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를 넓혀야만 위대한 역사라고 보는 사람들을 위한 글 *..역........사..*



영토를 넓힌 왕만 위대한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은 참 희한한 일입니다.

아마 세종대왕만 해도 4군 6진 개척이나 대마도 정벌(이건 태종이 한 일이지만)이 업적에 들어있지 않다면 대왕 소리를 못 들었을지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국경은 세종대왕 때 확정되었습니다. 이 정도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알고들 있지요. 따라서 이 말은 "영토를 넓혀야만 위대한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후 역사는 "개막장!"이므로 살펴볼 필요도 못 느끼게 만드는 마법과 같습니다.

더구나 그후의 역사라는 게 일본한테 신나게 두들겨 맞은 것으로 인식되는 "임진왜란"과 청나라에 항복한 "병자호란" 밖에는 기억 나는 것도 없으니 더욱 그렇죠. 사실 살펴보지도 않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개막장"이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죠.

그런데 땅이라는 게 빼앗았다고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토 개념이 지금과 다른 시대라는 걸 명심해야겠죠. 이 시기의 영토란 단순한 땅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땅이죠.

세종과 그 후 시대에 있어 압록강 유역과 두만강 유역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만한 얼마 안 되는 땅이었습니다. 여진족도 필사적으로 이 땅을 빼앗으려 하고 조선도 필사적으로 지켜야 하는 곳이었죠.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열 사람이 한 도둑을 못 막는 법입니다. 여진족의 쉴 틈 없는 공격은 조선으로 하여금 백성들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여연閭延·우예虞芮·무창茂昌·자성慈城의 4군은 단종 3년(1455)에 여연·우예·무창의 3군을 폐하고, 세조 5년(1459)에 자성군을 폐하여 모두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이 폐지는 백성들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고 영토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대 국가들은 이런 방법을 종종 썼습니다. 적국과의 경계 지대를 무인화시켜서 자국민의 피해를 줄이고 완충지대를 만드는 것이죠. 지금의 비무장지대처럼 생각하면 됩니다.

사실 이렇게 되면 영토는 영토라도 쓸모 없는 땅이 되죠. 더구나 모든 곳을 방비할 수 없으므로 타국민이 몰래 들어와 살기도 합니다. 울릉도에 왜인들이 들어와서 살았던 것처럼, 여진족들도 압록, 두만강을 넘어와서 살곤 하죠. 발견되면 몰아내고...

실제로 조선 정부가 4군을 포기한 뒤에도 사람들은 일부 그곳에 남아서 농사를 지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사람들은 떠나갔고 결국은 빈 땅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전화위복이 된 것은, 여진족이 청나라를 세우고 중국을 차지하게 되자 대거 중원으로 자리를 옮겨가서 이 지역에는 분쟁이 거의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현종 대에 4군 설치 논의가 남구만에 의해 잠깐 일어나지만 금방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숙종 22~23년에 이곳이 노는 것이 아깝다고 다시 4군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기각되고 맙니다. 사실 숙종 11년에는 4군 인근의 후주厚州마저 폐지되었으니 4군을 다시 설치할 리가 없었겠죠.

영조 연간에는 이 지역이 밀무역의 중심지가 됩니다. 이 때문에 4군을 다시 설치하자는 의견이 또 올라오지요.

하지만 영조는 늙은 탓인지 이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이 과제는 정조까지 넘어가게 됩니다. 정조 2년 4군 설치의 상소가 올라와 긍정적으로 검토하지만 결국 비변사의 반대로 이루지 못합니다. 정조 20년에 드디어 폐지되었던 후주 진과 4군이 다시 설치됩니다.

군을 설치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관아도 들어서야 하고 병력도 들어가야 합니다. 역대 왕들은 그것을 하기 싫었던 거죠. 전쟁을 해도 비용이 드는 거고, 땅을 만드는 데도 비용이 드는 겁니다. 그 때문에 이 지역은 수년간 조세가 면제되었죠. 사실 그래도 사람들이 만족스러울만큼 늘어나지 않아 정조가 역정을 내기도 하더군요.

이렇게 사람들이 들어가서 사는 땅을 만들어낸 시대가 조선 후기에도 있었다는 거죠. 조선사, 들여다보면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크고 거대한 역사입니다. 귀동냥으로 들은 것 가지고 조선 역사는 찌질하고 못났고 내다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참 난감한 이야기입니다. (이게 다 재야사가유사역사가들이 뿌려놓은 떡밥이죠...-_-;;)

쓸데없는 전쟁보다 고려 후기에 해변가를 개척한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한 대운하를 파야 한다는 식의 전시행정이 없어지지 않을 것 같군요. 눈에 보이는 일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덧글

  • rumic71 2008/02/10 21:53 #

    로마에 있어서 영국 같은 곳이었군요.
  • 운다인시언 2008/02/10 21:56 #

    그렇게까지 버려졌다는 것은 몰랐네요.
  • 초록불 2008/02/10 21:58 #

    운다인시언님 / 울릉도보다는 나았습니다. 울릉도는 3년에 한 번 둘러보는 정도였죠. 그것도 그때 기후 나쁘면 포기...
  • 굽시니스트 2008/02/10 22:05 #

    포스팅하신 바대로, 참으로 지금 발붙이고 사는 이 땅이 수천년전부터 조상들이- 문자적 의미 그대로- 직접 손으로 만들어온 땅이라는 걸 생각할 때 그 시간과 노력앞에서 어찌 허투루이 기술과 금력을 뽐내며 땅을 두부주무르듯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 초록불 2008/02/10 22:10 #

    굽시니스트님 / 옳은 말씀입니다.
  • BigTrain 2008/02/10 22:18 #

    단종대부터 정조대까지 공지였었군요. 오늘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서 기쁘네요. ^^

    그나저나 중국도 압록강변 대안의 상당부분을 공지로 두었던 걸 보면 역시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근대 이전 시기에 구석구석까지 국가가 직접 통제하기란 역시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현대에 들어 그런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지 등 고대의 영토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런저런 논란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환빠들의 왜곡 수단으로 쓰여지기도 하고...
  • 제갈교 2008/02/10 22:47 #

    만일 전쟁만 펼치다가 북쪽의 여러 민족들처럼 중국의 일부 혹은 전체를 얻었다면 지금 한민족이 한민족이 아니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뚱띠이 2008/02/10 23:18 #

    땅이 줄었다고 개막장에 찌질이라고 그러는 환*들의 논리라면 지금 우리는 조선조보다 못한 개#질들이라는 소리인 것입니까?
  • 다물 2008/02/10 23:22 #

    옛날에는 왕이 죽고 바뀌거나 나라가 바뀌어도 한참이 지나서 알았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야 영토확장 이외에도 나라를 살찌울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더 옛날로 가면 영토확장=훌륭한 왕이라는 공식이 통할 것 같습니다. 그때라고 다른 방법이 없는건 아니지만, 옛날로 갈수록 군사력이 그나라의 힘을 상징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 초록불 2008/02/10 23:39 #

    다물님 / 영토를 확장한 왕도 훌륭한 왕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에 맹자가 이미 "진정 중요한 것은 인의"라고 왕도정치를 주창했다는 것을 함께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 眞明行 2008/02/10 23:56 #

    초록불님/ 요새 박정희 친일관련 포스팅을 올렸더니 날이면 날마다 만선이옵니다. ㅋㅋㅋㅋ..이래서 제목이 던져주는 떡밥의 힘은 무시할 수 없나봅니다.
  • 초록불 2008/02/10 23:58 #

    眞明行님 / 당연히 그렇겠지요. 감축드립니다.
  • Ha-1 2008/02/11 01:17 #

    그런데 영토와 인구가 국력의 중요한 요소인 점은 현대국가에 와서도 부인할 수 없는 점이긴 하지요...
  • 초록불 2008/02/11 09:28 #

    Ha-1님 / 그리고 우리나라 인구나 영토가 그렇게 엄청나게 작은 것도 아니라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죠.
  • teferi 2008/02/11 17:35 #

    영토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어려움이야 있겠습니다만 그 정도를 상당히 과장하신 것 같습니다. 영토를 지키는 것만 해도 그렇게 어려웠다면 조선보다 드넓은 영토와 인구를 가졌던 수많은 제국은 다 어디서 온 것일까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지중해 제국을 건설한 로마, 유목생활을 하다가 유라시아를 잇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몽골, 만주의 조그만 부족에서 시작해서 전 중원과 북방 유목제국을 건설한 청, 전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고 전 대륙에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제국, 모스크바대공국에서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거대한 영토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제국 등등..
    이런 나라의 역사에서 그런 어려움으로 날밤을 지샌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나요?
    알려지지 않은 역사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겁니다.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쉽게 극복하고 영토를 확장했는데, 어째서 조선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느라고 날밤을 새다가 수많은 세월을 날려버리고 결국 망국에 이르고 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teferi 2008/02/11 17:46 #

    또한 맹자의 왕도정치에 입각한 동양적 정치관은 서양세력에 철저하게, 아주 철저하게 짓밟히면서 쓸모없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어째서 그것을 예로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 초록불 2008/02/11 20:55 #

    teferi님 / 모르시는 게 당연하죠. 관심이 없으시면 원래 모르게 되는 법입니다. 맹자의 왕도정치가 짓밟혔다는 이야기는... 하아, 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냥 모르시고 사세요. teferi님의 의견은 과거 트랙백 했을 때 이미 다 읽었습니다. 여전히 조선에 대해서는 전혀 공부를 하지 않으셨군요. 아는 게 없으면 보이는 것도 없는 법이랍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알고자 하지 않는 분께 뭘 알려드릴 재주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teferi 2008/02/12 12:43 #

    맹자의 성선설에 기반한 왕도정치가 동양정치, 경제, 법에 헤아릴 수 없는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서양 문명의 기초가 된 로마법의 근본정신이 무엇입니까? 성악설이나, 인간의 본성에는 악한 부분도 있다는 정신이 통치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행동을 규제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전통이 계속 이어져서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로 이어지고,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으며, 현대 민주정치로 발전하였습니다. 현대 민주정치의 정신인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에는 고스란히 인간에 대한 불신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역사의 승자는 왕의 선정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고 국가 이성을 대변한다는 총통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고 언제나 오류가 없다는 공산당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통치자를 불신한 사람입니다.
  • 초록불 2008/02/12 12:48 #

    teferi님 / 말씀하시는 것으로 볼 때, 맹자를 읽어보신 적이 없군요.
  • teferi 2008/02/12 13:12 #

    굳이 읽지 않고도 비판할 수는 있지요. 공산주의를 비판할 때 맑스의 자본론을 완독해야 가능할까요?
  • 초록불 2008/02/12 13:21 #

    teferi님 / teferi님의 능력이라면 능히 그러시겠죠. 맹자나 왕도정치나 유교의 정치이론에 대해서 뭘 읽어보았는지, 알고 있는 지식의 습득처는 어디였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어릿광대 2008/02/12 17:09 #

    영토를 확장하던 왕이 위대한 왕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런 생각이 저한테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영토확장도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나라를 잘 운영하고 ~왕의 업적은 이것이네.. 라고 생각나면 나름대로 위대한 왕이지 않을까요?
    (나름대로 본인의 생각을 적어봤네요... 초록불님이 쓰신 글의 논지에서 틀린관점에서 볼수도 있는 저 나름대로의 생각이었습니다 하하;;)
  • 초록불 2008/02/12 17:21 #

    어릿광대님 / 물론 영토확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영토확장을 못했으니 나가죽어라 식의 글들이 하도 많이 눈에 띄어서...
  • 헤온 2008/02/13 14:56 #

    teferi님. 감사합니다. teferi님 덕분에 미친 듯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대상을 비판할 때, 대상을 자세히 연구하지 않고도 비판할 수 있다는 개그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대상의 본질도 모르면서 뭘 비판하겠다는 것인지. 그야말로 허공에 삽질이건만)
  • 당근이지 2008/02/23 20:40 #

    늘 맛깔나게 차려진 밥상...또 숟가락만 들고 와서 맛있게 퍼먹고 갑니다.
  • 대조영 2008/09/02 15:32 #

    많이 배웠다는 고려대생이 맹목적으로 반공이념에 젖어있는 멍청한 늙은이들만 있는
    멸공산악회라는곳에서 죽쳐 있으니..ㅉㅉ
  • 초록불 2008/09/02 15:42 #

    아닌 밤중에 홍두깨?
  • 대조영 2008/09/02 15:53 #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댓글을 달았는데요..
    teferi 유저 모사이트에서 수구꼴통 발언으로 유명한 유저입니다.
  • 초록불 2008/09/02 15:59 #

    아, 그런 이야기였군요. 저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습니다.
  • 대조영 2008/09/02 16:02 #

    http://kmte.egloos.com/1977348#3485932

    여기에 가보면 teferi 정치성향이 어떤지 알겁니다..
  • 초록불 2008/09/02 16:13 #

    고맙습니다. 굳이 가보지 않아도 어떤 성향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 이야타 2008/12/12 12:18 #

    헉 테페리!! -_- 저 분 드래곤라자교도셨군요.

    왠지 반가운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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