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주 대용품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믿기 어렵고...
고구려 본기 민중왕 4년 조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9월에 동해 사람 고주리(高朱利)가 고래를 바쳤는데 (고래의) 눈이 밤에 빛이 났다.서천왕 19년(288)기록도 있군요.
여름 4월에 왕은 신성으로 행차하였다. 해곡(海谷) 태수(太守)가 고래를 바쳤는데 (고래의) 눈이 밤에 빛이 났다.발해가 당에 보낸 수출품이기도 했다는 고래 눈알. 대체 뭐에 쓰였던 걸까?
식재료? 한약재? 나름 귀중한 보물 취급?
공석님의 댓글에 따르면 국편에는 이런 답변이 있다고 하는군요.
주석번호/제목 [註037] 鯨睛
東海岸 오르크 지방에서 나는 큰 고기의 눈알인데, 明·淸代의 철갑상어의 일종인 鯨魚의 눈알은 좋은 술안주거리가 되기 때문에 漁夫들이 鯨魚를 잡으면 그 고기의 눈알은 高價에 판다고 한다.『大明一統志』에 의하면 野人 女眞의 土貢 가운데 하나였다(『大明一統志』卷89「外夷」女直條 및 卷106 「朝貢」女直條 참조).
철갑상어의 눈알은 좋은 술안주거리라... 철갑상어 알이 그 유명한 캐비어 아닙니까? 철갑상어가 살아남은 게 용하군요. 과연 먹을거리였을까요? 하지만 영조 대에 이런 기록도 있군요. (비밀글로 알려주신 모님께 감사)
조영복신도비(趙榮福神道碑)
연일포의 백성이 죽은 고래 세 마리를 얻었는데 창의궁의 차인이 그 이익을 빼앗고자 내수사에 사실을 날조하여 고자질하니 감세관과 색리을 엄히 문초하고 정배하라는 명이 내렸다. 그리하여 공이 소를 올려 간언하기를, “옛 사람은 주(珠)를 골짜기에 던지고 벽(璧)을 산에 버리기도 하였는데, 신은 먼 지방 백성들이 전하께서 고래 눈알 하나 때문에 이런 처분을 내렸다고 할까 걱정입니다.”하였다. 이에 임금께서 고래 눈알을 뽑아버리도록 명하였고 그후 연석에서도 여러 번 미안하다는 뜻을 표하였다. 이 내용은 함안조씨 대종회에도 실려 있습니다.
공이 경상관찰사(慶尙觀察司)로 재직시 창의궁(彰義宮)의 아전이 백성이 잡은 고래의 눈알을 빼앗으려다가 얻지 못한일이 있었다. 왕은 그 지방의 관리를 벌하고 세금감동관을 귀양살이를 보내기도 하였다. 공은 상소문을 올려 옛 날의 고사를 인용하여 그 불가함을 지적하고 시정할 것을 반복하여 아뢰었다. 왕은 그 보석을 부셔 없애라 명을 내리고 누차 불만스런 기색을 표현하니, 공 또한 불안하게 여겨 그 직을 사퇴했다.이런 기록을 보면 고래 눈알은 뭔가 특이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올드캣님이 답을 찾아내신 것 같습니다.
-고래와 한국의 문화(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장 김장근) 중에서
고래는 수중의 압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압력을 받아도 유지될 수 있도록 시각신경원반 (Optic disk)이 있다. 이것은 접시모양이며 플라스틱 같은 재질로써 투명하다 (Perrin 등, 2002). 자산어보에서는 고래의 용도에 대해 말하기를 좌초한 고래의 살을 삶아 10여독의 기름을 얻을 수 있고, 눈은 잔 (杯)을, 수염은 자(尺)를, 척추 한절을 잘라 절구 (春臼)를 만들 수 있다 하였다. 고래눈의 투명한 원반으로 지금까지는 볼수 없는 밝은 빛을 내게 했을 것이다. 그것은 원반의 잔에 고래기름을 부어 불을 켰거나 혹은 원반을 볼록 렌즈로 하여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밝은 불빛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말하자면 이런 느낌인 모양입니다.
고래 눈의 실제 크기는 이 정도랍니다. - 흰긴수염고래의 눈 (몸길이 25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