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사신기가 나오면서 또 한번 광개토대왕에 대한 조명이 일어날 것 같다.
바보 김모 피디는 "역대 왕 들중에 유일하게 영토를 확장시킨 왕이 광개토대왕"이라는 망발도 서슴지 않는다.
"어? 그렇지 않나?"라고 말할 분이 있다면 이런 점을 어찌 생각하실지...
어디, 누굴 한번 이야기해볼까?
신라 5대왕 파사 이사금.
재위 23년(102) 음즙벌국, 실직국, 압독국 정벌.
26년(105) 실직국 반란 정벌.
29년(108)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 굴화아촌 정벌.
파사왕 생전에 신라의 영토는 몇 배로 불어났고, 7국 1촌을 정복했다. 김모 피디의 머리 속에는 신라 왕은 우리나라 왕이 아닌가?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다른 나라를 멸망시킨 신라왕은 유리, 탈해, 파사, 지마, 벌휴, 조분, 첨해, 법흥, 진흥, 무열, 문무왕 등 11명이나 된다. 그럼 백제는?
시조인 온조가 이미 마한을 멸망시켰다고 하며, 일본서기에 따르면 성왕이 또 여러나라를 정벌했다. (이 나라들을 전남 지역의 마한 잔존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고구려는? 광개토왕 이전만 살짝 훑어보자.
동명성왕 - 비류국, 행인국, 북옥저.
유리왕 - 양맥.
대무신왕 - 부여, 개마국, 구다국, 낙랑국.
태조왕 - 갈사국.
이렇게 보면 한 나라도 멸망시키지 못한 광개토대왕이 외려 우스워보일 수도 있다. 저 앞선 왕들이 넓힌 땅보다 광개토대왕이 넓힌 땅이 넓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본래 밑천이 없을 때 그 밑천을 만드는 게 더 힘든 법이다.
고려 왕들은 어떤가?
신라말, 우리나라의 북방 한계선은 평양 확보에 그치고 있었다. 태조 왕건 때 이미 청천강 선까지 영토를 확장했고, 정종-광종에 걸치며 서여진(압록 여진, 해빈 여진)을 밀어내며 청천, 대령, 구룡강을 따라 성을 구축해 나갔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거란 침공 때 서희가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고려 영토로 인정하게 했다. 이곳이 그러면 거란의 영토였느냐? 천만의 말씀. 이곳에는 여진족이 살고 있었다. 고려가 여기에 6주를 설치했다는 이야기는 여진족을 복속시키거나 쫓아냈다는 이야기다.
이 강동6주에서 함흥 아래에 있는 도련포까지 쌓은 장성이 바로 고려의 천리장성이다. (사실 이 부분의 축성은 좀 복잡한데, 그런 건 생략한다.) 여기까지가 고려 전기 영토인 셈인데, 신라로부터 물려받은 것보다 영토를 넓혔다. 그럼 고려왕은 역대 왕에 안 속하나?
고려 예종은 윤관을 보내 9성을 축조하게 하고 함경남도에서 함경북도에 이르는(학자에 따라서는 연해주에 이르는) 영토를 개척했다. 그리고 대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중요한 영토 확장이 예종 때 있었다. 예종 11년(1116) 거란과 금이 [보주]에서 충돌했다. 보주는 지금의 의주다. 고려가 강동6주를 개척할 때 거란은 보주를 차지한 상태였다. 우리는 흔히 서희의 담판으로 압록강 이남이 고려의 영토로 확보되었다고 배우지만, 실상은 거란이 보주를 차지함으로써 압록강 이남에 거점을 확보한 상태였던 것이다.
고려 입장에서는 이야말로 목의 가시였다. 고려는 거란과 금이 보주에서 충돌하자 어부지리를 노려 보주에 무혈입성했다. (잡다한 과정 과감히 생략) 금은 거란을 완전히 정복한 후 보주를 돌려달라고 고려에게 말했다. 그러나 고려는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잘 해결해서 보주를 자국 영토로 확정시켰다. 이로써 압록강 하류를 완전히 고려 영토로 만들 수 있었다.
그후 고려는 몽골의 침입으로 북방 영토를 대거 상실한다. 한때 황해도의 자비령에서 강원도 북부의 철령 이북을 모두 몽골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공민왕대에는 압록강 하류 선은 확보했지만 여전히 철령 이북은 몽골의 지배 아래 있었다. 공민왕은 영토 수복에 나서서 북부 영토를 훨씬 더 많이 팽창시킨다. 지금의 평안북도, 함경남도 대부분을 이때 점령했다. (강계-갑산-길주 선 확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명이 건국하면서 명은 몽골의 초기 영토였던 자비령에서 철령 선을 명의 영토로 반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고려 정부는 이에 반발하여, 명 원정군을 파견하는데, 이 군대의 총 지휘관이 바로 조선 태조 이성계다.
우리는 흔히 고려의 요동정벌이라고 하면 이성계가 원정군을 이끌고 갔다가 돌아온 것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것이 처음 정벌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는 이미 요동을 정벌한 바 있었다. 그것도 바로 이성계에 의해서.
이성계는 공민왕 18년(1369) 12월에 동북면원수가 되어 서북면원수 지용수와 함께 요동에 있던 동녕부를 공격하여 함락시킨다(기병5천, 보병1만). 공민왕 19년(1370) 11월에는 요양까지 무너뜨리고, "요하 이동은 본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기까지 한 것이다. (아, 이거 쓰다보니 포스팅이 길어진다... 지루하신 분들 죄송...)
그러나 이성계는 이 전쟁을 통해 요동의 땅이 그리 탐낼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식량이 모자라 군졸이 모두 아사할 뻔 했으니까. 이성계는 요동에 거주하던 고려인 2,300호를 이끌고 귀국했다.
위화도 회군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정리하자. 아무튼 이성계는 요하 이동이 본래 조선의 것이라는 생각을 놓아버리지는 않았다. 이때문에 후일 정도전과 함께 요동 정벌을 준비했으나, 태종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권좌에서 물러나면서 요동 정벌 계획은 완전히 끝났다.
명은 영락제가 즉위하면서 또 철령 이북의 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특히 영락제는 건주위를 설립하여 조선 동북방의 여진족을 자신의 휘하에 넣었다. 이는 여진을 거느리고 있던 조선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동북 여진에게 대규모 하사품을 내려 다시 우리쪽으로 회유하는 한편,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철령 이북의 땅은 우리 것임을 영락제에게 주장했다. 결국 영락제는 철령 이북 땅을 반납하라는 명을 철회하고 만다.
특히 이 인정으로 인해 조선은 두만강 유역까지 북진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세종 대에 이루어진 사군 육진 개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4군 6진 개척 이야기는 여러분 생각보다 재미난 면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한번 포스팅... 언제?)
4군 6진 개척이 빈땅에 깃발 꽂듯이 진행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나마 북방에서 살만한 땅이기에 개척된 것이고, 이곳을 빼앗긴 여진족은 집요하게 영토 회복에 나섰다. 조선은 성종 대에도 두 차례나 북방 토벌군을 발진시켰으며, 선조 대에도 신립이나 이순신이나 늘 전투를 거듭하는 북방에서 단련되었다.
흔히 조선을 무력으로 얕잡아 보는 사람이 많지만, 오늘날의 국경선은 조선이 개척한 것이고 이것이 피 없이 공으로 얻어진 것도 아니다. 더 발전한 무기들과 전략 전술을 가진 집단과 피를 흘리는 싸움 끝에 얻어낸 것이다.
광개토대왕을 칭송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다른 선조들을 깎아내리면서 광개토대왕을 빛나게 하는 것은 넌센스에 불과하다. 또한 김모 피디에게 제대로된 역사를 전달하지 못한 역사학계도 더 반성해야 할 것이다.
덧글
그냥
"이렇겟지? 이럴거야"
하고 만든 판타지드라마.
* 고구려군에 대해서 포스팅 준비하고 있는데 결과물 나오면 틀린 데 있는지 봐주세요 ^_^;
다른 것보다....
대조영 제작진들은 저 말을 들으며
'..그럼 우리가 만든 건...?'
이러며 한숨쉬고 있을지도;;
내가 지금 가진 재산이 10억이다. 그런데 원래 우리 집안 재산은 100억이었는데 그만 고조할아버지때 망해서 증조할아버지는 겨우 5억 받았다. 이거 불려서 할아버지때 7억, 아버지 때 10억 된 걸 물려받았는데, 반은 지금 내 등에 칼 꽂은 동생놈이 가지고 있지만 그건 결국 내꺼다. 고로 100억의 재산을 회복하지 못한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는 모두 못난 사람이다.
....뭐 이런 심리 아니겠습니까?
각설하고 확실히 (그 피디 분께)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다른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교양 수준의 고찰은 좀 하고 들어갔으면 합니다. 물론 언론매체의 특성 상 축소 내지 방향이 잘못 전달된 것일 수도 있지만 글올리신 대로라면 안습의 확장을 느낀다는...
아신왕을 등장시키는 첫 시나리오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 시나리오도 막장이긴 마찬가지여서 광개토와 아신왕이 어린 시절 친구로 어쩌구저쩌구...로 나가다가 도무지 조화가 안 돼서 포기했다고 하더군요.
일본만 해도 제가 좋아하는 막말 메이지 유신사분야를 보면 역사 소설가,아마추어 역사가(비전공자)들이 만든 통설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면서 일반인이 읽을수 있는 역사서를 쓰는 전문역사가들이 상당히 많더군요.(그것도 상당수가 학계의 권위자)
잘못된 통설의 해악에 대해 학자들이 너무 무관심한듯 합니다.
위화도 회군과 4군6진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일반적인 통념으론 유일한 왕이라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얼핏 고려, 조선의 영토확장은 너무 당연해 보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역사 비전공자로서 이런 역사이야기는 언제나 재밌네요.
어쨌거나, 다른 나라도 영토를 넓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저도 고구려만이 제대로 된 정복군주들을 가졌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군요. 좀 더 생각해 보면, 한국 역사의 시발점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고조선이 차지하고 있던 땅도 당연히 점유하고 있어야 할 영토라는 생각 때문에, 고구려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영토 문제에 있어서 보다 낮은 취급을 당하는 것일지도…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 듯 합니다.
사무라이의 어원이라고 후라이를 치던데...이 말의 첫 출전은 제가 잘 압니다.
조선일보의 이규태씨가 이규태 코너에 쓴말이죠. 그게 첫 출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년도는 대략 80년대 중후반으로 기억합니다. 그게 한 두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하나의 정설로 자리 잡더군요.
싸울+아비의 이규태씨 마음대로 합성어가 이 단어의 정체인데, 이게 어느순간 고대에 존재했던 백제어가 되어버리더군요. 참 재미있습니다. 이런것도 통하는 한국사회가 말입니다.
제가 볼때는 학계의 잘못이라기 보다 역사와 판타지소설을 구분못하는 김모피디의 머리속에 가득든 똥이 가장 큰 문제같습니다.
싸울아비...도 그렇지만, 정비석이 소설에서 민비 이름은 [자영]이라고 한 이래, 민비의 이름이 민자영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죠. 뭐, 그런 겁니다. (우울)
같은나라가 내분되서 싸운듯이 여기는 풍토 때문에 그렇죠.
-ex) 신라가 중국의 힘을 빌러 한반도안의 삼국을 통일한것을 비난하듯이.
집안싸움도 아닌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그래서 신라나 벡제의 영토점령은 집안싸움이고 광개토 대왕이 한일만 영토 넓히기로 보이는겁니다
그럼 광개토 대왕이전의 고구려왕들이 한반도외의 영토를 점령한건?
저 사람들 머리속의 고구려는 처음부터 뒵따 큰 기마민족의 땅이였거든요
공인으로서 저렇게 말을 하다니....
우유차님 / 뭔 말은 못하겠습니까? ^^;;
요즘 인터넷에 보면 , 고조선 혹은 고구려의 피라미드가 시안에 있다고 하는 내용이
보이곤 하더라구요. 중국에서는 일부러 감추고 있다고도 하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사학계쪽에서 연구되고 있는게 없나요?
답변 미리 감사드립니다.
연구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지요.
http://orumi.egloos.com/2997881
에 자세한 반박문을 올려놓았습니다.
이렇게 한 줄은 적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