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판본에 대하여 만들어진 한국사



이 문제는 궁금해진 임승국의 환단고기 번역 [클릭]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1979년에 광오이해사에서 환단고기가 나왔으며, 이것이 녹도승(가지마 노보루)과 임승국의 [한단고기]에 사용되었다.
1983년에 배달의숙에서 환단고기가 또 나왔는데, 이것은 이유립이 정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뒤에 단단학회 이름으로 이유립 번역본도 이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1983년에 나온 주제에 1979년에 나온 재판이라고 판권을 만들어 놓았다. 물론 초판은 1911년에 찍었다고 판권에 적어놓았다. 이것 때문에 숙명여대 도서관에 원본이 있다는 헛소문이 돌기도 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환단고기 원본 [클릭] 포스팅에 적어놓은 바 있다.

이번 신동아 9월호는 환단고기에 홀딱 빠진 기자가 쓴 것인데, 재밌는 대목이 있었다. 책방에서 슬쩍 보고 온 거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겠는데, 이야기할 내용은 [한글은 단군이 만들었다] (정연종 / 넥서스 / 1996)에 나오는 내용이라 하니 그 책으로도 확인이 가능하겠다.

1979년본은 광오이해사 사장이 환단고기를 빼돌려서 몰래 인쇄한 것이라는 게 이유립의 주장인 모양이다. 이유립은 이 일로 노발대발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완벽한 환단고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즉 이유립의 원고는 오형기吳炯基가 필사한 환단고기였는데(오형기는 1949년에 이유립의 부탁으로 환단고기를 필사했다고 이유립은 말한 바 있다.) 오형기가 필사하면서 오자를 낸 부분이 있어서 이유립이 그것을 수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주장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유립은 오형기 필사본을 잃어버려서 기억을 되살려 환단고기를 다시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미 환단고기는 어떤 책? [클릭]에서 다룬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이유립의 허락을 받지 않고 나왔다는 그것은 사실이리라 생각한다. 광오이해사 본은 100부가 만들어졌는데 배달의숙본도 100부가 만들어졌으며, 1983년에 내놓으면서도 1979년에 나온 것으로 사기를 친 것은 광오이해사 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 덮어버리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유립이 1983년에 환단고기를 내놓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1982년 7월에 일본에서 광오이해사 본과 같은 책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안 이유립은(매우 화를 냈다고 하는데, 그 이유도 뻔하다) 오류투성이의 광오이해사본이 퍼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나름대로 오류를 잡은 새 판본을 선보이게 된 것이리라. (배달의숙본은 1983년 10월 3일 나왔다.)

이유립은 광오이해사본의 잘못을 모두 오형기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는데, 이 사람이 누군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신동아 기자 역시 십여년 전 사망이라고 적었을 뿐, 사망 연대도 모르고 있다. 오형기는 좌익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은둔해서 살았다고 하는데, 공산당에게 쫓겨서 남한으로 내려왔다는 이유립이 좌익 은신범 오형기와 가까이 지냈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오형기가 환단고기에 발문을 쓴 것도 이유립이 매우 못마땅해 했다는 말이 신동아에 나오던데, 그래서 사이가 소원해져서 행방을 모르겠다고 말할 복선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덧글

  • 악질식민빠 2007/08/25 15:34 #

    신동아 9월호가 뭘 보고 1949년본이 있다고 했나 궁금해서 찾아보러 갔더니 주위 서점에 없더군요.(...) 어떤 판본을 갖고 말한게 아니라, 기존의 얘기를 반복한 것인가 보네요. 제 생각엔 <광오이해사본>은 원래 이유립이 자기 신도들에게만 뿌리려던 건데, 일본에 건너가서 일이 커지니 황급히 덮어보려고 <배달의숙본>을 만든 것 같습니다. 광오이해사가 환단고기만 발간한 것도 아니거든요.
  • 초록불 2007/08/25 15:38 #

    악질식민빠님 / 이유립이 배달의숙본으로 광오이해사본을 덮으려 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 안의 사정은 추측만 가능하겠죠. 그리고 1949년 오형기 운운의 소리는 코웃음칠 가치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 악질식민빠 2007/08/25 17:00 #

    예. 적어도 덮으려고 했던 건 분명하죠. 전 광오이해사가 이유립의 의사에 반해 환단고기를 발간했다는 것도 이유립의 거짓말이 아닐까 생각한 겁니다.
  • 도사세손 2018/04/05 02:07 #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이유립은 광오이해사본의 잘못을 모두 오형기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는데, 이 사람이 누군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라고 했는데요.

    광오이해사본에 대해 오형기가 아닌 조병윤에게 책임을 돌린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주장을 정리해 보면 이유립은 스승 계연수로 부터 1911년 발행 환단고기를 전수받았고, 1949년 오형기에게 그를 필사 하도록 하는데, 오형기가 발문자를 자기로 썼다고 합니다. 이후 1976년 자택에서 계연수에게 전수받은 원본을 분실 하였는데, 오형기 필사본을 제자 조병윤이 허락없이 출판사에 가져가 발문 작성자를 오형기로 하고, 출간자는 자신으로 하여 100부를 출판하는데 이것이 광오이해사본 이라는 군요.

    이에 꼭지 열린 이유립은 오형기가 필사자에 불과하나 조병윤이 오형기를 발문자로 하고, 또한 출판자를 조병윤 자신으로 한 것은 잘못이다며 조병윤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초록불 2018/04/05 11:44 #

    여기서 책임 문제는 책을 출간한 문제가 아니고, 오탈자라고 하는 부분의 이야기입니다. 광오이해사본과 배달의숙본 사이의 차이를 오형기가 필사를 하다 잘못한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죠. 출판의 경우는 조병윤에게 책임 운운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광오이해사에서 나온 2판 후기를 읽어보면 이유립에게서 어떤 질책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 도사세손 2018/04/05 02:34 #

    그리고 배달본이 발간된 이유로 광오본이 녹도승에 의해 일본판이 나오자, 오류가 많은 광오본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했던 것 아니냐 추측 했는데요.
    그 보다는 발문자와 저자 이름 때문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유립은 제자 조병윤이 허락없이 환단고기를 출간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광오본이 나온 이후 이유립은 100여곳 정도 정오표를 배포합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 광오본이 조병윤 배신으로 나온 것 같지는 않고, 또한 녹도승본 때문에 광오본의 오류가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배달본을 간행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초록불 2018/04/05 11:47 #

    말씀하신대로 조병윤 배신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79년 이후에 이유립은 계속 수정 작업을 했고 그 수정결과물을 배달의숙에서 출판한 것이죠. 저는 다만 이때 수정본을 내놓은 계기가 녹도승의 주석을 보고 자기 창작물의 문제점을 파악했던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오래 되어서 지금은 보완해야 할 것들이네요. 조만간에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서 책으로 낼 예정입니다.
  • 도사세손 2018/04/06 01:56 #

    책으로 출간하실 예정이군요.. 기대하겠습니다...
    만들어진 한국사 (속편)이 되겠군요...

    근데 증산교에서 출판한 서문을 보면 오형기 필사본에 오자가 많아 이유립이 평소 지적했는데 단단학회 회원 조병윤이 학회장으로 있으며 이유립 승인없이 광오이해사에 영인으로 100부 출간했고, 이에 학회는 어쩔 수 없이 오형기본의 오자를 수정하고 오형기 발문을 삭제하여 배달의숙본을 출간했다는 이야기를 써놓았습니다. 즉 광오이해사본은 이유립의 의사와 무관하게 출간되었다는 식으로 써놓았습니다.
    한편 그 책은 초록불님 의견 처럼 배달의숙본을 1983년 정식 100부 출간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과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실제 이유립은 광오이해사본이 출간된 후, 그 책의 정오표를 배포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새로운 책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
  • 초록불 2018/04/06 06:55 #

    네, 위에도 썼지만 사실은 광오이해사본은 두 번 나왔습니다. 가격도 왕창 올려서 몇 달 후에 새로 찍었고요. 그 재판본에 조병윤이 후기를 달아두었습니다. 이유립 문하라는 것을 밝혀두었고요. 파문이 되거나 화를 냈거나 했다면 후기를 단 재판이 나올 수가 있었겠나요. 증산도에서 나온 책 같은 것들은 다 광오이해사본과 배달의숙본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려고 뒤에 만든 이야기인 것이죠.

    집에 가지고 있는 책은 배달의숙본과 다른 번역본들이네요. 그런데 고동영역 환단고기도 위치가 배달의숙본과 다르게 되어 있고 연호도 다물로 되어 있습니다. 광오이해사본은 도서관에 한 번 들러서 확인해봐야하겠네요.
  • 도사세손 2018/04/06 12:49 #

    다른 글에서 초록불님은 광오이해사본이 없고 배달의숙본만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고 글을 올렸는데요... 역시 저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제가 볼 때 광오본이 배달본과 차이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광오본이 일역본과 동일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초록불님이 다른 글에 일역본이 광오본을 번역했다고 쓰셔서,,, 광오본을 확인하지 못 한것 아닌가 예상했습니다...

    일단 도서관 가지 마세요... 시간 들여서 가지 마시고요...
    제가 아는 사람이 광오본 가지고 있어요..물론 복사본인데요...

    어차피 책을 쓰신다고 하시니... 필요한 부분 사진찍어 보내드리던지...
    아니면 한권 복사해서 드리겠습니다...

    그대신 책 출간하시면 서문에 제가 광오이사본을 줘서 도움받았다고 써주시던지...
    아니면 새 책 한권 저에게 주셔야 합니다.. ㅋㅋㅋ

    둘 중에 하나 선택하셔야 합니다...

    일단 새로 출간하시는 책 많이 기다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릴 수 있는 자료는 드리겠습니다..
  • 도사세손 2018/04/06 12:53 #

    광오본도 초판이 있고 재판이 있군요... 설명 감사합니다...
    서로 다르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초판본과 재판본 모두 확인할 수 있을텐데...ㅋㅋㅋ

    아무튼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광오본 복사해서 드리겠습니다...
  • 초록불 2018/04/06 15:21 #

    자료를 보내주시면 저는 크게 감사하겠습니다.
  • 도사세손 2018/04/06 13:51 #

    정신세계사 임승국 번역 뿐 아니라 한뿌리 출판에서 나온 번역본은 대체로 일역본과 같은 것 같았습니다. 이민수 번역은 한글과 한문이 함께 있는데, 고동영 번역은 한글만 있어요.
    가나출판사 김은수 번역이 광오본 이라는 것 같습니다.

    지난 댓글에 가지마 노부루가 1978년 무렵 환단고기 광오본의 원고를 받은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는데요.
    만들어진 한국사를 보니... 녹도승 일역본 서문을 일부 번역한 것이 있더군요.
    그곳에 가지마 노보루는 1979년 가을에 박창암 집에서 이유립에게 환단고기 외 3책을 받았고, 감수를 받으며 번역 이후에 이를 받치고 지도를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녹도승은 시간적으로 광오본을 받았다는 것인데요...
    어떤 이유로 광오본 南大水 西大海를 北帶水 東大海으로 바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유립이 먼저 발표한 자유지는 北帶水 東大海로 되어 있습니다.

    혹시 광오 초간본까지 北帶水 東大海으로 했다가 광오 재판본에서 南大水 西大海으로 바꾸었고, 녹도승은 광오 초간본을 받아간 것인지 모르겟습니다...

    그리고 조병윤이 광오본을 이유립 허락없이 출판했다며 나중에 파문 당했다는 이야기는 최근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 기억에 1990년 대학가에서도 소문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일역본이 나오고 광오본 환단고기와 일부 내용이 달라서 시비가 생기자, 이유립은 "광오본 출판을 허락한 적 없다. 조병윤이 허락없이 출간하는 바람에 오타가 생겼다."며,그 동안 배포했던 광오본을 모두 수거하고, 배달본을 발행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당시 광오본이 100부 정도 보급되었는데, 그 중 70부를 수거했는데, 미처 수거 못한 광오본이 도서관에 갔고, 일부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고요.
    이유립이 그 토록 광오본을 모조리 수거하고자 했던 것은 초록불님 의견 처럼 재간본에 있는 후기 때문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깁니다. 배달본과 일역본도 다릅니다. 그래서 시비가 또 생기자.. 이유립은 "녹도승에게 환단고기를 준 적이 없다. 박창암이 몰래 준 것이다."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창암이 "뭔 소리냐." 했고... 결국 이로써 이유립과 박창암의 사이도 멀어졌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유립은 한문이 능통하나, 일본어는 무지하여,,, 녹도승이 서문에 일어로 박창암의 집에서 이유립에게 환단고기 외3책을 받았다는 내용이 쓰여있는 것을 모르고, 이를 부인했다가 나중에 거짓말로 들통났다는 것 입니다.

    아무튼 녹도승이 일역본 대로 1979년 가을에 환단고기를 건네받았다면 이는 광오본 초판이지 광오 재판은 아닐 것 입니다.
    따라서 초판과 재판을 비교하여 서로 내용이 다르면,,, 이유립은 광오본 재판 발행시연호과 동서남북 표시를 바꾼 것으로 볼수 있고요.
    저 부분에서 광오본 초판 재판 배달본이 모두 같으면, 가지마 노보루는 광오본 초판이 아닌 원고를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할 듯 합니다.

    아무튼 제가 보았던 광오본이 초판인지 재판인지 모르겠고, 연호까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동서남북 이것은 배달본과 같았습니다.

    조만간 지인에게 연락해서 다시 확인해 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복사해서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제가 해결해 드리지요...

    다만 저 뿐 아니라 광오본을 가지고 있는 지인도 한문 까막눈 입니다..
    예를 들어 北과 南이 무슨 뜻 인지 모르고,, 서로 글자가 다르니 내용이 바뀌었다.. 이 정도 입니다.
    따라서 광오 초간본과 재판본은 어떻게 구별하나요?

    물론 끝부분 날짜 써있는 곳으로 구별될 텐데요... 그곳에 뭐라고 쓰여 있으면 초판이고 어떻게 쓰여 있으면 재판이 되는지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 초록불 2018/04/06 15:20 #

    제가 지금 책을 갖고 있지는 않아서... 재판본은 판권에 재판이라고 되어 있고, 발행날짜와 가격이 다릅니다. 재판 찍으면서 가격을 왕창 올렸습니다. 그리고 조병윤이 쓴 再版後識이 말미에 붙어있습니다. 본문 내용은 동일합니다.
  • 초록불 2018/04/06 15:23 #

    재판본은 인하대 서영대 교수님이 가지고 계셔서 초판본과 판권이 다르다는 것과 재판후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하기 쉬운 물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재판본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매우 드물 정도니까요.
  • 도사세손 2018/04/06 17:00 #

    초록불님 감사합니다. 서영대 교수님이 가지고 계신게 재판본 이군요.
    그게 그뜻이군요.
    초판 1979년 09월 10일 100부 한정판,
    재판 1979년 12월 22일 재판 100부 한정판 정가 6천원 이군요.

    이를 어쩌나 제가 보고 온 것은 아마 초판인 것 같습니다. 제발 재판 이기를 바랬는데...
    아직 한명이 있기는 한데... 일단 연락 오기를 기다려 보고 있습니다...

    그럼 가지마 노보루는 광오본 초판 발간 전... 원고를 건네 받았는지 모릅니다.
  • 도사세손 2018/04/06 17:02 #

    이런 이런 대략 난감...
    방금 전 나머지 한분도 연락왔는데... 초판 이군요.

    우연히 인하대학원 논문을 보았는데, 이상한 판권이 붙어있는 것 같아서... 이게 왜이러나 했더니 서영대 교수님 개인소장품으로 재판 이군요.
    그 논문에 재판은 도서관에 없고, 서영대 교수님 개인 소장으로 되었던데요.

    일단 초판은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재판은 초록불님이 서영대 교수님 뵈고 오세요. 그리고 보여달라고 하세요.
  • 초록불 2018/04/06 17:59 #

    재판에 대해서는 서영대 교수님한테 이미 말씀을 들었습니다. 모두 똑같고 재판후지가 붙어있는 점과 판권만 다르다고요.
  • 초록불 2018/04/06 17:59 #

    그리고 이제 은퇴하셔서 인하대 가면 못 뵙는다는... (먼산)
  • 초록불 2018/04/06 18:01 #

    그리고 해당 대목이 자유지 몇년 몇월호 무슨 기사에 실렸던 것인지 확인해 주실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 도사세손 2018/04/07 00:34 #

    O 1978년 7월 자유 <고사류고 14> P166
    歲[己卯]三月 因人得聞浿帶之地肥物衆 南奔至辰番之間 近海僻[處]而居之 十年 買田置庄 致富累萬 遠近聞風 來附者衆 [北]至帶水 [西至]大海 半千里之土境 皆其有也

    O 1978년 6월 자유 <배달민족의 원류 3> P106
    歲[己卯]三月 因人得聞浿帶之地肥物衆 南奔至辰番之間 近海僻[處]而居之 十年 買田置庄 致富累萬 遠近聞風 來附者衆 [北]至帶水 [西濱]大海 半千里之土境 皆其有也

    O 1978년 6월 자유 <배달민족의 원류 3> P108
    歲[己卯]三月 因人得聞浿帶之地肥物衆 南奔至辰番之間 近海僻[邑]而居之 十年 買田置庄 致富累萬 遠近聞風 來附者衆 [北]至帶水 [西濱]大海 半千里之土境 皆其有也

    O 1977년 11월 자유 <백제건국시조의 출자와 사적 개요> P46
    歲[己卯]三月 因人得聞浿帶之地肥物衆 南奔至辰番之間 近海僻[地]而居之 十年 買田置庄 致富累萬 遠近聞風 來附者衆 [北]至帶水 [西濱]大海 半千里之土境 皆其有也

    O 1977년 11월 자유 <백제건국시조의 출자와 사적 개요> P48
    歲[己卯]三月 因人得聞浿帶之地肥物衆 南奔至辰番之間 近海僻[邑]而居之 十年 買田置庄 致富累萬 遠近聞風 來附者衆 [北]至帶水 [西濱]大海 半千里之土境 皆其有也

    O 환단고기
    歲[庚寅]三月 因人得聞浿帶之地肥物衆 南奔至辰番之間 近海僻[地]而居之 十年 買田置庄 致富累萬 遠近聞風 來附者衆 [南]至帶水 [東濱]大海 半千里之土境 皆其有也

    자유지 내에서도 글자 변형이 있는 듯 합니다. [ ] 표기 안 글자

    "경인년 3월에 패대의 땅이 비옥하고 물자가 많다고 듣고 남으로 달아나 진번의 사이에 바다 가까운 벽지에 이르러 그곳에 거주하였다. 10년만에 밭을 사 장원을 두고 재산이 수만에 이르렀다. 가까운 곳에서 소문을 듣고 내부해 오는 자가 무리를 이루어 남으로는 대수에 동쪽으로는 큰 바닷가에 이르러 반천리 땅이 모두 그 소유이었다."

    자유지를 가지고 있거나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 있던 것을 메모해 두었습니다.
    번역은 책의 내용 옮겨 보았습니다.

    이 글을 메모할 때 한단고기 광오본이 초판과 재판이 따로 있는 줄 몰르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 글에는 광오본이 초판 외 재판도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환단고기 라는 하나의 제목으로 동일하게 쓴 것으로 보아, 초록불님이 서영대 교수님에게 들었던 내용대로 이 부분 관련 초판과 재판 내용은 동일하고 아울러 배달본 과도 차이가 없다 보여 집니다.

    처음에 자유지 기고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가지마 노보루가 광오본을 건네받아 일역 하던 중, 백제 영역이 한반도 서남인 것을 감안하여 [北]至帶水 [西濱]大海 고친게 아닌가 생각했는데요. 초록불님이 그럴리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확인해 보니, 역시 초록불님 의견이 맞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가지마 노보루는 일역본에서 밝혔 듯 1979년 가을 어느 날 박창임 집에서 이유립에게 환단고기 외3책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때 광오본 초판을 받은 것 아닙니다. 저 해에 광오본 이 출간되기 몇 일전 광오본 원고를 받았고, 이유립은 가지마 노보루가 출판할 것이라고 까지 생각 못 하고 원고 내용을 수정하고 광오이해사에 최종 원고를 전달한게 아닌가 생각 합니다.

    한편 1979년 9월 초판이 나오고, 12월 재판이 나오며 재판에 발간 후기가 있는데 그 내용대로 하자면 소문과 다르게 조병윤이 파문 당한 것은 아니다... 는 서영대 교수님 의견 같은데요.

    제가 볼 때는 이렇습니다.
    2개월만에 재판을 발행했으니 이때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병윤을 제자로 소개하는 후기까지 남긴 것 입니다. 이렇게 보면 조병윤이 파문 당하지 않은 것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건은 예상 밖에서 터지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1982년 일역판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이 환단고기에 의심을 갖고, 자유지 기고문까지 들고와 이를 묻자,, 난처해진 이유립이 "광오본은 조병윤이 서툴게 필사하고 허락없이 출간한 것이다."며 파문시키고, 광오본의 오자 100곳을 수정하여 배달본을 출간하는데, 이때 이유립은 광오본의 후기가 거슬려 광오본을 수거해 오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그리고 박창암과의 관계도 이때부터 악화되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 도사세손 2018/04/07 00:28 #

    자료는 인하대 석사논문에서 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 필요 부분 짜집기하여 보관했는데,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심사자로 서영대 교수님 이름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해에 [만들어진 한국사]를 인용했다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 초록불 2018/04/08 20:10 #

    아, 장영주 CP의 석사논문이군요. 그건 가지고 있습니다.
  • 도사세손 2018/04/07 03:29 #

    광해본 초판 나오고 불과 2개월만에 재판 나왔으니, 당시 초판 후 곧바로 조병윤이 파문을 당하지 않았고, 몇 년뒤 파문 당했을 것이다... 생각 했는데...

    환단고기 관련자들 이야기를 보니...그것도 아니군요...
    그들은 초판 나오고 곧바로 조병윤을 파문하고, 오타 수정 및 오기형 발문을 삭제한 재판을 내놓았다고 하나....
    서영대 교수님이 소장한 광해본 재판의 후기대로 한다면... 저것은 사실이 아닌게 맞겠습니다.
    광해본 재판이 세상에 얼마 알려지지 않아, 후기가 있는 줄 모르는 상태에서 조병윤을 곧바로 파문시켰다고 훗날 지어낸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녹도승은 광해본 초판을 받았고, 그 외 이유립이 작성한 원고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가 광해본 초판을 받았는데도 일역본에서 남과북 / 동과서를 바꾸워 썼다면,,, 이유립의 원고 중에는 광해본 초판과 다른 내용이 있다는 것인데...
    어차피 이는 자유지에 기고한 내용에서 확인되었으니... 녹동승이 이유립의 원고 때문에 광해본 초판과 다르게 썼다고 해도 될 듯 합니다....

    근데 일역본에 오형기 필사본과 발문이 영인되어 있다고 하니... 한 번 확인해 보아야겠습니다.

    신동아 내용 입니다.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6717/1
  • 초록불 2018/04/08 18:49 #

    네, 말씀대로 가지마 노보루의 환단고기 일역본에 오형기가 정서한 환단고기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北至帶水 西至大海라고 되어 있습니다. 연호도 多勿로 되어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만들어진 한국사>를 쓸 때 다 확인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도사세손 2018/04/09 16:20 #

    초록불님 제가 착각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광해본은 배달본과 다르네요. 그리고 광해본이 일역본과 동일 합니다.

    <광해본>
    연타발은 졸본인이다...(생략)... 80세에 죽었고 이때가 [다물 34년 병인] 춘3월이다.
    ...(생략)...고주몽이 재위시 말하였다. 적자 유리가 오면 마땅히 태자로 삼을 것이다.
    ...(생략)...[을묘] 3월....
    ...(생략)...주위에서 소문을 듣고 따르는 무리가 있으니 [북으로 대수에 이르고 서로 큰 바다에 접하니] 반천리가 그의 땅이다.

    <배달본>
    연타발은 졸본인이다...(생략)... 80세에 죽었고 이때가 [평락 13년 병신] 춘3월이다.
    ...(생략)... 고주몽이 재위시 말하였다. 적자 유리가 오면 마땅히 태자로 삼을 것이다.
    ...(생략)... [경인] 3월
    ...(생략)... 주위에서 소문을 듣고 따르는 무리가 있으니 [남으로 대수에 이르고 동으로 큰 바다에 접하니] 반천리가 그의 땅이다.

    제 기억에 잘못이 있었습니다.

    왜그랬는지 모르겠네요. 분명히 두 책을 놓고 보았는데요... 착각 했습니다.
  • 초록불 2018/04/09 16:52 #

    다행입니다. 당시에 분명히 확인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다르다고 하셔서 당황했었습니다...^^
  • 도사세손 2018/04/12 08:26 #

    역사비평 2017년 봄 118호에 초록불님 기고문이 있어서 신청했는데,
    아!~~ 실수로 그만 119호를 선택했네요... 이를 어쩌나!~
    택배조회 했더니 지금 배송중 이라고 나오는군요.
    다행이 책을 판매한 서점이 집에서 많이 멀지 않은 곳으로 확인되는군요.
    오후에 직접 책 교환하러 서점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나저나 다행 입니다... 멀지 않은 곳이라...
  • 도사세손 2018/04/12 08:46 #

    인터넷에서 보았다는 자료가 인하대 장영주 석사논문이 맞습니다.
    오늘 그 논문을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논문에 실수가 좀 보입니다.
    논문 p21~22
    [북부여기 찬자를 월간 자유는 복애거사, 광해본은 휴애거사, 배달본은 복애거사로 변경 했다.]는 데요.
    집에 있는 배달본 복사본을 보니, 광해본 처럼 휴애거사로 되어 있습니다.
    소장본이 복사본이라 100% 장담은 어렵지만,,,
    배달본도 휴애거사로 되어있는데 논문이 잘못된 듯 합니다.

    1985년 김은수 가나출판사본은 광해본을 영인하여 수록하고 번역했으나 복애거사로 수정되어 있고,
    1986년 임승국 정신세계사본은 휴애거사로 쓰고,
    1986년 이민수 한뿌리본은 광해본을 번역했으나 복애거사로 수정되어 있네요.

    그리고, 2011년 안경전 상생출판사는 배달의숙본을 영인하여 발간하는데, 머리말을 보면,,,
    [[1911년에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 초판본은 존재 유무가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전하는 것은 계연수본을 필사한 오형기본과 배달의숙본이며, 본서는 1979년 필사하여 1983년 간행한 배달의숙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그러나 배달의숙본도 오탈자를 완전하게 수정하지 못 하여 군데군데 잘못되고 누락된 부분이 남아 있었다. 이에 본서는 이유립의 제자인 양종현이 소장하고 있는 배달의숙본과 단단학회 정오표 등을 참고하여 오탈자를 최대한 바로잡았다. 아울러 북부여기의 저자인 범세동의 호가 휴해와 복애 두가지가 함께 쓰인 것을 금성범씨대동보의 기록을 따라 복애로 통일 하였다.]]

    그렇다면 배달의숙본 역시 휴애거사로 써놓은 것이 맞은 듯 합니다.
    초록불님이 배달의숙본 소장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 초록불 2018/04/12 09:58 #

    논문은 못 살펴봤는데 광오이해사본과 배달의숙본 모두 휴애거사로 되어 있습니다. 두 권의 결정적 차이는 가섭원부여기가 있느냐 없느냐죠.
  • 도사세손 2018/04/14 10:39 #

    만들어진한국사 p36 이유립이 쓴 환단고기 독후감이 일역본 몇 년판 어느 부분 몇 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는지 알수 있나요?
  • 초록불 2018/04/14 11:55 #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아니어서 당장 확인은 불가능합니다. 해당 책 주석에 단 것처럼 해당 책 속표지에 있는 글이어서 페이지 명기는 안 되어 있습니다. 조만간에 확인해서 알려드리죠.
  • 도사세손 2018/04/15 06:50 #

    확인했습니다... 그 책이 사진 찍어 올라와 있는데,
    1984년 (소화 59) 1월1일 2차판 맨 첫 부분에 있더군요...
    감사 합니다.
  • 도사세손 2018/05/08 09:26 #

    天皇家系扶餘族 日本文明烏羽書
    천황가는 부여족에서 이었고, 일본 문명은 오우서 이다.

    이 부분을 만들어진 한국사는 [천황의 가계는 부여족 이고, 일본 문명은 고구려가 전하였다]고 하며, 오우서 (까마귀 날개 깃에 쓴 글)를 고구려로 해석했는데요.
    그 글을 읽고어떤 이유로 오우서를 고구려로 해석했나 한 참 궁굼 했습니다.

    오우서는 속일본기 '칸무조'에 나오는 대목 이군요.

    [敏達天皇御世 高麗國遣使上<烏羽之表> 群臣諸史莫之能讀 而辰爾進取其表 能讀巧寫 詳奏表文 天皇嘉其篤學 深加賞歎 詔曰 勤乎懿哉 汝若不愛學 誰能解讀 宜從今始近侍殿中]

    [민달왕이 다스리는 때에 이르러 高麗國에서 사신을 보내어 <까마귀 날개에 쓴 表>를 올렸습니다. 여러 신하들과 史官들은 그것을 읽어내지 못하였는데, 辰爾가 나와 그 表를 가져다가 읽고 잘 베껴내어 表文을 풀이 해 아뢰었습니다. 天皇은 그 학문이 높음을 가상히 여겨 상을 더욱 두터이 하고 詔를 내려 ‘부지런하고 훌륭하구나. 네가 만약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누가 능히 해독할 수 있었겠는가. 마땅히 이제부터는 殿中에서 近侍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속일본기 '칸무조' 辰爾는 왜에 건너가 거주한 백제 왕족 출신 입니다.

    즉 '오우서 사건'은 고구려 사신이 까마귀 날개에 서신을 적어 왜에 전달했는데, 왜에서 이를 해석하지 못 했으나, 백제계 왕족 출신 辰爾 왜 관료가 이를 번역한 것으로 이유립은 속일본기에서 가져온 내용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일본문명 오우서]를 [일본문명은 고구려에서 전하였다.]로 해석하는 것 보다,
    [일본문명은 오우서 사건으로 백제에서 전달했다.]로 해석하는게 맞지 않나 생각 합니다.
  • 초록불 2018/05/08 10:26 #

    해석 상의 차이일 수도 있으나 오우서 자체는 고구려에서 보내 온 것이고 백제계 인물은 해석만 한 것이니 문명을 전달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의역치 않으면 처음에 쓰신 것처럼 "일본 문명은 오우서이다"라고 쓰고, 오우서에 대해서는 주석을 달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도사세손 2018/05/10 17:19 #

    이유립의 일역본 환단고기 독후삼 쓴 7언율시 인데요.
    [兩柱浮橋自凝島 양주부교자응도] 부분 입니다.
    만들어진 한국사는 [양쪽 기둥과 부교 절로 굳어진 섬]이라고 했는데요.

    증산교 안경전 현 교주는 역주 환단고기에서 [두 주신(株神, 일본의 창조신)은 부교에서
    자응도(自凝島, 일본)를 만들었다.]고 설명 했습니다.
    한문시가 상당히 함축적 이고, 본래 우리 글이 아닌 외국어 이므로 해석하기 나름인데요.

    1979년 환단고기가 광오이해사에서 출간되기 전, 1976년 일본에서 우가야 왕조라는 위서가 처음 출간 되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 일본은 우가야 왕조라는 책에 관심 없었는데, 1982년 가지마 노보루가 환단고기 일역본을 발간하며 단군왕조가 곧 우가야 왕조이며, 우가야 왕조는 허구가 아닌 진실 이고 환단고기가 우가야 왕조가 실재했다는 증거라고 하여, 일본에서 환단고기와 우가야 왕조가 한때 관심을 끌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문과 일어를 알지 못 해 우가야 왕조가 무엇인지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 하나, 인터넷에서 대략 살펴보면 상고시대 한반도 남부에 북방계 이주 우가야가 있었고, 그들이 왜 열도로 건너가 통일왕국을 건설하고, 다시 한반도로 건너와 아시아를 지배한 거대 왕국을 건설했다는 위사로 보입니다.

    양주(兩柱)는 두개의 기둥,
    부교(浮橋)는 다리, 교량으로 보이며,
    자응(自凝)은 스스로 엉퀴다, 자연히 하나 되다. 뜻이고,
    도(島)은 섬으로 일본을 가르키는 것 아닌가 생각 됩니다.

    한국은 환단고기가 있고, 일본은 우가야 왕조가 있으며,
    환단고기가 일본에 건너 갔습니다.
    이에 이유립은 두 책을 양 기둥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한편,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쓰고, 가지마 노보루가 일본에 전하며 환단역사가 일본역사라고 하여 한일 두나라가 같은 역사를 공존하는 것 처럼 되었습니다.
    그럼 양 기둥은 이유립 자신과 가지마 노보부를 가르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저 문장은
    양 기둥 (환단고기와 우가야 왕조)는 부교가 되어, 일본에서 자연히 하나가 되었다.
    또는
    양 기둥 (당신과 내가) 부교가 되어, 한일 역사를 일본에서 자연히 하나가 되도록 하였다.

    지난친 의역일지 모르나 저 문장은
    환단고기와 우가야 왕조기록에 의해 한일의 역사가 일본에서 하나 되었다.
    이유립과 가지마 노보루에 의해 한일의 역사가 일본에서 하나 되었다..
    이런 내용 아닌가 생각 됩니다.
  • 초록불 2018/05/10 17:11 #

    말씀 보고 찾아보니 자응도신사가 있고 이곳이 일본 창세신화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군요. 양주와 부교에 대해서도 좀더 생각해보아야 하겠네요.
  • 도사세손 2018/05/10 23:21 #

    초록불님 설명 감사 합니다.
    [양주부교자응도] 귀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궁굼하여 나름 생각한 후 질문하느라 써 본 글인데요.
    자응도는 일본 신사로서 일본판 천지창조와 관련있다는 초록불님 글을 읽고, 그럼 일본서기 신대기를 보면 알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북아역사재단 국역본 일본서기 (p104)를 펼쳐서 답을 찾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경전이 쓴 역주 환단고기 처럼 해설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신대기를 보면 신세7대(神世7代)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대기 첫번쩨 이야기
    처음에 하늘과 땅이 열리며 그 중간에 있는 물체에서 1대 국상립존이 태어나고, 2대 국협퇴존, 3대 풍짐정존이 태어납니다. 이를 3신이라 하며, 이들은 모두 남자 신 입니다.
    신대기 두번째 이야기
    4대 이토자존과 사토자존, 5대 대호지도존과 대점변존, 6대 면족존과 황근존, 7대 이장락존과 이장염존이 태어 납니다.
    이렇게 국상립존에서 이장락존까지 7대 이므로 신세7대라 부릅니다.
    1~3대 까지는 모두 남자 신이나, 4~7대는 앞쪽 이름이 남자 신이고, 뒷쪽 이름은 여자 신 입니다. 따라서 이장락존이 양의 신, 이장염존은 음의 신이며, 부부가 되어 일본 국토 8개 섬을 만듭니다.
    그 과정을 보면
    신대기 네번째 이야기
    [이장락존과 이장염존이 천부교(天浮橋) 위에 서서 함께 의논하여, "이 아래에 어찌 나라가 없겠는가"라고 말하며 천지경모 (구슬로 장식한 창)를 아래로 휘저어 푸른바다를 찾았다. 그 창날 끝에서 뚝뚝 떨어진 바닷물이 응고되어 하나의 섬이 되었다. 이를 일러 은어려도(磤馭慮島)라 한다. 이 두신은 그 섬에 내려와 살면서 부부가 되어 국토(일본 땅)를 낳고자 하였다.] -인용-

    신대기 내용의 [천부교]는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교량)이며, 그 부교에서 두 부부 신이 일본열도 (8개섬)를 만들었다는 내용인데, [은어려도]는 일본어로 '오노고로시마'이며, '오노'는 [스스로], '고로'는 [굳다 응고된다.] '시마'는 당연히 [섬 ] 입니다.
    그럼 [은어려도]는 [스스로 굳은 섬, 자연스럽게 응고된 섬] 뜻으로 [자응도 自凝島]와 같습니다.
    <자응(自凝): 스스로 엉퀴다, 자연히 하나되다.>

    그렇다면 이유립의 시문에 보이는 [양주(두 기둥)]는 일본서기에서 일본 땅을 만들었다는 [이장락존과 이장염존]이고, 시문의 [부교]는 서기의 [천부교]이며, 시문의 [자응도]는 서기의 [은어려도]가 됩니다.
    자응도가 일본의 천지창조와 관련된 신사라고 했는데요. 물론 그 신사가 있다면 그럴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도 자응도 신사가 나오지 않아 맞은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본서기까지 찾아 보았습니다.
    아무튼 이유립 시문의 [부교] [자응도] 표현은 7언율시를 쓰며 일본서기에 보이는 일본판 천지창조의 [천부교] [은어려도]를 차용한 것이고, 7자 제한에 의해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변형한 것 아닌가 생각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유립이 일제강점기 청춘을 보낸 사람이니, 한문 뿐 아니라 친일파 답게 일본어도 능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서기에서 저 부분을 찾아내서 저렇게 변형하다니 일본어 실력도 대단했나 봅니다.
  • 도사세손 2018/05/11 00:27 #

    이유립의 7언율시에 보이는 부교, 자응도, 오우서 표현은 일본서기와 속일본기에 보이는 천부교, 은어려도, 오우지서를 7언율시 글자 수에 맞추기 위해 변형한 것으로 보입니다.
  • 초록불 2018/05/12 06:33 #

    자응도신사의 독음도 말씀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자응도 신사는 말씀하신 내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신사인 것 같습니다. 새로 쓰는 책에는 도사세손님이 지적하신 내용을 추가하여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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