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종묘에 모셔지다? *..역........사..*



이완용이 순종의 배항공신이 되어 종묘 공신당에 배향될 뻔한 일이 있었다.

처음 순종묘에 배향될 공신은 1928년 5월 3일 박영호, 민영휘, 한규설 등 19명으로 구성된 원로대신들이 선정하였는데 후보는 모두 9명이었다. (이하의 내용은 동아일보 1928년 5월 11일자 보도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음.) 그 아홉 명은 다음과 같았다.

이유원, 서당보, 송근수, 김병시, 정범조, 송병선, 이경직, 이완용, 서정순

이 중 이완용은 이왕직 장관 한창수가 추천했다. (이왕직이란 일제가 조선왕실을 감독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화들짝 놀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불가하다고 했으나 그가 강력히 주장하여 억지로 후보에 선정되었다. 이완용을 추천한 이왕직 장관 한창수란 누구인가? 본래 대단한 친일파로 합방 후 남작의 지위를 받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에 올랐으며 친일파 재산 환수위원회에 의해서 재산 환수 결정도 받은 인물이다. 이 작자는 덕혜옹주를 일본에 시집보낸 장본인이고 고종 독살설의 주역 중 한명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고종 독살설은 현재로서는 그냥 설일 뿐이다. 다만 그 정도에 이를 정도로 악질 친일파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자가 이완용을 적극 추천한 것이다.

그리하여 투표를 한 결과 이완용은 몇 표나 얻었을까? 달랑 한 표였다.(당연한 말이지만 한창수는 투표자 19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한 표를 던진 사람은 고희경 백작이었다.

고희경은 누구인가? 당시 이왕직 사무관에 근무하고 있던 고희경은 정미 7조약에 서명하여 "정미7적"이라 불리는 탁지부대신 고영희의 아들로 이완용과 같이 육영공원 출신이다. 고영희-고희경 집안은 2대에 걸쳐 중추원 고문이 된 유일한 조선인이다. 이 작자는 이완용에게 한 표를 던진 이유는 이왕직 차관 소전치책篠田治策(시노다 지사쿠)의 맹렬한 부탁 때문이었다고 변명했다.

소전치책은 누구? 이왕직 차관 소전치책은 후일 이왕직 장관이 되었고 고순종 실록을 편찬 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 소전치책은 이항구李恒九와 절친한 관계로 이완용을 추천한 것으로 동아일보는 추측했다. 그럼 이항구는 또 누구인가? 그는 이완용의 차남이다.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1932년에 이왕직 차관으로 임명되었다가 그 뒤 이왕직 장관까지 지냈다. (이 무렵의 지위는 확인하지 못했는데, 1918년에는 이왕직 의식과장이었다.) 이항구는 소전치책이 이왕직장관이 되었을 때 그 밑에서 이왕직차관을 지냈다. 이 작자의 3남 이병주도 남작 작위를 받았다. 이 집안은 대대로 친일에 뼈를 묻은 것이다.

배향 공신 추천 대신 중에는 이완용의 형 이윤용도 들어있었는데, 형조차도 이완용에게 표를 주지 않았으니, 쥐꼬리만한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투표를 한 결과 배향공신으로 뽑힌 사람은
문헌공 송근수宋近洙, 충문공 김병시金炳始, 충숙공 이경직李畊稙, 효문공 서정순徐正淳의 네 명이었다.

그런데 이왕직 장관 한창수는 5월 9일에 김병시와 이경직을 빼고 이완용을 넣어서 이완용, 송근수, 서정순의 3명으로 확정했다고 알려주었다. 원로대신과 왕실 친인척으로 구성되었던 19인 회의를 무시하고 이왕직 장관의 독단으로 배향공신을 결정한 것이다.

애초에 고종의 배향공신으로 최익현이 추천되었을 때, 공신 시호가 없는 이는 배향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와 최익현을 배향공신에서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완용은 공신 시호가 없는데도 독단으로 배향공신에 올라가니, 더욱 문제가 되었다.

이에 박영효, 민영휘, 윤덕영, 윤용구, 이지용, 정만조 등 9명의 구 대신들이 회동하고 불가하다고 한창수에게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이 논쟁이 꽤 격렬했던 모양으로 7월 8일 순종이 종묘에 모셔지는 순간에도 배향공신이 확정되지 못하고 말았다. 조사가 부실해서 순종 배향공신이 언제 확정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종묘라도 가보고 이런 글을 써야 하는 건데...) 다만 오늘날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완용은 종묘에 배향되지 못했다. (종묘 배향공신에 대해서는 [위키피디아] 종묘 [클릭]를 참고.)

본래 종묘 배향은 공적의 여부보다 왕실의 측근을 선발하는 것인데, 이완용은 여기에 들지 못했다. 그것도 온갖가지 술수가 판을 쳤음에도. 종묘에 가서 이완용을 만난다면 이보다 더 심한 악몽은 없을 것 같다.

[추가]
순종에게 배향된 네 명의 신하는 이런 사람들이다.

송근수 (1818~1902)
본관 은진(恩津). 호 입재(立齋)·남곡(南谷). 자 근술(近述). 시호 문헌(文獻). 1848년(헌종 14)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대사헌·좌찬성(左贊成) 등을 거쳐 우의정이 되고, 1882년(고종 19) 좌의정이 되었으나 조미수호조약 등 개화정책에 반대하여 사임했다.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로 치사(致仕)한 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편서에 《송자대전수차(宋子大全隨箚)》가 있다.
사후인 1903년에 시호를 받았다. 그는 순종이 태자 시절 보양관(輔養官)으로 순종을 가르친 스승이다.

김병시 (1832~1898)
본관 안동. 자 성초(聖初). 호 용암(蓉庵). 시호 충문(忠文). 1855년(철종 6)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동학농민운동 때 청 · 일 양군의 개입을 극력 반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농민운동 후 폐정 개혁을 적극 주장하여 교정청을 설치하게 하고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사임하여 군국기무처독판에 취임하고, 중추원으로 개편됨에 따라 그 의장이 되었다. 1896년(건양 1)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왕과 왕세자가 러시아 공관으로 들어간 직후 친로파 중심의 내각이 조직되어 내각총리대신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사대당 보수파로서 개국(開國)을 반대하고, 1895년의 단발령에도 특진관(特進官)으로 있으면서 이를 반대하였다.
연도를 보아 알 수 있지만 김병시도 순종이 왕세자 시절에 친하던 사이였다.

이경직 (1841~1895)
본관 한산(韓山). 자 위양(威禳). 호 신부(莘夫). 시호 충숙(忠肅). 청주(淸州) 출생. 1876년(고종 13) 동몽교관(童蒙敎官) ·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 189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과거 응시를 가장하고 전라도 동학교도들이 상경하여 교조(敎祖)의 신원(伸寃)을 요구한 사건으로 파면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 때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으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지휘로 궁궐에 뛰어든 일본 낭인(浪人)패에 항거하다 명성왕후(후에 명성황후로 추증)와 함께 살해되었으며, 후에 의정(議政)이 추증되었다.
이경직은 아무래도 을미사변 때의 공이 감안이 된 것 같다.

서정순 (1835~1908)
본관 달성. 자 원중(元仲). 시호 효문(孝文). 1871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된 후 공조참의 ·동부승지 ·형조참판 ·이조참판 ·대사성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공무아문 대신, 시종원경, 박정양 내각의 법부대신 겸 고등재판소 재판장을 지냈으며 만민공동회에 참석해 그들의 헌의6조에 찬성 서명했다. 이 때문에 면관되었다가 1900년 홍문관학사 ·장례원경 ·중추원 의장을 지냈다.
서정순도 왕세자였던 순종을 가르친 바 있다. 이런 인연으로 배향공신이 된 것 같다. 순종의 재위 기간에 살았던 인물로는 서정순이 유일하지만 그나마 원년에 졸하였으므로 실질적으로 순종 재위 기간 중의 인물 중 배향된 사람은 없는 셈이다.

이들 배향공신 중에는 수구파로 분류되거나 하는 사람은 있지만 우리가 뚜렷하게 친일파라고 인식할 사람은 없다. 이 점이 작은 위안이라고나 할까.

이완용에 대한 연작 포스팅
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이완용 - 그 친일 행각
이완용, 종묘에 모셔지다? - 본 포스팅
이완용, 그의 재산과 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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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이완용, 종묘에 모셔지다? 2008-03-09 11:2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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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완용에 대한 연작 포스팅 일본국과 대한제국의 합병조약문 이완용 - 그 친일 행각 이완용, 종묘에 모셔지다? 이완용, 그의 재산과 치부 - 본 포스팅 Daum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 ... more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종묘 2012-08-05 16:13:17 #

    ... 니다. 공신당은 역대 왕의 공신들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16칸에 83명의 공신이 모셔져 있지요. (이완용도 여기에 들어갈 뻔한 일이 있엇습니다. http://orumi.egloos.com/3647283 [클릭]) 칠사당에는 일곱 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사명지신司命之神 : 인간의 운명을 맡은 신 사호지신司戶之神 : 출입을 주관하는 신 사조지신司竈之神 ... more

덧글

  • 어릿광대 2008/03/05 13:57 #

    뭐라고 할까요... 글을 다읽고나니 할말이 없어집니다..
    (다행히 종묘에 이완용이 배향되지 않은게 다행이군요 ;;;)
  • 초록불 2008/03/05 14:02 #

    어릿광대님 / 뭐, 이런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역사라는 게 재밌어보이기도 하는 거죠...^^;;
  • 耿君 2008/03/05 15:47 #

    큰 일이 날 뻔 했군요-_- 근데 저 순종의 배향 공신 네 분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네요.
  • 홍기맨 2008/03/05 16:21 #

    후보에 포함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통이 터집니다.
  • 초록불 2008/03/05 16:25 #

    耿君님 / 배향공신에 대해서 추가해 놓았습니다.

    홍기맨님 / 뭐, 시대가 시대였으니까요.
  • 에인샤르 2008/03/05 17:23 #

    하마터면 종묘가서 여러 사람이 뒷 목 잡을뻔했군요...

    그나저나 애국심이 없던 이에게 한 조각 양심이라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일까요....

  • 제갈교 2008/03/05 18:51 #

    하마터면 나라까지 잃은데 더하여 왕실 종묘도 능멸을 당할 뻔 했군요. ㅠㅠ
  • 아롱쿠스 2008/03/05 18:57 #

    하마터면 종묘가 '매국노의 사당'이 되어버릴 뻔했네요-_-;;

    뭐 후보들을 다 합해도 이렇다할 친일파는 없네요. (이완용은 빼고)

    종묘배향공신이 첨에는 정말 공신들을 배향했는데,

    나중에 가면서 왕실지친이나 외척이 들어가고 심지어는 그 시절과 별무관련한 사람도 배향됐죠.
  • 아롱쿠스 2008/03/05 19:05 #

    1. 의외로 숙종의 묘정에는 남구만, 박세채, 최석정, 윤지완같은 소론의 인물들이 대거 배향되어 있네요. 그 이후의 시대가 주로 노론정권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2. 위키를 보니까 단종의 배향공신도 있다는 것도 의외입니다. 성삼문과 박팽년이 배향되어 있네요.

    3. 개인적으로는 광해군도 이제는 종묘에 배향이 되었으면 합니다. (왕실 후손들이 추진하면 안되나?) 그리고 배향공신에는 이항복, 이덕형, 박승종 정도면 좋겠네요.

    4. 추가 배향되었으면 하는 사람 : 유셩룡(선조), 이순신(선조), 김육(효종), 최명길(인조)
  • young026 2008/03/05 19:47 #

    경종대의 집권당은 소론이었으니 숙종의 묘정에 소론 대신들이 배향된 건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아텐보로 2008/03/05 21:55 #

    이글을 읽어본뒤 박영효와 이지용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박영효는영친왕인가요? 왕실 적자와 일본왕실과의 혼인시도가 일어나자 자신의 딸을 영친왕에게 시집보낸것으로 무마했다고 알고있거든요.
  • 초록불 2008/03/05 22:16 #

    아텐보로님 / 영친왕의 아내는 이방자 여사죠. 일본인이었습니다.
  • Dataman 2008/03/05 23:12 #

    단종은 세조 재위시 폐서되었다가 한참 후에야 왕으로 복권되죠. 이 때 함께 배향되었다고 보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딱 광해군?)
  • 푸른화염 2008/03/06 01:25 #

    제목만 보고 억! 하고 뒤로 나자빠질 뻔 했습니다.

    만일 시행 되었다면 진짜 위엣분 말씀대로 종묘가서 여러사람 뇌출혈 만들었을 겁니다....
  • 나비의바람 2008/03/06 12:09 #

    아텐보로님은 의친왕의 아들인 이우공을 말하시는듯 싶습니다;;
  • 크렌 2008/03/06 22:07 #

    최익현이 고종의 배향공신으로 추천되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군요.
  • 초록불 2008/03/07 01:17 #

    크렌님 / 최익현은 대원군을 몰아내고 고종의 친정을 이끌어낸 인물이니까요.
  • sharkman 2008/03/07 10:04 #

    이런 시도가 예전에 있었던 일로 그치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죠. 온고는 해도 지신이 안되니까 계속해서 같은 시도를 하는 작자들이 바퀴벌레같이 줄을 지어 나오는 겁니다.
  • 위장효과 2008/03/07 12:44 #

    종묘가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 한국 지부를 보는 심정이었겠죠...
  • 아텐보로 2008/03/09 14:22 #

    영친왕이 아니라 의친왕의 아들이었던가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 플로리몽 2014/04/17 17:42 #

    몇가지 사족 달아보자면...
    한창수는 한장석이라는 당대의 학자정승 한장석의 손자였는데
    하도 인간이 더러워, 이미 평판이 한장석에겐 손자가 없구나..라는 평을 들을 정도였고
    서정순도
    재빨리 단발을 하고 친일하던 위인이라고 매천이 글을 쓴 적 있죠
  • 초록불 2014/04/17 19:52 #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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