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립은 1976년 10월 월간 [자유]지에 [이병도사관을 총비판한다] 제2편을 올렸습니다.
제목은 이병도에 대한 무슨 비판같지만 그 내용은 자기가 쓴 [신시개천경본의神市開天經本義]에 대한 소개일 뿐입니다.
그럼 [신시개천경본의] "신시개천경의 본래 뜻"이란 말입니다. 그럼 신시개천경이란 무엇일까요?
[삼국유사]에 고기古記란 이름으로 들어있는 단군신화를 이유립의 커발한개천각교=태백교(이유립은 이 종교의 교주입니다.)의 경전으로 삼은 것이 바로 신시개천경입니다.
이유립이 올린 내용에 따르자면 이유립이 이 [신시개천경본의]를 쓴 연도가 신시개천 5839년 즉 1942년이 됩니다. (일전에 이병도 비판 글을 1942년에 썼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내용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 연도가 신시개천경 작성일이라는 걸 몰라서 한 실수였네요.)
그럼 1942년에 쓴 이 글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요? 기껏 [삼국유사] 해설서에 불과하다면 말이죠.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신시개천경본의] 안에는 지금껏 살펴본 바와 같이 [환단고기]의 한 부분인 태백일사 등등이 들어있기 때문이죠. 물론 [신시개천경본의]가 1942년에 쓰였다는 말 자체가 이유립의 허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일단 이유립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고 이야기를 진행해 봅시다.
본래 이유립은 [환단고기] 안에 [신시개천경](즉 삼국유사의 고기 인용분)도 집어넣으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회에도 살펴본 바와 같이 [환단고기]<신시개천>이라는 항목이 있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그는 [삼국유사]의 [고기]를 [환단고기]의 줄임말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읽어봅시다.
금서룡의 조작한 석유환국 - 그대로 계승한 「원문병역주 삼국유사」에서 이병도는 고기=환단고기의 전한 그대로의 환국을 빼어버리고 원문에 없는 - 일본인의 변조한 환인을 내세우면서 자신만만하게 특서하여 가라대
애초에 금서룡이 본 [환국桓囯]이 因의 오자임은 안정복이 밝혀놓은 바니, 여기서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흥미가 있으신 분은 「우리역사상수천년래최악사건」 - 昔無桓國 [클릭]을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이유립이 "고기=환단고기"라고 저렇게 적어놓은 부분이죠.
그런데 오늘날 환단고기에는 [삼국유사]의 "고기" 부분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어찌되긴 뭐가 어찌 되겠습니까? 1976년에 가졌던 생각이 1979년에는 없어진 거죠. 1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환인이 신으로 나오는 부분이 1979년의 이유립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던 겁니다. 유구한 배달의 역사를 창조하는데 걸림돌이었기 때문이죠.
경쟁자인 중국은 요임금 이전에 삼황오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단군은 기껏해야 요임금 재위 중에 임금이 되니, 그 이전 세계가 매우 부족했던 겁니다. 그래서 앞에 보았던 [동양문명서원론을 비판한다]에서는 대종교와 김교헌을 맹비난합니다. 이쪽 동네는 연대가 짧거든요.
자, 그럼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이미 앞의 글들을 읽은 분들은 짐작하겠지만, 이번 글에서도 역시 현존 [환단고기]와는 틀린 부분이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죠.
일단 이유립의 말이 사실이라는 개념하에 생각해 봅시다.
첫번째, [신시개천경본의]는 1942년에 쓰여졌습니다. 이 시기라면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잃어버리지 않은 시기입니다. 계연수가 만든 원본을 가지고 있던 시기라는 것이죠.
두번째, 이 [신시개천경본의]가 실린 1976년이라면 [환단고기]를 잃어버린 시점입니다. 하지만 [신시개천경본의] 안에는 환단고기의 일부분이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그야말로 확실한 원전에서 베낀 부분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부분이 정작 현존 [환단고기](광오이해사본이건 배달의숙본이건 간에 상관없이)와 모두 틀리다면? 대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럼 틀린 부분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인용의 부정확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신시개천경본의]에서는 [태백일사]로 출전을 밝히기도 하고, [밀기]로 출전을 밝히기도 한 부분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는 [태백일사]로 출전을 달아놓은 곳이 사실은 [밀기]가 출전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출전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이유립이 후에 생각나는대로 출전을 적어넣었기 때문이지요.
[신시개천경본의]에선 고려팔관기高麗八關記를 인용한다고 해놓은 부분을 [환단고기] 태백일사에서 찾아보면 고려팔관잡기高麗八關雜記가 출전이고 내용에도 추가된 부분과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두번째, 글자들이 틀립니다.
[신시개천경본의]의 개마국蓋馬國이
[환단고기]에서는 개마국盖馬國으로 [개]자가 다릅니다. 보통은 蓋馬國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래된 기록 중에는 盖馬國으로 된 것이 있습니다. 이유립은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蓋馬國으로 썼다가 [환단고기]를 낼 때는 원형이라고 생각한 盖馬國으로 바꾼 것입니다.
[신시개천경본의]에는 역亦으로 된 글자가
[환단고기]에서는 或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해당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나라 이름도 틀려졌군요.
[신시개천경본의] 직구다국은 또한 구막한국寇莫汗國이라 칭한다.
[환단고기] 직구다국은 혹은 매구여국賣勾餘國이라 칭한다.
글자 한두 개 바뀌는 것는 오탈자라고 우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원전을 보고 쓴 나라 이름이 바뀌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보고 베낀 것보다 머리 속의 기억이 더 정확해서?
이외에도 徙를 移로 바꾼 것, 喫貪을 貪嗜로 바꾼 것이 있으며, [신시개천경본의]에는 있으나 [환단고기]에는 누락된 구절, 또는 그 반대로 되어 있는 부분이 짧은 인용문 중에서도 허다합니다.
월간 [자유]지는 중앙국립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 모두 비치되어 있는 공개된 자료니, 누구든지 찾아가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말에 무슨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는 몰라도 다짜고짜 욕이나 하실 분들이라면, 그 시간에 도서관을 찾아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기 바랍니다.
그동안 이유립이 어떻게 [환단고기]의 기초를 만들고 그것을 주물러거렸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만들었다는 증거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20세기에 날조된 책자를 들고 [민족의 성전] 운운하는 분들에게 깨달음이 찾아가기를 간절히 빕니다.
덧글
재야사의 기록이나 도서들이 딱 그렇군요.
차라리 '소설이다'라고 발표하면 창작력이나마 인정해 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