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역........사..*



모레, 8월 29일은 우리가 국치일이라 부르는 한일합병조약이 발효된 날이네요.

1910년 8월 4일 이완용은 [혈의누]로 유명한 이인직을 통감부 외사국장 소송록(고마쓰 미도리)에게 보내 합병을 제의합니다. 소송록이 놀랄 정도의 제안이었습니다. 한국의 총리대신이 잡숴주세요라고 이야기할 줄은 몰랐던 것이죠. 고마쓰는 이인직의 동경유학 시절 선생이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사람이므로 이인직이 심부름꾼으로 선발된 거죠.
8월 16일, 이완용은 통감 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방문합니다. 합병에 대한 제반 문제를 협의한 이완용은 8월 18일 비상내각회의를 개최합니다. 이완용, 내부 박제순, 탁지부 고영희, 학부 이용직, 농상공부 조중응이 참석했습니다. 합병문제에 대해서 이용직만 반대하고 내각에서 합병안이 통과되었습니다.
8월 22일 오후 1시,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에서 어전회의가 열립니다. 합병안 통과에 대한 회의였죠. 문무 원로대신들과 순종 황제, 황족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순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짐朕이 동양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일韓日 양국의 친밀한 관계로 피차 통합하여 한 집으로 만드는 것은 상호 만세萬世의 행복을 도모하는 까닭임을 생각하였다. 이에 한국 통치를 들어서 이를 짐이 극히 신뢰하는 대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기로 결정하고 이어서 필요한 조장條章을 규정하여 장래 우리 황실의 영구 안녕생민의 복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에게 전권위원全權委員을 임명하고 대일본제국 통감統監 사내정의寺內正毅와 회동하여 상의해서 협정하게 하는 것이니 제신諸臣 또한 짐의 결단을 체득하여 봉행하라.”

이완용은 어전회의가 끝나자 즉시 사내정의에게 달려가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완용은 이 공로로 8월 26일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금척대수훈장을 받습니다. 8월 29일 드디어 조약이 발효되어 조선왕조로부터 대한제국으로 이어져온 국체가 멸망했습니다.

합병조약문 전문을 읽어본 분들이 몇 분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그런 의미로 올려봅니다.
알고보면 제법 재밌습니다.

[일한병합조약日韓倂合條約]

대한제국 황제폐하와 일본국 황제폐하는 양국 간의 특수히 친밀한 관계를 돌아보아, 상호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기 위하여 이 목적을 달성코자 하면 한국을 일본국으로 병합한만 같지 못한 것을 확신하여 이에 양국 간에 병합조약을 체결함으로 결정하니 이를 위하여 한국 황제폐하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을, 일본국 황제폐하는 통감 자작 사내정의寺內正毅를 각기 전권위원으로 임명함. 인하여 오른쪽의 전권위원은 회동 협의 한 후 왼쪽의 제조항을 협정함.

제1조,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함.
(대한제국의 주권은 황제에게 있기 때문에 나라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한일합방이라고 하면 두 나라가 합쳐진 것같은 뉘앙스를 받기 쉬운데, 착각하면 안 됩니다. 갖다바친 것일 뿐입니다. 양국을 하나의 나라로 하고 일본국 황제를 양국의 황제로 한다든가, 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 거죠.)

제2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앞의 조항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한 전체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함.
(넘긴다고 그냥 일이 끝나는 게 아니군요. 일본국에서 받아주셔야 된다는 거.)

제3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한국 황제폐하, 태황제폐하, 황태자 전하와 각 후비 및 후예들로 하여금 각기 지위에 응하여 상당한 존칭, 위엄과 명예를 향유케 하고 또 이를 보장함에 십분한 세비를 공급함을 약속함.
(황실의 지위 보전이 극히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제4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前條 이외의 한국 황족 및 후예에 대하여 각기 상당한 명예 및 대우를 향유케 하고 또 이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자금을 공여함을 약속함.
(황실의 지위 보존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겠죠?)

제5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훈공이 있는 한인韓人으로서 특히 표창함을 적당하다고 인정하는 자에 대하여 영작(榮爵)를 제수하고 또 은금恩金을 수여함.
(이건 이완용이 자기한테도 돈 좀 달라고 찌질댄 결과인 모양입니다. 이완용은 백작 지위와 함께 15만원을 받았습니다. 지금 돈으로는 30여억원에 달한다는군요. 이완용이 가장 많은 돈을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총 3천만엔(지금 가치로는 6천여억원쯤)을 뿌렸다고 합니다. 모두 76명의 신하가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습니다. 이중 판돈녕부사 김석진은 작위를 거부한 채 음독 자살했고, 유길준, 한규설, 민영달, 홍순형, 조경호, 윤용구의 여섯은 은사금을 반납해으며 흥선대원군의 둘째 사위 조정구는 작위를 거부했습니다. 훗날 작위를 거부하고 독립운동에 나선 김가진 같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6조, 일본국 정부는 전기前記 병합의 결과로서 전체 한국의 시정을 담당하고 한국 땅에 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한인韓人의 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십분한 보호를 주고 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함.
(자, 드디어 한국민에 대한 보장이 나왔네요. 그런데 한국땅에 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한국인만을 보호한다고 하는군요. 범죄자는 보호받을 수 없는 조약이라...)

제7조, 일본국 정부는 성의 충실히 신제도를 존중하는 한인韓人으로서 상당한 자격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한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의 관리로 등용함.
(친일파들을 등용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재야사학의 대부인 문정창 나리도 이 조약 덕분에 군수 지위까지 올라가실 수 있었던 거지요.)

제8조, 본 조약은 한국 황제폐하와 일본국 황제폐하의 재가를 경유한 것이니 공포일부터 이를 시행함.
(이 조약의 체결일은 8월 22일이고 합방조약의 공포일이 8월 29일입니다.)

오른쪽에 증거로 양 전권위원은 본 조약에 기명 조인함이라.

융희隆熙 4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
명치(明治=메이지) 43년 8월 22일 통감統監 자작子爵 사내정의寺內正毅.


8월 29일 순종 황제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기는 군요.

“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臨御)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維新)하는 것에 관하여 누차 도모하고 갖추어 시험하여 힘씀이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원래 허약한 것이 쌓여서 고질이 되고 피폐가 극도에 이르러 시일 간에 만회할 시책을 행할 가망이 없으니 한밤중에 우려함에 선후책(善後策)이 망연하다. 이를 맡아서 지리(支離)함이 더욱 심해지면 끝내는 저절로 수습할 수 없는 데 이를 것이니 차라리 대임(大任)을 남에게 맡겨서 완전하게 할 방법과 혁신할 공효(功效)를 얻게 함만 못하다. 그러므로 짐이 이에 결연히 내성(內省)하고 확연히 스스로 결단을 내려 이에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여 밖으로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팔역(八域)의 민생을 보전하게 하니 그대들 대소 신민들은 국세(國勢)와 시의(時宜)를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각각 그 직업에 안주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라.
짐의 오늘의 이 조치는 그대들 대중有衆을 잊음이 아니라 참으로 그대들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

갑자기 망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_-;;



이완용에 대한 연작 포스팅
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 본 포스팅
이완용 - 그 친일 행각
이완용, 종묘에 모셔지다?
이완용, 그의 재산과 치부

핑백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이완용 - 그 친일 행각 2008-03-01 00:48:16 #

    ... , 심복을 보내 주의를 돌려놓았습니다. 아무 반대없이 일사천리로 합병안을 처리한 이완용은 오후 4시 사내정의를 만나 합병안을 체결했습니다. (합병안 전문은 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클릭]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합병조약 사실은 일주일간 발표를 유보했다가 8월 29일에 대내외에 공표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8월 29일을 국치일이라고 ... more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이완용 옹호라는, ㄱ과 ㄴ도 구분 못하는 글 2008-03-07 10:16:13 #

    ... 를 금할 수가 없다. 이들의 뇌는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단 말인가? 남의 뇌를 걱정하기 전에 자신의 시력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GREENBAUM은 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클릭]과 같은 제 글은 읽어보지도 않은 거죠. 분명 트랙백 걸어놓은 글에도 위 포스팅이 링크가 걸려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역사크랙폿들은 자기가 아는 쥐꼬리만한 ... more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2008-03-09 11:22:45 #

    ...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 갑자기 망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_-;; 이완용에 대한 연작 포스팅 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 본 포스팅 이완용 - 그 친일 행각 이완용, 종묘에 모셔지다? 이완용, 그의 재산과 치부 ... more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이완용, 종묘에 모셔지다? 2008-03-09 11:24:39 #

    ... 배향공신 중에는 수구파로 분류되거나 하는 사람은 있지만 우리가 뚜렷하게 친일파라고 인식할 사람은 없다. 이 점이 작은 위안이라고나 할까. 이완용에 대한 연작 포스팅 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이완용 - 그 친일 행각 이완용, 종묘에 모셔지다? - 본 포스팅 이완용, 그의 재산과 치부 Daum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 ... more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이완용, 그의 재산과 치부 2008-03-09 11:25:23 #

    ... 보니 이완용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완용에 대한 연작 포스팅 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이완용 - 그 친일 행각 이완용, 종묘에 모셔지다? 이완용, 그의 재산과 치부 - 본 포스팅 Daum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 ... more

덧글

  • 네리아리 2007/08/27 10:30 #

    ......숫자 '17' 다음의 숫자가 바로 나오는 군요...
    ㄴ씁쓸...
  • windxellos 2007/08/27 10:33 #

    '왕조'는 망해도 쌀지 모르지만 그 통치하에 있던 사람들이 불쌍할 따름이군요.
    그나저나 작위와 은금의 '넙죽'은... 김가진과 같은 경우도 있으니 완전히 도매금으로
    넘기기가 좀 께름하긴 합니다.(므음)
  • 老姜君 2007/08/27 10:41 #

    강압에 의한 것이다.. 뭐 그런 말이 있는데, 이제 보니 별로 그런것 같지도 않군요 -_-...
  • 파랑나리 2010/11/20 23:18 #

    아니요. 결코 자발적인게 아닙니다. 순종은 나중에 遺詔를 남겨서 이것이 강압으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니 孝帝(순종)는 을미사변 때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명성황후를 죽이고 일본군은 아직 태자였던 순종을 데려다 명성황후가 맞는지 확인시켰습니다. 여러 궁녀들도 죽이고 황후를 "나체로 만들어 국부검사를" 했습니다.) 엄청난 트라우마에 걸린 그가 얼마나 제대로 뭘 할 수 있었을까요?

    거기다 국권침탈조약인 불법인 건 아시죠? 위의 게시물은 "사실"이지만 "일부"입니다. 그것만 보고 2ch의 혐한 또라이들에게 환영받을 말을 하시면 곤란하죠.
  • 초록불 2010/11/20 23:21 #

    순종이 어머니 시체를 확인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요? 출전이 어디입니까?
  • 을파소 2007/08/27 10:43 #

    김가진 같은 경우는 나중에 작위를 버리고 망명해서 독립운동에 가담했으니 넙죽 받아먹은 치들과는 구분해줘야죠.

    그건 그렇고 저걸 보고도 황실복원 같은 말을 하고 싶을까요?
  • 초록불 2007/08/27 10:47 #

    windxellos님 을파소님 / 그런 경우도 있군요. 76명의 행적 추적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넙죽] 운운의 글은 변경했습니다.
  • 슈타인호프 2007/08/27 10:49 #

    이완용이 먼저 제의를 안 했다면 일본으로서도 통감부 체제를 계속 지속시키는 길을 택했을까요? 그랬다면 순종은 바오다이 같은 지위에 있었겠습니다만...그 뒤에 어찌 되었든 지금 정도의 반일감정은 안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지네요.
  • Nairrti 2007/08/27 11:16 #

    조약문이라는 건 사실 여러가지 포장이 있는 것이고, 좋게좋게 표현하는 것이죠. 어차피 당시 조일 양국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 일본 쪽에서는 낼름 줏어먹을 명분으로 이런 조약을 내세우기 위해서 여러가지 양념과 포장을 해서 이용한 거라고 봐야죠. 전후 사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주는 센스가 있어야 조약문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준님 2007/08/27 11:18 #

    1. 일본의 괴악한 가상전기 중에 대한제국을 통감 보호령으로 하고 아세아 연방을 만든후에 러시아와 대결하는 스토리도 있지요. (반일 감정 없는 조선인의 압박)

    2. 순종의 바오다이화라면 나중에 2차 대전 종결이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네요. 순종이야 죽었겠지만 영친왕이 왕위에 올라서 조선의 바오다이가 되고 -_-;; 그럼 이승만은 고딘디엠이고 김일성은 호치민?이 되는 스토리가 되었을수도 있겠군요. -일성이가 호치민 만큼이나 덕이 있는 사람인지는 둘째치구요.(하기야 이승만이 영친왕을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실지로 북한은 이렇게 분석했음-하는 것만큼이나 재밌는 가상역사 소재일겁니다.)

    3. 안모 교수는 저거보고 또 조작이라고 하겠지요
  • 리체 2007/08/27 12:57 #

    역시 역사라는 건 우리나라나 일본애들이나, 자국 편리한대로 가르치려고 드는 건 비슷한가봅니다. 안 그런 나라도 있으려나요?;;
  • 초록불 2007/08/27 17:15 #

    리체님 / 사실 대부분의 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게 옳을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국정교과서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교과서만 인정하기 때문에 그 폐해가 크게 보이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 꿈바라기 2007/08/27 19:18 #

    전 국사와 근현대사를 배운후 집에 쌓여있는 족보를 불태우고 싶었습니다. 전주 이씨 인물은 한명도 맘에 들지 않아요... 핏줄이 같아봤자...
  • 초록불 2007/08/27 21:59 #

    꿈바라기 /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런 것처럼, 아마 너도 전주 이씨 핏줄이 아닐 가능성이 높단다. 그러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 그나저나 네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전주 이씨 집안의 이도라는 사람이 한글을 만든 덕분인데...
  • 지구호 2007/08/27 22:47 #

    대한제국은 1905년 11월 17일 이미 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누군가에 의하여 강제로... 초록불님께서는 대한제국의 황실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orz...
  • 야스페르츠 2007/08/27 22:52 #

    제 생각에도 겉으로 드러난 조약문보다 그 행간에 숨어있는 일본의 암묵적인 압력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준 정권이기로서니 국체를 상실하는데 진심으로 저런 선언, 조약을 이야기했을까요... 이럴 때를 두고 울며 겨자먹기라는 표현이 필요한 것이 아닌지요...
    이상 철없는 자의 황언이었습니다.ㅡㅡ;
  • 파랑나리 2010/11/20 23:22 #

    "철없는 자의 황언이" 아닙니다. 국권침탈 조약은 불법이거든요. 따라서 일제의 지배는 무효이지요.
  • 지구호 2007/08/27 22:53 #

    초록불님 / 갑자기 질문이 생겼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런 것처럼, 아마 너도 전주 이씨 핏줄이 아닐 가능성이 높단다]

    대원군시절 대구 및 울산지역의 족보를 보면 양반이 70%나 차지하고 있는 표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와같은 비대한 양반계층은 실제의 양반의 비율이 아니라 양반 집안의 노비등을 포함시킨 것이라고 하던데, 그 때문에 당시 성씨들이 늘어난 것일 까요?
  • 지구호 2007/08/27 23:08 #

    야스페르츠님 / '그물을 치기도 전에 물고기가 들어와 버렸다...'
    합방조약에 대하여는 일본측의 압력이 있기보다는 대한제국이 선수를 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합방 반대파인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 이후 일본은 합방 찬성론이 급속도로 성장을 하는데, 일본측의 분위기를 눈치챈 대한제국측에서 어차피 피할 수 없이 합방을 할 것이라면 우리쪽에서 먼저 요청하여 최대한의 협상조건을 내걸자 였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조건에는 황실의 보존등을 포함해서요.
  • 파랑나리 2010/11/20 23:26 #

    지구호님 말대로라면 이토히로부미를 죽였기 때문에 일본이 대한을 폐멸시킨 것 같지만 실제로 이토히로부미는 대한을 폐멸시키는 데 앞장선 사람입니다. 다만 그는 일을 신중하게 하고 그가 죽을 때는 대한이 주권을 뺏겼기 때문에 이미 정복한 것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황실의 보존? 영친왕, 의친왕, 이우, 덕혜옹주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죠.
  • 초록불 2007/08/27 23:14 #

    지구호님 / 대한제국 황실에 대해서 별로 좋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족보에 대한 문제는 http://orumi.egloos.com/3209516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위의 댓글은 후배에게 농담조로 말한 것뿐입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꿈바라기 너도...)
  • 시퍼렁어 2007/08/28 02:23 #

    자기만 살면 그만이다를 잘 보여주네요 그런 인간들을 왕이라고 떠받든 옛 조상들이 불쌍합니다.
  • 지이 2007/08/28 05:28 #

    대한제국 황실에 대해선 감정이 몹시 좋지 않아 황실복위 어쩌고 하는 얘기를 볼 때마다 코웃음을 쳤는데, 주욱 읽고나니 망해도 싸다는 생각이 저 역시 들어버렸습니다-_-;
  • 어부 2007/08/28 18:37 #

    딱 한 마디; OzTL
    (참고로 히로히토 이야기는 책 좀 읽어본 다음에 써야 겠습니다....)
  • 위장효과 2007/08/28 20:47 #

    망해도 멋지게 망한 왕가들과 비교해서 너무도 비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차라리 왕가가 전부 나라밖으로 도망쳐버리든가 할 것이지.

    (그래서 이문열씨는 한일합방전 고종황제가 자신의 왕자와 왕손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일종의 카더라 역사 단편 소설을 쓴 걸까요? 좀 더 비참하지 않았다고 자기위안삼으려고???)

    뭐...쫓겨나면서 요트에다가 포르노 잡지에 영화를 잔뜩 싣고 도망친 이집트의 파루크 국왕같은 막장도 있긴 합니다만.
  • 2007/08/29 00:1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7/08/29 00:18 #

    비밀글 / 밤이 깊어서... 내일 알려드리겠습니다.
  • 아르핀 2007/08/29 00:55 #

    마지막이 압권이네요. 나름 개긴(?) 고종보다도 못하군요. -_-;;..
  • dunkbear 2007/08/30 10:50 #

    제가 받았던 역사 교육은 겉핥기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시네요...
    어릴 적에 역사 좋아해서 상당수의 역사만화와 책을 읽었지만 합병조약문을
    제대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쩝.

    지금은 어떻게들 교육시키는 지 몰라도 학생들이 직접 이런 원문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을까요? 아마 아니겠지만요...
  • 사과향기 2007/08/30 12:39 #

    위의 일만으로 판단하긴 무리같은데요. 강화도조약에서 한일합방(경술국치)때 까지 일들 중 전체적 흐름의 한 부분으로 봐야 좀 더 정확히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고타마 싯타르타가 출가하던 일이 생각나에요. 주변국가들이 병탄되는 상황에서 자국 또한 그런 위험에 있는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이란??? ...
  • 도널드 2007/08/30 13:05 #

    빨리 읽으며 남기는 간단한 덧붙임이지만..
    고종 황제도 그닥 떳떳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황실이 외세의 이권 침탈에서 어느 정도 옳지 못한 이익을 받고 눈 감았다는 얘기도 있고요.

    살짝 트랙백만 하고 갔는데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한국사 전공은 아닌데 넘 좋아해서, 이참에 링크 신고 하고 갈게요~
  • 나루나루 2007/08/30 16:32 #

    아는 거였지만 다시 전문을 읽으니 새삼 놀랍네요..
  • 초록불 2007/08/31 00:51 #

    사과향기님 / 그에 대한 역사학계의 논의는 [한국사 시민강좌] 40집의 서영희 교수가 잘 정리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도널드님 / 링크, 감사드립니다.

    나루나루님 / 저도 새삼 놀란답니다.
  • Dankeun 2007/08/31 01:27 #

    왕실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명맥만이라도 잇고 싶었던 마음은 이해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딱히 순종만의 얘기는 아니고요(가재는 개편이다...라는 논리는 더더욱 아닙니다)
  • 초록불 2007/08/31 01:36 #

    Dankeun님 / 가재는 게 편이죠... 원래 개 편은 아닙니다... (후다닥)
  • あさぎり 2007/08/31 03:41 #

    사내정의라고 써져있길래 누구인가 했더니... 그 이름도 무서운 데라우치 총독이었군요. ㄷㄷㄷ
  • Dankeun 2007/09/01 23:02 #

    허걱...오타가;; ㅋㅋㅋㅋ
  • 저거노트 2008/08/05 13:07 #

    놀랍군요.
  • Fillia 2008/08/10 15:09 #

    헉, 쓰고 보니 리플이 너무 길어 트랙백으로 하겠습니다, ^_^;;
  • Tzar Bomba 2009/03/19 12:31 #

    ㅋㅋㅋㅋ
  • 파랑나리 2010/11/20 23:37 #

    합병조약문에서 분명히 드러난 사실 : 1910년 부터 1945년까지 조선을 지배한 이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일본국 황제폐하", 다시 말해 "천황"입니다. 천황의 집안은 황실은 당연히 조선을 지배한 집안이죠. 우리는 "천황"과 "일본황실"이 민족의 원수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절치부심, 와신상담하여 "천백배 복수"할 의무가 있습니다.

    추가 1 : 설마 일제강점기 때 천황이 힘 없는 존재였다고 우기실 분은 그 당시 일본헌법을 보십시오.

    추가 2 : 이제와서 왜 천황이냐고요? "천황은 권력이 없지만, 모든 권력의 원천이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출처 : [일본의 재구성]) "천황"이 전쟁범죄의 수괴임을 얼버무릴 때 쓰는 말이지만 저는 이렇게 해석됩니다.

    "천황은 권력이 없지만 일본 극우 및 혐한의 원동력이다."
  • 플로리몽 2014/04/17 17:40 #

    병탄 당시의 이척이나 이희 두 사람은 천만년 지나도 그 죄를 씻을수 없겠지만
    저 문장 자체를 그 두사람이 직접 썼겠습니까.
    그 당시에 글 잘하는 사람들이 조정에 즐비했을것을..
  • 초록불 2014/04/17 19:53 #

    그렇긴 하겠지만 오늘날에도 대통령이나 장관의 연설문을 본인들이 직접 쓰는 경우는 별로 없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