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갱스터 *..문........화..*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

지성파 흑인 배우의 대명사인 이 남자가 악역을 맡았더라.
그리고 형사 역을 맡은 이 남자는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살이 많이 붙었다.
영화는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는데, 과연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이 실화였을까 매우 궁금해진다. 내 생각으로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맨 마지막 장면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생략. 진짜 맨 마지막 장면을 말하는 거임.)

중간에 프랭크가 태국의 밀림에 들어갔을 때, 재밌는 이야기가 나온다. 쿤샤스런 인물과 만날 때, 이 지역은 중국 국민당에 포위되어 있다고 나온다.

"장개석이 승리했기 때문이지."

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장개석을 장계석이라고 쓰는 황당함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연대가 언제인지 알 수가 없어져서 어려웠다. 이 영화는 1968년부터 1976년까지의 일을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말미에 닉슨이 베트남 철수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다.)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 베트남전이 무대인 이 시기에 장개석과 국민당이 왜 등장하는지 당황스러웠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태국의 최북단인 치앙라이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국공내전 끝에 장개석의 국민당이 대만 퇴각을 결정했을 때 운남에 있던 국민당 93사단 1만 2천 명은 항복하지 않고 투쟁을 계속했다. 이들은 버마 밀림을 은거지로 삼고 계속 싸웠으나 버마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의 협공으로 1961년 태국의 치앙라이로 도주하게 되었다. (이들은 무려 12년간이나 게릴라전을 펼쳤다는 이야기다.) 태국 정부는 이들을 받아들여 공산당과의 싸움에 이용했다. 장개석도 이에 동의했다.

프랭크가 찾아갔던 곳은 이런 내력을 가진 땅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이 지역에 양귀비 재배를 통한 아편 공급이 활발하다는 것은 풍문으로 들어 알지만 이 이상의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른다. (이준님이나 알라나...)

영화는 전체적으로 밍밍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감독이 밍밍하게 영화를 만든 탓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화려한 액션 속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상실하게 하고 싶지 않은 이유였을까?

악당 프랭크와 형사 리치는 매우 대조적인 사람이다. 프랭크는 규칙적이고 사생활에 엄격한다. 영화 내내 프랭크가 바람 피우는 장면이나 사치를 하는 장면이 없다. 그가 아내 때문에 했던 유일한 사치에서 그는 결국 좋지 않은 결말을 보게 된다. 사촌에게도 요란스런 복장을 하지 말라고 충고할 정도다. 반면에 직무에서만 깨끗한 형사 리치는 사생활은 문란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눈만 맞으면 자는 것처럼 나온다. 결국 아내에게 이혼 당하고 아이 양육권까지 뺏길 처지에 놓인다.

리치가 프랭크를 잡아넣고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너는 미국에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성공한 흑인 사업가. 네 존재는 진보를 상징하고 그것은 안정적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심지어는 악당으로도 성공하면 안 되는 인종 차별이라니...

악당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는 위험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본래 안티 히어로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안티 히어로를 동정하고, 그가 성공하게 되기를 빌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러가지 여운을 남기게 된다.) 반면 특히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해당될 것 같지만, 사생활이 이처럼 개차반인 형사에게 히어로의 역을 선듯 주기도 애매하다. 더구나 한국적 조폭 영화에 길든 사람이라면, 그가 아이의 대부와 나누는 대화에서 의리도 없는 냉혈한을 읽어냄으로써 더욱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의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누구 하나에게 집중할 수 없이 어정쩡하게 흘러간다. 확실한 악역은 뉴욕 마약특수반의 트루포 형사뿐이다. 하지만 존재감이 약하다. 결코 쓰리 탑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는 어디에나 있는 쓰레기 중 좀 덩치 큰 쓰레기로 등장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마지막에 자막이 올라갈 때서야 감독이 리들리 스콧이라는 걸 알았다. 감독이 재기가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주책스럽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 것일까, 고민스러웠다.

덧글

  • 동사서독 2008/01/16 02:48 #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는, 시나리오를 자기 자신이 쓰지 않기 때문에
    에일리언1, 블레이드러너 같은 걸작도 나오지만 지아이제인 같은 졸작도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멜 깁슨, 박찬욱 등등의 자신의 영화 세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영화랑 달라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작품세계가 딱히 정해지는 영화 감독이 아닌 것 같더라구요.

  • capcold 2008/01/16 05:15 #

    !@#... 리들리 스콧은 미술감독부터 시작했고, CF를 거쳐서 영화에 들어왔죠. 근본적으로 이야기꾼이 아니라, 이미지꾼입니다(좋은 의미에서). 한계는 있죠.
  • 이준님 2008/01/16 05:30 #

    1. 마지막 장면은 진짜입지요. 지금도 둘은 아주 친하게 지냅니다. -_-

    2. 사실 저 시기는 이미 운남국민당과 대만 국민당간에 관계가 공식적으로는 끊어진 -_-;;;셈이지요. 비공식적으로 기밀비를 주는 그런류의 관계는 있어도 말입니다.(사실 국민당 쪽의 부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사실 저렇게 흘러간 구 국민당 잔당들의 경우는 생존을 위해서 마약 재배에 힘쓰는 거지요. 그 전에도 그쪽 농민들의 "자활수단"으로서 용인은 해주었는데 나름대로 여기에 "기업형"농업을 넣은겁니다.

    3. 더군다나 지금은 구 국민당 간부출신은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었지요. 대만과의 관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_-;;;
  • marlowe 2008/01/16 08:26 #

    국민당 93사단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이역]인가 보군요.
  • 월광토끼 2008/01/16 08:31 #

    글쎄요. 저는 "Kingdom of Heaven"을 봤을 때랑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좋은 영화다, 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초점이 흐릿하고 지루하다, 라고 평을 하더군요.
  • 월광토끼 2008/01/16 08:33 #

    현재 덴젤 워싱턴은 이 영화 때문에 아카데미 Best Actor 후보로 꼽히고 있습니다.
    깊은 연기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구요. 만약 받게 된다면 그의 세번째 아카데미 수상이 되겠지요.
    -89년의 Glory로 남우조연상, 99년의 Training Day로 주연상-
  • 아즈라엘 2008/01/16 09:14 #

    윗분에서 친하게 지낸다는 말에 덧붙이면 리치가 형사를 관두고 변호사를 개업하면서 첫고객이 프랭크이며 그를 가석방 시키는 일을 맡아서 처리했다죠
  • 초록불 2008/01/16 09:31 #

    이준님 / 지금도 둘이 친하다니... 그건 영화 상의 결말부고... 저는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월광토끼님 / 초점이 흐릿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클라이맥스가 없다는 점에서 밍밍하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클라이맥스가 없는 이유는, 이미 본 포스팅에 밝혀 놓은 것처럼 진짜 악당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죠.

    아즈라엘님 / 그 이야기는 영화에서 나옵니다.
  • ladyhawke 2008/01/16 09:48 #

    Kingdom of Heaven은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대단히 매력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약간은 아쉽습니다만, 무난하게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폭력배 영화는 폭력배를 미화하기 마련이라 대단히 혐오하는데, American Gangster 는 한 번 봐야겠네요.
  • 궁극사악 2008/01/16 09:55 #

    아 보고싶은 영화긴 한데 가까운 극장들이 하나같이 시간이 안맞아서 못보고 있어요 ㅠㅠ
  • 이준님 2008/01/16 09:56 #

    marlowe님//이역 맞습니다. 그리고 후속인 고군도 있지요. 이게 안습인게 원래 태국에 잔류한 운남국민당 잔당과 대만 반체제 작가의 서간모음집이 원작입니다. 이 장교가 영화 마지막에서 귀국를 포기하고-그 비행기도 무려 추락 --;; - 남은 장교이지요. 이 작품을 소개한 반체제 작가는 이 작품으로 투옥됩니다. -_-;;;
  • 이준님 2008/01/16 09:58 #

    덴젤 워싱턴의 초기 필모그래피 중에서 "악역"이라고 할만한게 "솔져 스 스토리"의 흑인 사병이나 "글로리"의 사병이지요. 후자야 좀 삐딱선 수준이고 전자도 삐딱선이긴 한데 인종차별 이야기가 담겨있는 나름 수작입니다
  • sharkman 2008/01/16 11:03 #

    킹덤 오브 헤븐은 올랜드 블룸이 갑자기 킹왕짱이 되는 것 빼고는 꽤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늑대인간이 이복형으로 나오는 걸 보고 올랜도 볼룸도 늑대인간일까라는 마이너한 망상을 잠깐 했던 기억이 나네요.

    트레이닝 데이는 2001년 11월 개봉이군요. 월광토끼님이 99년이라 적으셔서 혹시 기억이 틀렸나 하고 찾아봤습니다.

    글로리에서의 덴젤은 멋있게 나오긴 한데 배역에 비해선 너무 잘생기고 너무 말을 잘했다는 기억이...
  • 오우거 2008/01/16 13:26 #

    와, 킬링머신에선 덴젤이 주인공이고 글레디에이터가 악역이더니 시간이 지나 역할이 바뀌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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