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립, 환단고기를 주무르다 2 만들어진 한국사



전 회에 살펴보았지만 1976년 월간 [자유] 5월호의 [동양문명서원론을 비판한다]에는 태백일사만 실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도 두 구절이 실려 있습니다. 그럼 그 구절을 일단 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석은 편의를 위해 제가 달았습니다.

단군세기檀君世紀 「단군가륵檀君嘉勒」조에 「(무신戊申) 10년十年이라 예인濊人이 반이어늘 명여수기命余守己하야 참기추소시모리斬其酋素尸毛利하니 자차自此로 칭기지왈소시모리稱其地曰素尸毛利라 하니 금우두주今牛頭州오 기자손其子孫이 도어해상逃於海上하야 참칭천왕僭稱天王하니라」(해석 : 예인이 반란을 일으켜서 여수기에게 명령하여 그 추장 소시모리를 베게 하고 이로써 그 땅을 소시모리라 칭하게 하니 지금의 우두주가 그곳이고, 그 자손이 바다 위로 도망쳐 천왕을 참람되이 칭했다.)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삼세단군가륵조三世檀君嘉勒條에 「(갑인甲寅) 38년三十八年이라 견신야후배반遣新野候裵幋하야 往討海上하니 12월十二月에 삼도실평三島悉平하니라」(해석 : 신야후 배반을 보내 바다 위를 토벌케 하니 12월에 세 섬을 모두 평정했다.)


그럼 역시 [환단고기] 단군세기와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뀐 글자는 따로 표시를 해놓았습니다. (악질식민빠님 덕분에 이유립이 1973년에 쓴 글 [세계문명동원론]에도 이 부분의 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부분은 초록색으로 맨 윗줄에 표시하겠습니다. 1973-1976-1979 순으로 표시되는 것이지요. 꽤나 오래전부터 위조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十年,          濊邑人叛, 命余守己, 斬其酋素尸毛利, 自此, 稱其地曰素尸毛利, 今         牛頭州,
戊申十年,          濊   人叛, 命余守己, 斬其酋素尸毛利, 自此, 稱其地曰素尸毛利, 今         牛頭州,   
戊申十年, 豆只州濊   叛, 命余守己, 斬其酋素尸毛, 自是, 稱其地曰素尸毛, 今轉音爲牛首國也.
(해석 : 두지주 예읍이 반란을 일으켜 여수기에게 명하여 그 추장 소시모리를 베게 하니 이로 부터 그 땅을 소시모리라 칭하게 되었다. 지금은 음이 변하여 우수국이 되었다.)

其子孫,                  逃於海上,            僭稱天王. (아직 연대 확정을 못해서 갑자를 만들지 못했군요.)
其子孫,                  逃於海上,            僭稱天王.
其子孫, 有陜野奴者, 逃於海上, 據三島, 僭稱天王. ([환단고기] 3세 단군 가륵)
(그 자손으로 협야노라는 자가 있어 해상으로 달아나 세 섬을 근거로 삼고 참람되이 천왕을 칭했다.)

보다시피 처음에는 기록이 간략했는데, [환단고기]가 나오는 시점에서는 기록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케일도 조금 커져습니다. "예인"이 "예읍"이 되고, "우두주"가 "우수국"이 되었습니다. 역시 스케일은 무조건 키워야 하는 것이죠. 특히 새로 삽입된 부분 중 "협야노陜野奴"라는 부분은 중요한데 그것은 다음 구절을 본 뒤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소시모리의 리가 利에서 犁로 바뀐 것도 있어보이려는 생각에서 바뀐 것입니다. 본래 [일본서기]에는 梨로 나오죠. 이 이야기도 아래에서 다시 하겠습니다.) 그럼 두번째 구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甲寅三十八年, 遣新野候裵幋,    往討海上. 十二月, 三島悉平.

앗, 문제가 생겼습니다. [환단고기] 3세 단군 가륵嘉勒 조에는 38년조 기록이 없군요. 3세 단군 가륵의 갑인년은 재위 16년(BC 2167년)이 됩니다. 하지만 이 갑인년에는 아무 기록이 없군요. 그럼 위 기록은 대체 어디에 붙어있을까요?
그 기록은 36세 단군 매륵買勒조에 있습니다. 그럼 일단 그 기록과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녹색은 1973년 글입니다. 역시 갑자가 만들어지지 못했고 뒷부분에 썰렁한 구절이 남아있었네요. "왜라 부르는 것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라는 내용인데 나중에는 삭제해 버린 구절인 것이죠. 그런데 이 부분은 1971년에 나온 이유립의 <환단휘기>라는 책에도 나옵니다. [환단고기] 관련으로는 가장 오래된 자료입니다. 1971년 자료는 제일 위의 보라색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http://orumi.egloos.com/3911703 에서 읽어보세요.)

      三十八年, 遣         裵幋銘, 往討海上,            三島,       倭之有號始此焉.
      三十八年, 遣新野候裵幋銘, 往討海上. 十二月, 三島悉平, 倭之有號始此.  
甲寅三十八年, 遣新野候裵幋,    往討海上. 十二月, 三島悉平.
甲寅三十八年, 遣野候裵幋命, 往討海上. 十二月, 三島悉平. ([환단고기] 36세 단군 매륵)

이때의 갑인년은 BC667년이 됩니다. 이 연대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일본의 극우사가 녹도승鹿島昇(가지마 노보루)은 [환단고기]의 출현을 기뻐했던 것입니다.

3세 가륵의 기록에 나오는 소시모리라는 명칭은 [일본서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일본서기] 신대기 상편에 나오는 소잔명존素戔鳴尊(스사노오노미코토)와 그가 갔다고 하는 신라의 증시무리曾尸茂梨(소시모리)라는 지방을 일본어 발음인 소시모리 그대로 素尸毛犁라고 쓴 뒤에 그것이 인명이자 지명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덕분에 녹도승은 이걸 근거로 삼아 일본서기의 신화 연대를 BC 2천년 이상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유립의 [동양문명서원론을 비판한다]에는 36세 단군 매륵의 일이 계속 3세 단군 가륵의 일로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륵과 매륵을 잘못 읽은 편집부의 실수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어쩌면 연대 설정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립의 실수일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환단휘기] 덕분에 애초에 매륵으로 설정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양문명...]은 이유립이 혼동했거나 편집 실수라 보아야 하겠네요.

하지만 그보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저 배반裵幋이라는 인물이죠. [일본서기]에 따르면 저 인물은 바로 도반명稻飯命(이나히)이라는 인물입니다. (이유립이 직접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稻는 벼라는 뜻이고, 飯은 밥이라는 뜻이므로 저 말은 쌀밥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유립은 그 때문에 저 이름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稻飯=벼밥=베반=裵幋 (한암당이유립사학총서 12쪽)

이랬다가 나중에 명命자까지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름이 바로 裵幋命입니다. 더구나 처음에는 "신야후新野候"였다는 점을 주목하세요. [환단고기]가 나오는 시점에서 "협야후"로 바뀌었습니다. 도반명의 동생이 바로 신무천황으로 그의 아명이 협야존狹野尊(사노노미코토)입니다. 따라서 이유립은 [환단고기]를 내는 시점에서는 "신야후"보다 "협야후"로 하는 것이 신뢰성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 윗구절에도 본래는 없었던 "협야노陜野奴"라는 구절을 살짝 집어넣어놓은 것입니다.

본래 이유립이 "신야후"라는 말을 쓴 것은 소잔명존이 신라羅에 갔다는 사실, 도반명의 후손이 신량귀씨良貴氏(시라기씨)가 되었다는 사실 등 이라는 글자가 계속 나오는 것에서 착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립은 뒤에 그 新보다는 "협야존"을 겨냥할 수 있는 "협야후"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이 일은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불러와서 녹도승은 "협야후 배반명"을 고구려 동명성왕의 신하인 "협보"와 연관을 지어서 고대 동아시아를 휘저은 인물로 배반명을 높여 놓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녹도승 역시 도반명=벼밥=베밥=배반명의 심오한 이론을 깨닫지 못해서 배반명이 일본신화의 요속일명饒速日命(니기하야히노미코토)인 줄 알고 말았으니, 이를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아참, 웃어야할 일이 하나 있긴 하네요. 바로 이런 복잡한 관계 속에서 낚시에 덥석 걸려서 [한단고기] 주석에 이걸 그대로 써놓은 임승국에 대해서는 마음껏 웃어줄만 하겠습니다. (임승국이 녹도승의 환단고기 역서를 베낀 증거 4 - 최종판 [클릭])

다음은 가림토의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정말 한 편의 짧은 글에서 이렇게 많은 떡밥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가림토의 진실을 아시면 무척 허탈할 듯합니다.

이유립, 환단고기를 주무르다 1편 [클릭]

[추가]
위에 나오는 여수기余守己라는 인물은 [임하필기](이유원李裕元, 1871)와 [증보문헌비고](1908)에 등장하여 세상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트랙백된 악질식민빠님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서씨 족보에 실려 있다는 굔군님의 댓글도 있었는데, 서씨도 본관이 여럿인지라 그냥 묶어서 서씨 조상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저 이야기가 실려있는 족보는 [이천서씨세보]입니다. 그것도 두 설 중의 하나로 실려있다고 하는군요.

기자의 40대손 기준이 위만의 난을 피해 이천의 서하성徐河城에 터를 잡아서 서씨가 되었다는 설이 그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기준은 한韓씨 성을 가져서 청주한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그리고 기씨, 선우씨가 모두 그의 자손이라는 설이 있죠. 그래서 이들 집안끼리는 혼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를 조상으로 삼는 집안으로 이천 서씨도 있었던 것이지요. 이천 서씨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고려 때 거란과 담판으로 유명한 서희입니다.

그런데 저 설말고 여수기가 등장하는 설도 있는 것이죠. 여수기가 단군으로부터 예국穢國의 추장으로 임명받아 중인변 彳을 붙여서 彳+余 = 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서씨 중 부여서씨는 조상이 온조, 부여륭이 서씨로 성을 고쳤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몇몇 서씨는 중국에서 건너온 시조를 모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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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unkbear 2008/01/24 08:48 #

    이유립과 녹도승이 서로 낚시질하고 떡밥 주고 받으면서 역사왜곡을 했군요.

    이건 완전 개그코메디 활극입니다. 가림토의 진실이 오히려 기대되는데요? ^^
  • 2008/01/24 09: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8/01/24 09:23 #

    비밀글 / 오타네요...^^;; 이유립이 뭘 알고 지어냈겠습니까?
  • Silverfang 2008/01/24 09:29 #

    오.. 놀라운 세상...
    서로가 서로를 베끼고 '우하하-' 하는 폼이군요.
  • 한단인 2008/01/24 09:37 #

    갑인년과 38년을 맞추려고 용을 썼던 모양이군요. 흠..

    ps. 규원사화 연대와 차이가 나는 건 요러요러한 이유들 때문일까요? 규원사화 비교가 오바라면 단기고사?(아..단기고사는 단군세기 베꼈다고들 하니.. 그건 아닌가?)
  • 악질식민빠 2008/01/24 10:25 #

    갈수록 점점 더 기대됩니다 우왕

    역시 훨씬 더 구체적으로 다뤄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 슈타인호프 2008/01/24 15:49 #

    "일본군의 조선침략사"라는 책을 보다가 전에는 대충 넘어갔던 이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해방 당시 문군수가 군수가 아니라 황해도청 사회과장으로, 조선인 직원들 중 최고위직이었더군요. 도청 내 조선인직원회 대표로 나와 도지사에게 행정권 이양을 요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혹시 이미 알고 계시던 내용이신지요?
  • 초록불 2008/01/24 16:17 #

    슈타인호프님 / 황해도청 사회과장이라는 것을 역임한 것은 알고 있는데, 그게 어느 정도 지위인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군수 다음에 맡은 것인데, 승진한 것이라면 얼마나 아부를 떨었는지 알려주는 사례라 하겠군요.

    한단인님 / 악질식민빠님의 자료를 보니까 월간 [자유]측의 오타인 것 같습니다. 규원사화와 연대 차이가 나는 것은 이유립이 기자조선을 우리 역사에서 뽑아내려고 하다가 무리한 결과일 뿐입니다...^^;;
  • 굔군 2008/01/24 17:36 #

    아실지도 모르지만, 사실 저기 나오는 '여수기'라는 인물도 다른 데서 보고 짜집기한 것입니다. 원래 여수기는 서씨 족보에 서씨의 시조로 나오는 인물이죠.


    단군시대(檀君時代) 예국(穢國) 군장(君長) 여수기(余守己)라는 사람이 9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들에게 고을을 나누어 다스리게 한즉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그 공을 못 잊어 백성들이 "여러 사람이 고마움의 뜻을 표한다" 하여 중인변(衆人邊)을 붙여 여(余)자를 서(徐)라고 고쳐 사성(賜姓)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 악질식민빠 2008/01/24 17:39 #

    개인적으로는 「자유」의 오타라기 보단 초록불님의 설명 쪽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암당은 퍼즐 조각을 끼워맞추느라 허둥댔던 것 같아요.


    조선인이 군수가 되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1. 고등문관시험에 합격
    2. 「일본관리가 되어 수십년을 판임관으로 떠돌다가 운이 좋아야 50세가 넘어서 겨우 고등관인 군수로 특채」

    군수님은 44세때 군수를 돌파하시고 그 위까지 올라가셨죠. 조선인이 올라갈 수 있는 관직에 한계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자면, 그야말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입지전적인 인물.
    지금으로 비하자면 고등학교를 나와서 9급 시험에 붙은 후 40대 중반에 국장급을 넘어 차관급까지 승진한 정도...?
  • 악질식민빠 2008/01/25 15:21 #

    굔군 님의 설명이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서씨족보 쪽에서 나온 것 같아요.
  • 초록불 2008/01/25 15:22 #

    악질식민빠님 / 네. 저도 굔군님 말씀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서씨가 이천서씨고, 그 족보가 [이천서씨세보]라는 이야기를 붙인 것 뿐입니다.
  • 굔군 2008/01/25 17:01 #

    저...저는 정작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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