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그 글에 대한 비판글이 댓글로 붙었다.
나는 그런 비판 싫어하니 하지말라는 댓글이 붙었다.
비판받기 싫으면 글 올리지 않으면 될 거 아니냐는 댓글이 붙었다.
나는 비판받기 싫다고 말했는데, 왜 네 가치관을 내게 강요하냐는 댓글이 붙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비판받기 싫으면 글 올리지 말라는 말이 옳다.
글을 올리지 않으면, 비판받을 일도 없는 것이다.
논의를 진전하기 전에 불필요한 반론으로 제기되는 상황을 정리하고 가겠다.
글은 올리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아무나 들여다보면서 이 소리 저 소리 하는 건 보기 싫다.
그렇다고 로그인한 사람들에게만 댓글을 허용하면 자기가 아는 사람 중 해당 사이트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가입을 강요하게 됨)이 되기 때문에 그것도 싫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 경우에는 일반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말고, 자신의 블로그 등 자신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게시판에 글을 올린 뒤 악플이 달리면 지워버리면 된다. 악플이 달리는 것이 신경은 쓰이겠으나, 그것을 원천봉쇄할 방법은 없다. 악플마다 일일이 흥분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통제권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신경써봐야 본인만 피곤할 뿐이다. 마음대로 삭제하라. 게시판의 운영자에게 주어진 권리니까.그런데 위와 같은 권한도 없지만 악플(본인이 생각하는)은 보기 싫다면 대체 어째야 하겠는가? 미안하지만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가치관도 다양하다. 명백하게 잘못된 가치관이라고, 다 동의할 것 같은데도 알고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가령 써도써도 마르지 않는 29만원짜리 통장을 가진 인물을 위대한 분이라고 칭송하거나, 80년 광주에서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에 대한 정당한 진압이 이루어졌다고 믿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의 가치관은 존중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바로 그 점을 강요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자신의 의견도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한 자신의 글에 대한 반박은 이런 가치관을 모르는 천박한 짓으로 치부하게 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이의 가치관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이의 가치관도 존중해야 한다.
나는 물론 모든 이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충분히 경멸해 줄만한, 아니 경멸해야 마땅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내 가치관을 경멸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경우에는 국수주의 역사관을 가진 인간들 틈 사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일은 나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예수나 석가라 해도 이런 일에서 예외가 아니거늘, 평범한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악플은 누가 다는가? 그것은 글쓴이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다. (경멸할만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만이 악플을 단다는 뜻이 아니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그 해당 글을 쓴 사람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물론이다. 악플을 다는 사람이 자신과 가치관이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대응 방법은 무엇일까?
논리적인 반론의 경우 - 물론 이 경우는 내 기준으로 보면 악플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댓글도 악플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내 경우도 충분한 신뢰가 없는 사람이 댓글로 이의를 제기하면 기분은 좋지 않다. 논리적인 반론은 트랙백을 통해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관적인 의견이 아니라 객관적인 정보를 통해 이야기해주는 것은 이 경우에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블로그의 경우라면, 이런 이의는 댓글로 하지 말고 트랙백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블로그가 아닌 경우도 있으므로 일괄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겠다. 이런 경우 일차적으로는 상대의 논리를 반박하는 글을 쓰도록 해보자. 여기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면 매우 훌륭한 일이겠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에 대한 논의가 아닌 가치관 논쟁에서는 대개 상대를 설득할 수 없다. 사건을 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서 논의를 좁힐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경우 무의미한 논쟁을 되풀이 하는 것보다 관점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인정하고 논쟁을 그치는 것이 좋다. 여러차례 말한 바 있지만, 설득은 신뢰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논리가 없는 악플의 경우 - 삭제하는 것을 권한다. 또는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어떤 악플인지 보여주는 전시효과적 차원에서 달아놓아도 된다. 일시적 흥분에 의한 악플일 경우도 가끔 있어서, 논리적으로 문제점을 짚으면 부끄러워 하는 소수도 있긴 하다.
그리고 상대방이 화를 내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초저질 악플도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 배설물을 먹고 사는 불쌍한 인간들로 주 서식처는 네이버나 다음 같은 초대형 포탈이지만, 때로는 남의 블로그에도 침입한다. 이런 악플은 그 글을 쓴 당사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감정까지 해치므로, 발견 즉시 삭제해 버리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 (심지어 그 악플러에게도 좋다. 마약 공급을 자꾸 받으면 결국 헤어나지 못하게 되니까.) 비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인 척 위장한 경우 - 제일 골치 아픈 경우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많은 모순을 지니고 있어서 대체 어떻게 상대해 주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 그냥 삭제해 버리자니 어쩐지 상대의 논리에 밀리는 것 같아 그러고 싶지 않다. 그리고 상대방의 오류를 바로잡아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포기해라. 어차피 그냥 악플을 다는 사람과의 차이점이라고는 욕을 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이니까.
위 세가지 부류의 사람들 모두가 상대가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지 않은 점을 불편해 한다. 자기처럼 생각하는 것이 당연히 옳기 때문에, 자신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잘난 척하는 거거나, 가식을 떨고 있는 것이거나 등등.
그런데 이게 과연 잘못된 것일까? 즉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보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그건 당연히 아니다. 문제는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불편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강조하는데 있다. 많은 이들이 개신교의 선교 행태를 못마땅해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에 해당한다. 개신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불편한 영역까지 들어가 선교를 행하려고 한다.
그리고 개신교 선교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이 비난하는 개신교도와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신교를 비판하지 않는, 또는 그와는 다른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불편해할 영역까지 들어와서 "니 관점은 틀렸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길 바란다. 결국은 그런 것이다. 감정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논쟁(그동안 이오공감에 많이 올라왔고, 지금도 올라오고 있다)은 - 사실 논쟁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이전투구에 불과하지만 - 건질 것은 없고, 감정만 황폐해지고 만다.
아니, 그럼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고 담 쌓고 지내란 말이냐? 라고 오버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나는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가치관이 다르지만 말이 통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훨씬 더 많다. 사실은 같이 사는 부부나, 자기 아이들이라 해도 가치관이 다를 수 있기 마련이다. (물론 비슷한 경우도 많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인간은 예의범절(서양에서는 에티켓이라 부르더라)이라는 것을 만들어 두었다. 그래서 사실은 이것만 잘 지키면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끼리도 얼마든지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 규칙을 제법 잘 지키고 있다. 그러나 0과 1로 만들어진 인터넷 세상에 들어오면 갑자기 Yes or No 이외의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단세포로 변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 사이에 예의라는 것은 찾을 도리가 없다.
인류가 수천년간 예의라는 것을 발전시켜온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예의를 지킬 때, 더 많은 사람들, 더 많은 가치관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그리고 그만큼의 소통을 통해서 인생은 더 다채로워질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이런 가치관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