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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나라를 아세요?
흑백나라를 아세요?

악한 사람이 벌받지 않고 착한 사람은 고생을 하며, 약은 사람은 득을 보고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손해를 본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천국으로 흑백나라를 떠올리곤 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하얀 것은 착하고 선하고 좋은 것이며, 검은 것은 나쁘고 악하며 흉측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마세요. 흑백나라라고 해서 흑과 백 딱 두가지만 있는 나라는 아닙니다.

착하고 선하고 좋은 것은 한가지 뿐이지만 나쁘고 악하며 흉측한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는 법이니까요.
부모님 말씀을 안 듣는 것과 다른 아이의 물건을 빼앗는 것은 둘 다 나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나쁜 일은 아니지요.
흑백나라에는 나쁜 일을  255가지로 분류해 놓았답니다.


이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색을 버려야 합니다.
버리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이 나라에 있는 커다란 마법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주기만 하면 됩니다.
거울은 그 사람의 색깔을 모두 빨아들이고 255단계의 검은색으로 만들어 준답니다.


그럼 이제 흑백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흑백나라의 국민이 되면 흑백나라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법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 나라에는 한가지 법밖에 없으니까요.


"하얗게 되자!"

나쁜 검은색을 모두 없애고 하얗게 되는 것이 이 나라 국민들이 지켜야 할 법입니다.
정말 좋은 법이지요? 하얗게 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니까요.
그래서 흑백나라는 풍경도 깨끗한 하얀 색이랍니다.


씨도 색깔이 넘쳐 흐르는 자기 나라에 지쳐 흑나라로 이민을 갔습니다.
도대체 눈앞이 어지럽고 무엇을 따라야 할지 알 수가 업는 나라였으니까요.
그런 나라를 버리고 가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거울에 몸을 비추고 입국 자격을 얻었죠. 이름도 거무튀튀 씨로 바꾸었습니다.

흑백나라에 처음 들어간 거무튀튀 씨는 매우 창피했습니다.
자기처럼 몸이 검은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부끄러워하자 검은 색이 좀더 짙어졌습니다.
흑백나라 국민들이 눈을 흘기며 지나갑니다.

하지만 거무튀튀 씨는 금방 흑백나라에서 사는 요령을 알아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비결이었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다른 사람과 같은 시간에 잠을 자고.
다른 사람과 같은 방송을 보고, 다른 사람과 같은 신문을 보고.
다른 사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흉을 보고.

그러자 점점 거무튀튀 씨를 흘끔흘끔 보던 사람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무튀튀 씨도 허여멀건 씨로 이름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허여멀건 씨는 좀더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홀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할수록 허여멀건 씨는 점점 더 하얗게 변해갔습니다
.
그리하여 허여멀건 씨는 희끄무레 씨가 되었습니다.

희끄무레 씨는 세상 일에 점점 관심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비난하고 흉보는 일도 귀찮아졌습니다.
어차피 누군가가 거무튀튀한 사람들에게 눈길을 흘기고 있겠지요.
그게 꼭 희끄무레 씨일 필요는 없을 겁니다.
희끄무레 씨는 아무 일도 결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니까요.

그리하여 한때 씨였다가 거무튀튀, 허여멀건, 희끄무레였던 그 사람은 이제 이름이 없어졌답니다.

드디어 그 사람은 자신이 완전히 하얗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풍경과 완벽하게 똑같은 하얀색이기 때문에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 사람이 이제 진짜 행복을 얻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도대체 찾을 수가 있어야 행복한지 물어볼 텐데, 아무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여러분도 알록달록한 세상을 버리고 흑백나라로 가고 싶으세요?
그럼 우선 마법의 거울을 찾으세요.
어서 어서.


by 초록불 | 2007/10/26 03:03 | *.....비공개....* | 트랙백 | 핑백(1) | 덧글(19) | ▲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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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레몬섬 at 2007/10/26 06:41

아아하.
Commented by 레몬섬 at 2007/10/26 06:42
......앗 순위권이구나! 정신이 번쩍 드네요
(이상한 감상평이다)
Commented by 언에일리언 at 2007/10/26 06:53
어른을 위한 동화인가요? 똑똑한 아이라면 이해할것도 같지만 어른들이 더 느끼는게 많을것 같군요.
Commented by 전설의실버팽 at 2007/10/26 08:59
초록불님 동화 덕분에 아침부터 썩쏘를 지을수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꿈바라기 at 2007/10/26 09:05
매번 느끼는데 초록불쌤은 우화와 동화의 달인이신듯...
Commented by 원두커피 at 2007/10/26 10:07
많은 걸 느끼게 되는 동화네요. 정말 동화의 달인이신 것 같아요. ^^
Commented by 카리스 at 2007/10/26 10:10
뭔가 애매모호한게... 아직 식견이 부족한가..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10/26 10:12
레몬섬 / 새벽에 리플을 다니까 당연히 순위권이겠다마는 내 블로그에서 그런 게 의미가 있겠냐?

언에일리언님 / 어제밤에 갑자기 지은 거라 아이들에게는 아직 못 읽혀봤습니다.

전설의실버팽님 /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았다는 말씀이시죠? ^^;;

꿈바라기 / 출간이 되어야지... 뭐...

원두커피님 /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10/26 10:12
카리스님 / 뭔가 애매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조나쓰 at 2007/10/26 10:16
마법의 거울조차 필요 없는 Natural-Born 희끄무레씨들 많습니다.
서로를 식별하는 구호로서 '개념글!'이 사용된다는 설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10/26 10:20
조나쓰님 / 하하...^^;;
Commented by 오잉 at 2007/10/26 10:41
흑백나라는 명확히 대한민국의 알레고리로 느껴지는데, 아이들에게 무척 유익한(!) 동화가 되겠군요. 이 짧은 동화에는 이야기 뿐 아니라, 텍스트 자체도 주인공이군요. 멋집니다!
Commented by solette at 2007/10/26 10:5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좋은 이야기 같습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10/26 11:12
오잉님, solette님 /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Delta38 at 2007/10/26 11:17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
Commented by 별빛수정 at 2007/10/26 13:07
정말 좋은 글이네요^^ 어떤 나라와 매우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요(...)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10/26 13:20
Delta38님 / 고맙습니다.

별빛수정님 / 그 어떤 나라는 저도 아는 나라 같습니다...^^;;
Commented by Neidhardt at 2007/10/26 19:20
어째 저도 아는 나라같기도 하고.. 썩소만 짓습니다 흐흐흐
Commented by 후회 at 2007/10/26 23:23
어서 새하얗게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서 제 존재자체도 의식하지 않은채 산것도 죽은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네요.

젊은이의 야망이고 뭐시고... 그냥 저리만 살 수 있어도 감사하는 재미없는 청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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