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유시민이 쓴 책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는 앞부분 몇장이 찢겨져서 없어진 상태다. 그만큼 많이 빌려본 책이라는 말이기도 하겠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이 언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1996년에 나온 책이다. 조금 안심이 된다. 그동안 유시민도 설마 조금은, 이 책을 쓰던 때보다 조금은 나아졌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논어 위정편에는 이런 진리가 적혀 있다.
-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은 책이라 매우 위태로운 책이다. 이 책은 역사학을 바보 학문 취급하고, 자신의 선조를 멍청이에 위선자로 몰고 있다. 불행한 것은 이것이 아마도 대한민국의 평균적 지식인들의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겠다.
이 책의 제1장 제목을 보자.
제1장 믿어서는 안 될 역사
불행히도 이 책의 앞부분이 짤려나가 총론에 해당될 부분에 무슨 글을 썼는지는 알 수가 없다. 두번째 장에서 유시민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을 노예 사상을 지닌 사대주의자로 매도한 뒤(김부식에 대해서는 김부식을 위한 변명 [클릭]을 참조)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삼국사기]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보다도 "인간이 쓴 역사를 사실 그대로라고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훈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대의 역사가들이 쓴 역사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이렇게 그는 모든 역사가들을 모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역사가들은 물론 과거를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정의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역사가는 망상가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아예 이렇게 단언한다.
역사가는 결코 과거에 존재했던 사회의 전모를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과거는 누가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일까? 그는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 역사학자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가령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고 있다.
역사가들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일차 사료는 대개 국가기관이나 그 밖의 권력 기관에서 나온 것이다.
일차사료란 무엇인가? 유시민은 주석에서는 이렇게 비교적 일차사료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해놓았다.
일차사료 : 역사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문헌이나 유물, 유적
그러나 저 정의는 비교적 정확한 것이지, 정확한 것은 아니다. 1차 사료란 당대 사람들이 남긴 자료를 가리키는 말이다. 당연히 그것은 국가기관이나 권력 기관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라 이야기할 수도 없다. 저 말이 유효한 것은 고대 사회로 올라가서 문헌 자료가 매우 드물 때나 성립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유시민은 열심히 과거 사료들이란 지배자의 관점을 가지고 작성된 것이므로 그것을 이용해서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지배자를 옹호하는 것이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대체 본인도 알 수 있는 그 사실을 역사가들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 오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유시민은 권력이 늘 역사가를 통제하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그 위협 때문에 올바른 역사를 쓰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역사 인식은 매우 일천한데다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 역사를 폄훼하고 있다. 가령 이런 식으로.
[삼국사기]는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포기하고 사대주의를 근거로 지은 책이라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아주 흡족하게 받아들였다. (중략) 조선사편수회가 [삼국사기]를 우리나라 고대사의 기본 사료로 못박은 것은 김부식의 사대주의가 그들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시민은 [삼국사기]의 다음 구절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마침내 스스로 빠져나가기는 했으나, (당태종의) 위태로움이 그와 같았는데도, [신당서], [구당서]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 이 일을 말하지 않았으니 어찌 자기 나라의 체면을 위하여 이 사실을 숨긴 것이 아니겠는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8년)
유시민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 이것이 역사 공부의 출발점인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역사가란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놀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김부식을 깎아내린 유시민은 사마천에 대해서는 극구 찬양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기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을 중심에 놓고 사회와 역사를 파악하고 서술한 사마천의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살아있는 인간의 다양한 인생 역정을 통해서 당시의 사회 상황과 생활상을 드러냈다. 흔히 역사는 승리자에 대한 예찬이 되는 법이지만 사마천에게 중요한 것은 강자만이 아니었다.
왕조 시대 역사가는 "누구나 당시의 지배적인 사상이나 가치관에 따라 '쓸 것은 쓰고 깎을 것은 깎아 가며' 역사를 서술했다"라고 기염을 토하던 그가 사마천에 대해서는 "현대의 역사서에도 크게 뒤질 바 없는 걸출한 역사책을 서술"했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몇 장 앞에서 자기가 한 말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래서 유시민은 이런 말로 땜빵질을 하고 있다.
사마천 이후 근대 이전의 중국 역사서는 거의 예외없이 국가 기관이 편찬한 교과서이거나, 개인이 편찬한 것이라 할지라도 지배층의 입맛에 맞게 여기저기 깎아내고 치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시민은 권력에 대항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역사가들이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왜곡했다는 말을 앞에다 두어서 독자들에게 선입관을 갖게 한 뒤, 그렇지 않은 사례들을 슬며시 들고 있다. 그렇게 선입관을 준 뒤에 사례를 들기 때문에 독자들은 권력에 복종하지 않은 역사가들조차, 권력이 역사를 어떻게 왜곡할 수 있었는가라는 관점에서 예외적인 사람들 정도로만 여기게 된다.
역사학의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진장] 조작 사건을 유시민도 언급하고 있다. (이 문서는 르네상스 시대 역사가인 로렌초 발라에 의해 허위로 밝혀졌다. 발라는 그 때문에 화형에 처해질 뻔 했다.) 그런데도 유시민은 역사가는 권력 때문에 할 말을 못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가들을 어떻게든 헐뜯고 싶어하는 유시민은 이런 진보보다는 단점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인문주의 역사가들이 맞서 싸운 대상은 역사 연구를 억압하는 외부의 힘이었다. 그러나 역사 연구의 발전을 가로막은 요소는 내부에 있었다. (중략)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 역시 역사가 반복하거나 순환된다는 낡은 고정 관념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
유시민은 대한민국의 평균적 지식인이 갖는 한계처럼 콩트의 실증주의와 실증사학이라는 개념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궁금한 분은 실증사학이란 무엇인가? [클릭]나 실증주의 사관 (김영한 / 사관이란 무엇인가 / 청람)을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역사가들이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을 길게 쓴 뒤 유시민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실제로는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쓰면서도 마치 그것이 공정하고 냉정한 학자의 자세인양 자랑삼는 오늘날의 많은 역사가들도 랑케와 마찬가지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유시민이 사마천 다음으로 치켜 세운 역사가는 맑스다. 맑스에 대해 유시민은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에게 역사란 단순히 기록과 관찰과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이 부둥켜 안고 가야 하는 삶의 일부"였다. 이런 점을 잊지 않고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을 살핀다면, 우리는 자연 법칙과 닮은 그의 냉정한 이론과, 그가 결코 감추려 하지 않았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애증 가운데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니는 것들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유시민도 대한민국의 평균적 지식인답게 일제 군수 출신 자칭 역사가인 문정창의 덫에 걸려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제가 조선의 역사책을 닥치는대로 압수하여 불태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식민사관이 주장하는대로 사대주의 때문에 조선이 멸망했다는 관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민족주의에 대한 오해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전세계 식민지, 반식민지 종속국의 수억 민중의 민족주의는 유럽인이 침략한 결과로 생겨났다. 이들의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평화주의적이고 방어적이다.
유시민은 글의 앞부분에서는 역사학자란 권력에 종속된 비겁한 존재라고 비아냥댔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일제강점기 실증사학자들을 비난하면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의 실증사학은 일제의 억압이라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이자, 역사적 사실을 나름대로 해석해야 할 역사가 본연의 임무로부터의 도피이기도 했다.
당연히 이런 비난의 결과는 이런 결론을 이끌어낸다.
우리나라의 역사학이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식민주의 역사학의 잔재를 말끔히 털어내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시민은 역사의 심판과 현실의 재판을 구분하지도 못한다. 아래 이야기는 그야말로 가소로운 이야기에 불과하다.
뉘른베르크와 동경의 전범 재판을 보면 역사의 심판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그 심판은 전적으로 합리적이지도 않을 아니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의 뒤범벅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재판관들이 역사가라 불렸던 말인가? 근본적으로 역사가들을 믿지 않는(그가 이 책에서 칭찬한 역사가는 사마천, 맑스, 토인비 뿐이다)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의 심판을 과거의 사건에 대한 역사가의 평가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중략) 역사가의 평가란 기껏해야 펜과 잉크로 종이 위에 쓰는 말에 불과하다.
이 책에 나오는 세세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는 따로 적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불필요하게 길게 글을 썼다. 책을 읽고 이처럼 불쾌한 느낌을 가진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다.
[추가]
조금 더 부연설명하자. 역사가들은 자신들이 시대적 한계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전근대적인 역사가들의 시대는 예전에 끝난 상태다. 따라서 어떤 역사가도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이처럼 역사가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마치 역사가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독자들을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 리얼리즘의 승리가 나타나는 것처럼, 이 책도 역사가들이 역사를 재구하기 위해서 기울여 온 노력을 소개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드러낸다. 역사에 대한 불신, 특히 한국사에 대한 불신이 없었다면 이 책은 매우 다른 모습을 가졌을 것이다.
[추가2]
진짜 역사학자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법이다.
어느 시대의 역사가들도 역사적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 적은 결코 없었다. 지나간 과거의 사실을 규명함으로써 역사의 진리를 구현하는 일이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역사가들은 그들의 역사서술이 문학적인 허구와는 다르다는 확신을 가졌다. 역사주의자와 현재주의자들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든 간에 그들의 역사서술이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다는 원칙은 포기하지 않았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 김기봉)
덧글
유시민이 맘에 드는 건 특전사 풀어서 멧돼지 잡아준다는 공약 말고는 하나도 없네요.
그 원전들을 보고
거기서의 오류와 자가 당착을 나중에 알고 치를 떤 1인 -_-
유시민은 황우석 사태 때부터 상당히 오만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는데, 초록불님의 리뷰를 보니 웃음만 나오는데요...
...지금은 나아졌으려나요..
그리고 사마천과 김부식은 비슷한 면(사학적 측면)이 많은데...무슨 소리인지... ???
사마천 이후의 사학이 무조건 권력과 무조건 붙었다? 에휴.....중국의 역사학과 역사서술이 어떤지 모르는 수박 겉핥기네여. 중국사학사 개설서나 입문서라도 보지 못한 듯....
서양의 그리스 로마나 중세시대의 역사서술은 산문 형식이 강했고, 중국의 경우 사마천 이후부터는 전문적인 학자들의 저술이죠. 학자들의 저술은 이해하기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게 사실이죠. 서양은 근대에 들어와서야 사마천 시기의 사학에 근접할 수 있었지요.
......아, 그래도 민주신당(이젠 이 이름 못 쓰겠습니다만...)엔 인터넷 홍위병 같은 건 없으니 괜찮을까요.(...)
유시민의 '나댐'을 알아봤습니다.
뭐, 이미 이전부터 정평이 나긴 했지만...
회색하늘님 / 선거 이야기는 한 자도 없는 걸요, 뭐.
(다른 편은 거부감이 들었지만 대장정편은 이상하게 끌렸던.....)
머미님 / 시간날 때 포스팅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인기를 끈건 뭐 단 한가지 이유이지요. 성에 대해서 극히 억압된 환경에서 자라난 분은 여성의 속옷이 약간만 나와도 당혹합니다. -_-;;; "북한은 개찌질이 나쁜놈"이라고 배운 분들은 북한의 일반적인 삶에 대한 선전물만 봐도 무언가 정체성의 혼란을 가지죠. 이 책도 그런 연장선에서 인기를 얻은겁니다.
사마천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의 조류인 미시사, 일상사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날학파로 대표되는 사회과학적 역사관은 정치사 중심의 역사에 대한 대안으로 주변 지리, 경제적 상황 등 사회 전체 구조를 중심으로 과거를 분석하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렇게 구조를 강조할수록 정작 과거의 '인간'은 매몰되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부구조를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는 미시사와 일상사가 각각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등장하게 되었는데 사마천의 '열전'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거죠.
저는 유시민씨의 책이 1990년대 역사학의 조류에 대해 짧고 간략하게 잘 소개했다고 봅니다. 다만 랑케 이후 아날학파, 카,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포스트 모더니즘 부분만 느닷없이 내놓은게 문제랄까요. 자세한 내용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키스 젠킨스),'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강준만), '포스트 모더니즘과 역사학'(김기봉 외), 20세기 사학사(조지 이거스)를 참고하시길 권장합니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런 개념들은 서양사학계에 이미 정착되었고, 국내 사학계에도 활발히 수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시민은 그런 점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제 이야기인 것이죠. (분명히 알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권해주신 책 중 [20세기 사학사]밖에 보지 못했으나, 이 계통으로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김기봉) [미시사와 거시사](위르겐 슐룸붐 편)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피에르 노라 편) [역사학을 위한 변론](리처드 에반스) 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쓰여졌던 80년대는 또 워낙에, 역사의 실증보다 사관이 더 앞서나갔던 시대니까요.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시절이기도 하구요. 그걸 욘왕사신기나 환단고기와 비교한 건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차라리 비교를 하려면 북쪽의 역사와 비교해보는 것도 - 북에선 한국의 근대를 무려 통일신라 이후로 놓 [...]
태왕사신기나 환단고기와는 뭘 비교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에 그런 비교는 없습니다만.
욘왕이나 환빠와의 비교는 댓글에서 본 겁니다. 댓글에 그런 비교가 있습니다.
태왕사신기나 환단고기와 비교한 글은 댓글에도 없습니다만... 유일하게 야스페르츠님의 댓글에 환독에 버금간다는 말이 있군요.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글도 아닌데다가, 제게 할 이야기도 아니죠.
이 책의 정조(?) 80년대의 유시(?) 이런 말이야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6월 항쟁과 총파업을 언급하는 것이 이 책이 쓰여진 연대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사학도라 하셨는데,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사학도의 사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