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씨에 대해서 *..역........사..*



모종의 필요로 정리해 놓는 글이다.

이름을 가리키는 한자에는 성(姓)과 씨(氏)가 있다. 간단한 옥편을 보면 둘다 훈이 "성"으로 동일하다.
간혹은 "성씨"라고 붙여서도 쓴다. 성이나 씨나 집안을 가리키는 한자임에 틀림없을 텐데 왜 두가지 한자가 있을까?

유래가 다르기 때문이다.

성은 출생의 혈통을 나타낸다. 즉 하나의 조상을 가진 동일 혈연집단을 표현하는 단어다.
그럼 씨는 뭘까? 현재로서는 성과 씨는 동일한 단어다.
이것을 파악하려면 성과 씨가 달랐던 고대 중국으로 가봐야 한다.

하은주 시대에는 씨는 남자의 혈통을, 성은 여자의 혈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姓)에 여(女)가 붙어있는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에 본격적으로 성을 받아들였고, 이미 이 시기에는 중국에서도 성과 씨의 관념이 붕괴된 뒤였으므로 성과 씨는 우리나라에서 구분되지 않았다.

그런데 성과 씨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좌전]에는 胙之土而命之氏라 하여 씨가 땅(土)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중국 고대의 씨(氏)란 지금 우리의 본관과 유사한 것이란 뜻이다. 이 관념은 우리나라에도 침투해서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족보들에는 시조가 분봉을 받아서 그것이 본관이 되었다는 "거짓말"을 종종 한다.

나는 후자의 견해가 올바른 것이라 생각한다.

족보에 대한 상식 몇가지를 보너스로 적어놓는다.

1.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는 [안동권씨 성화보(成化譜)로 1476년 간행되었다.
2. 성종 때 성현이 쓴 [용재총화](1525년 간행)에는 우리나라의 거족토성으로 75 성을 들고 있다.
3. 18세기에 편찬된 족보는 상대 가계 기록에서는 신뢰를 주기 어렵다.
4. 16세기말까지 간행된 족보는 10개 미만이다. (족보의 원시적 형태인 가첩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것도 30 남짓에 불과하다.)
5. 1931년 윤식구 등이 편간한 [만성대동보]를 따르면 그때까지 만들어진 족보는 119성에 334본관에 불과했다.
6. 조선시대 성은 총 250, 본관은 4천여 본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거. 동국여지승람을 따르면 277성, 영조 때의 [도곡총설]에는 298성이다)
7. [증보문헌비고]는 성이라고 생각한 것은 다 수록한 결과 496성을 만들어냈다.
8. 송나라 시절 중국의 성은 2,568성이고, 일본의 경우는 10만이 넘는다.
9. 1985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은 모두 274, 본관은 3,435가 된다. (이중 25개 성씨가 1975년 이후 새로 만들어진 성이었다.)
10. 1930년 조사에서 본관의 수는 3,300여개로 줄어드는 데, 그 이유는 18세기 문벌의식의 고조로 세가 불리한 희귀 본관들이 거성 대족의 본관에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덧글

  • 녹슨 2007/06/03 01:49 #

    그랬군요...
  • 파파울프 2007/06/03 02:14 #

    안동권씨가 이런거 유난히 따지고 보수적이죠... 참 징할 정도로 말입니다... (제가 권씨 입니다)
  • 구민 2007/06/03 02:37 #

    족보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간혹 족보에 목숨거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저는 우리나라 족보의 대부분이 판타지라고 생각하는데. 초록불 님께서는 족보의 신뢰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준님 2007/06/03 04:30 #

    오래 전에 신동아에서 관련 기사가 나온적이 있었지요. 대략 "족보 위조"를 어떻게 조선시대에 합법적으로 했는지에 관한 기사였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족보를 가지고 튀는게 아니라 문중에 허가 아래 -_-;;) 이 기사 나온후에 아실만한 곳에서 욕을 바가지로 했다는 뒷 이야기를 들었지요.
  • 녹슨 2007/06/03 04:36 #

    다시 끼어들어서 한마디... 이 시대에 족보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에요.
  • BigTrain 2007/06/03 08:15 #

    저도 "씨"가 땅에서 기반한 것으로 봤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떤 책인지 기억이... ㅡㅜ) 다른 해석도 있었군요.

    족보 문제는 다들 알고 있지만 다들 모르는 척 하는,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 집에도 족보가 보관돼 있기는 한데 어디까지 믿어야 될 지는... 참 -_-;
  • 초록불 2007/06/03 08:31 #

    녹슨님 / 족보가 왜 필요했는지도 적을 필요가 있군요. 조금 더 정리할 필요도 있으니, 그것도 정리를 해놓죠. 이 시대라 하심은 현대를 말씀하신 거죠?

    파파울프님 / 역사에 남은 집안이시군요...^^;;

    구민님 / 간혹이 아니라 조선후기의 보학에 의해 목숨 거는 게 당연시 되죠. 역사 연구의 큰 걸림돌입니다. 환단고기가 족보에 삽입될 날이 올까 걱정입니다.

    이준님 / 그렇겠죠.

    BigTrain님 /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표현, 적절합니다.
  • 치오네 2007/06/03 15:00 #

    저희 성씨 족보는 이름 올리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여자는 남자의 1/3 가격이더군요. 그런데 그 돈이 아까워선지 족보에 딸은 올리지 않는 친척들도 꽤 있더라는... (족보에 오르나 안 오르나 별 상관없지만서도... 당숙들이 아들은 올리고 딸은 안 올린걸 보면서 당황했었어요)
  • 초록불 2007/06/03 15:31 #

    치오네님 / 내 이름이 족보에 있는 건 어렸을 때 보았는데, 우리 애들 이름은 어찌 해야 하는 건지 저언혀 모르겠군요. 연락이 오는 일도 없으니까...
  • 마법의활 2007/06/04 19:40 #

    "환단고기가 족보에 삽입될 날이 올까 걱정입니다." 순간 숨이 막히면서 저절로 목에서 '컥'하는 소리가 나오더군요. 농담이시겠지만 그들은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_-;
  • 제절초 2007/06/04 20:51 #

    씨가 정치적 공동체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더라구요. 'ㅅ' 고대의 관직명이 세습화되어 내려오면서 하나의 성으로 변했고 그것이 '씨'다 라는 주장인데, 일본인인 사와다 이사오가 흉노에 관해 쓴 책에 그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한편 일본 고대사를 연구한 츠다 소키치도 유사한 주장을 했구요. 이것도 상당히 설득력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초록불 2007/06/04 23:51 #

    마법의활님 / 이미 삽입되었을지도 모르죠.

    제절초님 / 일본에서는 성보다 씨를 많이 쓰기 때문에, 성과 씨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요? 해당 논문을 보지 못한 추측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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