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중흥에서 말로까지 2
그리고 얼마 안 가서 환Q의 소식이 역골의 규중에까지 퍼져나갔다. 본래 역사에는 관심도 없던 규중 사람들이 갑자기 환Q에게 열광하며 얼굴만 마주치면 반드시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한씨 댁 일곱째 아줌마가 환Q한테서 한민족 수메르 기원설을 들었는데, 단돈 90전밖에 들지 않았을 뿐이라고.
또 한당의 어머니도 - 일설에는 한명의 어머니라고도 한다. 고증을 요한다 - 어린아이에게 고구려 시베리아 경략설을 들려주었는데,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인데다가 겨우 30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들은 열심히 환Q를 쫓아다닌다. 민족의 뿌듯한 아시아 정복설에 대해서 듣고 싶었고, 광활한 대륙을 누비며 다른 민족을 무릎 꿇린 이야기도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전과는 달리 환Q가 각종 사료를 들고나와서 "이제 내가 주장하는 건 한단고기 같은 믿을 수 없을 수도 있는 책이 아니야, 나는 중국정사인 25사에 있는 것만 가지고 주장하고 있다고! 더구나, 성에서 가져온 이 자료! 천문학이라는 신학문이 증명하는 자료 앞에서 모두 버로우 해야지, 아암!"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기에 규중은 그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홀딱 넘어가고 만 것이었다.
한영감은 저녁 식사 시간에 화 영감과 토론한 끝에 환Q에게는 이상한 데가 있으니 우리 사료 창고도 잘 단속해야겠다, 그리고 환Q의 사료 중에 혹 쓸만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래서 가족회의 결과 25사 중 낙질된 부분을 환Q에게서 구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래서 환Q를 불러오게 하고 비싼 석유램프에 불을 켜고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환Q는 느지막이 나타나서 물건이 없다고 했다.
"25사 중에 낙질된 부분만 사려고 하는 건데, 네가 다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다, 다 팔리고 이제 없습니다."
"그 많은 책이 벌써 다 팔릴 리가 있느냐? 값을 더 받고 싶은 거냐?"
"다 팔리고 이제 삼국지 촉서가 한 권 남았을 뿐입니다."
"그거라도 가져오게."
한영감은 떨떠름했지만 별 수가 없어서 말했다.
"넌 이제부터 어떤 사료가 생기건 우리한테 먼저 가져와야 한다. 값은 섭섭치 않게 줄 테니까."
환Q가 승락을 하고 돌아서긴 했지만 정말 한영감의 말을 명심했는지는 영 알 수가 없었다. 한도령도 환Q의 이런 태도에 분개했다. 뭔가 수상하다고 이야기했지만 한영감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매는 제 둥지 밑의 먹이는 먹지 않는 법. 우리 창고 단속만 잘하면 돼."
하지만 환Q에게 심부름을 갔다온 한씨 댁 일곱째 아줌마는 다음날 환Q가 수상하다고 한씨 부자가 나눈 이야기를 역골에 퍼뜨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환Q를 높이 보지 않았고, 슬슬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입이 근질근질해진 환Q는 성에 가서 한 일을 스스로 폭로하고 말았다.
성 안에서 일단의 무리가 사료창고를 털고 있을 때, 그는 망을 보고 있다가 넘겨준 꾸러미를 들고 튀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성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 말은 환Q에게 매우 불리했다. 알고보니 그가 건져온 사료라는 건 다 남들이 연구한 2차 자료에 불과했던 것이고, 그 자신은 더 이상 연구할 생각도 없고, 심지어 원전을 보기 위해 노력할 생각도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환Q와 새롭게 논쟁을 벌였다. 환Q는 성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승세를 잡고자 했으나, 워낙 밑천이 얕은 데다가 그 자료들 자체가 날조된 것이라 논쟁만 붙었다 하면 개박살이 나는 처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Q는 논쟁 대상도 못 되는 놀림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시 경멸받게 된 환Q가 일거에 떠오를 일이 생겼다. 성 안에서 사료를 훔치고 25사를 바탕으로 환단고기가 아닌 새로운 주장을 내놓으며 일약 주목을 받았던 성 안의 혁명당이 역골로도 쳐들어 온 것이다. 그러자
환Q는 자기도 분명 그들과 함께 일했고 그들과 같은 부류라는 생각이 들어 들떴다. 최근 받은 홀대도 억울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거리로 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혁명이다! 대륙조선 만세! 대륙 피라미드 만세!"
역골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환Q를 바라보았다. 이런 두려움이 가득한 눈초리를 환Q는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더욱 신이 나서 걸어가면서 소리쳤다.
"그래, 뭐든 내가 갖고 싶은 사료는 다 내 거다! 내 맘대로 해석한다, 지화자! 좋을시고! 내가 좋아하는 제자는 다 내 것이다! 이제 와서 후회해야 소용없다! 다들 각오해라! 제왕학적 독법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나와라, 식민빠! 내가 만주원류고로 네 놈을 때려눕힐 것이다!"
환Q는 술을 마시고 뻗어 자면서 역골 사람들 중 자기 제자가 될만한 사람들을 고르는 흐뭇한 꿈을 꾸었다. 그는 일단 서양사에 보복을 하기로 했다. 새로운 시대니 내선일체, 동조동근! 가짜 왜놈을 만나 서양사를 혼내주자고 이야기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한영감네 한도령과 가짜 왜놈이 얼른 혁명당에 투신해서 그 일을 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환Q가 혁명당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혁명당은 한영감이 사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집을 털었다. 그걸 보면 한도령이 혁명당에 투신했다는 것도 거짓말인 것 같았다. 환Q는 그 일에도 한몫끼지 못한 것이 억울했다. 그런데 혁명당은 이런 약탈을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다.
당연히 좀도둑질의 전력이 있는 환Q가 걸려들었다.
"네가 혁명당을 사칭하고 한씨 영감집을 털었냐?"
서슬푸른 심판관이 물었다.
"전, 전 못 갔습니다. 그것들이 절 안 불렀습니다."
"왜 가지 않았지?"
"가짜 왜놈이 절 안 불렀습니다."
"터무니 없는 소리! 도둑 일당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면 용서해 줄테니 어서 불어라."
"저, 전 정말 모릅니다."
심판관은 붓을 건네주고 그 내용을 쓰라고 했다. 환Q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모, 못 씁니다."
"반항이냐?"
"저, 전 글자를 모릅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술렁였다. 온갖 유식한 척 하던 환Q가 사실은 까막눈이었다니!
"너같은 놈이 바로 우리 자랑스러운 민족사를 좀먹는 좀벌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고 다니다가 식민빠들에게 꼼짝도 못하고 반박 당해서 우리의 위업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 죄를 받아야 한다."
환Q는 수레에 태워져 저자거리로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와 환Q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이제 목이 싹둑 잘릴 것이 틀림없다. 그는 넋을 잃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제자로 삼고자 했던 오씨 아줌마도 구경나와 있었다. 이대로 역사의 진실을 한마디 입에 담지도 못하고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초에 한 신이 사백력에 있었으니..."
누군가가 군중 속에서 "잘한다!"라고 외쳤다. 환Q는 오씨 아줌마를 바라보았지만 오씨 아줌마는 환Q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환Q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뭔가 이야기 해 봐. 새로운 떡밥을 내놔 봐! 모두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환Q는 일생 동안 자기가 만든 떡밥은 하나도 없이 남의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죄로 죽으러 가다니! 이럴 수는 없었다.
"사람 살려..."
하지만 환Q의 입에서 그 소리가 나기 전에, 그의 두 눈은 이미 캄캄해지고 귀에서는 윙하는 소리가 났고, 전신이 가루처럼 흩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
혁명당은 환Q를 총살에 처했다. 그러나 그들의 위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은 중앙에서 내려온 정부군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역골 사람들은 환Q의 처형에 대해 별 이의가 없었다. 당연히 모두들 환Q가 나쁘다. 나쁘지도 않은데 총살까지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성 안의 여론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총살이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만한 것이 못 되고, 또 얼마나 시시한 사형수인가? 그렇게 오랫동안 거리로 끌려다니면서도 끝내 천부경 하나를 외우지 못하다니, 구경꾼들은 헛걸음만 쳤다고 불평들이 대단했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