 있는 셈이다. 아래 지도에서 빨간점 찍은 곳이 대충 그 저수지 위치다. 아래 평정산, 위로 흑하시가 보인다.
Banti님이 이미 지적한 바가 있지만(
백두산이 사실 다른 곳이라고?) 위 지도에서 보아도 평정산을 송화강이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평정산에서 동요하가 발원한다든가, 송화강이 발원한다는 것은 말짱 거짓말이며, 더구나 흑룡강을 다른 이름인 헤이룽(중국 발음)강과 아무르(러시아 명칭)강으로 나누어 토문과 두만으로 둔갑시키는 뻔뻔한 짓도 한치 양심에 찔리는 바 없이 해치우고 있다.
평정산에서 고이빈 수고 사이에 산이 몇 개나 있는지 셀 필요는 없을 텐데, 재미삼아서 그냥 철력현 안에 있는 산만 짚어본다.
이것이 댐의 저수지라는 분명한 증거를 보도록 하자. 우선 이 저수지에서 흘러나가는 강이라고는 흑룡강의 지류인
고이빈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물이 흘러들어야 저수지를 만들 것이 아니겠는가! 직접 지도로 보자.
파란 사각 테두리 안에 [고이빈수고]라는 이 저수지 이름이 나온다. 그리고 빨간 동그라미들을 잘 보자. 고이빈수고 바로 위에 있는, 타원형 동그라미(지도 제일 위의 동그라미다)가 고이빈하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다. 나머지 강들은 모두 고이빈수고로 물을 모아주는 강이며, 어느 것도 다른 강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동요하건, 송화강이건 이 저수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백두산 앞쪽이 무너졌다는 기록에 대해서 말해보자. 동영상을 본 결과 이것은 대동여지전도에 나오는 글이 아니라, 명종실록 14년 8월 5일자 기록이었다.
명종 25권, 14년( 1559 기미 / 명 가정(嘉靖) 38년) 8월 5일 갑진 1번째기사
영경연사 상진이 재변과 왜적·사로잡힌 중국인들의 해송에 관해 아뢰다
(전략) 《춘추(春秋)》에 ‘가을에 큰물이 졌다.[秋大水]’하고, 그 전(傳)에 ‘원기(冤氣)가 뭉친 소치이다. 어찌 그 감응이 없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장백산(長白山)은 우리 나라의 주진(主鎭)인데 앞쪽이 무너져 내렸고, 군위(軍威)에는 또 시냇물이 말라 버린 이변이 있었습니다. 신과 같은 자가 어찌 참으로 음양(陰陽)을 섭리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걱정과 두려움만 더할 뿐입니다. (후략)
《春秋》書 ‘秋大水’, 而傳曰: ‘冤氣幷之所致。 豈無其應?’ 長白山爲我主鎭, 而前面崩頹, 軍威又有川渴之變。 如臣者, 豈能燮理陰陽? 徒增憂懼。대체 백두산의 앞쪽이 붕퇴崩頹했다는 이런 간단한 말에서 백두산의 앞쪽(이게 어느쪽일까?)이 무너진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이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백두산 천지의 둘레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소개한다.
숙종 53권, 39년( 1713 계사 / 청 강희(康熙) 52년) 1월 22일 경자 1번째기사
부교리 홍치중이 북로(北路)의 폐막과 백두산의 정황에 대해 진달하다
또 백두산(白頭山)의 형편(形便)을 진달하여 말하기를,
“무산(茂山) 70리(里)로부터 임강대(臨江臺)에 이르기까지 또 10리가 되는데, 어활강(魚濶江)을 건너서 산밑에 이르니 땅은 광막(廣漠)16436) 하나 인가(人家)는 없었고, 험한 길을 구불구불 올라가서 정상(頂上)에 오르고 보니 산이 아니고 바로 평야(平野)였습니다. 백두산과 어활강의 중간에 삼나무가 하늘을 가리어 하늘의 해를 분간할 수 없는 것이 거의 3백 리(里)에 달했고, 거기서 5리(里)를 더 가니 비로소 비석(碑石)을 세운 곳에 당도했습니다. 비석은 매우 길이가 짧고 폭이 좁았으며, 두께는 몇 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쪼아서 갈아 놓은 것이 정밀하지 못했고 세운 것도 견고하지 않았습니다. 목차(穆差)가 귀(貴)한 행신(幸臣)으로서 명령을 만들어 정계(定界)하였는데, 허술함이 이 지경에 이르니, 그가 공력(功力)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비석을 세운 곳에서 바라보니 우뚝하게 치솟은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나무를 부여잡고 올라가 보니 14 봉우리가 빙 둘러서서 서로 껴안고 있어 하나의 동부(洞府)를 형성하였고, 거기에 큰 못이 있는데 빛깔이 아주 검푸른 빛을 띠어 몇길이나 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여지(輿誌)》 중에는 못의 주위가 80리라고 칭하였는데, 신이 보기에도 40여 리 쯤은 되어 보였습니다. 산 전체가 모두 사석(沙石)이므로 풀이나 나무는 생장하지 않으며, 쌓인 눈이 사철 녹지 않으므로 백두(白頭)라는 명칭이 여기에서 연유된 듯합니다.”
하였다.
又陳白頭山形便曰: “自茂山七十里, 至臨江臺又十里, 渡漁濶江, 到山下地, 廣漠無人烟, 路險百折而上, 及其登覽, 則非山而卽野也。 白山、漁江之間, 杉樹蔽天, 不分天日者, 殆三百里, 行五里始到立碑處。 碑甚短狹, 厚不過數寸。 琢磨不精, 豎之亦不牢。 穆差以貴幸臣, 奉命定界, 而虛踈至此, 其無致力之意, 可知矣。 自立碑處望見, 有斗絶最高峰, 攀附而上, 十四峰羅立拱抱, 成一洞府, 有大澤色深黝, 不知其幾丈。 《輿誌》中稱以八十里周廻, 而以臣所見, 亦當爲四十餘里。 山體皆沙石, 而草樹不生, 積雪四時不消, 白頭之名, 似以此也。” 80리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 가보니까 40여 리쯤 되어보인다는 거다. 백두산 천지의 둘레는 14.4킬로미터로 1리 400미터로 환산하면 36리가 나온다. 이 얼마나 정확한 기록인가! 그리고 원문의 붉은색 부분을 보자. 천지 둘레를 주회周廻라고 쓰고 있다. 누차 말하자면,주周가 둘레를 뜻하는 한자라는 것을 다시 말해둔다. 그리고 백두산이라는 명칭은 사시사철 눈이 녹지 않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것. 1429미터의 평정산 꼭대기에도 눈이 녹지를 않을까? 하긴 눈이 녹고 안 녹고를 떠나서 그 산 위에는 큰못大澤이 없다. 이런 낚시질에 걸린 채 "안 들려요! 초록불이 하는 이야기는 다 안 들려요!" 이러면 정말 기분이 좋을까?
백두산 - 핑딩산 론의 허구 입증 1 [클릭]------------------------------------------------------------
평정산에 직접 가보신 분이 있군요. 그분의 포스팅을 링크해 둡니다.
대한지적공사가 말한 핑딩산 핑딩산..완결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