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 [클릭] - 동아일보 삭주 지국장 건
아, 허탈하다. - 친일단체 조선유학회 기관지 일월시보에 기고한 건
유사역사학의 가장 유명한 인물이며 입만 열면 이병도의 친일을 성토하던 이유립이 조선총독부 기관지나 다름없었던 월간지 [조선]에 시를 게재했던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시들은 독립정신 같은 것은 저언혀 찾아볼 수 없는, 일제의 통치가 얼마나 평화로웠는지나 느끼게 하는 그런 종류의 시다.
보통 이유립에 대해서 알려져 있는 사실에다가 이번에 알려진 사실을 집어넣어 약력을 구성해보자. 얼마나 웃기게 되는지.
한암당(寒闇堂) 이유립(李裕岦)
1907년 평북 삭주군 구곡면 안풍동 구령포 청계령산 아래 청계곡에서 단해(檀海) 이관집의 4남으로 출생.
1919년 (13살) 4월 7일 3.1운동 신안동 시위 참가.
10월 조선독립소년단 조직 활동에 참가, 단장이 됨.
의민사(義民社) 천마산대의 소년통신원으로 뽑혀 전봉천과 함께 국내의 통신연락을 도움. (지령문을 모두 암기했다고 주장함)
1920년 (14살) 계연수가 피살되기 전 [환단고기]를 맡김. 60년 후에 공개하라고 했다지만 환단고기는 어떤 책? [클릭]에 나와 있는 것처럼 [환단고기]는 이유립이 지은 책이다.
1930년 (24살) 삼육사(三育社)를 조직. 회지 《三育》발행. 《三育》7월호에 실은「광개토성릉비문징실고廣開土聖陵碑文徵實考」등의 기사로 인하여 삼육사는 1931년 7월 31일 강제 해산.되었다고 주장하나 동아일보 1931년 3월 2일자에는 삼육사 동인 일동이 투고한 [삭주 삼육사 창립] 기사가 기재되어 있는 바,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철저히 일제에 순응하겠다는 의지가 만발함을 알 수있다. 기사 내용은 아래 따로 기재한다.
1931년 (25살) 7월 조선총독부 발행 월간지 [조선]에 시 '사회(寫懷)' 게재됨.
1933년 (27살) 8월 조선총독부 발행 월간지 [조선]에 시 '삭주(朔州) 을산촌(乙山村)' 게재됨.
1933년 친일단체 조선유학회 가입 (조선유교회는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2004)에도 실려있는 갈데 없는 친일단체로 이유립이 이야기하는 조선유학회란 조선유교회의 다른 이름임. 재야망상사학신봉자들의 몸부림 [클릭])
1935년 (29살) 친일단체 조선유학회의 기관지 [일월시보] 주필.
1938년 (32살) 1.21 ~ 5.1 [동아일보]의 삭주지국장 .
1939년 (33살) 신풍학원(新豊學院)을 설립. 학감 겸 교사 취임. (신풍학원은 친일단체 조선유교회의 산하 지부였다.)
1942년 (36살) 신풍학원이 '학생들의 신사참배 기피', '조선교육', '창씨개명불응', '무궁화 심기' 등 12항을 이유로 강제 폐쇄.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친일단체 조선유교회의 산하 지부였던 신풍학원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벌어진 후 조선, 동아가 적극적으로 친일에 나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시기에 동아일보의 지국장을 지낸 애국지사 이유립이라... 글쎄올시다. 그 경력이 자랑스러웠다면 숨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유립이 소년 시절에 독립운동을 했다는 발언 역시 다른 증언이나 증거가 없는 자기 주장에 불과하며, 어른이 된 후의 행적으로 볼 때, 독립운동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연대를 확정할 수 없어서 위 약력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유립은 일제강점기에 법과 질서를 지키자는 따위의 표어를 일본에 있는 출판사 공모전에 내기도 한다. (아래 빨간 글씨 참고!) 그런데 이 사람이 독립운동을 했다고? 민족 정신이 있다고?
그런 자기 선전을 빼고 보면, 조선총독부 발행 잡지에 실린 이름은 객관적인 증거 자료라는 거! 재야의 얄팍함이 이번에 또 드러났는데, 과연 무슨 변명들을 할는지 매우 궁금하다.(언제나 그렇듯이 기껏 나를 향해 화교니, 식민사학자니 하는 소리나 해댈 뿐, 문제의 본질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안 됐지만 나는 경주이씨고 내 어머니는 남양홍씨라 중국과는 아무 인연이 없다. 쯧쯧...)
이유립은 동경東京 일본청년사日本靑年社 모집 「공덕표어公德標語」공모전에서 당선되어 동메달을 받은 적도 있다. 일본청년사는 [(교육칙어敎育勅語) 국민일덕훈國民一德訓]을 펴낸 바 있는 어용출판사. 공모전에 낸 표어 내용도 흥미롭다. - 마모(守)라자레(不)바 히도리(一人)노 리에기(利益) 마모레바 반진(萬人)노 리에기(利益) = 譯 직히지 않으면 한사람의 利益 직히면 만사람의 利益
삼육사 관련 동아일보 기재 기사 내용 (약간 현대말화 했음)
평안북도 삭주군 구곡면 신풍동에서는 청년기관이 업슴을 유감으로 하야 이유립, 김석순, 명재수, 최현필, 김상영 등 몇 사람이 상의한 결과 "지덕체 삼육三育을 본지로 하야 청년의 인격을 높이고 실력을 양성하며 그 향상 진보를 기한다"는 목적 하에, 작년 11월 15일에 "삼육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얏는데 사원은 십여명에 불과합니다마는 의지만은 일관하여 사칙을 준수하여 매일 일요일을 찬서일로 하야 세간학 입신책 지방의 정형, 각국의 국정, 세계의 대세, 조선의 특수사정 등을 호상문답 또는 설명, 기타 명문 낭독을 하며 월요일을 저축일로 정하야 1전 이상의 심성저금을 하얏다가 금1원이 되면 곳 삭주 금융조합에 공저共貯하기로 하며 토요일을 반성일로 하여 일상의 결점을 호상경계하며 장처를 발양하야써 삼육전재의 도에 전력합니다. 그러고 매월 1회씩 회람잡지를 발간하는데 그 잡지의 내용은 청년수양, 의사통일, 정신작흥, 실력양성, 문예보급 및 취미제공, 고전연구, 물리응용, 독서장려, 저금장려, 농촌계발, 생활안정 등을 목표로 각각 스스로 의견을 정하게 하야 매월 제1 일요일 발행으로 하여 지방의 청년문사의 명문옥고를 다수 모집하야 취사편찬한 다음에 구령포 경찰관 주재소의 허락을 득하야 순서 차례로 회독回讀하며 이밖에 도서를 공동구입하야 일일윤독하는데 신문은 동아일보, 잡지는 인도人道, 동광東光, 신생新生, 대중지광大衆之光, 삼천리, 백두산, 중성衆聲, 별건곤別乾坤, 조선소년 별나라, 농촌청년, 농민, 강의록은 조도전(와세다)중학 강의록, 대일본사회대학 강의록, 기타 천문지리, 이과, 역사, 철학, 사상수양어학, 수학, 법률, 문예사전 등 여러가지이니 이것도 순서로 회독합니다. (삼육사 동인 일동)

위에 읽은 바와 같이 저축 장려니 주재소의 경찰관에게 자진해서 검열을 받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이게 독립운동가가 할 말일까? 저들 구독 목록에 대일본사회대학 강의록은 왜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동광>은 주요한이 창간했던 것으로 1931년 속간된 후에는 민족개량주의 입장의 선전지였다고 한다.
이유립은 평북 삭주 출신이다. (그 유명한 수풍댐이 있는 곳이다.) '삭주(朔州) 을산촌(乙山村)'이라는 시를 옮겨본다.
삭주(朔州) 을산촌(乙山村)
이유립(李裕岦)
백학산(白鶴山), 높은 봉(峰)
새날이 또 뜨고
천석평(千石坪) 넓은들
벼 모 잘크네.
구곡천(九曲川) 내림물
장암(獐巖)을 싸돌고
구성재(求誠齋) 옛바람
생황(笙簧)이 동하네.
아마도 이 촌락(村落)이
우리의 가향(家鄕)일레라.
평북 삭주의 풍경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저 시 중에 나오는 구성재(求誠齋)는 이유립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이유립 집안의 재각이다. 애국정신이 투철한 청년 이유립이 일제식민통치기관인 조선총독부 발행 잡지인 [조선]에 시를 기고했다는 이 놀라운 사실!
백범 김구나 백야 김좌진이 조선총독부에 원고를 보내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 그러나 내게는 문학청년이었던 청년 이유립이 자기 글이 인쇄된 조선총독부 월간지를 품에 안고 뿌듯해 하는 장면이 절로 떠오른다. 이 문학청년은 그후 수십년이 지나 필생의 역작인 [환단고기]를 만들어서 전 대한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되는 것.
이로써 일제시대 군수를 지낸 문정창, 기독교인으로 친일 행위를 한 최동, 조선총독부 발행 월간지에 시를 기고하고 친일단체 조선유학회에 가입하고, 조선총독을 지낸 재등실이 격려까지 한 친일잡지 [일월시보]의 주필을 지내고, 일제의 나팔수로 전락한 동아일보의 지국장을 지낸 이유립 등 3인의 재야사 원로들의 친일 행각이 드러났다. 과연 친일 재야사학의 끝은 어디일지 무척 궁금하다.
조선총독부 발행 월간지에 글을 실은 것만으로 친일행위라 할 수 있냐는 의문이 들어와서 몇마디 첨언한다. 나는 그런 정도로 친일행위에 대해서 엄격한 사람은 아니다. 우리가 이른바 단죄해야하는 친일파라고 말할 정도의 사람은 명백하게 피해를 끼친 사람들로 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시를 쓰는 정도의 친일은 정말 소소한 것이라 하겠다. 다만, 본인은 조선총독부 발행 월간지에 시 나부랭이를 기고하던 주제에 다른 사람보고 친일했다고 욕하는 그런 행위가 가소로울 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자기 사부가 일제가 보낸 밀정에 의해서 목이 잘리는 참변을 겪었다고 주장한 주제에, 그 원흉들이 펴내는 잡지에 행복해요~ 하는 시를 보낸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이유립은 친일파 거두들이 포진하여 만들었던 조선유학회에 가입하여 맹렬히 활동했다. 그 스스로 그것을 자랑하고 있다. 청소년기에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의 행적이 청년기에는 친일단체들과 끝없이 연관을 지니고 있다가 장년기에 들어오면 또 일제에 저항을 한 행적으로 나타난다. 이걸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일월시보] 기고 글에 대해서는 이유립의 친일단체 가입 건 [클릭] 포스팅에 전문이 올라와 있다.
덧글
그냥 평범한 시인데 '친일'의 개념과 범위가 엄청 엄했나보군요.
그 사람의 행적이 의심스러울 수도 있겠군요.
환단고기를 꺼낸 거 보니 이 사람 뻥이 너무 심한 것 같아보이네요
약력은 믿을 수 없고
믿는다 하더라도 일제에 반항한 것일뿐 독립운동이라고 볼 수 없네요,
머리통에 정보를 넣는거야 책만보고도 되는것 아닌가요? 정작 중요한건 애들에게 제대로 생각할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게 중요한것 같습니다. 한숨 나옵니다. 인터넷이 대중화 되면서 애들이 정보는 많이 접할수 있으나, 그 정보의 참,거짓 질을 알아보는 안목은 없는 형편 아닙니까? 참...요즘 많은것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박사코스 밟는다는 양반조차 그런 양반(기억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이텔 한국사동에서 봤던 정모씨)이 있다는것은 너무나도 놀라웠습니다.
수능 세대 이후애들의 무식함은 극을 달리고, 거기다 이해능력이 요구된다는 수능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저같은 학력고사 세대보다 더 못하냔거지요. 분명히 교육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한국가의 역사가 소수의 거짓말장이들의 말빨에 놀아나고 있는꼴이 우습지 않습니까? 그 소수의 거짓말장이들의 말이 그냥 단순히 재미나 자위 수단으로만 사용된다면 그냥 말도 안되는 거짓말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몇몇 애들의 재롱으로 보고 웃어주고 말겠습니다만...현실적으로 이 몇몇의 거짓말은 또 다른 구체적 요구사항이 붙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다물이라고 하는 요구사항인데...고토 회복이란 말은 좋긴하지만, 만에 하나 이런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산이 되어 히틀러같은 미친인간이 이땅이 나타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히틀러같은 미치광이의 등장은 히틀러개인의 잘못이보다는 그런 미치광이에 칼자루를 쥐어준 독일국민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봅니다.
후에 이땅에 히틀러같은 미치광이가 환단고기류의 사관으로 무장한체 다물을 주장하며 고토회복이란 명분으로 미친짓을 한다면...그리고 어리석게도 그 환단고기의 주장에 심취한 국민이 과반수이상이 되어 칼자루까지 쥐어주게 된다면...과연 어떤일이 벌어질까요?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는것은 조금 과하다 하실지 몰라도, 제 생각에는 결코 과하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일국의 역사가 거짓말로 도배되는것...이건 어떻게 봐도 그냥 개인적인 사기와는 비할바가 아닙니다. 거짓말이 진실로 믿어지게 되는것을 그냥 보야 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도대체 역사라는 학문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적당히 소설써서 이걸 믿겠다 하면되는것 아닙니까?
샤화님 생각이 어떤지 몰라도 대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을 옹호하는듯 한 발언은 너무 무책임한것 아닙니까? 저는 샤화님같은 무책임한 사람들이 정말 싫습니다.
아니 중국놈들의 엉터리 역사관에 오히려 힘을 실어줄수도 있습니다. 치우가 너희 조상이라며? 그래..맞아...한국과 우리 중국은 조상이 같으니까..그러니까 너희들은 중국의 일부가 되어야 해. 이렇게 나오면 뭐라고 할겁니까? 실제로 중국애들중에 한국과 중국은 조상이 같다고 하는놈들을 제법 봤습니다. 상당히 머리아프더군요. 딱 중국판 환빠들을 보는것 같았습니다.
현묘님은 왜 제댓글을 비꼰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누구라도 초록불님의 글을 읽어보면 재야사가들이나 환빠라고 불리는사람들에게 매우 적대적임을 알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다른 글들을 읽다보니 답답함을 느껴서 답답하다고 한것뿐이고요. 초록불님이 환빠라는 사람들에게 뭔가 큰일을 당하신분 같기도 해서 첫번째 댓글을 남겼던것이구요. 그 답답한 마음은 초록불님이 달아주신글에서 풀릴수 있었습니다. 초록불님은 사기꾼들을 보고 모른척하지 않으시는 정의로운분이라는걸 알고 말이죠. 정의롭다는 말이 비꼬는 말처럼 들리십니까?? 저는 초록불님이나 현묘님처럼 많이 아는사람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도 아닙니다. 물론 환빠라는 사람들이나 재야사가들의 주장에 반박할수 있는 그런 지식인도 아니구요. 그렇지만 글들에 담겨있는 작자의 감정들은 어렴풋이 느낄수 있는 정도의 보통사람입니다.
현모님께서 저를위해 써주긴 긴 댓글은 여러번 잘 읽어보았구요. 그런 재야사가들의 주장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것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현묘님같은 분들도 많지 않겠습니까??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다양한주장(비록 근거도 미약하고 비상식적이고 극단적인 주장들이 있더라도)이 나오는건 전 당연하고 긍정적으로 봅니다.
현묘님께서는 저에대한 오해를 푸셨으면 좋겠구요. 저는 진심으로 초록불님이 정의로운분이라는 뜻에서 댓글을 달아놓은겁니다.
[새날이 또 뜨고
천석평(千石坪) 넓은들
벼 모 잘크네.]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시나?
직접적으로 만사이!~ 만사이!~ 왜쳐야만 찬양한 것인지...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 광개토왕릉비
말씀처럼 장수왕이 아버지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평범"한 글만 적었을까요......라고 해석한다면 그 분의 정신 세계 인정합니다.
직접적으로 만세를 외쳐야 찬양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