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역사학 태두 중 하나인 안호상, 그는 누구인가? 만들어진 한국사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김철 연세대 교수의 한마디로 족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식 파시스트. (김철, 국문학을 넘어서, 국학자료원, 2000)

이준님은 언젠가 안호상이 히틀러의 저작을 국내에 소개했다고도 했는데, 그 점은 잘 모르겠다. 다만 안호상은 독일을 대단히 존경해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독일은 독일의 위대한 철학가 피히테의 정신 밑에 독일의 모든 학생들이 단결하며 움직여서 분열되고 파멸된 독일의 민족정신을 완전히 통일시켰던 것이다. 특히 독일의 대학생의 철저한 민족정신으로 말미암아 죽어가던 독일의 민족과 국가와 문화는 다시 살아나서 찬란한 결과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평화일보 1948년 09월 29일)

그 찬란한 결과라는 것이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것을 머리에 담아두고서 한 말일까?

그는 일민주의一民主義라는 철학체계를 만들어서 이승만 독재에 철학적 기초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주체사상이나 다를 바 없는 일민주의를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해서 이름만 한백성주의라고 고쳐서 써먹었다. 물론 그때는

- 강력한 민족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여야 하며, 아울러 영명하신 이 대통령 각하를 받들어 지대한 민족 과업을 성취하는 대도로 매진할 것
- 우리는 일민주의를 위하여 일하며 싸우며 또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안호상, 일민주의의 본바탕, 1950)

같은 이야기는 다 빼버렸다. 위 책에는 철기 이범석의 서문이 붙어있었는데,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믿기를, 일민주의는 영명하신 우리의 지도자 이승만 박사께서 창조하신 것으로서 일생을 통해 빛나고 지공 지성한 혁명 투쟁과 독립운동의 경험을 집대성하신 것인데, 단군의 홍익인간의 정신과 또 신라 화랑도의 중의 경사重意輕死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신 이상적 보민 구국의 이론 체계인 것이다. 이 이론적 체계를 다시 부연 설명하기 위하여 이번 『일민주의의 본바탕』이 간행된다는 것은 시기에 적합한 일이며 대통령 각하의 사상과 글과 말씀을 듣고 보고 또 생각한 문교부장관, 일민주의 보급회 부회장인 안호상 박사가 그의 철학적 모든 온축蘊蓄을 경주하여 편저한 만큼, 이 책의 내용이야말로 일민주의를 금과옥조로 해설한 귀중한 한 개의 경전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바로 유명한 이승만의 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에서 파생된 철학이 바로 안호상의 일민주의였다.

뭉쳐지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 진리가, 여기서 또 한번 타당하다. 이것은 누구보다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안호상, 김종욱 국민윤리학, 1975)

그는 애초 국대안을 찬성하였고 초대 문교부장관으로 재임하면서 학도호국단을 창설하여 학원을 병영화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학도호국단 이외의 학원단체는 모두 불법으로 만들어 해산케 했으며, 좌익 혐의가 있다 하여 수만 명의 교원을 교직에서 숙청했다. 사감에 의한 무고도 있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할만큼 엉성한 조사였다.

그는 1906년생으로 1920년에는 일본 동경에 유학, 1922년에는 중국 북경과 상해에 유학했으며, 1925년에는 독일 예나 대학 졸업, 1929년에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0년 귀국하였는데, 그때 귀국 소감을 묻자 이런 답변을 남겼다.

"8년만에 대하는 고국은 모든 것이 놀랄만큼 변천되었습니다. 겉으로 대하는 고국산천의 변천은 놀랄만 하지만 안으로 대하는 고국은 그 어디인지 폐허인듯합니다. 앞으로 할 일은 아직 작정을 하지 못하였으며 수일 후에는 고향 의령으로 떠나려 합니다." (중외일보, 1930.8.21)

그는 상해에 있을 때, 이승만과 신채호의 대립을 목격했다 하며 신채호 쪽 입장을 지지했었다고 한다. 그의 귀국 인터뷰에는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가 엿보인다. 그러나 그후 독립운동을 했다든가 하는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친일 행위를 했다는 기록도 없다. 다만 특기할만한 사항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가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점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독립운동 사건은 아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학자들이 옥고를 겪고 목숨을 잃는 불행한 사태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사건 자체는 일제가 조작했던 것에 불과하다. 아무튼 안호상은 이 사건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고 하고, 구속을 피해 달아나 금강산에 숨어 있다가 해방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런데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안호상의 부인이 친일파로 이름 드높은 모윤숙이라는 사실이다. 안호상은 1934년 7월 20일 춘원 이광수의 중매로 모윤숙과 두번째 결혼을 했다. 이광수는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변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 무렵에 춘원과 교분이 있었다는 것이 흠은 아니겠다. 하지만 모윤숙과의 관계는 꺼림칙한 것이 사실이다.

안호상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모윤숙이 집안에서 얌전히 있지 않고 나돌아다니는 것을 못마땅하여 곧 별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딸 안경선安炅仙(1936년 출생)이 있으니 상당기간 같이 산 것은 확실치 않은가? 더구나 두 사람의 이혼은 1960년대에 이루어졌다. (송영순, 모윤숙 시 연구, 국학자료원, 1997) 모윤숙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승만 정권 시절 안호상과 마찬가지로 정권에 적극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1950년에 안호상은 대한청년단 단장이었고, 모윤숙은 대한여자청년단 단장을 역임했다. 물론 아내가 한 일, 남편이 어쩌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모윤숙은 1941년부터 적극적인 친일에 나선만큼 이 시기에 이미 안호상과는 별거, 실질적인 이혼 상태였다고 하면 빠져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친일파라면 이를 가는 것처럼 보이는 안호상이 사실은 자신의 전처가 친일파인데도,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이승만 정권의 요직에 참여하는 것을 방관한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또한 안호상을 떠받드는 이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해방 정국에서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는 안호상의 책임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바로 일민주의,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 철학에 의해 일민주의의 위대한 영도자 이승만 밑에 뭉치는 사람은 다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일단 그 밑에 선 이상, 그들을 분리, 분열시키려는 자는 일민주의에 위배되는 인간으로 취급받아야 했다. 친일파 청산을 방해한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사람, 그가 바로 안호상이다. (그는 1951년 자유당 창당대회에서 "자유당 만세 삼창"을 선창한 사람이기도 하다.)

(문) 이번 실시된 교육계의 교원숙청 문제는 이것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것인가?
(답) 물론 전국적으로 숙청하는 것이다.
(문) 그 숙청문제의 중점은 어디다 두는가?
(답) 사상에 중점을 둔다. 교원으로서 좌익적 사상을 가진 자는 전면적으로 숙청할 것이다.
(문) 그러면 좌익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밝히게 되는가?
(답) 그것은 교장과 학생 또는 일반의 여론과 경찰의 신원조사로써 밝힌다.
(문) 동료간의 불친목인 자도 숙청 대상이 되는 모양인데 그 한계는?
(답) 역시 동료간의 불친목은 결국 학교 내에서 학교당국에 협의 않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좌익사상은 아니되 학교와 학생간의 중간적 입장으로 학원을 파괴하는 자는 그러한 사람들이다.
(문) 그렇게 되면 혹 교장과 교원간의 사감으로도 숙청대상이 될 수 있지 않는가?
(답) 그런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확실한 내신서에 대해서는 접수는 접수대로 하여 놓고 문교부에서는 문교부대로 사실 여부를 조사한다. 그리고 이번 숙청은 제1차로 보겠으며 앞으로 계속 숙청을 할 것이나 제2차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1949년 03월 12일)


위 굵은 글씨에 나오는 것처럼 결국 자기 말 안 따르는 사람은 다 목을 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친일파 교원 숙청 같은 말은 안호상 입에서는 나온 바가 없다. 좌파 척결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나오지만... 안호상은 5만1천명의 교원을 조사한 뒤 5천명을 숙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숙청 수는 확인하지 못했음. 국민학교 교원 중에서만 1,641명이 숙청되었다는 동아일보 1949.3.17일자 보도가 있음)

안호상의 일민주의란 주체사상과 별다를 것이 없다. 국가를 가정으로 생각하고 핏줄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점에서도 그렇다.

- 부모 형제가 가족이라면, 한 핏줄의 한백성 동포는 민족이며, 또 가정이 가족의 집이라면, 나라는 민족의 집이다.
-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민족의 여러가지 구성요소들 가운데, 그 핏줄이 그 결정적 요소라는 것이다. 한 민족은 같은 한 조상의 한 핏줄을 받은 사람이라야만 한다. ... 다른 조상의 핏줄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들은 같은 한 민족이 될 수 없다. (안호상, 나라역사 6천년, 한뿌리, 1987)


그는 위의 예로 이스라엘을 들고 있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사람들이 그 핏줄을 지켰던가? 다른 조상의 피가 그들 속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저렇게 핏줄을 강조한 나라가 하나 있었다. 나찌 독일. 그들은 유태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유태인으로 분류해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그중 상당수가 아우슈비츠 등의 가스실에서 처형당한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핏줄, 핏줄 하면서 나찌즘에서나 할 이야기를 늘어놓는 안호상. 그런 그에게 첫 문교부 장관을 맡긴 이승만. 모두 아찔하기만 하다. (처음에 나왔던 독일 찬양 문구를 다시 떠올려보라.)

1950년 4월 22일 학도호국단 1주년 기념식에서 안호상은 이런 연설을 했다. 학도호국단의 총재는 대통령, 부총재는 국무총리, 중앙학도호국단장은 문교부장관 즉 안호상 자신이 맡도록 되어 있었다. 운영 과정도 군대와 동일했다.

"외적의 압박과 침략에 시달려 병든 이 조국은 제군들을 부른다. 총칼로 육체를 무장하고 민족사상으로 정신무장을 하여 옛 우리 선조가 임전무퇴의 화랑정신으로 삼국통일을 한 것과 같이 일민주의로 失地 회복과 남북통일을 맹세코 이룩하자." (자유신문)

일민주의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학도호국단. 그들의 선서 내용을 보자.

1. 우리 호국학도는 화랑도의 기백과 3·1정신의 계승발휘로 불타는 조국애·민족애로써 공산주의와 이북괴뢰집단을 타도, 조국통일성업에 몸과 마음과 피를 바친다.
1. 우리 호국학도는 일민주의 지도원리 밑에 학원의 자유민족문화의 향상을 위하여 전진한다.
1. 우리 호국학도는 국가의 기반을 좀먹는 일체의 부패분자를 소탕하고 이 민족의 도의와 양심을 바로잡기 위하여 과감한 투쟁을 전개한다.


그런데 학도호국단을 만든 실제 목적은 위의 선언과는 달리 학원내 질서 정착이었다. 말이 좋아 질서정착이고 사실은 좌익 척결 및 이승만의 꼭두각시 양성이 그 목표였다.

(문) 학도호국대 결성으로 학도들의 수업시간이 단축될 염려는 없는가?
(답) 호국대의 훈련은 전쟁을 목적한 것이 아니라 질서정연한 학도의 조직을 가지려는 것이 제1목표이므로 훈련 때문에 교수시간에까지 영향이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신문 1949년 03월 11일)


안호상은 자기 책 [나라역사 6천년]에서는

"조각조각 갈라졌던 청년단들이 서로 앞장서서 다 해산하고, 4281(1948)년 12월 19일에는 오직 하나의 '대한청년단'으로 뭉쳤다. 그리고 4282년 4월 23일에는 전국 학생 대표 만여명이 서울 운종장에 모여서, 옛날의 화랑단을 본떠 '백만학도호국단'을 만들어 한백성의 학생이 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십만팔천리는 떨어져 있으니, 다음 보도를 읽어보자.

安문교부장관은 30일 담화를 발표하여 학도호국단 이외의 일체의 학생단체는 내년 1월 말일 이내에 해체하고 해체보고를 중앙학도호국단 사무국에 제출해야 한다고 미해체 학생단체에 경고를 발했다.
“현하 학도호국단 이외의 여러가지 학생단체가 난립하고 있는 바, 이것은 대통령령 대한민국학도호국단 규정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본 단 운영에 있어서도 지대한 지장이 있는 것이므로 학도호국단 이외의 각 학생단체는 즉시 해체하는 동시에 해체완료보고서를 단기 4283년 1월 말일까지 중앙학도호국단 사무국에 제출하여 주기 바란다.
과거 이러한 학생단체에 관계하던 학도들은 학도호국단에 가일층 협력하는 바이며, 전기 기일 내로 해체하지 않는 단체 혹은 학도에 대해서는 특별한 조치를 취할 것인즉, 이 점에 특히 유의하여 주기 바라는 바이다.” (국도신문 1949년 12월 31일)


자기 이름으로 내놓았던 담화가 머리속에서 깨끗이 증발했던 모양이다. 학도호국단 문제는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그 문제는 아래 기사처럼 심각했다.

(문) 학도들의 군사교련이 너무 심하다고 일반의 비난이 많은데 이를 시정할 의사는 없는가?
(답) 나는 신문을 보고 그러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날의 배속장교는 일제시와 같이 군부 소속이 아니고 문교부 직속으로 되어 있는데 이러한 점으로 해서 학도교련에 대하여는 배속장교에 절대권한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남 광주사범에 배속되었던 장교는 좌익학생들에게 살해를 당하였으며 또 한 사람의 배속장교는 눈을 뽑힌 사실이 있음에 비추어 앞으로는 배속장교와 학도간의 구타하는 등의 난폭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배속장교를 모아 놓고 주의를 환기하겠다. (서울신문 1949년 03월 11일)


이런 일 때문에 학원에 경찰이 상주하고 있었고, 문교부 장관인 안호상은 그것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문) 학원에 대한 경찰의 활동을 어떻게 보는가?
(답) 학원에 대하여 경찰이 간섭하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실은 학원에서 파괴분자를 소탕할 수 있는 자체 방위기관을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폐단이 있는 것이다. (서울신문 1949년 03월 11일)


그가 학도호국단에 바라고 있던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이 있다. 다음 기사를 읽어보자.

나는 양심의 소유자인 백만 학도들에 바라는 바는 냉정한 이성과 용감한 기운으로써 우리의 신생정부를 비난하며 방해하는 자를 철저히 방지해서 우리 신생정부가 세계 각국의 승인을 받아 힘찬 발전을 보게 하도록 노력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렇게 하는 데서 대한의 백만 학도들은 조국의 역사에서 더욱 빛날 것이며 세계의 활무대에 자유롭게 진출할 것이다. (평화일보 1948년 09월 29일)

여기에 더해 그는 [족청] 창설에도 관여한다. 이때문에 히틀러 유겐트라는 비난까지 받게 되자 깡패 김두한과도 손을 잡기에 이른다.

그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것도 나를 끌었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그의 주먹이 믿음직했다. 어느 때나 혼란기에는 주먹이 유효한 통치 방법으로 쓰이는 것이다. 나는 좌익, 우익 모두의 공격을 받고 있었던 처지였으므로 나를 보호해 줄 든든한 그 무엇을 바라고 있었으며 김두한은 그런 의미에서 나를 보호해 주었다. (안호상, 김종욱 국민윤리학, 1975)

보호를 원한 것이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저 철학자의 입에서 나온 저 한마디를 보면 아찔해지지 않을 수 없다. 혼란기에는 주먹이 유효한 통치 방법이라니!

이미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일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도 거부하고 있었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구미 사상은 파멸의 사상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며, 안호상은

해방 후 비판없이 요란히 떠드는 민주주의 바람에, 우리 민족은 오늘날 이와 같이 불행하고, 우리 조국은 이와 같이 파괴되었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종류, 일민주의출판사, 1953)

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미군정에서 문교부장을 지낸 오천석은 이런 안호상의 교육방침에 대해 "일본식 교육에 대한 열정과 타성이 있을 뿐"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안호상은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할 때도 참여했었다. 그는 국민교육헌장 안에 [홍익인간]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결국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라는 구절로 만족하기로 타협했다고 한다. 홍익인간이라는 문구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그것을 대체할만한 교육이념을 제시해야 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국민교육헌장이었다. 안호상은 자신의 책에 국민교육헌장을 앞머리에 싣는 등 바로 이 이념의 전파자로 나서기도 했다. 사실 그가 일민주의에서 주장한 것이 바로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의 기초였으니 이들 세력 간의 궁합이야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환단고기]를 지은 이유립 - 친일단체 가입자에 독립운동과는 십만팔천리는 떨어져 있던 주제에 자신의 과거를 모두 윤색한 성형사가.
[한단고기]를 내놓은 임승국 - 군부독재정권에 아부를 떨고, 기껏 일본책을 중역해서 내놓고는 직역인 것처럼 위선을 떤 인간. [환단고기]를 이미 보았던 전력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함구했다는 것도 웃기기 짝이 없다.
위의 인간들에게 이론을 제공한 문정창 - 일제강점기에 군수에 사회과장까지 지낸 고등문관 출신의 친일부역배.
문정창에게 영감을 준 최동 - 일제강점기에 친일기독교단체를 이끌고 조선침략에 앞장 선 흑룡회와도 붙어먹은 인간.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안호상 - 이승만 독재 정권에게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고, 한국 교육의 파시즘적 형태를 갖춰놓았던 인간. (아참, 일제잔재라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확정한 사람도 안호상이다. 그는 친일파 집결지라고 알려진 한민당 발기인이기도 했다.)

뿌리를 캐면 캘수록 암담해진다. 이런 인간들이 만든 사상누각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민족정기 운운하는 정신줄 놓은 사람들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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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별빛수정 2008/02/10 03:39 #

    히믈러가 연상되는군요OTL 김철 교수가 제대로 평가했네요;;;
  • 제갈교 2008/02/10 04:14 #

    저 사람의 눈에는 '친일파'는 한민족, '빨갱이'는 다른 민족인가 보네요.
    무서운 현실입니다. ㅠㅠ
  • 이준님 2008/02/10 07:52 #

    1. 안호상은 나중에 북한이 단군릉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밀입북까지 합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안기부에서는 이 사람이 나이도 많고 여론이 그래서 뜨거운 맛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2. 아주 아주 완곡한 편이지만 안호상과 이범석은 무려 "히틀러도 따지고 보면 존경할만하다"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공석에서 할 정도였습니다.

    3. 사실 이승만의 일민주의라는건 의외로 국가사회주의보다도 이념적으로는 엉성한 작품이지요. 놀랍게도 "반공+ 반자본주의"성향까지 띄고 있고 이래저래 언어도단에 앞뒤가 안 맞는 편입니다. 굳이 요약하면 "닥치고 이승만 고고씽"이지요. 박정희때 "한국적 민주주의"가 사실은 "슈미트가 만들어서 프랑스가 도용한 독일-프랑스적 민주주의"라면 일민주의는 그만도 못한 사상입니다. 그래서 연구 대상도 아니었지요.

    4. 이승만 독재체제 초기에서 이념적 브레인은 안호상이 실질적 손발은 이범석이 했다고 하면 정확합니다. 이범석은 미국 정보보고서 평가에 의하면 "썩은 중국군벌"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하기야 네로의 얼굴의 괴링의 성격을 가졌다는 장택상보다는 평이 좋지만 -_-;;) 나중에 이 콤비가 너무 커지니까 바로 이승만 자신이 정리해버렸습니다만

    ps: 조선어 학회사건은 뭐 거의 조작사건인데 조작사건답게 "엄한놈 끌어들이기"가 꽤 많았지요. 미군정 법무쪽에 일을 했고 대한민국 초대 법무부 장관을 하는 이인씨같은 경우도 무려 "참고인"으로 소환되서 안 죽을 만큼 혼납니다. -_-;; 안호상도 아마 그런 케이스라고 보면 될겁니다.(이인은 나중에 미군정에 들어가서 자신을 혼낸 형사를 찾아서 할수 있는 최대의 복수를 했다고합니다)
  • 초록불 2008/02/10 08:59 #

    제갈교님 / 제대로 보셨습니다.

    이준님 / 안호상과 대종교 관련 이야기는 일부러 다루지 않았습니다. 아직 잘 모르겠는 부분이 좀 있어서요. 말씀하신대로 일민주의는 개인우상숭배에 더 가깝죠.
  • 엘레시엘 2008/02/10 09:43 #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정말이군요 -_-;
    꼭 북쪽 어느 아저씨가 만든 주체사상 보는 듯한 기분이..
  • dunkbear 2008/02/10 09:56 #

    질문이 있는데, 안호상이 떠든 "독일의 대학생의 철저한 민족정신"이라는 것이 실체하기는 했었나요? 제가 초록불님의 글들을 읽으면서 알기론 우리가 아는 소위 '민족주의'는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일본에서 건너온 논리로 알고 있는데 독일에 민족주의가 있었다면 일본의 것과는 성격이 좀 다를 것 같은데... 성격이 다른 독일 민족주의를 안호상이 우리나라 민족주의와 억지로 결부시킨 것은 아닌가 해서요.

    그런데 참 제가 한국사를 배울 때는 대충대충 배운 것 같네요. '일민주의'는 위의 초록불님 글로 처음 배우는 내용입니다. 교과서는 말할 것도 없고 청소년 시절에 읽은 어떤 역사서에도 없는 내용이네요. 하아... 역시 배움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ㅠ.ㅠ

    참고로 저는 북의 주체사상과 남의 유신이나 일민사상이 극과 극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겉만 조금 다른 내용물은 완전 동일체라고 보거든요. 공산주의-자본주의는 순전히 해방 이후 정권을 잡은 주체들의 사상적 기반의 차이였을 뿐 독재정권들이 추구한 전체주의적 통치 논리와 국가를 하나의 가부장적 체제의 가족 혹은 유기체로 보는 정치 철학은 사실상 동일하다고 봐요.
  • 한단인 2008/02/10 09:58 #

    혈연 중심주의, 인종주의에 환빠나 대륙빠 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사 학계(대체로 원로쪽)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안호상 같은 사람들이 당시 주류인 탓도 있을까요? 아님, 일제 때의 유풍 탓일까요? 좀 햇갈리네요.
  • 초록불 2008/02/10 10:10 #

    dunkbear님 / 이 문제는 제가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군요. 역사비평사에서 나온 [이승만의 정치 이데올로기]나 김석수 교수의 [현실속의 철학 철학 속의 현실] 같은 책을 참고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사상은 독일에서 건너온 것이 많죠. 두가지에 특별한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요...^^;;

    주체사상과 일민주의, 유신은 모두 동일한 것들이 맞습니다. 개인숭배 이데올로기죠.

    한단인님 / 민족 지상주의가 당대 절대 명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dunkbear 2008/02/10 10:14 #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
  • Silverfang 2008/02/10 11:41 #

    이번 글은 중학생 때 국사를 맡고 계셨던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그 개XX를 애들 보는 앞에서 마구 토해내셨던[....]

    니들은 커서 절대 저런 인간은 되지 마라고 하셨던 '그' 모델 중 한명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 초록불 2008/02/10 13:33 #

    Silverfang님 / 한국 현대사의 불행에 큰 책임이 있는 인물인데 백과사전 등에는 별반 이야기가 없으니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 眞明行 2008/02/10 13:44 #

    식민지배와 해방, 그리고 곧이은 전쟁.. 위기의 연속이었던 시대의 격동 속에 저러 인물이 나올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였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북진통일이 당위였듯이.. 지금 북진통일 주장하면 온전한 사람 취급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본다면 2차 세계대전 전후에 나타난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정당화를 위해 탄생한 것이라 봅니다.

    역사학이라고 예외일 수 없겠지요. 지금도 그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으니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이죠. 임지현 교수의 관점은 그래서 일응 타당하다 보여집니다.
  • 초록불 2008/02/10 16:04 #

    眞明行님 / 저도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지배 이데올로기 정당화를 위해 탄생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대사는 확실히 자세히 알지 못해 위에 적은 글을 조사하는데도 한참 걸렸습니다. 이승만이 족청 계열을 배척한 내막이라든가, 우파 진영 안의 분열상에 대해서도 좀더 책을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더군요.
  • 뚱띠이 2008/02/10 16:44 #

    ....................

    갑자기 입맛이 무지 써집니다................
  • 소하 2008/02/10 17:39 #

    우리나라 현대사를 보면 정치권을 한정해서 보면 진정한 의미의 우파와 좌파는 없다고 느껴집니다. 다들 그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국민들을 현혹시켜 왔을뿐...
    그저 남의 것을 배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적인 문화를 창출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더이상 발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문화의 밑거름인 "자국어(글자)"를 업수히 여기고, 영어나라를 만드려는 메모리 이메가를 보면 정말 한숨만 나옵니다.
    왜 자국어를 국제어로 만들어 보려는 생각들은 못하는지~~~
  • 재팔 2008/02/10 20:22 #

    이건 뭐 거대한 무언가가 떠오르는군요.;;
  • 2008/12/10 08:2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8/12/10 08:47 #

    처음 들어보는 단체입니다. 당연히 아는 바도 없습니다. 찾아보니 발기단체에 단군단, 기천검가라는 것이 들어있군요. 단학회와 단월드는 없네요. 작년에 만들어졌군요.
  • 천어 2009/08/12 13:56 #

    안박사가 1925년에 독일 본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기술하셨는데, 학술원에서는 1929년에 독일 예나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네요. 한번 확인해 주시면 어떨까요.
  • 초록불 2009/08/12 14:11 #

    제 착오입니다.

    제가 참고한 책은 1979년에 나온 안호상의 책에 적혀 있는 약력이었는데, 여기에 "독일 예나 대학 졸업, 본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 받음"이라고 적혀 있어서 착각했네요. 이 "본"대학은 서독의 수도였던 "본"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본本 대학이라는 뜻이었네요.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matercide 2010/09/23 14:40 #

    모윤숙이라면 정경모가 고발한 사실인데 유엔 조선임시위원단이 한반도에 가서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할지 말지를 논의했습니다. 남한만의 단독선거는 이전에 미국과 소련의 합의를 무시한 것이고 한반도를 분단하려는 수작인데 위원단의 논의에서 단장인 메논은 단독선거를 강하게 반대했는데 여기서 나온 모윤숙이 붕가붕가로 메논의 마음을 돌려서 위원단의 찬성 4 반대 2로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통과시켰습니다.

    모윤숙 같은 이야말로 진정한 걸ㄹㅔ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kosskosa.blog.me/40089835398?Redirect=Log
  • 내눈을바라봐 2016/05/09 21:04 #

    왠지 우리나라 교육이 썩은 이유가 있었어....초대를 보니 진짜 답이 안나온다.
    2대 교육부장관이 백낙준이라나....휴.....국방부장관은 첫스타트는 좋음. 이범석 다음이 진짜 리얼 쓰레기라서 문제지......근데 우리나라 교육부는 초대나 후임이 쓰레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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