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가림토加臨土라 불리는 고대 문자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환단고기]에 전해집니다.
먼저 해당 부분을 감상하도록 합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3세단군 가륵嘉勒 2년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경자庚子 2년에 당시 시속時俗이 한결 같지 않아서 지방마다 말이 다르니 비록 상형과 표의로 된 진서眞書가 있었지만 열 가구의 마을에서도 말이 거의 통하지 않았고 백리의 나라에서 글자를 서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게 하여 이것이 가림토加臨土가 되었다.
그런데 불필요해 보일 수 있지만 단군가륵 3년조도 읽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보시죠.
신축辛丑 3년에 신지神誌 고설高契에게 명하여 배달유기培達留記를 편수하게 했다.
이 대목은 실은 이유립이 [단기고사檀奇古史]를 보고 만든 것입니다. 단기고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황당무계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아서 위서 논란조차 일지 않는 책입니다. 누구도 이 책이 조작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죠. ([단기고사]에 대해서는 재야사서 비판 - 단기고사 (95년) [클릭]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단기고사]에는 위 대목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년 봄에 을보륵乙普勒 박사에게 국문정음國文正音을 정선하도록 하였다. (백악마한촌白岳馬韓村에 고비문古碑文이 있다.)
3년 가을에 태수관太修官 고설高契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하고, 산수가림다刪修加臨多라 하니 이것이 동양사학의 원조로서, 신계성훈神誡聖訓과 칙교유서勅敎諭書와 도덕·정치·법률·풍속 등이 모두 이 책에 실려 있다. (야발野勃이 만문滿文으로 간행하였다.)
본래 가림토의 원형이 된 말은 "고설이 만든 [산수가림다]"라는 책 제목이었던 것이죠. 여기서 가림다를 떼내서 가림토라 만들어놓으니 고설이 만든 책 제목이 필요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배달유기]라는 말을 하나 만들어서 적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런 반론을 할 분이 있을 것입니다.
"환단고기가 단기고사를 베낀 것이 아니라, 단기고사가 환단고기를 베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우선 [환단고기]는 1979년에 나왔다는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신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자, 그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유립은 1920년에 [환단고기]를 계연수한테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을 60년이 지난 뒤에 공개하라고 당부받았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1편과 2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유립은 그전부터 자기 글에 [환단고기] 안의 내용을 공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내용이 공개된 환단고기와 다르다는 황당한 사실도 이미 1편과 2편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뿐만아니라 1973년에 이유립이 쓴 [세계문명동원론]에도 [환단고기]의 구절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조차도 1976년에 공개한 내용과 다릅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유립은 1920년대에 [환단고기]를 전해받았고, 그것을 달달 외워서 책을 잃은 뒤에도 암기로 복원할 수 있었다고 주장할만큼 [환단고기] 내용을 다 꿰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자기 주장에 따르면 말이죠. 그러니 가림토가 무엇인지 이유립이 모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유립은 1976년 월간 [자유] 5월호에서 가림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단 말이죠. 자, 한번 보시죠.
태백유사太白遺史에는 「훈육지조獯陸之祖에 유모수람자有慕漱覽者하야 전봉천신傳奉天神…기속其俗이 지맹鷙猛하야 선수렵善狩獵하고 연토관삭煉土貫索으로 위신爲信하니 시명是名 가림토加臨土라 (하략)
자, 뭔 이야긴지 모를 어려운 한자가 하나 가득입니다. 獯으로 말하자면 [자유]지에서 아예 없는 글자를 새로 만들어놓기도 했더군요. 犭를 扌로 잘못 읽어서 글자를 짜깁기해 놓았더군요. 훈육은 獯鬻(훈육)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흉노를 뜻합니다. 즉 흉노의 조상에 모수람이라는 자가 있어서(모수람이라는 이름은 해모수를 연상시키는군요.) 천신을 섬겼으며, 그들의 풍속이 맹렬하고 사나우며(鷙猛) 수렵을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흙을 굽고 밧줄을 꿰어서 신표로 삼으니 이것의 이름을 가림토라 하였다는 뜻입니다. 다시 읽겠습니다. (저 태백유사라는 책도 정체불명으로 - 이유립에 의하면 계연수가 1898년에 간행한 책이라고 하는데 실체가 없는 책이죠. 일단 그런 점은 넘어갑니다.)
연토관삭煉土貫索으로 위신爲信하니 시명是名 가림토加臨土라
흙을 굽고 밧줄을 꿰어 신표로 삼으니 이것의 이름이 가림토라
아니, 이럴수가! 가림토는 3세단군 가륵께서 만드신 정음 38자가 아니었단 말입니까? 더구나 1976년 월간 [자유]에는 [환단고기] 단군세기 3세가륵의 기록이 버젓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립은 가림토를 가리켜 감히 "연토관삭"의 문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논리적인 설명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환단고기]가 다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가림토라는 한글의 전신이 될 문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죠. "연토관삭"하는 원시적인 문자 이름으로 "가림토"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이유립의 사고체계에서 흉노족도 당연히 한민족의 일원이므로 이런 곳에 문자 하나 만들어주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겠지요.
어쩌면 이런 반론을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흉노족이 만든 원시적인 가림토가 단군가륵 때 정음 38자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라고요.
안 됐지만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환단고기] 3세단군 가륵 6년조에 이런 말이 있기 때문이죠.
갑진 6년에 열양의 욕살 삭정索靖에게 명하여 약수로 옮겨와 종신토록 가뒀다가 후에 사면하고 그 땅에 봉하였다. 그가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
흉노 시조가 이때서야 생겨나니 종족도 생기기 전에 문자가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인 거죠. 흉노 시조 이름에 밧줄 삭索자를 써놓은 것을 보면 이유립도 제법 유머 감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과거 자신이 가림토와 연관하여 흉노에게 [연토관삭]이라고 썼던 것을 기억했던 모양입니다.
일단 문자 이름으로 "가림토"가 생겨나자, 망상을 거듭한 끝에 우리나라 문자 이름으로 둔갑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자기가 쓴 글에서조차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하긴 그 덕분에 우리가 이처럼 [환단고기]를 주물럭거리며 만들어간 내력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겠지요.
그럼 간단하게 요약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유립은 1980년에 [환단고기]를 공개하라는 유언을 받았다고 했지만, 이르게는 1973년부터 여기저기에 [환단고기] 내용을 흘리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환단유기]라는 이름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그리고 그 기록이 인용할 때마다 제각각이라는 점을 지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오탈자 수준이 아니라 교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지요.
그런 와중에 개념이 뒤바뀌기도 일쑤였고, 대표적으로 가림토가 흉노족 문자에서 단군이 만드신 문자로 둔갑하는 것도 이렇게 지켜본 것입니다. 아직도 [환단고기]라는 책에 대해서 믿음이 가시는지요? 그리고 가림토 문자라는 게 정말 있는 것처럼 여겨지시는지요?
이유립, 환단고기를 주무르다 1 [클릭]
이유립, 환단고기를 주무르다 2 [클릭]
덧글
그런데 초록불님, 저는 요즘 '환빠는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ㅈ산ㄷ에 심취한 사람이 어떻게 우리과(철학과) 과목을 A+ 받았는지... 생각해보니, 그보다는 철학전공을 A+ 받은 사람이 (최소한의 논리는 갖고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환단고기에 낚인 상황이 안습이군요.
뭐, 환빠들은 단군은 우리시조이고 흉노도 한민족에 속하니
누가 만들었건 가림토는 한글의 원형이 확실하다고 외치겠군요... -.-;;;
흠... 그렇게 생각하니 이유립 꽤 하는데요? 훌훌...
초록불님 쵝오 ㅠ_ㅠb
이화사 이 양반은 刪修가 뭔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혹 이 기사 보셨습니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891375
기사 재미있네요. 어딘가에 좀 붙여 놓아야 하겠습니다.
안타깝네요. 환빠, 대륙빠, 강단빠들이 적절히 섞여 이전투구하는 것도 이제 보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그런 치열한 토론이 없었더라면 인터넷은 수메르의 조상들이 한국인으로 생각하는 네티즌들로 가득했겠지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초록불님께서 인수해보시면 어떨까요. 거기 쥔장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콘텐츠를 그대로 가져가는 조건으로요. 물론 비용은 제가 대겠습니다. 제가 직접 나서기에는 그곳의 안티들이 너무 많아서요 ^^
솔직히 이땅의 환독 증상을 앓던 이들의 상당수가 이우혁씨의 소설에 혹해서 된 경우가 많을텐데요. 이것으로 역사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 사건, 텍스트 등에 대해 다시 한번 이성적 통찰을
할 수 있는, 일종의 환기 역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단순한 부호야 누군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고, 막상 문자나 그것으로 문장을 만들려면 곧바로 벽에 부딧힐 겁니다.
거기까진 좋습니다 근데 한글이 가림토원형이니 씨X 그딴 어이없는...;;그건 완전 그리스로마신화에나오는 제우스가 문자를 만든거나 마찬가지임.]
링크를 찾았습니다. 일단 여기라도 붙여놓도록 하지요.
한글을 만들때,세종대왕이 변을보면서 창틀인지,문을 보면서 연구했다는 얘기가 있다던데요.그건 없는 얘기랍니다.일본 학자들이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는거랍니다.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쪽 머리안엔 산업페기물이 들이찼는지요?
이유립의 1976년 당시발표글엔 흉노가 가림토를 만들었다고되있죠.
그럼 그흉노족이 아주오래전부터 존재했어야한다는 전제가 필요로합니다.
근데 이거어쩌나요? 단군3세에서야 시조가 정해지는데,
아니 시조가없을때 라는건 문화적,정신적으론 종족도 존재하지않았을 때란건데....
(문화적,정신적으로)존재치도 않던 종족이 문자를 만든다? 이건뭐 수메르문명이 탄생하기전시대에도 유대인들은 이미그들 스스로의 문자가 존재해서 성경을 기록했다는 소리같은데요?
참 놀랍습니다.
"아무리 환단고기가 구린내나도 결국 환단고기자체가 증거인데 왜 딴지거느냐" 라고밖에 안들립니다 그려.
아마도 이런 내용은 잘 모르셔서 그러신것 같은데... 환단고기가 위서인지 진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앙아시아에 삭족은 존재합니다... 참조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q7qp3aiB8Wc
戰國~秦ㆍ漢 初 화폐사용집단과 고조선의 관련성-박선미
http://blog.naver.com/joymug/80199712810
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견해(石永士·王素芳, 1980, 「試論○)字刀化的儿个問題」,
『考古與文物』3(西安, 西省考古硏究所); 王嗣洲, 1990, 위의 글.)와 易字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鄭家相, 1959,「 燕刀面文明字問題」,『 文物』1(北京, 文物出版社); 汪慶
正主編, 1988, 『中國歷代貨幣大系』(先秦貨幣) 1(北京), 29~30쪽.)가 있으나 後漢
때의 許愼이 편찬한『說文解字』의 해석에 따라 대개 明刀錢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
나 2001년에 간행된『先秦貨幣通論』를 보면 ○)를 匽자로 보는 것이 최근의 경향인
듯하다. 이외 盟·邑·召·營·同·泉·回文등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근거불충분으로학계에서거의지지를받지못하고있다.(黃錫全, 2001a,『 先秦貨
幣通論』(北京, 紫禁城出版社)) 국내학계에서는이도학이(1997,『 백제고대국가연
구』(일지사), 178쪽.)에서 易刀錢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중국에
서 발행된 여러 사전류나 도서류에 아직은 匽刀錢이나 易刀錢이라는 용어보다는 明
刀錢이라는 항목이 일반적으로 기재되어 있는 만큼 명도전이라 부르기로 한다.
가림토 이야기가 어디 있나요?
황제가 동이족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내부에서가 아니고 이제는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논리입니다... 동북변방의 모든 민족은 황제의 후예라고요...
글고 엉뚱하게도 중앙아시아 여러국가와 민족에게서 환단고기와 같은 얘기들이 있읍니다...
이제는 고대사도 글로벌 관점에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가 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닌...
https://www.youtube.com/watch?v=cyCON-cH570
https://www.youtube.com/watch?v=q7qp3aiB8Wc
기존의 기껏해야 국내문헌이나 중국문헌이나 뒤지던 문헌 위주의 민족사학하고 관점이 많이 다름니다... 글고 가림토 문자에 관해서는 제가 잘못 썼네요... 박선미교수님 자료 한번 보시라고요...
또 황제가 동이족이라고 중국에서 주장하는 상황인데 아직도 국내에서는 서로들 시각들이 너무 좁거나 아님 거의 감정싸움인 듯 싶어요(솔직히 황제가 동이족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읍니까... 서로 자기들 유리한데로 갖다붙이고 선점하는 넘이 장땡이지).
다만 한가지 우리나라 고대 선조들이 확실히 중국쪽보다는 북방기마민족과의 왕래나 교류 또는 인적맥락이 더 가깝다는 것은 사실인 듯... 따라서 우리의 고대사를 중국쪽보다는 북방유목민족에게서 찾는게 더 맞지않을까요... 호롱불님도 글을 쓰시는 분이니까 그런쪽에 촛점을 좀 맞춰보시는게 어떠실지요...
따라서 이제 우리나라 연구하시는 분들도 이런 텡그리사상/신화 자체에 대한 해외의 그 무수한 연구를 인정하고, 이제는 신화 이상의 실존성 여부에 촛점을 맞춰 논하는게 무의미한 논쟁을 줄이는 방안을 아닐까 합니다...
주제 넘게 제가 괜히 싸이트만 더럽혓네요... 죄송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이제는 그만 건질게 하나도 없는 그런 짓들 그만하라고 하겠읍니다...
알겠읍니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