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당연하게 생각해 오던 것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두희 교수의 책을 보다가 느낀 것인데,
조선 역사를 왜 깔보게 된 것일까?
일제 식민사학 때문이라고?
일제하에서 교육받은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되는 걸까? 그것이 해방 후에 계속 조선을 비하할만큼 대단했을까?
식민지 생활을 하게 한 조선 왕조에 대한 불만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럼 원인은 오히려 이쪽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식민사관이 계속 되면서 조선에 대한 폄하가 계속 되었다. 이 쪽은 어떨까?
가능성이 있다. 1961년 이기백 교수의 [국사신론]이 식민사관에 대한 청산을 모토로 삼아서 나올 때까지 역사학계는 뭘 잘못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
김성칠 - 1946 조선역사 : 붕당이 조선 역사를 그르쳤다 등 부정적 입장
전석담 - 1947 조선사교정 : 맑스적 관점에서 기술, 식민사관과는 관계없지만 조선이 부정적 기술됨
이병도 - 1948 조선사대관 : 이씨 조선은 소수 귀족의 과두정치로 계급, 지방, 서얼 등을 차별 등 조선 대부분을 부정하는 입장
손진태 - 1949 국사대요 : 유교는 비민주적, 귀족적이며 문치에 치중했다는 등 조선 전체를 부정. 거의 일제 사학자 입장을 계승
유홍열 - 1950 한국문화사 : 조선은 사대정책으로 폐해 등 부정적 입장
이인영 - 1950 국사요론 : 문종대로부터 갑오경장까지 민족 침체기로 규정하는 부정적 입장. 그러나 사대와 사대주의를 구분하는 등 역사인식에 발전이 있었음
한우근, 김철준 - 1954 국사개론 : 한국사의 정체성은 지리적 요인에서 온다고 주장. 식민사학의 정체성론, 지리결정론을 받아들이고 있음.
이홍직, 한우근, 신석호, 조좌호 - 1958 국사신강 : 국사개론과 동일
이 상황에서 이기백의 [국사신론]이 등장했다. 이기백은 이 책에서, 식민사관을 비판하며 사대 문제, 유교 문제, 당쟁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기했다. 이기백의 시도는 1967년 [한국사신론]이 나오면서 거의 완성된다. 일생을 통해 정립된 입장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던 이병도와는 달리 이기백은 1976년 [한국사신론 개정판], 1990년 [한국사신론 신수판]을 통해서 입장을 좀더 발전시키고 구체화 해나갔다.
1962년 진단학회에서는 [한국사] 7권을 내놓는다. 이중 한국사 근세전기편을 집필한 이상백은 조선 전기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기술한다. 이리하여 한국사 연구의 흐름이 차츰 변한다. 1970년에 나온 한우근의 [한국통사]도 조선 전기에 대한 집중 분석으로 조선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했다.
또한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정희 정권에 의해 국사가 필수 교양과목으로 자리잡으면서 전국 대학에서도 한국사를 필수로 수강해야 했다. 이 제도는 1980년대말까지 지속된다.
문제는 특히 이때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어떤 책을 가지고 교육이 이루어졌을까?
1970년부터 1989년까지 58종의 개설서가 나왔다. 이들 개설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적이 없어서 어떤 수준의 책이 나왔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중 1/3이나 되는 17종이 저자 이름이 없는 책이라는 점은 이 책들의 수준을 대강 짐작하게 해준다.
60년대말까지 여전히 조선 후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씻어지지 않은 상태다. 사실 이것은 아직도 불식되지 않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들어오면서 조선 후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일어났으니(과도한 관심은 자본주의 맹아론같은 학설로 발전하기도 한다) 여전히 조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씻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이하 부분은 추측이기 때문에, 확실한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대로된 역사 인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조선 근대사에 대한 실망은 대체할 무엇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결국 근세사의 실망을 고대사의 영광에서 찾고자 하는 기미는 점점 더 강해져갔다. 그 결과 세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 국수주의 역사학(그리고 유사역사학의 등장까지)인 것 같다.
이 국수주의 역사학의 뿌리도 제법 길다. 뿌리를 따져 올라가면 신채호까지 이르는 경우가 발생하지만, 이 부분은 매우 주의깊게 이야기해야 한다. 신채호나 일제 하의 민족지상주의적인 역사가들은 역사를 독립운동의 한 일환으로 사용해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목적이 소멸하자, 이들의 역사학도 소멸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이 역사학을 친일파들이 자신의 생존에 이용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것이 최동, 문정창 등 유사역사학 신봉자의 활동이다.
최동의 책은 1966년에 나왔다. 문정창의 고대사 책들은 1968년부터 나왔다. (≪근세일본의 조선침탈사≫(1964)와 ≪군국일본 조선강점 삼십육년사≫ 상(1965)·중(1966)·하(1967)는 그전에 나왔다. 이걸 내면서 고대사에 관련된 일본 책자들을 본 것이 고대사 책을 쓰게된 동기일 것이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식민사관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나불대지만, 그들에게 식민사관이라는 건 오직 고대사에 관련된 이야기일 뿐인데다가, 사실은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이야말로 식민사관의 계승자인지라, 이들의 대부분은 조선 시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다. 역시 대단히 아이러니하게도 대륙조선설을 주장하는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조선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다만 이 파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최두환처럼 대륙조선인은 우리 민족이 아니라는 괴상한 결론에 도달한다.
한국전쟁 당시 정인보, 손진태, 이인영 등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대거 납북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들이 납북되지 않았다면, 친일파들이 이들을 젖히고 자신이 신채호의 적자인양 행동할 수는 없었을 텐데... 또한 이들의 사상이 학문적으로 다듬어지면서 조금은 더 빨리 역사학이 발전하지는 않았을까?
[추가]
북한은 아직도 조선을 비하하는 역사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민족주의의 역사관의 발전 형태를 북한이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보다는 우리 쪽이 아무래도 나은 상태라 하겠다. (그나마 아직 유사역사학 신봉자가 우리 사회의 주류는 아니니까.)
[추가]
어떤 비로그인이 이 글을 가지고 계속 시비를 거는 모양이다. 오래 전에 써서 참고서적을 뭘 봤는지 나도 잘 기억은 안나는데, 정두희 선생님 책을 보고 작성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 비로그인은 내가 <조선전기편>을 보지도 않았다고 계속 다른 분 블로그에서 난리를 피우던데, 진단학회의 그 책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집에 꽂혀있었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1962년 초판본은 아니지만 3판으로 1964년에 나온것이다.

그러니까 비로그인께서는 이상백의 책은 좀 읽어본 뒤에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물론 읽어볼 리가 없겠지만.
덧글
2. 김성칠 교수면 한국전쟁 당시 일기를 쓴 그 사람 맞지요? 근데 의외로 괴악한 논리를 세웠군요 -_-
저도 저 문제에 관해 몇 번 생각해보긴 했는데, 국사학계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이데올로기가 "근대주의"와 "발전사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지요. 북한의 현재 조선사관 역시 민족주의적 역사관의 발전형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변증법적 유물론 때문에 왜곡된 것일지도 모르죠.
그러고보니 누군가의 회고담인지 또는 죽기 직전인지는 아리까리하네요..
하긴 저도 10년을 환빠로 지냈으니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만,
환빠가 늘어나는만큼 환빠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늘어나길 바랄 뿐입니다..
포더윙님 / 그렇습니다.
夢影님 / 동감합니다.
성큼이님 / 조선이 세도정치에서 회복할만한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좀 합니다. 대원군 치세 10년간 조선의 정치가 혁신된 것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증적 연구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장이라 무너진 것인지, 민비 일당의 세도정치 부활이 문제였는지...
아무튼 그 점을 떠나 조선 전체를 막장으로 모는 것은 안 되는 일인 거죠...^^;;
조병구를 호통 한번(?)으로 놀라 죽게 만들정도면 나름 내공이 있는것도 같습니다...
(조병구는 풍양조씨 세도가의 대표인물--헌종의 외삼촌입니다.)
헌종도 후사를 이을 능력은 충분했을 것입니다.
환단고기 같은 것을 80년대 군 등에 정부에서 뿌렸다던데,
생각해보면 이 80년대는 대세가 반미와 민족입니다.
은근히 386세대 등에서 환빠들이 꽤 있더군요.
심지어 상고사 전공에 박사학위 있다는 사람도요.
의도하지는 아마 않았겠지만, 제대로 바보만든 것 같습니다.
치우천왕. 이 이야기 나오고 환단고기를 들먹였을 때 전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瑞菜님 / 맞습니다. 정말 아찔한 이야기들 요즘 많습니다. 불가리아가 우리 민족이라는 신용하를 보세요...-_-;;
초록불님 이글루에서 환상을 깰수 있었습니다
역사교육 다시 하자. 성인들 부터 그리고, 별로 대륙조선이 아니라는 반반의 글이 아니다. 그냥 감정적인 글일 뿐이네.
비판을 할 때는 적어도 눈높이는 맞추어 주어야 한다.
민족 이야기를 할려면 우리 민족은 무엇이다 이정도 이야기는 풀면서 하자. 단일민족, 하나의 혈통의 민족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그 못난 과학도 증명을 햊ㅈㅈㅈㅈㅈㅈㅈ
블로그에 가보니 텅비었더이다. 이런 글이나 남기기 위해 급히 가입을 한 티가 팍팍 나는군요.
아롱쿠스님 / 이런 경우를 가리켜 "나무는 가만 있고자 하나 바람이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하는 거죠. 제 대신 따끔한 말씀 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1. 이이첨이 중립외교를 주도했다.
2. 송시열이 북벌을 주도했다. (무려 300년 묵은 낚시)
3. 김정호는 기밀누설죄로 대원군에게 사형당했다.
4. 민족대표 33인이 대부분 변절했다.(심지어는 전부 변절했다는 얘기까지...)
이분 아주 유명한 분이죠..
고려대생이고 멸공산악회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분인데..
멸공산악회라는곳 아시는지요? ㅋㅋㅋ
할일없는 늙은이들이 산에 모여서 빨갱이 때려잡자고 시시한 색깔 안보놀이 하는 꼴통단체입니다..
이 teferi 친구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후..국회의사당 앞에서 탄핵찬성하는 전단지 돌리던 친구였죠
모 언론사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 빨갱이들이 국회를 장악할려고 한다..이런식으로 인터뷰하던 친구였죠...
모 메이저리그관련 사이트에서는 전두환이 광주 빨갱이 시민을 죽이는게 당연하면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북한개입을 주장했던 사람이죠..
아무런 근거없이 한나라당과 영남사람들 옹호하고
호남인들을 깔아뭉기는 영남꼴통패권주의자입니다.
초록불님의 글중 (과도한 관심은 자본주의 맹아론같은 학설로 발전하기도 한다)라는 표현이 어쩐지 조선의 자본주의맹아론을 부정하는 듯하게 들립니다. 이 부분은 어차피 조금더 깊게 연구가 되어야할 부분이기는 하지만 초록불님의 개인적인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
게다가 조선대륙설이라... 제가 전혀 관심이 없었나 봅니다(저는 기껏해야 식민지근대화론등 낙성대연구소의 주장에 대하여서만....). 최초의 삼국재중국설이 나오게 된 것이 신라에 메뚜기떼가 나타난 삼국유사의 기록 때문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메뚜기의 약한 날개로는 서해바다를 건너올 수 없다는 의혹에서 시작을 했다고... 저는 1986년 아프리카의 메뚜기 대발생때는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해까지 날아갔다는 과학잡지의 기사를 보고 이후로는 계속 증폭/파생되는 이러한 주장을 전혀 믿고 있지 않습니다만, 한단고기 매니아들의 상황이 많이 안좋은가 봅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시네요...
일제강점기가 자본주의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는 점은 있겠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에,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실학은 에도시대 일본의 국학과 비교를 해보는 중입니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은 어느순간 우리의 조상이 선택을 해야할 기로에 서있었고 또 그 선택이 올바르지 않았다면, 또한 새로운 선택을 해야할 우리로써는 역사속의 if를 통하여 또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단지 그러한 재미 때문에 역사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orz...
역사를 공부하지 못한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범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맹아론은 제 생각엔 과도한 상상에 속한다...는 거죠.
예전부터
대원군이 방해없이 그대로 프랑스와 교섭했다면..
붕당싸움에 차라리 남인이 이겼다면..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되었다면..
광해가 밀려나지 않았다면..
(아니 그전에,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았다면..)
(아니 그전에, 주자의 유교를 받지 않았다면..)
(아니 그전에, 신라가 나당 연합이 아니라, 백제랑 연합했다면..)
(아니 그전에, 그냥 고구려가 이겨버렸다면..)
등등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며 망상을 해봤었거든요..
조선은 너무 혁신적이지 못한 답답한 사회같다는 생각도 들고..
사상통제가 심하고 부자연스러운 사회같다는 생각도 들고..
이익집단이 역대 가장 단단히 우위를 점령해서는, 제 좋을데로 굳혀간 사회같다는 생각도 들고..
조선 이전의 시대도 문제는 존재했지만, 덜하냐 더하냐의 차이로 말하자면,
더한 사회인것 같단 말이죠..
조선에 와서 제도를 탄탄히 정비했다고 하지만,
어느 왕조던 시간이 가면 결국에 제도가 점차 발전하는게 아닐까요?
저도 본문에 나온 내용과 같은 영향을 받아서일까요..
아니면 정말 조선이 sucks 해서 그런걸까요..ㅜ
과거에 대한 고찰과 반성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http://blog.yahoo.com/_OT3KWE5S4G2T3NAX23DVA6RVKI/articles/69977
근데 조선도 고려와 다를게 없었던게 정도전이 일단 재상정치를 말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은 이미 그걸 할 필요성도 없습니다. 이미 고려 무신정권때 재상들만 봐도 재상 정치론은 실패했습니다.그리고 두번의 난으로 어제는 서로가 손잡고 웃다가 내일은 칼로 서로죽이는 이런걸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초기 고려호족들과 대체 다를게 무엇입니까? 고려초기 호족들보다 배운게 훨씬 많았잖습니까? 호족들이야 태생부터 칼놓고 웃다가 깨지면 칼로 서로 죽이는것 밖에 모르는 인간들이지만 조선 사대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관매직이 성행했다면 이는 고려의 음서나 다를게 없는데 조선은 고려와 달라져야 했다고 봅니다. 문정왕후의 불교부흥도 조선이 고려가 아니였잖습니까? 전왕조의 잘못된건 애시당초 계승을 하질말았어야 하고 잘한거만 계승하면되요. 못한걸 계승하려니 조선이 몰락한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