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에 고구려는 한국 역사라는 광고가 실렸답니다.
[연합뉴스] NYT에 '고구려는 한국 역사' 광고 [클릭]
제목만 보고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지도를 보시죠.

고구려의 영토가 말도 안 되게 큰 것은 물론,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백제입니다. 그리고 파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후연. 후연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이 지도는 광개토대왕 때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군요.(써놓고나서 412년 지도라고 표시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광개토대왕 때 맞군요.) 고구려 지도의 북서 상단에 조그맣게 거란(KITAN)이 있는 것도 보이네요. (그 위의 부여는 왜 저리 조그맣대요?)
즉, 태왕사신기의 이 지도군요.

이 지도들의 원본은 이것이고...

한국인 홍보전문가라... 역사 왜곡 홍보 전문가인가 봅니다.
왜 아예 이런 지도를 실으시지 그러셨어요?

이런 지도가 실리면 세계는, 중국이 동북공정 할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아니, 그러진 않아도 한국 애들도 똑같이 개념없구나라고 생각하겠죠. (아무튼 위에 나온 홈페이지 주소는 트래픽 초과군요. 광고 효과는 톡톡히 본 모양입니다.)
혹시라도 이게 뭐가 잘못된 거예요?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 글들을 읽어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유사역사학의 영원한 떡밥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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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시죠.

고구려의 영토가 말도 안 되게 큰 것은 물론,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백제입니다. 그리고 파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후연. 후연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이 지도는 광개토대왕 때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군요.(써놓고나서 412년 지도라고 표시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광개토대왕 때 맞군요.) 고구려 지도의 북서 상단에 조그맣게 거란(KITAN)이 있는 것도 보이네요. (그 위의 부여는 왜 저리 조그맣대요?)
즉, 태왕사신기의 이 지도군요.

이 지도들의 원본은 이것이고...

한국인 홍보전문가라... 역사 왜곡 홍보 전문가인가 봅니다.
왜 아예 이런 지도를 실으시지 그러셨어요?

이런 지도가 실리면 세계는, 중국이 동북공정 할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아니, 그러진 않아도 한국 애들도 똑같이 개념없구나라고 생각하겠죠. (아무튼 위에 나온 홈페이지 주소는 트래픽 초과군요. 광고 효과는 톡톡히 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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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1955549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요 며칠 새 진짜 일어나는 꼴들이 꼭 저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습니다.
(전 93년도에 입학했지요...)
세계인구의 5분의 1이 넘는 인간을 상대로 "싸우자!"고 도발하는 겁니까? 지금... ^^;;
어이가 가출해서 헛웃음만 나오네요. 그냥 포털에서 사진 봤을때는 무심결에 봤는지라 "음, 그렇군."하고 넘어갔는데 자세히 보니 이건 완전 환퐈의 낚시질 그자체네요. 정말 나라망신입니다.
(숭례문 방화, 여자 체육계 성폭력에 이어 정말 전세계적인 망신이네요)
...사실 일반 대중에게 대륙설이 크게 알려진 것은 이 인간이 삼국왕조실록에서 엉터리로 글 쓴게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선왕조실록 대문에 일약 밀리언셀러 작가로 부상하지 않았습니까?
내용을 알고나니 어이가 없군요. 이건 대체 뭔지...
'가능성 있는 이야기지만 정설은 아니므로 인정할 수 없다' 이런 맥락이 아니라 정면 반박의 정보를 찾고 싶습니다. 좀 비약이 지나쳐서 그렇지, 박영규씨 역시 자기 주장이 백프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기 떄문입니다.
이왕 하는 왜곡, 좀 그럴듯하게 티안나게 하던가... 꼭 무식을 드러내는구려...
*전연은 고구려를 침략하여 미천왕의 시신을 훔쳐간 바 있는 모용황이란 놈이 세운 나라입니다. 그뒤 전진에게 망했다가 전진이 비수대전에서 패하고 망한 뒤, 모용황의 아들 모용수가 후연을 세운거죠^^
지도를 아주 이리저리 짜깁기해서 만들었구려^^
http://orumi.egloos.com/2657391
그리고 흔히 백제가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성씨에 대한 이야기는
http://orumi.egloos.com/2657391
를 보시기 바랍니다. 박영규의 설을 자세히 알려주시면 검토할 수도 있습니다.
고구려가 한반도에는 일부만 걸쳐 있고, 대부분 만주와 중국 동북부 쪽에
영토가 있는 걸로 그려지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잘 모르는 미국 사람들이
저 지도를 보면 딱 '어? 고구려는 영토가 대부분 지금의 중국 땅이고, 살짝
한반도에 진출한 거네?'고 생각하는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의심스럽네요.
비안네님 / 한숨입니다.
명랑이님 / 그렇게 생각하는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연합이 보도 자체를 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
한데.... 이런 괴악한 왜곡까지....
전 잘했다고 칭찬 늘어놨었는데 말이에요...
눈이 동태눈 아님 해태 눈인 모양입니다...
박영규씨 저서 백제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는데 대륙백제설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대충 대륙백제가 있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끼워맞춘것 같은; 뭐 그렇습니다;
쪽팔리는일의 연속...
링크양 업어갑니다.
더불어 트랙백도 납치해갑니다 /ㅅ/
[...]
굽시니스트님 / 그렇게 되어 통제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군요... ㅠ.ㅠ
저분들도 아라사와 한판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 봅니다..?!
(아 머리야)
(저런거 한번씩 뜰때마다 설명 해드려야 하니 이거-_-;)
뭐가 쪽 팔리는 짓인고?
자랑스런 한국인이라고 모두들 칭찬하던데,,
전성기의 고구려 영토가 저 정도 안되나요?
여러분들은 바깥에 나가서 남에게 가정사를 시시콜콜하게 일러바칩니까?
이게 대체 뭔일이랴?
자학하는 것도 아니고,,,
1. 저만큼 안 됩니다.
2. 밖에 나가서 거짓말하는 버릇 없습니다.
3. 진실을 말하는 걸 가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1. 저만큼 안되면 어느 정도입니까?
덕흥리고분에서 보면 지금의 베이징도 고구려영토라고 할 수 있는데요.
2. 바깥에 나가서 집안의 치부는 얘기 않지요.
어느 집이나 밝히지 못할 치부는 존재하니까요.^^
3.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쓸데없이 자랑스럽게 얘기하면 자학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리 없지요.
4. "398년 북위의 수도 였던 업에 고구려인 46만명과 기술자 10만명이 가득하므로 왕이 이들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도읍을 평성으로 옮겼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고구려의 영토를 짐작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1. 지도책은 직접 찾아보세요. 사계절에서 나온 [아틀라스 한국사] 정도 보면 되겠군요.
2. 나라의 역사는 집안 가정사가 아닙니다. 재야에 있는 사람들은 중국 역사가 춘추필법에 따라 자기네 불리한 이야기는 안한다라고 거품을 물던데, 가우리님도 그런 걸 쫓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 보죠?
3. 알고 계시는 그 기록이라는 건 한국의 소설가가 쓴 소설책(정립/광개토대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소설책을 가지고 역사를 논하자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어디에 나오는 구절인지 좀 증거 좀 보여주세요.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을 보면
"고구려와 백제는 강성할 때 백만이었으며
북으로는 유,연(지금의 하북성),제,노(지금의 산동성)를 소란케 하였고
남으로는 오,월(지금의 양쯔강 일대)을 정벌하여 중국의 큰 좀이 되었다"
이 글을 보면 고구려가 강성할 때 남으로는 저 멀리 중국의 양쯔강 까지 진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지금에 와서 고구려의 영토를 증명하라면 어렵지만 이런 고기록이 있으니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위의 북위 수도 업의 고구려인 기록은 '위서'에 나와 있답니다.
1. 위서에 그런 말 없습니다. 소설책에 나온 거라니깐요. 위서 보신 적 없으시죠?
2. 소란케하고 큰 좀(좀이 뭔지 모르세요?)이 된 거가 그 땅을 점령한 게 됩니까? 왜구는 고려 때 전국에 출몰했으니 고려는 일본 땅인가요? 더구나 최치원의 저 말은 고구려 있던 때로부터 수백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정약용은 일본이 백만대군으로 조선에 쳐들어왔다고 했는데, 그럼 일본군이 백만이었다고 믿어야 하나요? 사료는 당대 기록을 우선으로 살피고 후대 기록을 보충으로 보는 겁니다. 최치원 같은 문장가가 문장을 수식한 내용을 가지고 역사책 기록인 척 하는 짓은 그만두세요.
님이 인용한 난랑비 서문에는 백제도 같이 쓰여 있는데요??? 어디에 고구려가 양쯔강까지 갔다고 적혀있나요?? (정상적인 사람이 유추한다면 양쯔강을 정벌한 것은 백제라고 생각하겠죠.)
게다가, 님이 인용한 것은 난랑비 서문이 아닌데요?? 저것은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편지인데요?? 삼국사기에 실려 있구요.
또한, 최치원의 같은 편지의 다른 부분에는 고구려가 당태종에게 항복했다는 말도 적혀있는데, 그럼 그것도 사실일까요??
최치원의 글도 못믿겠다 하시니,
그럼 유주자사 '진'의 무덤 즉 덕흥리 고분은 실물이 있으니 믿으시겠죠.
유주자사 '진'은 광개토태왕 시대 사람으로 유주가 현재 베이징 근처이니 그곳이 고구려 영토 아니겠습니까?
그럼 서쪽으로는 저 지도에 틀린 점이 없겠죠?
그리고 말씀하신 기록은 3세기 말엽에 모용씨가 고구려 침공했을때 끌려간 5만의 고구려인들이 4세기 초에 그 수가 불어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게 왜 고구려가 중원 정벌을 한 증거가 되는지 알 수 없군요.(기록도 어디서 잘못 인용한 듯 싶습니다만.. 원문에는 백제, 고구려, 우문씨 등등 10만명의 인원이 업도에 사민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인이 총 56만이라니.. 어디서 소설읽으셨나보군요.)
그리고 덕흥리 고분 말씀하셨는데, 유주자사 진의 13태수 입조도는 아직도 학계에 논란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걸 가지고 고구려가 북경을 영구지배했다고 할 수는 없지요. 북경에는 당시 북연땅으로 고구려에 일시적으로 신속한 적이 있습니다만 북위의 계속된 압박으로 인해 북연은 핵심 인원 수만명을 이끌고 요서를 떠나 고구려로 망명갑니다. 물론 그 땅은 북위의 땅이 되지요.
자..그럼 묻지요? 북경이 고구려땅이 맞나요?
유주에서 고구려가 영토지배가 아닌 '영향력 행사'를 한게 그리 오래가진 않습니다. 그조차도 장수왕 초기에 북연이 북위에 밀리면서 유주 지역과 요서 전 지역이 대부분 북위 영토로 떨어집니다.
3세기 말에 5만이 붙잡혀 가서 4세기초에 50만이 됩니까?
http://orumi.egloos.com/3390711
위 포스팅을 좀 읽어보고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위 한단인님 이야기는 50만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이라는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50만이 되냐고 물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남의 글은 좀 유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묘에 나와있는 것도 부정하면 뭐 할 말 없습니다.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EfWV&articleno=4080324&_bloghome_menu=recenttext#ajax_history_home
http://my.dreamwiz.com/pensword/history/chin.htm
진서 모용황 재기에서 기실참군 봉유가 (중산인지 업인지는 제가 확인을 못했지만) 우문씨와 단씨, 그리고 구려와 백제의 포로들이 경사에서 반란을 획책할 수도 있다라는 식의 간언을 하고 있지요. 그 연대가 대략 345년인데, 여기에는 인원이 따로 적혀있지 않은 것으로 나오네요.
그리고 가우리님이 언급하신 사료는 위서 태조기의 기록은 398년의 일로
업(하북성 남부지방)에 고구려인 등 36만과 기술자, 예술가 10만명이 수도에 가득 차 있다
고 되어 있네요. 여기서 고구려인 등이라고 했으니 진서 모용황 재기 때에서 50년의 세월이 흐른 뒤입니다. 때문에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가 아니라 4세기 초에서 4세기 말이라고 해야 정확하겠네요.
...그래봤자 고구려, 백제, 단, 우문씨 다 합쳐서 36만명인 거니까..별 다를 건 없지만.. 정정할 건 정정해야하니까요.
업에 수십만의 고구려인이 있었으니,
북경지역까지 고구려의 영향력이 미친 것은 분명한 일이고,
저 위의 지도에 하자가 없다는 말이죠.
업에 있는 고구려인 수만명은 전연 모용황이 고구려 침공하면서 끌려온 5만의 후예라고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전연 시기 때에는 끌려온 고구려인들이 노예처럼 대접받았겠지만 전연을 붕괴시킨 부견의 전진 때에는 고구려와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이들의 신분이 상당부분 개선되었을 여지가 있습니다. 시간이 50년 가량 흘렀으니 15세 기준으로 세대수를 잡는다면 대략 3세대가 흐른 셈이지요. 5만여명이 끌려왔으니 3세대가 지났다면 10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 수 불어났을 것입니다.
전진 시기에는 종족 여하에 따라 구분을 두지 않고 능력 위주의 인사정책을 취한 것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때 수만의 고구려인 중 권력에 접촉한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고 이러한 것은 후연 때 까지 이어집니다. 북연 초대왕인 고운이 그 대표적인 예죠(북연 초대왕 고운은 풍발의 추대에 의해 등극한 왕이지만 후연에서 귀족대접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대를 할 정도라면 개인의 능력을 떠나 주변에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죠 )
때문에 후연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한 북위에게 수만에 달하는 '고구려인'이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후 북위왕실이나 정계에 고구려계 인사들이 보이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따라서 얼마든지 위협요소가 될 수 있는 이 집단에 대해서는 반드시 수도 근처에 두어서 감시할 필요성이 발생합니다.( 북위초의 사민정책은 대개 두가지로 나뉘는데 첫번째는 지방 분권 요소가 있는 각 부족의 현지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부족의 산민적 사민책이고 둘째가 바로 주요 위협 요소가 되는 집단을 경사지역에서 감시하기 위해 사민하는 경우입니다.)
어쨌거나 360년 즈음(357년인지 360년인지 기억이 안나는군요) 전연이 수도를 업도로 옮겼기 때문에 업도에 고구려인들이 대규모로 살고 있었다면 398년의 북위가 당시 경사였던 평성 지구에 위험해 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이 집단을 데려와 감시하려는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게 고구려가 북경지역까지 영토지배를 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LA에 한인타워있다고 미국 서부가 한국땅인가요?
현재 한국에는 수십만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은 베트남의 영향력 안에 있는 건가요???
미국 LA에는 수십만 명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은 미국 동부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건가요???
2차 대전 당시 유럽에는 수백만 명의 유태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럼 유럽은 이스라엘의 세력권입니까???
徙 山 東 六 州 民 吏 及 徒 何 高 麗雜 夷 三 十 六 萬 百 工 伎 巧 十 萬 餘 口 以 充 京 師 。
더구나 저 36만의 萬은 署의 잘못이라는 주석도 달려있죠.
「 萬 」 當 是 「 署 」 字 之 訛 。
<왕이 이들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도읍을 평성으로 옮겼다>라는 대목은 세상 천지에 없는 것입니다. 본래 거짓말을 할 때는 7대 3으로 하라는 이야기가 있죠. 사실을 조금 섞어넣으면 사람 속이기 쉬우니까요.
가우리님은 현철의 노래처럼 "거미줄에 걸린 줄도 모르고" 계신 겁니다.
<삼국사기〉
광개토대왕 17년(407년) 기사를 보면,
북연 왕 고운(高雲)의 할아버지 고화(高和)는 고구려 사람으로 고양씨(高陽氏)의 후손이기에 성을 ‘고’로 하였다.
모용보가 태자로 삼아 ‘모용’이라는 성을 주었다.
대동강 하류 남포에 자리잡은 덕흥리 무덤의 주인은 유주자사 모용진(慕容鎭)으로, 영락 18년(408년)에 죽었다.
무덤 글에는 그가 평생에 한 벼슬들을 늘어놓았는데,
처음에 건위장군 국소대형이 나온다.
이는 그가 고구려 벼슬부터 하였음을 가리킨다.
무덤에는 중국 문헌에는 없는 여러 가지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데,
고구려가 중국과 다른 문화권인 증거로 본 이도 있다.
유주자사의 무덤에 광개토대왕의 연호가 쓰인 것은 유주자사 또는 유주와 고구려가 가까운 사이였음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