耿君님 포스팅 댓글에도 달았지만 나는 그 강사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은 동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1. 이승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순간 정의는 죽었다?
해방정국에서 이승만은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노정객이었다. 대중이 그의 정체를 몰라보았다고 해서 정의가 죽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승만이 친일파 단죄를 미루고, 반민특위를 해산시키며, 사사오입 개헌을 성사시키며 영구집권을 노릴 때, 이 땅의 국민들은 결국 권력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를 무소불위의 권좌에서 쫓아냈다. 그것을 위해 죽음을 불사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떻게 이 땅에 정의가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수유리 4.19 묘역에서 외쳐보시지? 정의가 없다고.
2. 60년 동안 타락에 타락만 거듭해 왔다고?
자신에게 주어진 힘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혁명의 유산을 활용하지 못한 민주당은, 수십 년 후에 그 일을 똑같이 반복한 노무현처럼 권력을 빼앗기고 만다. 물론 박정희는 총칼로 그 일을 해치웠고, 이명박은 구라로 그 일을 해치웠다는 차이는 있지만. 그러나 인정할 건 인정한다는 그 윤리강사의 말처럼, 당대 군사쿠데타의 빌미가 주어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거다. 그리고 박정희가 한국 경제를 끌어올린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박정희가 "유신"이라는 황당한 명제 아래 영구집권을 노리고 긴급조치와 주권을 제한하는 헛짓거리를 하자 국민은 권력에 저항했고,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렸다. 부산과 마산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이제 사태가 수습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권력의 수뇌부 분열로 자멸한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재빨리 기회를 낚아챈 신군부가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정권을 잡았다.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로부터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 시작되었다. 87년 6월까지 대학생을 비롯해서 "정의로운 시민"들은 군부독재의 총칼 아래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런데 우리에게 정의가 없다고? 60년 동안 타락에 타락만 거듭해 왔다고?
3. 프랑스는 피의 숙청을 했으니 자랑스러운 나라고, 우리는 찌그러진 깡통인가?윤리강사는 태연하게 프랑스가 8천명을 죽였다고 이야기하던데, 실제 프랑스에서 얼마나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 정도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모를까? 그것은 린치(私刑)였기 때문이다. 정식 재판을 통해 단죄된 것이 아니라, 걸리는 대로 잡아죽였기 때문이다. 해방된 프랑스의 공간에는 법이 없었다. 감정만 있었을 뿐이다.
레지스탕스에 의해서 이처럼 약식처형된 사람들이 12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와중에 평소 아내에게 밉보였던 남편, 주위 사람들에게 원한을 샀던 변호사, 먹고 살기 위해 독일군에게도 몸을 팔아야 했던 창녀들도 수없이 처형당했다. 고발된 자에게는 변호할 기회 같은 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체포는 곧 사형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심한 경우 부역자로 지목된 여자는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두 명의 남자에게 윤간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기타 혐오스러운 다른 장면은 생략한다. 이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리니까.) 이것이 정의로운 숙청인가?
프랑스 역사학자 로베르 아롱은 3만에서 4만 명 정도가 윤리강사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피의 숙청을 당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이 편차는 1만에서 12만까지 벌어져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모르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민재판과 프랑스 정부에 의해서 정상적으로 처리된 부역자 재판을 구분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이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얄팍한 지성을 드러내는 서글픈 사례다.
그럼 프랑스에서는 왜 이런 "피의 숙청"이 일어났을까? 사람들이 왜 이처럼 미쳐 날뛰었던 것일까? 그것은 비시 정권 아래의 프랑스 민병대가 행한 "학살" 때문이었다. 부역자들, 특히 프랑스 민병대는 자기들에게 위협이 될만한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였다. 이 숫자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0만에서 20만 가까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프랑스 민병대에 의해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무덤에 아직 피도 마르기 전에 해방이 찾아왔던 것이다. 피에는 피로! 이것이 바로 변호도, 재판도 없이 고발만 있으면 사람을 잡아죽인 그 비극의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193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국내에서의 "레지스탕스" 활동은 거의 사라졌다. 따라서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 대량학살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피의 농도가 달랐던 것이다.
4. 정의를 외친다고 "따"가 되는 것이 아니다한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세상 일이란 게, 대개 비슷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떤 나라의 역사를 나쁘게 보려면 얼마든지 나쁘게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쁘게 본다면 또 얼마든지 예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정의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분명 있었다. 그리고 정의가 강물처럼 넘쳐흐르던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정의감이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 학원강사가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지 모른다. 하지만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에, 정말 붙잡혀가 고문을 당하는 악몽을 꾸면서도 기어이 스크럼을 짜고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오늘날 이 시점에서도 사람이 희망이고, 대중은 쉽게 움직이지 않지만 정의를 외면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정의를 외친다고 해서 "따"를 당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제대로 "정의"를 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역사를 통째로 비하하며 60년 동안 거지같이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비아냥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우리는 그런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만큼 노력해왔다. 노동운동을 위해 허름한 사글세 방에서 공장을 다니다가 갈라진 구들장 사이로 올라온 연탄가스에 그만 운명을 달리한 선배를 생각할 때, 줄줄이 굴비 두름처럼 포승줄에 묶여서 재판정에서도 구호를 외치다가 법정에서 퇴장 당하고말았던 친구들을 생각할 때, 정의를 위해서 인생을 희생했던 그 많은 친구들, 동료들, 선배들, 후배들을 생각할 때 나는 결코 이 학원강사의 비웃음 소리에 동의할 수 없다. 절대 동의하지 못한다.
[추가]
간단한 말도 이해를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좌절. 잠깐 풀이를 덧붙여놓는다.
해방정국에서 이승만은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노정객이었다. 대중이 그의 정체를 몰라보았다고 해서 정의가 죽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이 말은 말 그대로 읽으면 된다. 해방 정국의 대중은 이승만의 정체를 몰라보고 그를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노정객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아니, 이 말을 대체 어떻게 읽으면 이승만 찬양으로 읽을 수 있는 걸까? 과연 내가 글을 어렵게 쓰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