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 (1)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 *..역........사..*



[일본서기]는 매우 혼란스러운 책이다.

이것을 토대로 임나일본부의 문제를 추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우선 혼란스러운 부분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 글을 쓴다.

임나국任那國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일본서기] 숭신천황 65년조다. [일본서기] 기록대로라면 기원전 33년이 된다. 신라 박혁거세 치세 때의 일이 된다. 이 연대 기록은 당연히 믿을 수가 없다.

아무튼 기록은 이렇다.

65년 가을 7월, 임나국이 소나갈질지蘇拏曷叱知를 보내 조공하였다. 임나는 축자국으로부터 2천여리, 북으로 바다를 격하며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일제군수 출신 유사역사가 문정창은 "북으로 바다를 격하여"라는 구절을 임나의 북쪽에 바다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서 임나를 대마도에 비정했다. 나는 축자국에서 임나를 가려면 북으로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현재 임나의 위치로 가장 유력한 곳은 김해. 즉 금관가야를 말하는 것이다.

임나에 대한 기록은 이어서 수인천황 때 다시 나온다. 수인천황 2년(-28)에 임나인 소나갈질지가 본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한 것이다. 붉은 비단 100필을 주어서 보냈는데 신라인들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신라에 원한을 갖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두가지 기록이 더 붙어 있다. 임나와 왜가 관련을 맺은 사건에 대해서 세가지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1. 이미 본 바와 같이 임나국에서 "난데없이" 조공을 바쳤다는 것이다. 이것이 본문 기록이다. 매우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나머지 두 기록은 더 복잡하고, 그만큼 더 사실적으로 보인다.
2. 의부가라(=대가라=금관가야)의 왕자 도노아아라사등都怒我阿羅斯等이 배를 타고 나타났다. 귀화를 원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무척 고국에 돌아가고 싶어한 것으로 보아 표류해 온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붉은 비단을 주어 돌려보내며, 나라 이름을 숭신천황의 이름을 따서 미마나(=임나)라고 부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숭신천황의 이름 어간성御間城(미마시로)에서 임나(미마나)가 나왔다는 이야기다-모님의 도움으로 파악. 물론 이런 이름이 사실일 수는 없다. 이미 숭신천황 때 임나가 찾아왔다고 쓰고 있는 자기들 말에도 어긋난다.) 그런데 신라가 비단을 빼앗았고 왜는 신라에게 원한을 갖게 되었다라는 것.
3. 아라사등이 금관가야에 있을 때 황소에 농기구를 싣고 시골에 갔는데, 소가 사라져버렸다. 찾아보니 군의 아문으로 끌려간 것이었다. 그때 한 노인이 군공郡公이 소값을 물어준다고 하면 재물 대신 제사지내는 신神을 달라고 충고를 했다. 그리하여 신으로 모셔지는 흰돌白石을 받았다. 흰돌을 침실에 두자 미소녀美麗童女가 되었다. 아라사등이 좋아서 교합하고자 했는데, 아라사등이 다른 곳에 간 사이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아라사등이 크게 놀라 아내에게 행방을 묻자 동쪽으로 갔다고 해서 미소녀를 찾아 일본국까지 왔다. 미소녀는 난파難波와 풍국豊國 국전군國前郡 비매어증사比賣語曾社의 신이 되었다.

2번의 이야기가 현실성이 있다. 3번은 완전히 계통을 달리하는 전설인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금관가야에서 표류해온 사람들(왕자라는 이야기도 믿기 어렵다)로 인해서 임나라는 이름이 전해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위 기사에서 건질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저 사건들은 절대 연대를 확정할 것이 없다. 그냥 옛날옛적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두자.

임나와 관련된 기록은 신공황후기에 가야 다시 나온다. 그런데 이 기록들이야말로 혼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2갑자 하향설이라고 해서 [일본서기] 기록에 120년(2갑자)을 더해서 계산하는데, 그 이야기는 신공황후기에도 보통 적용된다. 하지만 그렇게 일괄적으로 깔끔하게 적용할 수가 없다.

[일본서기]를 따르면 신공황후는 200년 만삭의 몸으로 신라를 정벌했다. 이때 신라왕 파사매금波沙寐錦은 미질기지微叱己知 파진간기(파진찬)를 인질로 보냈다.

파사매금은 물론 파사婆娑 이사금(재위 80-112)일 수는 없다. 연대가 맞지 않고 왜와 관련된 문제가 없다. 그리고 미질기지 파진찬이라면 분명 실성 이사금 때 왜에 볼모로 보내진 미사흔未斯欣을 가리키는 것이다. 미질기지는 신공 5년조에는 미질허지微叱許智로 나온다. 미질허지를 신라로 빼돌린 사람, 즉 [삼국사기]의 박제상은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로 나온다. [삼국사기] 박제상 열전에는 제상의 이름을 모말毛末이라고도 한다고 전하고 있다. 모말과 모마리질지는 같은 이름일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이 [일본서기]를 따르면 205년이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면 418년이다. 두 사건의 연대 차이는 무려 213년이다. 2갑자 120년으로는 어림도 없고 3갑자 180년으로 올려도 소용이 없다. 이 사건뿐이 아니다.

앞서 본 임나와 접촉한 기록이 세 가지였던 것처럼 이 기록도 세가지가 존재한다. 이번엔 이것들을 살펴보자.

1. 중애천황이 반란을 일으킨 웅습국을 정벌하려 했으나 신공황후는 이에 반대하고 신라를 공격하자고 한다. 웅습은 텅 빈 나라고 신라는 금은채색이 넘쳐 흐르는 나라라고 하면서. 하지만 바다 건너에 나라가 있는 것을 믿지 못한 천황은 반대했고, 그 댓가로 사망했다. 신공황후는 이에 신라를 정벌코자 하고 척후를 보내 신라의 위치를 알아오게 한 뒤 만삭의 몸으로 출정한다. 신라왕 파사매금은 놀라서 싸우지도 않고 항복했다. 그리고 미질기지를 인질로 보냈다.
2. 중애천황에게 신이 나타나서 웅습을 치지 말고 신라를 공격하라고 하지만 웅습은 거짓말이라고 거부한다. 천황은 갑자기 병이 나서 죽고 황후가 신라를 쳤다. 신라왕 우류조부리지宇流助富利智 간干이 위세에 눌려 항복했다.
3. 신라왕을 포로로 하고 무릎 힘줄을 뽑아버리고 돌 위에 기어다니게 했다가 칼로 베어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한 사람을 남겨 신라재宰로 두고 돌아갔다. 신라왕의 처는 남편의 시체를 찾기 위해 재를 유혹했다. 왕이 묻힌 곳을 알려주면 시집을 가겠다고 하자 재가 그곳을 알려주었다. 왕의 처는 국인과 공모하여 재를 죽이고, 그의 시체 위에 왕의 관을 올린 뒤, "존비의 순서가 마땅히 이래야 한다"라고 말했다. 천황이 듣고 화를 내서 군선을 끌고 신라를 공격했다. 군선을 본 신라인은 두려워서 왕의 처를 죽이고 사죄했다.

3번 항목은 분명 석우로의 이야기다. [삼국사기] 석우로 열전을 따르면, 첨해 이사금 때 석우로가 왜군에게 화형에 처해진 뒤 미추이사금 때 그 아내가 왜국 사신을 자기 집에서 접대하여 취하게 한 뒤 불에 태워 죽였으며 그 아들은 뒷날 흘해 이사금으로, 신라왕이 되었다. 이 이야기가 3번으로 [일본서기]에 남은 것이다. 석우로가 죽은 것은 294년이다. [일본서기]의 신공황후 정벌 연도인 200년과는 94년 차이가 있다. 역시 어떤 갑자로도 맞아들어가지 않는다.

신공황후의 일본 정벌기에는 200년간의 일본과 신라의 관계가 축약, 왜곡되어 들어가 있다.

덧글

  • PolarEast 2008/02/24 15:11 #

    나중에 아들이 왕이 되었으니, 자기네가 죽인 아버지도 왕인줄 알았나 보군요... 하긴, 일본의 천황제는 철저한 직계 세습제이니, 그렇게 착각할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신라와 관련해서 일본쪽에 할만한 이야기는, 스사노오가 신라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 글을 읽다보니 문득 생각났었습니다. 사실 잘 알지는 못하는 이야기입니다만.
  • 슈타인호프 2008/02/24 16:14 #

    3번 전설은 집에 있던 "한국의 신화, 전설"이라는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 쪽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는 건지 아니면 편집자가 일본 책을 보고 적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Shaw 2008/02/24 16:31 #

    (마땅히 어디에다 써야 할 지 몰라서...) 초록불님, 증보문헌비고 원문은 어디에서 검색할 수 있을까요?
  • 초록불 2008/02/24 16:51 #

    Shaw님 / 윽, 뼈 아픈 질문이군요. 제가 옛날옛적 나온 증보문헌비고 CD롬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은 시리얼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못 돌린다는...-_-;;

    국가전자도서관에서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dlibrary.go.kr
  • 초록불 2008/02/24 16:52 #

    슈타인호프님 / 에... 어느 3번이요? 위쪽 3번이라면 우리나라에는 없는 전설이죠. 연오랑세오녀 이야기 밖에는...
  • 2008/02/24 17:0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于道朱君 2008/02/24 17:10 #

    참고로, 석우로 기사에서도 연대가 대략 일주갑 오류가 있기 때문에, 신공기의 이주갑만큼은 아니지만 연대 산정에 있어 문제가 발생중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일본서기의 반도인명은 현대 한국한자음보다는 그냥 전래의 일본서기 음훈에 맞추어 읽는 게 이해도가 빠른 거 같군요;;
  • 초록불 2008/02/24 17:45 #

    于道朱君님 / 아시겠지만 제게는 일본인명을 일본서기 음훈에 맞춰 읽을 능력이 없습니다...

    석우로 연대에도 문제가 있군요. 그러고보니 과거에 그런 글을 본 듯도...^^;;
  • 슈타인호프 2008/02/24 20:39 #

    위쪽 3번, 소와 돌, 미소녀에 대한 이야깁니다. 다만 제가 읽은 책에서는 돌이 아니라 구슬이라고 썼던 것 같네요.
  • 초록불 2008/02/24 20:42 #

    슈타인호프님 / 역시 미소녀 이야기라면 놓치지 않으시는군요... (네? 핀트가 그게 아니라고요? 몰라요.룰루랄라~)
  • 2008/02/24 21:0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8/02/24 21:02 #

    비밀글 / 안 그래도 그분이 알려주셨습니다.
  • 제갈교 2008/02/24 22:44 #

    흰돌이 미소녀가 되고 그게 일본의 신이 되다니...
    일본의 미소녀는 꽤나 전통적이군요! (...)
  • 초록불 2008/02/24 23:12 #

    제갈교님 / 멋지죠? 그게 한국의 미소녀라는 것도 잊으시면 안 돼요...^^;;
  • 고어핀드 2008/02/25 14:06 #

    아... 아라사등 정말 안타깝네요. 미소녀는 남자의 로망이거늘(?)
  • 초록불 2008/02/25 14:07 #

    고어핀드님 / 제 글을 알아보는 이는 고어핀드님 뿐입니다. 흑흑...
  • 양덩이 2013/03/05 16:02 #

    임나일본부 동의하는 사람이 쓴건데 초록불님 의견은 어떠신가요?

    예전에 임나일본부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도대체 일본애들이 왜 저런 헛소리를 할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의 역사책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을 본다면 당시 왜국이 미개해서 백제를 상국으로 모시면서
    선진문화를 배워간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텐데 왜 마치 그 때 자기들이 상국이었던 것처럼 왜곡을 하고 있을까?
    라고 말이지.

    그래서 우리의 역사책을 찾아봤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 삼국사기 백제본기

    · 아신왕 6년(397) 여름 5월에 아신왕이 왜국(倭國)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支)를 인질로 보냈다.
    · 왜국에 인진로 가 있던 옛 왕자[古王子] 부여풍(扶餘豊)을 맞아다가 왕으로 삼았다.

    (2) 삼국사기 신라본기

    · 실성이사금 원년에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왜국에 인질로 보냈다.
    · 이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박제상을 나중에 보냈고 미사흔은 탈출에 성공하나 박제상은 왜국에서 죽는다.
    - 이외에 많은 왜의 신라 침공 기록

    (3) 광개토대왕비문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속국이었는데 신묘년에 일본이 바다를 건너와서 자신의 속국으로 삼았다.

    (4) 『삼국유사』 탑상 제4, <금관성의 파사석탑>조.

    실은 붉은 돛대 깃발도 가벼운데,
    신령께 빌어서 험한 물결 헤치고 왔네.
    어찌 황옥(黃玉)만을 도와서 이 언덕에 왔으랴.
    천년 동안 왜국의 노경(怒鯨)을 막고자 함일세.

    - 금관가야의 파사석탑을 설명하면서 왜국의 노경을 막고자 함이라 씀.
    여기서 노경이란 분노한 고래를 뜻함. 즉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어치우는 것.

    (5) 삼국사기 열전 박제상조

    왜국에 귀화한 백제인이 말하기를 "신라가 고구려와 합세해서 왜국을 침략하려 한다"고 하므로
    왜국이 군사를 보내서 신라 국경밖에서 순찰하면서 수비했다. 그 때 고구려가 쳐들어와서 왜의 순라군을 죽였다.
    (百濟人前入倭, 讒言新羅與高句麗謀侵王國, 倭遂遣兵邏戍新羅境外. 會, 高句麗來侵, 幷擒殺倭邏人.)


    보다시피 왜국은 백제 신라를 전혀 우러러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인질을 잡아가고 침공하는 등
    마치 몽골이 고려 인질 잡아가고 침공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또한 왜국이 백제 신라의 선진문물을 수입해갔다는 내용도 없다.
    왕인이니 담징이니 모두 일본 기록인 일본서기에만 나온다.

    중국기록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기록에서조차 왜국에게 공격 당하는 약소국으로 등장하더란 말이다.
    한반도 남부에서는 왜계유물이 계속 등장하고 있고 말이지.




    역사를 알아보면서 난 소위 멘붕이 왔다. 우리가 마치 왜국을 속국으로 부린 것처럼 말하는 문화수출은
    실제로는 일본 기록에만 있는 내용이고 그 수출이란 것도 상국인 왜국이 하국인 백제 신라에 명해서
    학자, 기술자를 상납하라는 요구에 의해 보내진 것이었다. 순간 지금까지 속았다는 분노심이 일더군.

    이런 얘길 하는 내가 친일파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나 역시 일본을 매우 싫어한다는 걸 알아뒀으면 한다.
    하지만 이런 내용으로 국민을 속이는 건 마치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 만들어 일본군 토벌했다는
    북한의 거짓말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바보가 되었는데 니들은 분노 안 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거짓말이 시작되었나 해서 봤더니 시작은 일제시대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조선인들은 근대화에 성공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조선인이 미개하다고 비웃고 멸시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반발해서 나온 것이
    왜국의 스승 백제의 왕인 아직기 고구려 담징 이런 것들이었다.
    (조선시대 역사가들 가령 한치윤의 해동역사 같은 일본측 자료까지 섭렵한 책들은 임나일본부까지도 그냥
    서술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 눈에는 당시 국력상 그렇게 되어도 무리 없다고 본 모양.)

    즉 식민지적 열등감, 전근대화적 미개를 부정하기 위해 1500년전의 문화 수출 이야기를 꺼내면서 애써
    열등감을 부정하며 분을 삭혔던 거다. 여기에 식민지라는 약소국의 비애까지 겹쳐져서
    이러한 고대문화선진국론을 부정하면 마치 친일파, 비양심적 나쁜놈이 되는 현상까지 겹친 거고 말이지.
    이게 나중에는 과대포장되어 왜국은 백제의 속국이라는 해괴망측한 소리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랬다.
  • 초록불 2013/03/05 17:19 #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136866&mobile&categoryId=200001102

    위 링크를 참고하세요. 저 글을 쓴 사람은 해당 논문들을 좀 찾아보고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양덩이 2013/03/06 13:37 #

    언제나 친절한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 녹두장군 2015/02/01 13:37 #

    전라도 지역에서 일본식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여러개 나왔다네요.

    https://www.google.co.kr/search?num=100&newwindow=1&safe=off&q=%EC%A0%84%EB%9D%BC%EB%8F%84+%EC%A0%84%EB%B0%A9%ED%9B%84%EC%9B%90%EB%B6%84&oq=%EC%A0%84%EB%9D%BC%EB%8F%84+%EC%A0%84%EB%B0%A9%ED%9B%84%EC%9B%90%EB%B6%84&gs_l=serp.3...6863.6863.0.7048.1.1.0.0.0.0.113.113.0j1.1.0.msedr...0...1c.1.61.serp..1.0.0.xDkzroQoD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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