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역사 *..역........사..*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에 대한 글은 넘쳐 흐르는데 정작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포스팅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 고로 나 자신도 공부를 좀 해볼 겸 해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아프가니스탄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Afganistan).
북부 평원지대는 농업지대고, 힌두쿠시 산맥으로 구성된 중부 산악지대와 리게스탄 사막을 포함한 남서부 고원지대로 나뉘어져 있다. 여러 광물 자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교통 환경이 불편하여 거의 개발되지 못했으며 북부 평원지대의 천연가스만 개발되어 있다. 현재는 대규모 양귀비 재배로 아편 수출이 이 나라의 주된 수입원이다. 척박한 환경 탓에 양귀비 이외의 작물 재배가 어려워 양귀비 재배를 근절할 방법이 없다. 오죽하면 이 나라의 양귀비 재배를 허용하고 모르핀 등 약품 제조로 유도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겠는가.

국민의 절반 가량은 파슈툰 족(45%). 그외 타지크인(25%), 하자라인(10%), 우즈베크인(8%), 투르크멘인 등이 국민을 구성하고 있다. 공용어는 파슈투어고, 다리어가 1/3, 북부 지역에는 알타이어에 속하는 우즈베크어와 투르크멘어도 사용하고 있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자기들과 같은 환족이 살고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85%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이고 15%는 시아파 이슬람교도다.

아프가니스탄 지역은 BC 6세기에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BC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가 이 땅을 점령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셀레우코스 왕조가 일부를, 인도 북부의 마우리아 제국이 나머지 땅을 통치했다. 그 뒤에는 박트리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BC 2세기에는 인도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에게 정복되었다. 불교가 전파되었고, 불교는 오랫동안 영향을 주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나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이 곳의 불교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바미얀 국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곳에 그 유명한 바미얀 석불이 있었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는 그 불상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 석상은 2001년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후 에프탈 왕조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을 때 힌두교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힌도교는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서서히 전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쿠샨 왕조의 예술 양식에도 힌두교적인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힌두교도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탈레반은 이들 힌두교도들도 극렬 탄압 중이다. 힌두교도들은 힌두교도라는 표식을 붙이고 다녀야 한다.

870년경 이슬람 사파르 왕조 시대에 이슬람이 전파되어 이슬람교를 믿게 되었다. 1219년에 몽골에게 점령되었고 몽골 제국이 붕괴된 후에는 인도 무굴 제국과 페르시아 사파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700년대 초에 와서 페르시아 군주 나데르 샤에 의해서 무굴 제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나데르의 경호대장이었던 아흐마드 칸 아브달리가 아흐마드 샤 두라니라는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차지하여 독자 왕국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1722년 두라니가 죽은 후 부족들의 불화와 영국, 러시아의 음모로 왕국은 붕괴되어 버렸다. 영국은 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고 싶어했으나 끊임없는 항쟁을 통해 독립을 유지했다. 3차례의 전쟁이 있었다. (1839~1842, 1878~80, 1919) 셜록 홈즈의 조수 와트슨 박사는 바로 이 아프가니스탄 2차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런던으로 돌아간 것으로 되어 있다.

1919년 왕국으로 출발한 아프가니스탄은 1930년대부터 안정된 정치가 실시되었으나 1973년 국왕 외유 중에 국왕의 사촌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반동 여파로 좌파 혁명이 일어나 군주제를 종식시켰다. 공화국이 탄생했다. 1977년 좌파정당 PDPA(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의 온건파 Parcham(파르캄)파와 급진파 Khalq(칼크)파는 1978년 정권을 잡자 곧 분열했다. 또한 맑시즘에 입각한 개혁 때문에 농촌에서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1979년에 좌익 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실시했다. 반군은 PDPA 정권을 무력화시키며 게릴라 전을 감행해 소련 군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 시기에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망명했다. 수렁에 빠진 소련 군은 1988년 5월부터 철군하기 시작했다. 이 전쟁의 여파로 소련은 해체되고 만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정권을 둘러싼 길고 긴 내전에 돌입한다.

아프가니스탄 내전 (1989년 ~ 1992년) - 소련군 철수 완료(1989) PDPA 정권과 무자헤딘 간의 내전 종식 (2백만 명의 사망자와 5백만 명의 난민 발생...)
아프가니스탄 내전 (1992년 ~ 1996년) - 무자헤딘 간의 내전 끝에 탈레반 집권
아프가니스탄 내전 (1996년 ~ 2001년) - 탈레반 정권 시기의 내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1년) - 9.11 테러로 인한 미국의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 붕괴

탈레반이 나왔다. 탈레반은 1994년 10월, 2만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결성한 수니파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 카에다를 옹호하고 있는데, 같은 조직은 아니다. 이들은 근본주의 이슬람교도로 인류문화유산인 바야마 불상을 파괴해버리거나 여성의 인권을 극도로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과격파다.

아무튼 이야기를 조금 위로 올라가자.

1992년 공산 정권으로부터 수도 카불을 탈환한 사람은 Ahmad Shah Massoud(아마드 샤 마수드) 장군이었다. 타지크인 출신으로 소련 항쟁에서 가장 탁월한 전략가로 평가받은 사람이다. 마수드 장군은 1973년 공산 정권 수립 후 1975년 파키스탄으로 망명했다가 이슬람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지자 1978년 고향 판지시르에 잠입하여 게릴라 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때 나이가 26.

소련 군은 이 탁월한 전략가에 의해 극심한 피해를 입고 대규모 작전을 통해 마수드 검거에 나서지만 그때마다 농락만 당하고 만다. 마수드가 북부동맹(정식 명칭은 아프가니스탄 구국 이슬람연합전선 United Islamic Front for the Salvation of Afghanistan, UIF)을 이끌며 아프가니스탄의 동북부에서 소련 군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을 때, 아프가니스탄 남부에는 이슬람 당이라는 조직이 미국의 지원 아래 성장하고 있었다.

이슬람당과 마수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자생 게릴라 조직을 이끄는 마수드가 보기에는 미국의 지원을 업은 이슬람당도 외세이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 이슬람당이 훗날의 탈레반을 탄생시키는 모체다.

마수드 장군은 국방장관이 되었다. 내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 시기의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은 하도 복잡해서 정리하기도 쉽지 않다. 이 혼란기에 무자헤딘 단체들은 지방 군벌화 하여 국민들을 괴롭히는 집단이 되었다. 이때 사우디아라비아의 갑부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 정국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 빈 라덴의 지원을 받아 결성된 탈레반은 산적떼나 다름없는 무자헤딘들을 격파하고 정국의 태풍으로 등장하게 된다.

빈 라덴은 소련 침공 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소련 군과 싸웠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탈레반 결성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무렵 미국이 빈 라덴을 직접 지원했다는 말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미국이 쿠웨이트 탈환에 나서며 사우디 아라비아 안에 미군 기지가 들어섰을 때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을 비난하며 미국과의 밀월 관계를 끝냈다. 1991년 빈 라덴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진 사우디 아라비아를 떠나 수단으로 이주했다. 1993년 빈 라덴은 소말리아에서 미군을 테러했으며, 미국은 수단에 있던 빈 라덴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 탈레반을 결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들 탈레반의 목표는 오직 정권 장악에 있을 뿐이다. 그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과격파 회교주의자로 비이성적인 집단에 불과하다. 빈 라덴이나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가 소련 군과 싸웠다고 해도 마수드 장군의 위업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행한 인권 침해는 끔찍한 수준이었다. 텔레비전 시청도 금지되었고, 여자들이 다니는 학교는 폐쇄되었으며, 원시적인 수준의 이슬람 형벌이 부활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타 종교에 대한 탄압도 극심하게 행해졌다.

강정구 교수는 탈레반을 우리나라의 임시정부와 비교했으나, 이는 말도 되지 않는 비교다. 탈레반은 1994년에 결성되었으며 소련 군과 싸운 집단도 아니다. (다만 탈레반의 지도자로 알려진 오마르는 소련 군과 싸운 인물이다. 그는 그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더구나 이들은 민간인을 납치해서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관철하려는 파렴치한 집단이다. 김구 주석의 임시정부가 민간인 테러를 일삼았던가? 탈레반의 이런 행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마수드 장군이 훗날 탈레반을 비난한 말이 있다.

"여자와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어찌 지하드라 부를 수 있는가?"

탈레반은 원래 그런 집단이었던 것이다. 탈레반의 입장에서 눈의 가시였던 마수드 장군은 9.11 테러 직전에 탈레반에 의해서 제거되었다. 자살 특공대가 알 자지라 방송사 기자로 위장한 뒤 카메라에 넣어둔 폭탄을 폭발시킨 것이다. 판지시르의 사자라 불렸던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영웅은 동족의 손에 의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마스드 장군에 대해서 좋은 트랙백이 걸렸네요. ◆진짜 '이슬람 전사'를 아시나요?[클릭])

본래 학교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마수드 장군은 많은 학교들을 건립했는데, 이또한 근본주의자들과 충돌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가 세운 학교는 남녀공학이어서 공격받은 것이라고 한다. 마수드 장군은 그런 반발을 코웃음쳤다고 한다.

"조국을 재건하려면 여자도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면서.

마수드 장군의 문제와 빈라덴과 탈레반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런 반론도 들어와 있다. 여러가지 자료로 보아 상당한 근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이 있는 분들은 들러보면 좋겠다.

CIA-마수드, 빈 라덴-탈리반 관계 [클릭] sonnet님의 포스팅에 링크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인 Hamid Karzai(하미드 카르자이)는 1957년생으로 이후이 부족의 족장이기도 하다. 그는 인도 유학생 출신으로 소련 군과 맞서 싸웠으며, 초기에는 탈레반과 사이가 좋았으나 탈레반의 무분별한 원칙주의에 반발하게 되었다. 그 대가로 탈레반은 1999년에 그의 부친을 암살했다. 그는 탈레반과 투쟁에 나섰으며 2001년 미군의 지지 아래 과도정부의 수반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그의 입각은 임시방편의 얼굴마담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으나 아직까지는 정치력을 발휘해 아직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미군과 나토군이 아프가니스탄의 정부와 협력하여 탈레반과 대치하고 있다. 나는 아프가니스탄 현 정부가 미국 외세를 업은 식민지적 정부라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 김광현님의 댓글로 좋은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미국의 식민지적 정부는 아닐지 몰라도, 결코 올바른 정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부분을 추가해 놓는다.

[추가]
먼저 좋은 자료를 소개해준 김광현님께 감사드린다.
아프가니스탄의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이었던 Malalai Joya(말라라이 조야)는 탈레반을 비난하는 것 만큼 현 정부도 비난하고 있다. 탈레반 정권 시절의 악습이 현 정부에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현 정부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군벌들로 지난 내점의 전범이라고 그녀는 전한다. 그녀의 비판은 이렇게 진행된다.

- 아프간은 여전히 근본주의 군벌들에 의해 속박된 땅이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무의식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 오늘날 북부동맹의 지도자들은 아프간의 핵심 권력자들이며 우리 민중들은 그 살인자 집단의 볼모로 잡혀 있습니다. 많은 북부동맹 지도자들은 지난 20년간 벌어진 무고한 민중 수만명을 도륙한 데 대한 책임이 있지만 아프간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꿰차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비판이 카르자이 대통령에게는 미치지 않고 있다.)
- 700명의 아이들과 50~70명의 여성들이 의료 서비스의 부족으로 매일 죽어갑니다. 출산 도중 사망하는 임산부가 10만명 중 1600~1900명이나 될 정도로 출산중 사망률은 높습니다. 평균수명은 45세 미만입니다.
- 아프간 재건도 참담한 상태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제대로 된 재건 프로젝트는 볼 수 없었습니다. 군벌들과, 부패한 엔지오, 유엔과 정부 관료들에 의해 수십억 달러의 원조 자금이 약탈당했기 때문입니다.
- 아프간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부패하고 인기가 없습니다. 지난 3월 아프간 청렴감시센터(Integrity Watch Afghanistan)의 조사에 따르면 아프간 국민들은 현 정부가 과거 20년간의 어떤 정부보다 더 부패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녀의 비판 핵심은 현 정부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심지어는 일부 탈레반과도)과 손을 잡고 있으며, 이를 미국이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현 정부가 친미 테러리스트 집단이며 범죄자들이라고 비난한다. (전문은 여기서 확인 [클릭])

이런 문제에 무지한 나는 말라라이 조야가 광주인권상의 2006년 수상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위 연설은 그 수상을 위해 우리나라에 오기 직전 로스앤젤레스 대학에서 행해졌던 것이다. 말라라이 조야는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지와 원조를 호소하고 있다. 4차례의 암살 기도를 이겨낸 이 젊은 여성 인권운동가는 광주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에게 광주인권상을 주시는 것은 억압적인 정권 아래서 고통받고 있는 아프카니스탄 민중들의 반(反) 원리주의와 민주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것이며, 5.18광주항쟁의 빛나는 역사를 본받아 자국의 반 인류세력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중략)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 그리고 자국 민중이 흘린 피로 아프간 민주정부가 수립될 수 있는 그날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겠다."

말라라이 조야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현 상황은 과거와 비교하여 나아진 것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의 국민은 현 정부도 탈레반도 지지하지 않고 있다.

말라라야 조야가 지적하고 있듯이 탈레반은 납치와 공개처형을 밥먹듯이 하며 파시즘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 반정부 테러집단인 탈레반이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하는 아프가니스탄 인은 없는 것 같다. 또한 나는 이들이 어떤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다 해도 9.11 테러나 민간인 납치를 하고 있는 이상 이들에게 털끝만치도 동조해 줄 수 없다.

이런,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쓰다가 탈레반 성토까지 나가고 말았다. 이만 줄인다.

핑백

덧글

  • 날씨좋다 2007/08/03 01:01 #

    음... 아프가니스탄이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었군요. 이 나라도 상당히 깊은 상처를 지닌 듯 합니다.
    외세의 침략에 끓임없는 내전이라... 국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쩝.
  • 슈타인호프 2007/08/03 01:08 #

    탈레반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좀 보고 뭘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추천 올려도 괜찮겠죠?
  • 아르핀 2007/08/03 01:10 #

    아래에서 두번째 문단에 동감입니다. 탈레반은 독립 운동을 하고 있다기 보다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운동한다는 느낌이 강하죠. 특히 전에 집권했을 때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글쎄요, 아프간 국민이 되보질 못해서 그런진 몰라도 국민의 자유를 꽤나 억압했죠.
    현재의 애꿎은 민간인 테러야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그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방법은 아무리 그들의 입장이 위급하다고 해도 이해가 안됩니다.
    아프가니스탄 역사 재밌게 보고 갑니다.
  • 초록불 2007/08/03 01:28 #

    날씨좋다님 / 그렇죠. 북한 수준의 최빈국입니다.

    슈타인호프님 / 고맙습니다.

    아르핀님 / 미국도 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적의 적은 동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곤란하죠.
  • 2007/08/03 01:3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7/08/03 01:42 #

    비밀글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황당한 오타를 냈네요...^^;;
  • 숫자 2007/08/03 01:44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Cato 2007/08/03 01:44 #

    장문의 좋은 글에서 덕분에 많은 정보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총천연색 2007/08/03 01:56 #

    이런 공부를 알아서 해야 하는데,
    부끄럽게도 초록불님을 통해서 하게 되네요. 후우;;;
    여하튼 감사합니다.
  • 크리스토퍼케이 2007/08/03 03:51 #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판하는 이슬람 학자들이 많이 있더군요.
    코란 구절의 전체 문단을 사용하지 않고
    앞 문장 뒷 문장 뚝 잘라서 필요한 부분만을 사용하여
    자의 해석한답니다.
  • 크리스토퍼케이 2007/08/03 03:55 #

    비유한다면 이슬람 셰계에서의 환빠? -_-;; 정도 될까요?
  • 서군시언 2007/08/03 03:57 #

    아프가니스탄에도 힌두교가 있었군요. 좋은 정보들를 알게 됬네요.
  • 시퍼렁어 2007/08/03 03:58 #

    이거 환빠들 제대로 지켜보기만 했다간 폭탄들지도 모르겠군요 빨리 처리 해야겠습니다?
  • 스누피 2007/08/03 04:48 #

    아프간에는 기독교인, 불교도, 시크교도도 있습니다.
  • 이준님 2007/08/03 05:15 #

    1. 강정구야 전에 문제일으킨것도 있고 그 와중에 사생활(이라고 할지)로 인해서 같은 편에게도 경원시 되는 편이지요. 근데 또 문제를 -_-;;

    2. 9.11 직후에 어떤 나라 정치인 3인방이 스스로를 "탈레반"이라고 지칭했지요. 자칭 저항 세력이라나 어쩌나

    3. 아프간 독립투사 탈레반의 이념에 찬동한 "한국인"이 스스로 자원한다는 뻘 소설도 한때 서점에 돈적이 있었습니다. -_-

    4. 러시아-영국이 개입한 이유로 러시아와 영국 양측에서 서로를 적으로 삼는 영화나 소설에서 아프간이 아주 중요한 무대가 되기도 하지요. 러시아의 모 선전 영화에는 "영국이 세운 괴뢰 왕조에 투쟁하는 아프간 인민" --;;을 다루거나 영국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하는 스토리도 있었고 "경기병대의 돌격" 헐리웃판에서는 바로 (인도에서 일어난 실제사건을 모델로 한) 이 지역에서 아프간 야만족이 영국 민간인을 학살한-그리고 스탈린의 복제인간 -_-;;; 국화빵 러시아 고문이 뒤를 부추기는- 스토리가 나와줍니다.
  • 슈타인호프 2007/08/03 07:23 #

    이준님//그러고 보니,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에 나오는 배경인 "카피리스탄"이 거의 아프가니스탄에 해당하는 지역 아니었나요?
  • 김광현 2007/08/03 08:23 #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70417170953
    아프간의 여성의원이 미국가서 한 연설입니다. 아프간 현정부가 어떤 곳인지 알수 있게 해주죠.
  • 레여 2007/08/03 08:37 #

    으음. 권력을 잡아버린 무법집단...같은거군요.
  • 라욘하트 2007/08/03 08:58 #

    73년부터 지금까지 약 35년간은 끊임없이 전쟁터였던 곳이군요.
  • 스칼렛 2007/08/03 08:59 #

    마수드 장군의 궁극적인 소망은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카불이나 북부 아프간에 학교를 많이 지었죠. 이슬람당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그 학교들은 대부분 '남녀공학'이었으니까요(....) 원리주의자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에 대해 마수드는 한 마디로 일축했습니다. "조국을 재건하려면 여자도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 半道 2007/08/03 09:11 #

    26살에 소련과 맞짱을....
    참 대단하신 분이군요. ㅠ_ㅠ)b
  • 이안。. 2007/08/03 09:21 #

    많은 공부하고 갑니다. (그리고, 양귀비가 척박한대서도 자란다는것도 처음 알았어요^^;;)
  • 구바바 2007/08/03 09:34 #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 대해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의문이 있는 것은 카르자이 대통령의 지도력이 탁월하다는 이야기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수도 카불에만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카불 시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는 말을 MBC TV에서 본 적이 있거든요.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아프간의 현 상황으로만 볼 때, 그의 지도력이 탁월하다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말입니다. 단지 권좌를 수년간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지도력이 탁월하다고 평가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도력보다는 단지 눈치가 빠르다거나 처세술에 능하다고 할 여지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
  • 초록불 2007/08/03 09:38 #

    김광현님 /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본문을 수정했습니다.

    구바바님 / 김광현님이 알려준 자료에 따라 해당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 사발대사 2007/08/03 09:45 #

    마수드 장군 ㅠ_ㅠ 세상에 이런 분이 실재하셨다니...
    역시 같은 민족 쥐새끼의 흉탄에 돌아가셨던 김좌진 장군과 김구 선생이 오버랩 되는군요.
  • 초록불 2007/08/03 09:51 #

    이안。. 님 /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스칼렛님 / 역시 훌륭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알려주신 내용을 본문에 삽입했습니다.
  • sonnet 2007/08/03 09:58 #

    마수드가 아프간 지도자 중에 걸출한 인물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나, 제가 볼 때 이 글은 과도하게 마수드를 띄우는 한편 오마르를 너무 낮게 평가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오마르의 집권기간은 아프간에서 양귀비 재배 단속에 명백한 성과를 거둔 시기이자, 지방의 잡다한 군벌류를 일소해 치안확보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마수드가 해내지 못한 일들입니다.

    1. 마수드가 속한 파벌인 Jamiat-e Islami(이슬람 사회) 또한 전형적인 과격 무장 이슬람 정당입니다. 이들은 많은 면에서 대부분의 과격 이슬람 정당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이집트의 al-ikhwan al-muslimin(무슬림 형제단)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2. 마수드 역시 미국의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 주요 7파벌(속칭 peshawar 7)에 들어갑니다.
    3. 무자헤딘 임시정부에서 국방장관이던 마수드와 총리를 꿰찬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파벌간의 전투로 카불이 크게 파괴된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4. 마수드 파벌 또한 인권유린에 관해서는 그다지 깨끗한 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마수드의 오른팔로 정보부장을 지낸 무하마드 파힘(마수드 사후 후계자로 등극)은 많은 납치와 고문에 직접 관여한 바 있습니다. 현 대통령 카르자이도 외무차관 시절에 파힘에게 잡혀가 치도곤을 맞고 탈출해 탈리반 편으로 전향한 경력이 있을 정도입니다.
    5. 탈리반과 오사마 빈 라덴의 유착은 탈리반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의 이야기입니다. 탈리반의 주요 후원자는 파키스탄 정보부 ISI로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6. 아프가니스탄 지도자로 마수드의 극복불가능한 약점은 그가 타지크 족이라는 점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종족인 파슈툰 족은 다른 종족의 지배를 결코 인정하지 않고, 이것이 마수드의 파벌이 수도를 장악하고도 아프간 전체를 평정하지 못한 제일 큰 요인입니다.
  • 초록불 2007/08/03 10:21 #

    sonnet님 / 국제정치에 해박하신 분이니 하신 말씀이 사실에 입각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2번 항목은 제가 본 자료들과 정면 충돌이어서 추가적인 자료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더 복잡했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5번 항목은 양측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키스탄 정보부에 빈 라덴이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 페이퍼 2007/08/03 10:43 #

    아프가니스탄 역사에서 불교도 빠뜨릴 수 없을 것 같은데 그게 빠진건 좀 아쉽네요... 특히 탈레반 정권의 로켓포에 의해 산산이 무너진 세계최고의 석불이라던 바미얀 석불의 경우 우리 신라스님이었던 혜초 스님도 이 앞을 지나갔다고 해서 특히 우리와의 연관성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고...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도 성행하고 있는 대승불교의 주요 전파로였다는 점에서도 우리역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역인 것 같네요...
  • Insane 2007/08/03 11:28 #

    많은 공부하고 갑니다^^
  • sonnet 2007/08/03 12:52 #

    2번은 Steve Cole의 "Ghost Wars: The Secret History of the CIA, Afghanistan, and Bin Laden, from the Soviet Invasion to September 10, 2001"에 잘 묘사됩니다. 당시 공작에 깊게 관여했던 CIA 요원들, Milt Bearden, Frank Anderson, Gary Schroen같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다수 사용하고 있고, Paul Pillar같은 다른 CIA간부들도 이 책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하더군요.
    이들 설명에 따르면 마수드의 파벌은 반공 지하드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미국의 지원을 적게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의 동기 보다도, 미국의 지원물자를 배분하는데 관여했던 파키스탄 정보부의 선호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미국측 참여자들의 증언입니다.
    CIA는 유사시에 도마뱀 꼬리자르기를 쉽게 하기 위해, 처음에는 지원자금과 물자를 파키스탄 정보부에 하청을 주어 배분했는데, 파키스탄 정보부는 이를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세력에게 불균등하게 나눠주었고, 나중에 이 사실을 발견한 CIA는 각 조직에게 연락책을 마련해, 자신들이 나눠주기로 한 물자가 배달사고(?) 없이 제대로 갔는지를 확인하는 절차 등을 보완하게 됩니다.

    Peshawar Seven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 참조
    http://www.larouchepub.com/other/1995/2241_afghansi_groups.html

    5번은 탈리반이나 알 카이다의 비밀스러운 조직 성격상 입증하기는 쉽지 않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수단에 있던 자기 조직을 1996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길 때, 처음부터 탈리반을 찾아가지 않았던 점이 중요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자료는 집에 가서 찾아다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 2007/08/03 12:5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스칼렛 2007/08/03 13:33 #

    sonnet// 그거 마수드 죽기 말년에 그 밑에 애들이 지들이 난리버꾸리 치고 다니면서 국방장관이었던 마수드 이름을 판 거 아니었습니까? 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 우주버섯 2007/08/03 13:58 #

    좋은 공부가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renton 2007/08/03 14:46 #

    아프가니스탄은 대대로 탐험가들의 필수코스이기도 했지요, 지금은 여행제한국이 되었버렸지만요..
  • Lucifer 2007/08/03 15:03 #

    잘 읽고 갑니다. 이런 복잡함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참 안타깝군요.
    적어도 우리나라는 6.25 이후 60여년 동안 내전이 없어서 행복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 Moonseer 2007/08/03 15:46 #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탈레반이 반공 지하드에 참여했던 조직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해서 그 이후에 그렇게 급격히 세력을 얻게 된 건지가 궁금합니다. 탈레반의 구성 멤버들은 전쟁 중에 뭘 하던 사람들이었나요? 그리고 현재의 아프간 정부가 왜 미국 기업들의 석유 파이프라인 산업에 그렇게 협조적인 건지도 궁금합니다. 자국에서 채굴한 후에 판매하는 쪽이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기에는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 행인1 2007/08/03 19:03 #

    참고로 말라라이 조야는 더 이상 아프간 국회의원이 아닙니다. 동료 의원들(이라 쓰고 군벌, 마약상들이라고 읽어야 합니다.)의 명예를 훼손 했다고 제명당했거든요. 제헌의회 때에도 같은 일로 제명당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 초록불 2007/08/03 20:08 #

    Moonseer님 / 주인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질문이네요...^^;;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라는 점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국가이고, 따라서 코란에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한다고 들고나오면 대항하기 쉽지 않겠죠. 그리고 앞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탈레반은 산적화된 무자헤딘의 소탕으로부터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고 하는군요.

    어찌보면 탈레반은 학생운동 후반기에 등장한 주사파들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주사파들은 엄격한 규율,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복종 등을 규율로 제시했는데, 그것이 착착 먹혀드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나는군요. 하지만 사람들은 결정을 남에게 맡기고 그것을 따르기만 할 때, 편안함을 느끼곤 하는 모양입니다.

    현 아프간 정부가 친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그 와중에 진정 아프간의 국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주머니 속을 챙기는데 바쁜 정상배들이 넘쳐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구한말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해 보입니다.
  • 초록불 2007/08/03 20:09 #

    행인1님 / 그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오해의 여지가 있는 문장으로 기술한 모양이네요. 수정했습니다.
  • 초록불 2007/08/03 20:14 #

    비밀글 / 대단한 자료네요. 이 정도가 되면 따로 포스팅을 걸어주시는게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대단한데, 저는 약간 생각이 다릅니다. 현 정부에 대한 부분뿐만 아니라, 독재 정권보다 안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나, 안정을 위해서는 인권을 유보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그 자료를 쓴 사람의 생각에는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좋은 자료를 소개해주신 점 정말 고맙습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 김미상 2007/08/03 20:32 #

    "BC 2세기에는 인도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에게 정복되었다. 이 때문에 힌두교가 전파되었다." 라는 구절에 대한 질문입니다. 쿠샨 왕조는 불교 왕조로 알려져 있고, 카니슈카 왕 또한 불교 군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쿠샨 왕조는 지금의 인도 지방에서 기원한 왕조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기원합니다. (대월지족이 근간이 되었다고 하니) 힌두교와는 관련이 많지 않을 듯 합니다만.
  • 초록불 2007/08/03 20:44 #

    김미상님 / 맞습니다. 제가 과도하게 이야기를 줄이다가 중간을 잘라먹었네요.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본문을 수정했습니다. 다만 쿠샨 왕조는 인도 북부를 지배한 왕조라 인도 왕조라 써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월지족에서 유래한 것은 맞습니다...^^;;
  • 김미상 2007/08/03 20:50 #

    자꾸 죄송합니다만 -_- 다음 구절이요. "이후 에프탈 왕조와 사산왕조를 통해 힌두교가 전파되었다." 에프탈은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유목민족이고, 사산왕조는 지금의 이란에 있던 사산 조 페르시아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들(에프탈과 사산왕조) 또한 힌두교와 큰 관련을 맺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아서요. -_-;;;;
  • 초록불 2007/08/03 20:58 #

    김미상님 / 아, 그 부분도 고쳐 놓았습니다. 고치는 도중에 보셨나 봅니다. 저도 찾아보았는데, 그 시기에 힌두교가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 ghistory 2007/08/03 21:29 #

    초록불/ 아편수출이 이 국가의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기는 합니다만, 그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불과 5억 달러입니다. 세계시장 아편거래액(800억 달러)의 95%를 생산하는 나라이지만 말이지요. 환경이 척박한 것도 원래 조건이 나쁘기도 하지만 오랜 전쟁과 내전 탓에 삼림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해서, 그리고 외국과의 교역이 단절되기도 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프레시안에 이란의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발바프가 기고한 글에 나오더군요. "이란이 5억달러어치 밀을 아프가니스탄에 주문하기만 해도 기아문제가 해결 가능할지 모른다" 고요.
  • ghistory 2007/08/03 21:30 #

    PDPA->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의 영어식 약칭입니다.
  • ghistory 2007/08/03 21:33 #

    '북부동맹'은 서구측 매체들의 통칭이며 정식 명칭은 아프가니스탄 구국 이슬람연합전선(United Islamic Front for the Salvation of Afghanistan, UIF)입니다.
  • ghistory 2007/08/03 21:36 #

    마수드를 취재한 정문태씨의 글을 <한겨레 21> 이나 그의 저서에서도 보시면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이 있을 것입니다.
  • ghistory 2007/08/03 21:38 #

    무엇보다도 구호 위주의 원조도 좋지만 농업재건을 지원하고 밀을 사주는 게 가장 우선해야 할 지원같지만, 서구가 과연 그렇게 할 리가 없어 보입니다.

    조이는 정확하게는 '하원' 의원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상원은 지역 유력자들로 구성하며, 하원은 국민 직선으로 선출합니다.
  • ghistory 2007/08/03 21:39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 ghistory 2007/08/03 21:41 #

    언어분포는 좀 착오가 있어 보입니다. 페르시아어의 방언인 다리어 계열의 지역어들 사용 인구가 전인구의 1/2 정도고, 파슈툰어 사용자가 1/3~2/5 수준일 것입니다.
  • ghistory 2007/08/03 21:47 #

    아프가니스탄의 인종적 다양성은 상당히 다양한 편인데... 어떤 사람들은 아랍인들 나라 아니냐고 하지만 몽골로이드 비슷한 사람들도 일부 삽니다.

    그리고 YTN은 납치당한 인질 관련 보도를 하면서 '아프간어' 라는 어휘를 쓰는 무식함을 만천하에 드러낸 바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프간어라는 언어는 없습니다... 에스빠냐에 에스빠냐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 초록불 2007/08/03 21:47 #

    ghistory님 / 여러 정보 고맙습니다. 참고하여 본문에 삽입했습니다...^^;; 다만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공식 명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사관에서도 그렇게 사용하더군요.) 대신 영문명을 부기해서 표시해 놓았습니다.
  • ghistory 2007/08/03 21:47 #

    탈레반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어떤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는 프레시안에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기고한 글들을 보시면 됩니다. 일종의 식민지시대의 영토문제 때문이라는 겁니다
  • 초록불 2007/08/03 21:48 #

    ghistory님 / 저도 YTN에서 아프간어라는 말을 듣고 아프간어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 ghistory 2007/08/03 21:49 #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BBC가 기사로 예전에 다루면서 제목을 딱 한 줄로 간략하게 정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Afghanistan: a turbulent history.
  • ghistory 2007/08/03 21:51 #

    예전에는 버마-태국 접경지대의 '골든 트라이앵글' 이 세계 최대의 아편생산지였으나(시사저널이 소개했던 마약왕 쿤사와 그 휘하에서 일하다 남한으로 왔으나 아들이 곧 원인모르게 비명횡사한 한국인 가족이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프가니스탄 마약이 석권중입니다.
  • ghistory 2007/08/03 21:52 #

    초록불/ 아마 아프가니스탄 신헌법이 2005년경에야 제정하면서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정체를 이슬람 공화국으로 결정하는 바람에 이전에 있던 정보가 낡아진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이준님이 말한 강정구의 사생활 문제는 뭐죠?
  • ghistory 2007/08/03 21:55 #

    초록불/ 다리어도 공용어입니다. 다리어는 언어가 다른 종족들 사이의 의사소통용 교통어(링구아 프랑카)로도 사용하고 있지요.
  • ghistory 2007/08/03 21:56 #

    게다가 2개 언어 이상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 루드라 2007/08/03 21:58 #

    누군가는 탈레반을 21세기의 중세인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정말 딱 맞는 표현 같습니다. 이들이 카불을 점령했을 때 유엔의 보호하에 있던 나지불라(소련을 아프간에 세웠던 괴뢰정권의 수반) 전 대통령을 끌고가서 머리통이 절반쯤 부서진 모습의 그를 거리에다 매달아 버렸죠.(모든 독재자의 최후가 이 모양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극단적인 정치를 했던 자들이 항상 그렇듯이 그 극단적이고 광신적인 이념 때문에 잔명은 꽤 오래갈지 몰라도 이들이 다시 아프간의 정권을 장악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현정권이 아무리 부패했다 한 들 그 극단적인 정치를 한 번 맛봤던 아프간인들이 이들의 통치를 다시 허용할 것 같지는 않네요.
  • ghistory 2007/08/03 21:58 #

    그리고 신기하게도 유대교 신자들도 아주 조금 산다는 점...
  • ghistory 2007/08/03 22:01 #

    루드라/ 나지불라 형제가 아마 굴착기에 매달려 교수형당하지 않았던가요?
  • ghistory 2007/08/03 22:05 #

    초록불/

    1. 사산 왕조->사산조 페르시아

    2. 칭기즈칸 시대를 빼놓으셨네요. 칭기즈칸 직전까지 아프가니스탄 일부를 비롯한 넓은 땅에서 가즈니 왕조가 번영했다가 몽골 침입으로 붕괴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가즈니 주라는 지명도 그에서 유래했다죠.
  • ghistory 2007/08/03 22:12 #

    좌익 파르캄 당이 국왕 외유 중에 군사혁명을 일으켜->1973년에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은 왕의 사촌입니다. 그는 우파였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했는데, 독재를 지지해 줄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슬람권으로의 접근을 강화하자 이 접근이 서방과의 밀착을 야기할까 두려워한(그리고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국의 후퇴를 과대평가한) 좌파의 쿠데타가 일어난 것입니다.
  • ghistory 2007/08/03 22:26 #

    1. 소련은 1989년에 철수를 마쳤지만, 1991년까지 인민민주당 정권을 원조했습니다

    2. 마수드의 무자헤딘군이 카불을 접수하기는 했지만 시가전까지 한 건 아니고 거의 항복을 받아내다시피 하고, 대신에 나지불라를 국제연합 기구들이 사용하는 시설에 연금 내지 보호했다 합니다.

    3. 1973년 좌익 파르캄 당이 국왕 외유 중에 군사혁명을 일으켜 군주제를 종식시켰다. 공화국이 탄생했다. 1977년 파르캄 당은 좌익 칼크 당과 연합하여 PDPA를 결성하고 1978년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두 당은 곧 분열했고,+-1973년 공산 정권 수립 후>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은 1965년 1월 1일에 창당했습니다.

    칼크(Khalq-'깃발')파와 파르참(Parcham-'대중들' 파)-인민민주당에서 노선과 주도권 문제로 파벌싸움을 벌인 양대 정파입니다. 전자가 급진파, 후자가 온건파입니다.

    1967년에 양 정파는 사실상 결별합니다

    1977년에 소련의 요구와 지원으로 양 정파는 통합하여 인민민주당을 재건합니다.
  • ghistory 2007/08/03 22:34 #

    인민민주당의 이 웃기는 무리들은 아직도 그 잔당이 남아 있습니다.

    1. 파르참파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민주조국당(Democratic Watan Party of Afghanistan)이라는 명칭으로 활동중입니다. 군소정당.

    2. 칼크파는 1979년 이후 권력투쟁에서 완전히 패배해서 순응하거나 이탈해서 무자헤딘들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일부는 파르참파하고 연합해서 집권에 참여.

    3. 칼크파는 심지어 탈레반하고 카르자이 정부에도 이합집산해서 제각기 가담했고, 일부 인사는 교위직을 역임하거나 역임중. 칼크파의 잔당 일부는 국민단합당(National Unity Party)을 결성. 역시 군소정당.
  • 초록불 2007/08/04 00:00 #

    ghistory님 / 영문 표기에는 이슬람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정보가 낡은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역시 말씀해주신 내용은 본문 속에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 kristine 2007/08/04 03:44 #

    질문하나 있는데 위의 원문의 참고문헌좀 알고 싶은데요 저도 공부좀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보게요
  • 초록불 2007/08/04 08:43 #

    kristine님 / 제가 참고한 글들은 온오프라인에 걸쳐 있는데, 지금 역추적하기는 힘듭니다. 일단 구글을 통해서 검색하면 자료는 무진장 나옵니다...^^;;
  • 무늬 2007/08/04 14:42 #

    지금 아프간의 현실을 보여주는 책을 한 권 읽고 있어요. 단지 탈레반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하더군요. 이 글도 그런 것 같아요.
  • 思惟 2008/09/17 10:11 #

    몇가지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트랙백걸었습니다.
    짧게 댓글로 답할 꺼리는 아니네요.
  • 초록불 2008/09/17 10:26 #

    네, 잘 보았습니다. 역시 짧게 댓글로 말씀드릴 수는 없는 문제를 보았습니다만, 제 형편이 그 문제에 천착할 수 없어서, 말씀드리진 않습니다. 아마 말씀드리면, 분명히 思惟님도 검토한 부분일텐데, 다만 글에 완전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 뿐일 겁니다.

    하나의 사건을 보는 해석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思惟님과 제가 보는 방향이 정반대이거나 많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팅에 번호가 매겨져 있으므로 향후 논의를 더 발전시키실 계획이라 생각합니다. 그 글들도 정독하도록 하겠습니다...^^
  • 思惟 2008/09/18 00:30 #

    어쩌다 감정적으로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데 ㅜㅡ
    비웃지 않아 주시니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 지적해주시면 기쁘게 문제를 고쳐보겠지만 ^^
    바쁘신데 많을 것을 바라면 안되겠죠a )

    ㅋㅋ 글 봐주신다니 기쁩니다. ( 노력해야겠네요 ㅜㅜ )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 여기 자주 옵니다-_ㅋ )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