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장은 한국사미스테리 60에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이렇게 간단하게 나와서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에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주장의 최초 주장자는 임승국이었던 모양이고, 그 뒤를 이어 인터넷에 떠도는 글의 주인공은 신완순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주장은 [수서(脩書)]에 나오는 백제 대성 8씨 - 沙 解 眞 木 國 燕 苗 協이 중국에 있다는 것으로, 그 근거 사료로는 다음과 같은 책을 대고 있다.
글쎄다... 백제 대성8씨 자체가 우선 틀렸다. [수서]의 백제 대성8씨는 다음과 같다.
沙 燕 刕 解 眞 國 木 苩
글만 쓰면 왜곡이니, 이걸 어쩌냔 말이다. 하지만 참작할 여지는 있다. 이런 차이가 왜 나는지 알아보자.
저 성들 중에 沙 燕 解 眞 國 木의 6성은 일치한다.
苩은 본래 [수서]에 苗로 나오는데 苗가 苩의 오자라는 것이 밝혀져서 (중국은 [통전]에 의거하여 수정했는데, 우리 [삼국사기]에 苩씨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공부 안 하는 인간들이나 틀리는 문제라고나 할까.) 요새는 틀리는 사람들이 없다. 뭐, 원전에 의거해서 틀린거라면 이해는 해주마. 아무튼 틀린 건 틀린 거.
그리고 刕와 協은 刕를 읽지 못한 인간들이 비슷하게 생긴 協으로 읽으면서 생긴 해프닝이다. 이 역시 한문 못 읽는 인간들이 일으키는 오류다. 그나마 신완순은 刕를 언급이라도 했는데, 이후 인터넷의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Ctrl-C, V가 되지 않는 刕를 빼버리고 協만 옮겨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신완순은 1994년에 편찬되었다는 [중국성씨사전]을 근거로 대면서 백제 성이 중국에 남아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저 사전은 결국 다음 두 책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씨고략(姓氏考略) - 眞 協 木
군망백가성(郡望百家姓) - 沙 解 國 燕 苗
그럼 이게 무슨 문제인가? [성씨고략]이라는 책은 무슨 책인지 찾지 못했는데, [백가성]이란 송나라 초에 만들어진 책이다. 거기 실려있는 것을 가지고 성씨가 중국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증보문헌비고]에 백제 대성 8씨가 모두 실려있다는 것으로, 백제 성씨가 모두 우리나라에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추가]
Comte님이 조사하신 바에 따르면 [성씨고략]은
姓氏考略一卷 (清)陳廷煒(撰)
로 나온단다. 즉 청나라 때 만들어진 책인 것이다. 지은이인 진정위陳廷煒는, 남은 기록이
수수秀水출신. 1706년 진사급제. 1714년(강희제 시절) 건평 지현建平知縣 부임 정도라 한다.
더구나 [군망백가성]에 실려있는 내용을 알게 되면 더욱 기가 찰 것이다. 한번 보자.
沙: 宮音。汝南郡。系出沙隨氏,古諸侯公爵,後失國爲公沙氏。漢有公沙穆。子孫去公爲沙氏。
사 : 궁음. 여남군. 사수沙隨 씨에서 나왔다. 옛날의 제후 공작으로 뒤에 나라를 잃고 공사公沙 씨가 되었다. 한나라 때에 공사목公沙穆이 있었다. 자손이 공公을 버리고 사沙 씨가 되었다.
解: 商音。平陽郡。唐叔虞子良食采於解,因氏焉。後有解揚。
해 : 상음. 평양군. 당숙우(춘추 시대 진晉나라 시조)의 아들 량(良)이 해(解) 땅에 식채(食采:食邑)를 받았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씨(氏)를 삼았다. 훗날 해양(解揚)이 있었다.
國: 角音。下邳郡。系出姬姓。鄭公子子國之後。有國僑即鄭子產。又齊有世卿國姓。
국 : 각음. 하비군. 희姬 성으로부터 나왔다. 정공자 자국(子國)의 후손이다. 국교가 있으니 즉 정자산(춘추 시대 정나라의 유명한 정치가)이다. 또 제나라에 대대로 경(卿) 벼슬을 하던 국(國)씨 성이 있었다.
燕: 羽音。範陽郡。系出姬姓。召公封於燕,支子以國爲氏。隋有燕榮。
연 : 우음. 범양군. 희姬 성으로부터 나왔다. 소공召公이 연에 봉해진 뒤, 지자(支子:적장자가 아닌 다른 아들)가 나라(이름)를 씨로 삼았다. 수(隋)나라 때 연영(燕榮)이 있었다.
묘는 오자이므로 찾아볼 필요도 없다. 위에 나오는 것처럼 저 성씨들은 중국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백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저런 책을 근거로 작성된 것이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이라면, 저런 것보다는 [증보문헌비고]가 백번 낫다. 하여간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은 숨겨놓은 사료만 찾으면 왜 이리 빈약한 것인지... 쯧쯧.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이렇게 간단하게 나와서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에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주장의 최초 주장자는 임승국이었던 모양이고, 그 뒤를 이어 인터넷에 떠도는 글의 주인공은 신완순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의 주장은 [수서(脩書)]에 나오는 백제 대성 8씨 - 沙 解 眞 木 國 燕 苗 協이 중국에 있다는 것으로, 그 근거 사료로는 다음과 같은 책을 대고 있다.
글쎄다... 백제 대성8씨 자체가 우선 틀렸다. [수서]의 백제 대성8씨는 다음과 같다.
沙 燕 刕 解 眞 國 木 苩
글만 쓰면 왜곡이니, 이걸 어쩌냔 말이다. 하지만 참작할 여지는 있다. 이런 차이가 왜 나는지 알아보자.
저 성들 중에 沙 燕 解 眞 國 木의 6성은 일치한다.
苩은 본래 [수서]에 苗로 나오는데 苗가 苩의 오자라는 것이 밝혀져서 (중국은 [통전]에 의거하여 수정했는데, 우리 [삼국사기]에 苩씨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공부 안 하는 인간들이나 틀리는 문제라고나 할까.) 요새는 틀리는 사람들이 없다. 뭐, 원전에 의거해서 틀린거라면 이해는 해주마. 아무튼 틀린 건 틀린 거.
그리고 刕와 協은 刕를 읽지 못한 인간들이 비슷하게 생긴 協으로 읽으면서 생긴 해프닝이다. 이 역시 한문 못 읽는 인간들이 일으키는 오류다. 그나마 신완순은 刕를 언급이라도 했는데, 이후 인터넷의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Ctrl-C, V가 되지 않는 刕를 빼버리고 協만 옮겨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신완순은 1994년에 편찬되었다는 [중국성씨사전]을 근거로 대면서 백제 성이 중국에 남아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저 사전은 결국 다음 두 책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씨고략(姓氏考略) - 眞 協 木
군망백가성(郡望百家姓) - 沙 解 國 燕 苗
그럼 이게 무슨 문제인가? [성씨고략]이라는 책은 무슨 책인지 찾지 못했는데, [백가성]이란 송나라 초에 만들어진 책이다. 거기 실려있는 것을 가지고 성씨가 중국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증보문헌비고]에 백제 대성 8씨가 모두 실려있다는 것으로, 백제 성씨가 모두 우리나라에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추가]
Comte님이 조사하신 바에 따르면 [성씨고략]은
姓氏考略一卷 (清)陳廷煒(撰)
로 나온단다. 즉 청나라 때 만들어진 책인 것이다. 지은이인 진정위陳廷煒는, 남은 기록이
수수秀水출신. 1706년 진사급제. 1714년(강희제 시절) 건평 지현建平知縣 부임 정도라 한다.
더구나 [군망백가성]에 실려있는 내용을 알게 되면 더욱 기가 찰 것이다. 한번 보자.
沙: 宮音。汝南郡。系出沙隨氏,古諸侯公爵,後失國爲公沙氏。漢有公沙穆。子孫去公爲沙氏。
사 : 궁음. 여남군. 사수沙隨 씨에서 나왔다. 옛날의 제후 공작으로 뒤에 나라를 잃고 공사公沙 씨가 되었다. 한나라 때에 공사목公沙穆이 있었다. 자손이 공公을 버리고 사沙 씨가 되었다.
解: 商音。平陽郡。唐叔虞子良食采於解,因氏焉。後有解揚。
해 : 상음. 평양군. 당숙우(춘추 시대 진晉나라 시조)의 아들 량(良)이 해(解) 땅에 식채(食采:食邑)를 받았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씨(氏)를 삼았다. 훗날 해양(解揚)이 있었다.
國: 角音。下邳郡。系出姬姓。鄭公子子國之後。有國僑即鄭子產。又齊有世卿國姓。
국 : 각음. 하비군. 희姬 성으로부터 나왔다. 정공자 자국(子國)의 후손이다. 국교가 있으니 즉 정자산(춘추 시대 정나라의 유명한 정치가)이다. 또 제나라에 대대로 경(卿) 벼슬을 하던 국(國)씨 성이 있었다.
燕: 羽音。範陽郡。系出姬姓。召公封於燕,支子以國爲氏。隋有燕榮。
연 : 우음. 범양군. 희姬 성으로부터 나왔다. 소공召公이 연에 봉해진 뒤, 지자(支子:적장자가 아닌 다른 아들)가 나라(이름)를 씨로 삼았다. 수(隋)나라 때 연영(燕榮)이 있었다.
묘는 오자이므로 찾아볼 필요도 없다. 위에 나오는 것처럼 저 성씨들은 중국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백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저런 책을 근거로 작성된 것이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이라면, 저런 것보다는 [증보문헌비고]가 백번 낫다. 하여간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은 숨겨놓은 사료만 찾으면 왜 이리 빈약한 것인지... 쯧쯧.
덧글
1. 고려왕족의 성은 王
2. 대한민국에 왕씨 성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반대로 중국에는 왕씨 성이 많다.
3. 고려는 실은 중원에 있었구나!
라는 완벽한 3단 논법이 생각났습니다.
半道님 / 후후...
오늘 부터 한자 공부다..
진짜 사람은 책좀 읽어야지 원.. 실은 저도 많이 찔립니다.
이거야 원, 앞뒤 다 잘라먹고 저거 한문장만 떡 올려놓으니 홀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홀로서기님 / 그렇습니다. 인터넷에는 좋은 정보도 많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알려주지는 않으니까요.
엘레시엘님 / 낚으려고 만든 문장이니, 낚이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姓氏考略一卷 (清)陳廷煒(撰)
陳廷煒는 그렇게 유명인은 아닌 모양입니다.
자료가 거의 없네요.
秀水출신. 1706년 진사급제... 1714년(강희제때입니다) 建平知縣 부임 정도...
kyoko님이 7위, 좌백님이 20위시더군요^^
다른 여러가지 허황된 역사이론들의 공통점이랄까 자료에서 결과를 추출하는게 아니고 결과에 자료를 꿰어 맞추는 짓이로군요.
무슨 실험 레포트 베껴내는것도 아니고 참...
1차사료라고 할 만한 곳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것 같은데... 원래 유추에서 시작된 말일까요?
사실 정확한 이야기들은 17세기-18세기에 만들어진 역사책들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제게는 그럴 시간도, 여유도, 방법도 모두 부족하네요. 나는 조선 유학자들이 이 문제를 시작한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몇몇 학우들끼리 말도 안된다고 성토를 하기도 했죠;
(물론 환단고기의 '환'자도 꺼낸것은 아니죠;)
저의 학교는 교수님들의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서 그런가 싶습니다.
그분들은 학문의 방법을 모르더라구요.
가설 - 수집, 실험, 방증 - 가설 수정 보완 - 결론.
그분들은
결론(가설) - 수집(결론에 맞지 않으면 다 버린다.) - 버린것은 가짜 음모론 무지의 소치론 생각 - 결론(결론이 처음 가설과 똑같다.)
에효..
1. 규원사화 계열 - 제가 보기엔 규원사화에서 치우를 우리 쪽으로 끌어넣은 건 반한(反漢)의 일원으로서 엮어넣은 것이지, 어떤 근거가 있었던 건 아닌 듯 합니다. 또 치우의 후손을 풍이(風夷)라 했으니 九黎와 九夷를 혼동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2. 九黎 = 九夷 라는 착각 - 이건 뭐...분명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최동이 출처죠. 최동은 九黎가 九夷로 별칭되었다는 착각을 했습니다. 이분은 논증과정이 굉장히 이상해서 기억하기조차 어렵습니다만... 지금 책이 없는지라 기억에 의존해서 말할 수 밖에 없군요. 아마 「黎氏九種」과 「黎侯寓於衛」를 근거로 삼았을 겁니다. 그런데 저 뒤의 구절을 해석을 못해서 「衛나라 임금이 黎侯라는 것이니 衛는 黎이고 또 衛는 夷와 음이 비슷하며 濊와도 음이 비슷하니 九黎 = 九夷임이 입증되었다 」라는 희한한 소리를 했던 듯 합니다.
현재 환빠들은 주로 2설 + M모님의 날조를 따르는 것 같습니다.
소하님 / 정답입니다.
악질식민빠님 / 그렇군요. 최동이 출처였군요. 오재성은 최동과 군수님의 결과를 받아들인 모양이네요.
그럼 우리나라 백제는 짝퉁인가요? 풍납토성은 일제가 고묘히 제작한 고도의 첨단 토성이군요
무려 탄소연대를 속였으니
뭐 그래도 대륙조선걸 보다는 낫네요 일제가 민족 자체를 이주시켰다는 -ㅁ-;;;
저 죄송한데;; 제가 개소문에서 중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는?
이라는 글의 댓글에서 한단고기를 주장하는 분을 보고 울컥해서 '무단으로'
동이족 관련 글을 발췌해서 올렸습니다 대신 출처를 남겼고요
그런데 그분이 계속 홍산문명이 고조선의 배달문명이라고 거론하시네요 이에 대해서 아실것 같은데 글 올려주실수 있는지요 아 물론 초록불님의 블로그에요
http://orumi.egloos.com/3127841
http://orumi.egloos.com/3126895
http://orumi.egloos.com/213985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