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책이 없어진 이유? 만들어진 한국사



흔히 우리나라 역사책이 없어진 이유 중 하나를 고구려 멸망 때 당나라가 역사책을 불태워서 그랬다고 한다.

이런 말의 근원은 어디일까?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그 진원지다. 이덕무는 [기년아람紀年兒覽] 서문에 이만운李萬運의 말이라 하며 이런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당나라 이적李勣이 고구려를 평정한 뒤에 동방의 전적을 평양에 모아놓고 그 문물을 시기하여 모두 불살라버렸고, 신라 말기에 견훤이 완산(전주)에 할거하면서 삼국의 문헌들을 모았는데 그가 패하자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이보다 올라가는 근거는 없다. 다만 신라 말의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근거로 잡을 수 있다.

고려사 성종 9년(990년) 12월
국가 초창草創의 처음은 신라新羅가 쇠망한 직후여서 문서文書는 불에 타고 도첩圖牒은 진흙땅에 버려졌으니 누대 이래로 분실된 책을 필사筆寫하고 빠진 것은 연서連書하여 왔다.


문서가 불에 탔다고 하는데, 이것이 견훤이 한 일일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견훤은 아들에게 급습을 당해 연금상태로 있다가 고려에 망명했다. 그가 언제 책을 불태울 시간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성종은 분실된 책을 필사하고 빠진 것을 연서했다고 밝히고 있지 않은가! 이미 유득공이 [해동역사] 서문에서 이 점을 비판했다. [해동역사]는 이덕무의 저 주장이 나오고 얼마되지 않아 편찬된 역사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혹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사적(史籍)은, 평양(平壤)에 있던 것은 이적(李勣)에게 모두 불탔으며, 전주(全州)에 있던 것은 견훤(甄萱)이 패하면서 모두 불에 탔다.”고 하는데, 이 역시 근거 없는 낭설이다.

위당 정인보는 진수의 [삼국지]에 우리나라 일이 자세히 기록된 것을 가지고,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입했을 때 고구려의 사서를 모두 빼앗아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으나, 이 또한 말이 되지 않는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 9년조에는 이문집이 [유기] 100권을 줄여서 [신집] 5권을 만들었다고 나오니까. 즉 그때 국초에 만들어졌던 [유기]가 남아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럼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사서를 불태웠다는 말의 근거는 어디일까? 이 말의 근원지는 신채호다.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의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1대사건]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선대 유학자들이 말하기를, 삼국의 문헌이 모두 병화에 없어져 김부식이 고거할 사료가 부족하므로, 그가 편찬한 [삼국사기]가 그렇게 엉성하다 하나, 기실은 역대의 병화보다 김부식의 사대주의가 사료를 태워없앤 것이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매우 강렬하게 작용해서 신채호가 같은 글에서 분명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그 글은 아무도 거론하지 않게 되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한 뒤에는, 전술한 옛 기록 등 모든 사료를 궁중에 비장하여, 다른 사람의 열람할 길을 끊어 자기의 박학자인 명예를 보전하는 동시에, 국풍파의 사상 전파를 금지하는 방법으로 삼은 것이다.

보다시피 신채호는 앞의 말과는 달리, 여기서는 불태웠다고 하지 않고 비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 정말 다른 사람은 열람 못했단 말인가?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수광(지봉유설 지은이)이 내각에 들어가서 고려 이전의 비사秘史를 많이 보았다 함이며,

저렇게 본 사람도 있기 때문에 신채호는 김부식이 사서를 없애버렸다는 말을 [조선상고사]에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삼국사기]가 후세에 남은 것은 몽골 점령기에 몽골이 사대적으로 만들어진 [삼국사기]는 용인하고 다른 책은 억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 고려로부터 전해오던 고서들은 어찌 되었던 것인가? 신채호는 이렇게 말한다.

전대의 실록은 인간에 전포됨을 불허하고 규장각(춘추관을 잘못 쓴 것임) 안에 비장해 두었다가 임진왜란 병화에 모두 불타버렸다.

그럼 세조가 수거령을 내려서 분서한 사건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내가 정리한 적도 있지만(세조는 분서를 했는가? [클릭]) 신채호도 세조가 분서했다는 식의 바보같은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세조 분서설이 재야에서 나온 것은 분명한데, 누가 최초 발언자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일제 군수 문정창이리라.)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오히려 이런 말을 한다.

세조가... 조선문헌의 정리자로 자임하여 불경을 인쇄하고 유학을 장려하는 이외에도 사료수집에도 전력하여, 조선 역대 전쟁사인 [동국병감]과 조선풍토사인 [동국여지승람]을 편술하고 그 이외에도 허다한 서적을 간행하니, 비록 대단한 공헌은 없으나 미소한 공적은 있다 할 것이다.

위 링크를 보았으면 알겠지만 세조는 자주적인 사서 [동국통감]을 만들고자 했었다. 만일 세조가 자신의 뜻대로 [동국통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면 신채호의 평가는 상당히 올라갔을 것이다.

그럼 가끔 조선 태종이 분서를 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디에 근거하는 말일까? 역시 신채호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태종이 고조선으로부터 내려오는 비서인 [신지神誌]를 불태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조 태종이 유학을 중심하고 그밖에 일체를 배척하여 이단시하는 문서를 불태울 때, [신지]도 그때에 액운을 면치 못하였다.

이 말의 근거는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 태종 17년 12월 15일의 기록을 보자.

서운관(書雲觀)에 간직하고 있는 참서(讖書) 두 상자를 불살랐다. 풍속이 전조의 습관을 인습하여 음양 구기(陰陽拘忌)를 혹신하여 부모가 죽어도 여러 해를 장사하지 않는 자가 있었다. 임금이 박은(朴訔)·조말생(趙末生)에게 명하여 서운관에 앉아서 음양서(陰陽書)를 모조리 찾아 내어 요망하고 허탄하여 정상에서 어그러진 것을 골라 불태웠다.

태종이 불태운 것은 저런 음양서=역술서지 역사서가 아니다. 태종이 [신지]를 불태웠다는 말은 아무 근거가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더구나 태종이 태운 것은 서운관이 보관한 두 상자에 불과한 분량이다. 민간의 책을 수거하거나, 금서령을 내린 것도 아니다.

덧글

  • 이준님 2007/09/22 04:34 #

    1. 뭐 그런 논리라면 서양에도 있지요. 서양의 고대의 비밀을 집대성한게 누마왕(로마 건국초기의 왕)이었고 누마의 무덤이 홍수에 노출되어 그 서책에 발견되자 세상에 알려질만한게 아니라서 원로원이 태웠다 -_-;;;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그 "비밀"이라는 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때도 비교로 남았으니까요 -_-;;;; 이런 비슷한 논지로 보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떡밥도 있습니다.
  • 악질식민빠 2007/09/22 08:09 #

    M선생의 또 다른 대힛-트작 「우리 역사가 축소된 10가지 이유」를 모르셨나염 (...)
  • 야스페르츠 2007/09/22 09:19 #

    다빈치코드, 성혈과 성배 등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기독교와 교황청의 분서(?) 사건도 있죠. 세계 어디에나 이런 음모론은 존재하나 봅니다.
  • 슈타인호프 2007/09/22 10:22 #

    실제 의도적인 분서가 없지는 않았죠. 진시황의 분서 사건이야 보통 알고 있는 것과는 양상이 좀 다르지만 분명히 있긴 있었고, 스페인인들이 신대륙에서 저지른 분서 사건은 정말 지독했고...
  • 초록불 2007/09/22 10:29 #

    슈타인호프님 / 알고 있겠지만 그 두 사건 모두 완벽하게 책을 없애지 못했죠. 그리고 두 사건은 모두 그 사건에 대한 명백한 사료들이 존재하는 반면, 우리나라 역사책 실종 사건에는 "카더라" 통신만이 난무한다는 거...
  • 현묘 2007/09/22 11:21 #

    이러다 또 초록불님 매국노,쪽발이,화교로 몰릴수 있겠습니다. 수틀리면 이놈들은 화교로 도장을 찍을려고 하니원...
    그냥 사견입니다만...모택동이가 다시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한국판 문화혁명 잃으키는건 문제도 아닐겁니다. 홍위병이 될 놈들이 널리고 널렸으니 말입니다.
  • 초록불 2007/09/22 11:37 #

    현묘님 / 그따위 이야기는 겁날 것도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수록 환빠들이 스스로 얼마나 추악한 인간인지를 증명할 뿐이니까요.
  • 잠본이 2007/09/22 12:58 #

    오해와 거짓말만 난무하고 실태는 묘연하니 수수께끼는 더해 가기만 하는군요 OTL
  • dunkbear 2007/09/22 13:03 #

    쓰여졌다고만 알려져 있지 막상 전해지지 않는 역사책들의 운명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마치 무슨 조직적인 음모라도 있었던 것처럼요... 초록불님 덕분에 조선총독부에서 우리나라 고서 20만권을 태웠다는 것도 근거없는 얘기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대부분의 경우 책들도 상식적인 선에서 유실되거나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를 들어 전쟁으로 소실되거나 약탈되어졌을 가능성, 관리부실로 책이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경우, 당시에는 중요하지 않은 저서로 여겨져서 소홀히 다루다가 사라지는 등 오늘날에도 특정 책자들이 희귀본이 되거나 자취를 감추는 등의 상식적인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예전에 어느 대학도서관에서 상당량의 오래된 책을 폐기하려고 한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과거에도 그런 일이 충분히 있었을 수도 있죠. 지금이야 엄청나게 귀한 자료가 되겠지만 당시에는 흔해빠진 역사책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중요성을 간과하고 소홀히 했을 수도 있겠구요.

    특히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목판 등 활자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필사본으로 카피를 해야했을 것이고 당연히 그 수도 많지 않았겠죠. 다다익선, 물량공세라는 표현처럼 십수년 전에 몇만부씩 찍어내던 베스트셀러도 요즘에는 찾으려면 눈에 불을 켜야할 정도니 과거에는 오죽했을까요? 물론 그런만큼 과거에 우리 조상님들은 책을 소중히 간직했겠지만 그런 노력에도 한계가 있었겠죠.
  • 초록불 2007/09/22 13:18 #

    dunkbear님 / 맞는 말씀입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유도 이 책들을 여러차례 다시 간행했기 때문입니다. 왕조실록이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 이외에는 모두 불타서 없어졌던 사실을 생각해 보면 답이 자명합니다. 그나마 전주 사고의 실록도 목숨을 건 선비들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죠.

    http://orumi.egloos.com/1819496

    위 글도 한번 읽어보세요.
  • 질유키 2012/05/20 13:53 #

    전근대엔 지금과 달리 사진,동영상,아카이브같은 기록,보존 기술이 딸렸기 때문에 지금보다 기록이 부실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온갖 추측들이 음모론이 됩니다.

    다만 문제는 일부가 성급해서 그걸 증명된 사실처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중에 환빠들은 자신이 바라는 과거만을 진실로 믿는다는 점에서 성급해서 음모론을 사실화한 경우가 아닙니다.
  • dunkbear 2007/09/22 14:51 #

    링크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왕조실록들도 참으로 기구한 역사를 거쳤었네요...
  • 한단인 2007/09/22 23:56 #

    곰곰히 생각을 해보다 보니.. 신채호가 저런 오해를 할만하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려사 김위제전에 인용된 신지비사의 내용은 도참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 구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고려사 편찬에서 김위제의 열전 작성 중에 궁중에 비치된 신지비사를 참조하거나 고려사 초본을 쓰는데 참고했던 외부 서적을 서운관에 보관했다라고 단재가 가정했다면..신지비사의 내용을 단순한 도참 서적이 아닌 역사 서사시(?) - 동명왕편과 비스무리한? - 파악하고 있던 단재는 태종의 음양서 분서를 전형적인 '비유교적 요소의 배척'이라는 것으로 생각을 한게 아닐까요?

    물론 실제로 도참 서적 목록에 신지비사가 들어갔느냐 아니냐와 신지비사가 단순한 도참 서적인가 아닌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요. 신지비사 원전이 안나왔으니 알게 뭐람? 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瑞菜 2007/09/25 21:15 #

    마치 장미의 이름을 방불케 하는군요.
  • 아메바기억력 2007/11/29 19:09 #

    이 나라는 너무 음모라는 이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들'이 말이지요.ㅎㅎ
  • 현묘 2007/11/29 22:53 #

    신채호는 그냥 독립운동가일 뿐이지 학자로서는 영 아닙니다. 조선상고사만 해도 다분히 감상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서술해놨더군요.
    예를 들자면, 김유신의 전공은 과장되었다고 말하면서 근거로 내세운것이 계백,복신등과 같이 우수한 장군이 있었는데, 김유신이 전공을 세울수 있었겠느냐는 식의 서술이더란 말입니다.
    게다가 김유신의 군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깍아 내리면서 하는 말이 이웃나라의 평화를 어지럽힌 음험한 책략가일뿐이라고 하더군요.
    전쟁을 치루는 군 지휘관이라면 당연히 적을 속이는데 능해야 하는것임에도 그것이 마치 잘못된것인양 말하는게 어린애 같다는 생각조차 들더란 겁니다.
    그냥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방해한 김유신에 대한 개인적인 미움이 반영된것 이상으로는 도저히 볼수가 없었습니다. 신채호의 생각은 요즘 흔히들 보는 알사탕 빠는 어린애들이나 환단고기 매니아들하고 크게 다를바 없는 생각이던데, 일제에 국권이 침탈된 당시 시대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못했기 때문이란 식의 터무니 없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었습니다.
    요즘은 한국이 일본과 미국을 능가하지 못하는 이유가 고구려가 통일 못했기 때문이란 인식이 깔려있던것 같던데 말입니다. 그런 애들을 보면 알사탕이나 더 빨아라고 말해주고 싶어집니다.
  • 질유키 2012/05/20 13:42 #

    일제에 국권이 침탈된 당시 시대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못했기 때문이란 식의 터무니 없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었습니다.

    -->영토만 넓으면 강국인 줄 알기에 고구려가 강국인 줄 알고 있습니다. 영토만 넓어 강국이라면 캐나다, 호주도 강국입니다. 참고로 저런 오류를 '선후와 인과를 혼동하는 오류'라고 합니다.
  • 초록불 2007/11/30 01:49 #

    현묘님 / 신채호가 처한 환경의 한계와 역사학을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이해해야죠. 비록 신채호가 오늘날 환빠의 비조격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신채호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의 학자였고, 말씀하신 바와 같은 관점도 후일에는 결국 철회되어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던 거죠. 그의 올곧은 성품을 볼 때, 자신의 주장에 불확실한 면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런 민족주의 사상이 결국은 제국주의와 다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무정부주의로 나아간 것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 현묘 2007/11/30 02:41 #

    초록불님/ 네 무슨 말씀인지 알고 있습니다. 단지 환빠들이 그 당시 시대에 대한 이해도 없이 신채호의 저서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그 꼴이 한숨이 나와서 한말입니다.
  • 횔라리오 2008/07/20 13:25 #

    현묘님 / 신채호선생님보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팔아먹으며 자신들의 입맛대로 역사를 왜곡한 태백교도들에게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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