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질신 이외의 신은 믿지 않는 사람이고, 기독교에 대해서는 니체의 [반그리스도자]를 읽을 때부터 거리가 멀어진 사람이기도 하다. 고교 시절에는 교회 다니는 날라리(당시 교회 다니는 남자 고교생의 90%는 여학생을 만날 수 있는 공공장소라는 이유로 교회를 다닌 날라리들이었다)들과 논쟁도 심심찮게 겪었다. 그때 성경책도 읽지 않은 놈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더 놀랐었다.
우리 반의 기독교인들은 내게 대들었다가 그야말로 개박살이 났고, 분노한 한 녀석이 지원군을 요청해왔다. 말하자면 학내에서 가장 이론이 밝은 기독교인이 왔던 것인데, 30분도 안 되어서 그 친구의 밑천은 바닥이 나고 말았다. 그 친구의 논리라는 건 매우 한심한 지경이어서, 그 정도 말발로 논리적인 척 한 것이 가소로울 지경이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존재하신다."
이런 이야기를 내놓으면,
"바람은 기압과 온도 차이에 의해서 발생하는데, 그것은 과학적으로 모두 입증할 수 있는 일이다. 신도 그렇게 입증이 되냐?"
라는 말로 깨갱거리게 해 준 것이다. (무슨 수준높은 신학적 토론이 있기를 기대했다면 죄송...) 결국 그 친구는 기독교인 전가의 보도인 "믿지 않는 자는 깨닫지 못한다"라는 말로 도망쳐버렸다.
이런 일들은 기독교인들을 더욱 가소롭게 여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내 친구 중 하나의 가방에서 의외의 물건을 보았던 것이다. 두꺼운 성경책이 고3학생의 가방 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교과서와 참고서 만으로도 허리가 휠 정도였는데, 성경책을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야, 이런 거 넣어 다닐 거면 영어 사전이나 갖고 다녀라."
"그건 여기 있는데?"
그 친구는 신앙을 자랑한 적도 없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었으며 학교에서는 아주 예의바르고 남들에게는 친절한 아이였다.
조용한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그 후에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천주교인도 있었고, 개신교인도 있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모두 서울역 앞에 서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이 사고를 치면 무신론자에 비해 더 많은 욕을 먹는 것은, 그들의 신앙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비난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더 쉽게 나온다. 그런 사실이 강조될수록 비기독교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불신감은 더욱 깊어진다.
물론 기독교인들이 지하철에서 소음 공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이웃집에서 한밤중에 통성기도를 하는 등 민폐를 끼치는 행위도 좀 자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럴 땐 이런 말이 생각난다.
"너희는 기도할 때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에게 나타내려고 회당과 길거리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그들은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았다. 그러나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마태 6장 5절)
이랜드 사태를 보면 이런 말이 생각난다.
"바리새파 사람들아, 너희에게 불행이 닥칠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저버렸다. 그러나 십일조도 바치고 이것도 버리지 말아야 했다." (누가 11장 42절)나는 미션 스쿨이 저지르는 강제와 불법적 행위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바가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식민지 점령 정책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는 매우 성실하고 착한 사마리아인들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종교라는 문제 이전에, 인간이라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 종교만 최고라고 생각하며, 이웃에게 주는 피해 따위는 하나님이 다 용납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마음 먹지 않는다. 짜증나고 신경질난다고 상대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다.
속으로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써서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멋진 아가씨를 보며 순간적으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일이야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옆으로 가서 "섹시한데, 자러 갈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인 것과 마찬가지다. (심지어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범죄행위가 된다!)
회교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기독교를 선교하러 갔건, 무슨 다른 의도로 갔건 그들이 충분히 주의하지 않은 것은 잘못한 일이고 사진 자료에 나오듯이 다른 사람들의 종교를 존중하지 못한 것도 잘못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잘못으로 죽어도 마땅한 것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참 난감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이지만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사형 판결이야말로 신중하고 신중하게 내려져야 한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너무 쉽게 다른 사람들을 마음속에서 죽이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는 죽이자고 다른 사람들을 선동까지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