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여진을 정벌하다 - 1 *..역........사..*

1. 정벌전 이전의 간략한 사정

1055년(문종9년) 천리장성 완공.
1085년(선종2년) 완안부 영가盈哥(목종으로 추존) 추장이 됨
1102년(숙종7년) 완안부 고려와 통교. 이때 완안부는 간도에서 갈라전曷懶甸까지 세력 범위를 확장. 갈라전은 현 함경도 일대로 추정.
1103년(숙종8년) 우야소烏雅束(강종으로 추존). 장군 석적환石適歡을 갈라전에 파견하여 갈라전 부족들을 정복. 오수五水 일대 여진 족장 14명, 고려로 도주(1,753명 고려에 투항)
1104년(숙종9년) 1월 9일 관동북면행영병마사 문하시랑 평장사 임간林幹 출정 - 대패 (천리장성 안으로 여진군 침입)

이 전투는 좀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전투에서 맹장 척준경이 처음 등장하기 때문이다.

임간이 여진과 싸운 것은 2월이었다. 이들은 정주성定州城 밖에서 여진과 싸웠으니, 천리장성을 넘어서서 싸웠던 것이다. 이때 여진쪽 지휘관은 추장酋長 연개延盖와 지훈之訓(금사에는 지훈은 등장하지 않는다. 지훈은 석적환을 고려에서 부르는 이름일지도 모른다)이었다. 임간이 이들을 공격하자 이들은 접전에서 패배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임간은 공을 세우고자 무모하게 적진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역습을 당하고 황급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고려군은 장주長州에서 정주定州로 후퇴하여 천리장성의 관문인 선덕관宣德關까지 밀렸다. 이때 척준경拓俊京이 임간에게 달려와 병기와 개마介馬(무장한 말)를 요구했다.

척준경은 황해도 곡산 출신으로 곡산 척씨의 시조가 된다. 본래 그 지방 하급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학문에는 뜻이 없이 무뢰배들과 어울려 놀기만 하다가 숙종이 계림군 시절에 그 밑에 들어가 추밀원별가(樞密院別駕)라는 관직에 올랐다. 별가라 함은 품외관으로 밑에서 두 번째의 하찮은 자리다. 이런 자리에 있는 이가 달려와 병기와 개마를 달라고 한 것인다. 마치 동탁을 치기 위해 모였던 동맹군이 화웅에게 꼼짝 못하고 있을 때 관운장이 앞으로 나서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임간에게서 무장을 얻은 척준경은 적진으로 돌진하여 여진 장수 하나를 베어버리고 붙잡혀 있던 고려 병사 두 명을 구출하여 돌아왔다. 척준경의 활약에 고무된 다른 장수들도 정신을 차리고 여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척준경이 뒤로 돌아서자 여진군은 기병 1백을 보내 척준경의 뒤를 쫓게 했다. 척준경은 다시 여진병을 공격하여 적장 두 명을 사살했다.

이때 척준경과 함께 싸운 이의 기록이 특이하다. 대상大相 인점仁占이라고 나오는데, 이 대상大相이라는 관직은 본래는 태봉 시절에서부터 고려 초까지 고려의 벼슬로 사용된 것이지만 성종 때 관직명이 고쳐진 후로는 여진족에게 내려지는 벼슬 이름이었다. 즉 당시 고려군 안에는 여진족도 있었던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당시 여진족의 복잡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척준경의 무위에 눌린 여진군은 더 이상 고려군을 추격하지 못했다. 고려군은 간신히 성 안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척준경은 이 공로로 천우위녹사참군사千牛衛錄事參軍事를 제수하였다. 그러나 그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척준경은 어떤 일로 체포되어 죄를 받게 되었다. 이때 윤관이 그를 비호하여 죄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척준경은 윤관에게 충성을 다하게 된다.

이 패배에 놀란 고려 조정은 3월 4일 동북면행영도통에 윤관을 임명하여 출정케 했다. 금사에 의하면 이때 윤관과 싸운 장수는 석적환이었다. 고려군은 여진 병사 30여명을 죽였으나 여진군의 반격으로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는 대패를 하고 말았다. 결국 화친을 사정하여 간신히 물러날 수 있었다. 금사에 따르면 석적환은 기병 5백으로 고려군을 무찔렀다고 한다. 여진 기병의 위력에 놀란 윤관은 패전의 원인을 보병으로 기병과 싸운 것에 있다고 판단하고 장기적으로 대책을 세울 것을 건의했다.

숙종은 분노하여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음부陰扶(신령의 은밀한 도움)를 빌려 적도의 땅을 소탕하면 그 땅에 절을 짓겠나이다.”

이 화친은 고려 입장에서는 매우 치욕스러운 것이었다. 고려는 이전에 고려로 망명해 온 여진 추장 14명을 모두 송환해야 했다. 이때 포로로 잡혔던 고려 병사들 중 일부는 요나라로 도망쳤다가 요에 의해서 고려로 송환되기도 했다. 또한 천리장성의 일부분인 장주와 정평도 여진족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1106년(예종1년) 여진군 장수 지훈이 기병 2천을 거느리고 관 밖에 진을 친 뒤 화친 사신을 보냄. 화친 성립
1107년(예종2년) 여진족 동향이 수상하다는 보고가 올라옴. 예종은 숙종의 발원문을 꺼내 대신들에게 돌려보이고 길흉을 점쳐 출정을 결정

이때 점괘가 감지기제坎之旣濟였다고 한다. 이 괘는 일반적으로 상서로운 것으로 취급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감坎에서 중첩된 위험을 읽고, 기제旣濟에서 일의 완결을 읽어낸 결과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황태연, 정치사상연구 제11집 1호) 감지기제는 처음은 좋지만 끝이 흉하다로 풀이되기도 해서 결국 여진 정벌이 그렇게 진행되었음을 씁쓸하게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예종은 정벌군 17만을 편성하고 서경으로 향했다. 서경에서 위봉루威鳳樓에 올라 출정 장수들로부터 차례로 하례를 받은 뒤 원수 윤관과 부원수 오연총吳延寵에게 부월을 내렸다. 부월은 전시의 생사여탈권을 군왕으로부터 장수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이 전쟁에 임하는 고려 왕실의 의지를 보여주는 행사였던 셈이다. 예종은 원정 기간 동안 서경에 머물렀다.

원수 윤관은 이미 여진과 접전 경험이 있었고, 부원수인 오연총은 외교관이자 무장으로 요와 송 등에 사신으로 다녀온 바 있었고, 동북면병마사를 역임하여 여진족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때 나이 53세였다.

명을 받은 윤관은 “신이 일찍이 성고(聖考)의 밀지(密旨)를 받았고 이제 또 엄명(嚴命)을 받드니 감히 3군(軍)을 통솔하여 적의 진을 파하고 우리 강토를 넓혀서 나라의 수치를 씻지 않으리까.”라고 결의를 밝혔다. 신중한 성격의 오연총이 윤관에게 걱정되는 것을 말했으나 윤관은 그 말을 한 마디로 잘라버렸다. “그대와 내가 아니면 누가 능히 만번이나 죽을 땅에 나가서 나라의 수치를 씻으리요. 계책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또 무엇을 의심하느냐.”

결정된 계책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여진 추장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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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스칼렛 2007/11/24 23:42 # 답글

    오, 흥미로운 글입니다.
  • 耿君 2007/11/24 23:48 # 답글

    아... 소드마스터 척의 등장!
  • 제갈교 2007/11/24 23:54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초록불님. ^^
    에, 그나저나 여진이 나중에 금을 세운 건 언제적 일인가요?
  • 초록불 2007/11/24 23:57 # 답글

    스칼렛님 / 고맙습니다.

    耿君님 / 정말 멋진 인물이죠. 언젠가는 꼭 소설로 쓰려고 생각한다는...

    제갈교님 / 시작부터 스포일러를 물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 아롱쿠스 2007/11/25 00:03 # 답글

    그러고보면, 척준경도 꽤나 격동의 인생을 살았군요...
  • 다크엘 2007/11/25 00:12 #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朴下史湯 2007/11/25 00:27 # 답글

    오오 척사마... 이정도로 활약한 인물은.... 세계사에서도 드물지 않나요? ^^
  • 제갈교 2007/11/25 00:32 # 답글

    에...금의 건국이 스포일러였다니...ㅠㅠ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ㅠㅠ
  • 하얀까마귀 2007/11/25 00:37 # 답글

    탁준경으로도 읽는다고 하던데 어느 쪽이 옳은가요?
    척 노리스 형님이 생각나기 때문에 척준경으로 읽고 싶지만 말입니다. :)
  • 서군시언 2007/11/25 00:50 # 답글

    예전에 유금필 장군이 썼던 작전이군요.
  • 슈타인호프 2007/11/25 01:37 # 답글

    척준경...나중에 끝이 좀 안 좋았죠. 유감입니다.
  • 총천연색 2007/11/25 02:09 # 답글

    정말 흥미롭네요. +_+
  • 초록불 2007/11/25 09:58 # 답글

    아롱쿠스님 / 네, 격동의 세월을 살았죠. 본 시리즈에서는 척준경의 후반부는 다루지 않습니다만... (역시 언젠가는 포스팅)

    다크엘님 / 고맙습니다.

    朴下史湯님 / 비교해본 적이 없어서... (먼산)

    제갈교님 / 농담이었습니다...^^;; 맨 마지막 편에 나옵니다.

    하얀까마귀님 / 저는 늘 "척"으로 읽어서... 일단 사전에도 "척"으로 나오는군요.

    서군시언님 / 역시 스포일러를... ㅠ.ㅠ

    슈타인호프님 / 중간에 마도에 빠지기는 했어도 다시 제 정신을 찾은, 저는 여전히 멋진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총천연색님 / 고맙습니다.
  • 파파울프 2007/11/25 12:33 # 답글

    오우~ 소드마스터 척이 나오는 이야기로군요 ^^
  • 머미 2007/11/25 16:39 # 답글

    왕년에 유현종씨의 소설에는 '탁준경'이라고 나왔었죠.
  • 야스페르츠 2007/11/25 21:30 # 답글

    소드마스터 척은 참 소설이나 드라마로 만들기에 좋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죠... 그런데 그의 동료 장수 하나 때문에 TV드라마 제작은 불가능하다는.... (王字之 장군...ㅡㅡ;)
  • 초록불 2007/11/25 21:32 # 답글

    야스페르츠님 / 뭐 그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알고보면 우리는 흔히,

    빨리 "자지" 않고 뭐하냐, 라든가 심지어는

    "보지" 말고 얼른 "자지", 와 같은 말도 쉽게 쓰니까요.

    역사 인물 이름인데 뭐 어떻냐고 우기면 될 듯... (먼산)
  • 야스페르츠 2007/11/25 21:39 # 답글

    ㅋㅋ 그래도 사극에서 '왕자지 장군!!!' 하고 외치면 아주 충격적이지 않을까요...ㅋㅋ '자지 장군'도 마찬가지고...ㅡㅡ;
  • 초록불 2007/11/25 21:47 # 답글

    야스페르츠님 / 물론 사극에서는 "왕 장군"이라고만 해야겠죠...^^;;
  • 코끼리 2007/11/27 13:40 # 답글

    좋은글 담아갑니다.^^
    씽크코리아(thinkkorea.ktf.com)'블로그통신'으로 담아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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