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의 대물림 - 재야사가 최동에 대하여 [수정] 만들어진 한국사



찾아온 리퍼러 순위를 보다보니 DC역갤에서 찾아온 것이 꽤 많았다. 들어가보니 나한테 보낸 메시지다. 참고할만한 사항은 우선 기재하고 내가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은 기억해 두기로 하겠다.

유사역사학의 대부 문정창이 갈데 없는 친일파라는 것은 그의 경력으로 이미 만천하에 증명이 되고 있다. 이병도가 잠깐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한 것으로 이를 가는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문정창의 수십년 일제 관리 근무 경력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심지어는 그 경력을 자랑스럽게 홈피에 올려놓고 있는 어안이 벙벙한 동네도 있다.

문정창에게 큰 영향을 준 유사역사학자가 최동(崔棟)이라는 인물이다. 최동은 [조선상고민족사(朝鮮上古民族史)]라는 책을 써서 문정창에게 수메르와 중동에 눈을 뜨게 해준 재야사가다. 바빌로니아 악카드 족이 동쪽으로 이동해서 한민족이 되었다는 최동의 얼토당토않은 학설은 일본의 유사역사학자들 입김이 상당히 끼어들었음이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하고 먼저 최동에 대해서 알아보자.

엠파스 백과사전의 최동 항목을 가져와 본다.

1896∼1973. 법의학자·병리학자·역사학자.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해산(海山). 서울 출신. 아버지는 전라남도 순천군수를 지낸 정익(正益)이다. 유년기를 순천에서 보냈다.
어머니 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를 따라 아우와 함께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가톨릭교단에서 운영하는 교세이학교(曉星學校)에 입학하였다. 아버지가 아우만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에는 거의 고학으로 중학교까지 마쳤다.
중학교 졸업 후 도미, 캘리포니아주립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약 1년간 수학 후 귀국, 1917년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고 1921년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모교 해부학교실 조교로 있다가 중국 북경협화(北京協和)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을 1년간 연구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University of Toronto) 병리학교실에서 2년간 연구하였다.
1929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1931∼1934년 학교 재단이사를 겸직하였다. 1925년부터 기생충학을, 1931년부터는 병리학을 강의하다가 다시 일본 도호쿠제국대학(東北帝國大學) 법의학교실에서 2년간 연구, 1936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법의학을 강의하였다. 1945년 광복 직후 제4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에 취임, 대학승격과 학교정리에 진력한 뒤 1948년 학장직을 사임하고, 1955년까지 교수로 재직하였다.
10세 전후에 아버지와 가까이 지내던 박영효(朴泳孝)·서재필(徐載弼)·안창호(安昌浩) 등에게 사숙했고, 자라서는 최남선(崔南善)·정인보(鄭寅普)·이광수(李光洙) 등으로부터 지도와 조언을 받았다.
그리고 상면은 없었으나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사론≫·≪조선사연구초≫에 자극받아 평생동안 의학연구와 아울러 민족사연구에 전념, 집필 30여 년만에 ≪조선상고민족사≫(1966)를 출간하였다. 이 업적으로 1968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밖의 주요 저서로는 〈조선문제를 통하여 본 만몽(滿蒙)문제〉(일문, 1932), 〈한국기독교 선교의 신배경〉(영문, 1945) 등이 있고, 다수의 의학논문이 있다.

≪참고문헌≫ 朝鮮上古民族史(崔棟, 東國文化社, 1966)
≪참고문헌≫ 韓國醫學의 開拓者(鄭求忠, 東方圖書, 1985)
≪참고문헌≫ 의학백년(연세대학교의과대학, 1986)


위 항목으로만 보면 훌륭하기 이를 데 없는 분이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저 정도 지위에 있으면 친일혐의에 안 걸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친일파 조사 명단에 보면 [전시협력]이라는 항목에 최동(崔棟)이라는 이름이 떡하니 올라와 있다.

그럼 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이기에 친일파로 분류된 것일까? 최동은 기독교단체인 [경성기련]의 위원 중 한 명이었다. [경성기련]은 "황국신민으로서 보국의 성(城)을 치(致)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으로 내선일체와 황민화 시책에 적극 협력한 단체다. 위원장은 일본인으로 니와(丹羽靑次郞)라는 인물이었고 부위원장은 거물 친일파 정춘수다.

경성기련이 조직되어 서울의 기독교가 일제에 굴복하자 지방 교회들도 일제의 방침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시국좌담회, 전승기원제, 국방헌금 등을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설교하며 일제의 신민으로 충실한 역할을 다 했던 것이다.

최동은 1941년 12월 20일, 미일전쟁 개전(1941년 12월 8일)을 계기로 열린 최대의 친일좌담회인 '미․영 타도 좌담회'에 참석해 [앵글로색슨인이 유색인을 대하는 태도]라는 글을 발표했고, 일어로 작성된 이 글은 친일잡지 『동양지광』1942년 2월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좌담회의 참석 인사는 백낙준을 비롯하여 장덕수(보성전문 교수, 전향자 단체 시국대응 전선사상보국연맹의 중심 인물), 신흥우(배재고등학교 교장, 조선임전보국단 상무이사), 전필순(조선장로회 부총무), 이용설(의학박사, 임전대책위원회 위원), 정춘수(경성기독교연합회 부위원장), 정인과(조선장로회 교육총무, 『기독교신문』발행인), 김인영(조선감리교신학교 교장), 최동(세브란스의전 교수), 한석원(장로회보 주간), 양주삼(조선성서회 행정총무), 윤치영(尹致暎, 중앙기독청년회 부총무), 박희도(朴熙道, 좌담회 주최자, 『동양지광』사장), 윤일선(세브란스의전 교수), 이훈구(『조선일보』부사장), 박인덕(덕화여숙 수장,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 최순주(崔淳周, 연희전문회계과장) 등으로 각계에서 친일활동을 벌인 지도급 인물들이 총망라해 있다. (역사는 알고있다..그들의 과거를.. [클릭])

나는 일제하의 친일 경력을 들어 한 사람의 인생을 매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유사역사학자들은 그 점을 들어 이병도, 신석호 등 조선사편수회 관련 인물들을 비롯해서, 심지어 일제와는 아무 관련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독립지사의 후손인 이기백까지도 식민사학자라고 입만 열면 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알고보면 유사역사학자들의 뿌리야말로 친일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동북공정의 시조 격인 서량지나, 일본 신도에 매진해온 吾郷清彦(아고우 키요히코)과 같은 인간의 역사관을 좋다고 쫓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사람들이 입만 열면 민족을 사랑하고 일본과 중국을 증오한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1894년 영국 런던 대학에 근무하던 프랑스인 언어학 교수 테리앙 드 라쿠페리(Terrien de Lacouperie)는 중국 한족(漢族)이 바빌론에서 이주한 종족이라는 괴악한 학설을 발표했다. [Western origin of the early Chinese civilization](중국 고대 문명의 서양 기원)라는 책을 1894년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은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 있다. [Western origin of the early Chinese civilization])

중국에서는 이 학설이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치부되어 소멸한 것인데, 한국인과 일본인 중 몇몇 교양없는 인간들이 여기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일본인은 한족을 그냥 내버려두고 논의를 전개해갔는데, 한국인은 한족을 한민족으로 바꿔치기를 한 점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일까?

라쿠페리는 이렇게 주장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바빌로니아 지역의 Kutir-Nakhunte라는 지도자가 Bak라는 종족을 이끌고 중국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Kutir-Nakhunte는 Nai Hwang ti라고도 쓰는데, 이가 바로 황제(黃帝)라는 것이다. 제보하신 분에 따르면 최동은 라쿠페리의 설을 직접 본 것이 아니고 그 설을 소개한 다른 책에서 본 듯하다고 한다. 그러나 서량지와 임혜상의 책을 문정창에게 소개해 준 사람을 최동이라 추측하고 있으므로 계보는 아래와 같을 듯.

라쿠페리-임혜상-오향청언-최동-문정창

라쿠페리는 동양 역사도 잘 몰랐던 근대의 언어학자에 불과하다. 1892년에 라쿠페리가 쓴 논문 [On the Corean, Aïno and Fusang Writings]을 보면 한글은 신라 설총이 만든 것이고, 세종이 개량했다고 적혀 있다. 또한 한글은 독창적인 것이 아니고 인도 문자를 받아들여 개량한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부상국은 아이누를 가리키며 이곳에 독자적인 문자체계가 있다는 것이 위 논문의 내용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예전에 인종도 다른 바빌론과 중국이 무슨 연관이 있느냐며 내다버린 이론이 바로 라쿠페리의 이론이다.

더불어 문정창은 크래머라는 서양학자가 수메르인이 동방에서 왔다고 주장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다행히도 크레이머(Samuel Noah Kramer)의 [History begins at Sumer]는 가람기획에서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두었으니, 정말 저런 말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픈 분은 살펴보면 되겠다.

한국의 유사역사학자들은 바빌론에서 한민족이 왔다는 말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민족에서 바빌론으로 진출한 수밀이 국을 만들어냄으로써 장대한 역사 왜곡의 종지부를 찍었다.

보너스
문정창은 중국 서북방에 해발 28,000척의 곤륜산이 있다고 주장하던데, 이 산이 어디 있는지 아시는 분? 무려 8400미터의 거봉인데, 이런게 중국 서북방에 있다고? 전설의 곤륜산을 실세계로 가져와 어쩌자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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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불의 잡학다식 :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 (2) 2009-04-25 13:41:12 #

    ... , 칼데아는 갈천이라고 주장. 그러나 양계초와 장태염은 훗날 이런 입장을 철회한다. [추가] 라쿠페리가 국내에 알려진 이야기는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친일파의 대물림 - 재야사가 최동에 대하여 [클릭] -------------------------------------------------- 다음 편에서는 현대 중국의 민족주의 문제가 다뤄집니다. ... more

덧글

  • zert 2007/06/11 12:00 #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이면 8.4Km의 곤륜산이 보일지도 모릅니다(먼산)
  • 耿君 2007/06/11 12:13 #

    부상국에 문자체계라... 아이누가 일본을 부상국이라고 불렀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참 끈끈한 대물림의 고리이군요. 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 어부 2007/06/11 12:50 #

    History begins at Sumer, 읽어 볼 만 한데 사실 원문 인용이 너무 많아 문학적 내용에 별 흥미 없는 어부에게는 끝까지 정독하기가 약간 힘들었습니다. 역시 읽어 보셨군요.
  • 오토군 2007/06/11 12:52 #

    …환타지 장르인거죠?
  • 半道 2007/06/11 12:52 #

    언제나 과거를 입맛대로 바꾸는 사람들과 그에 편승하는 사람들이 있어 현재가 괴롭습니다.

    무지해서 이용당하는 것과, 알지만 이득을 위해 이용당하는 것.
    어느 쪽이든, 씁슬하네요.
  • 夢影 2007/06/11 13:43 #

    최동 할아버지(응?)는 잘 모르니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이병도 할아버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기백 할아버지까지??? ㅡ,ㅡ;; 참... 그래도 식민사관 극복하려고 많이 노력하신 분인데. 최동의 친일경력은 둘째치고, 자신들의 그런 논리가 식민사관의 근본 이데올로기인 내셔널리즘과 제국주의의 판박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
  • 초록불 2007/06/11 13:45 #

    夢影님 / 임승국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죠. 대개 재야 2세대라 할 수 있는 인간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오히려 그것을 모델로 삼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3세대로 내려오면서 개념이 완전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면서 자기들도 뭐가 뭔지 모르게 되었을 겁니다.
  • 초록불 2007/06/11 13:48 #

    zert님 / 80킬로미터의 백두산도 보이겠죠...

    耿君님 / 라쿠페리야 19세기의 한계니 뭐 그러려니 해야죠. 21세기에 그런 설을 쫓아가는 인간들이 안습일뿐...

    어부님 / 원서로 보셨습니까?

    오토군님 / 저들은 역사라고 합니다.

    半道님 / 욕망이 있는 한 계속 할 겁니다.
  • 한도사 2007/06/11 14:15 #

    김규현씨가 쓴 '티베트 역사산책', '티베트의 신비와 명상'에 보면, 중국 곤륜산을 티베트의 카일라스라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인정받은 정설은 아닙니다만, 왜 중국 서북방에 8천미터대의 곤륜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인지에 관해서 나름대로 흥미있게 써 놓았습니다.
  • 초록불 2007/06/11 14:19 #

    한도사님 / 오호... 그런 책이 있었군요.
  • 서산돼지 2007/06/11 14:20 #

    평행우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군요
  • 아롱쿠스 2007/06/11 15:54 #

    대개 1930년대 중반부터 해방까지의 행적이 사전 등에 나와있지 않은 사람은 친일파로 보시면 됩니다.
  • 아케트라브 2007/06/11 17:36 #

    보너스2/ 아마 에베레스트가 자기들꺼라고 말하는 또하나의 중국버전 ㅎㅂ까 아닐지..........
  • 스칼렛 2007/06/11 18:01 #

    적어도 이 나라는 백선엽 장군(백인엽이라면 몰라도)과 김창룡같은 개새끼가 동급으로 취급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 어부 2007/06/11 18:54 #

    번역본을 읽으셨으니 잘 아시겠지만, 역자가 원문이 괴악하기로 이름높다 하니 어부의 실력에 원서는 무리죠. 원서 읽을 시간에 (사실 전공서적 빼면 몇 개 안 읽었지만요 0.0) 번역본으로 양 땜질한다는 불가피한 전략에.... -.-
  • 초록불 2007/06/12 00:38 #

    서산돼지님 / 평행우주라...^^;;

    아롱쿠스님 / 그럴법한 이야기군요.

    아케트라브님 / 에베레스트가 중국 서북쪽에 있을 수는 없으니 문제죠.

    스칼렛님 / 안습입니다.

    어부님 / 대학 졸업 후 원서라는 게 어떤 건지 잘...
  • 2007/06/12 14:0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7/06/12 16:04 #

    비밀글 / 저런, 건강 주의하세요.
  • StarLArk 2007/06/13 12:51 #

    역사교육의 부재가 심각하군요. 자기 자신의 원류도 모르는 역사학도라... 참 우습네요.
  • 의성 2014/03/05 16:47 #

    그런데 문정창 관련 글이 사라진게 있네요;;
  • 초록불 2014/03/06 01:56 #

    온라인의 한계죠. 야후가 사라져버렸으니 뭐...
  • 의성 2014/03/06 17:28 #

    아...그게 아니라 "일제강점기 군수를 지낸 유사역사가의 대부 문정창" (http://orumi.egloos.com/3139115)이라는 글이 사라졌습니다.
  • 초록불 2014/03/07 17:57 #

    그 글은 특별한 내용이 있는 글이 아니어서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저는 때때로 글들을 정리합니다.
  • 의성 2014/03/09 01:07 #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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