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한 뒤 여러가지 의견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비아냥거리는 것 이상의 논리를 볼 수 없는 글도 있었죠.
읽어보면서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과는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므로 트랙백걸지 않습니다.)
인류는 진보해나가면서 사적인 복수를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수를 국가에서 형법을 통해 대리하기 시작한 것이죠.
복수를 하지 않고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훌륭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증언을 해주십시오."
그런데 피해자가 "전 그 사람을 용서했어요. 그러나 증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분을 성인으로 칭송해야 하나요? 범죄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용서받는 세상이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 되는 건가요?
범죄자를 고발하고 증언하는 것은 그 자체가 보복입니다. 그리고 그 보복의 처리를 재판에 위임하고 있는 것이죠.
이 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남습니다. 범죄자에게 모든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다 해도 목숨만은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죠.
여기서 독방에 가두고 밥만 준다는 식의 주장은 성립되지도 않고, 역시 인권에 반하는 주장이 되는 것이니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것은 그냥 감정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죽인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는 말도 흔히 하지요.
반대로 살려둔다고 해도 죽은 사람은 살아돌아오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의 인권은 어찌 되는 것일까요? 어차피 죽었는데 뭔 상관?
그러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죽인 사람을 용서하자는 것도 아니고, 벌을 주지 말자는 것도 아닌데 왜 마치 용서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하는가라고요. 평생 가둬두는 것만으로도 사회에서 격리 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음? 교도행정의 목표는 교화해서 갱생시키는 것이라면서요? 평생 가둬두는 것은 교도행정의 목표와 부합하지 않잖습니까? 더구나 사이코패쓰는 교화가 불가능하다면서요?
사람을 죽였다해서 앞뒤 사정을 따지지 않고 "묻지마 사형"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조직적, 계획적, 잔인, 다수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자는 말조차 "사람"이니까 살려둬야 한다고요? 교화도 시킬 필요도 없고 평생 가둬두면서 살려두자고요?
당연히 이 다음 단계는 교화가 되면 풀어주자로 바뀌겠지요. 만일 바뀌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주장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죠. 논리적으로 보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인간은 감정을 가진 생명체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감정을 쏙 뺀 사회를 이 사람들은 원하는 것일까요? 이퀄리브리엄? 다른 사람의 죽음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세상?
사형제도에 대한 연구에는 사형수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게 되는 여러가지 사례들이 나옵니다. 그게 인간인 것이죠. 사실 사형제도 폐지의 논리에는 이런 감정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가족의 슬픔에는 왜 눈을 감는 걸까요? 눈을 감지 않는다고요? 네, 이렇게들 이야기하지요.
"나도 피해자 가족의 심정을 이해한다. 내가 그 경우래도 살인범을 찢어죽이고 싶을 거다."
라고 인정하면서 이렇게 점잖게 말합니다. "하지만 살인범을 죽이지는 맙시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해본 사람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압니다. 어쩔 수 없는 질병, 사고로 사별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잔인무도하게 살해당했다면?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런데 국가는 그 살인범을 교화시켜서 사람 만들겠다고 합니다.
사람을 죽인 죄값은 측량이 불가능합니다. 이미 피해자가 죽어버렸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당방위나 과실치사, 정상참작이 가능한 복수가 아니라면 그 죄값은 하늘을 덮고도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살인범을 사형에 처하는 것을 국가가 "그것은 개인의 응보에 불과해. 너 때문에 우리 사회 전체가 살인범이 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그냥 참아. 그러면 너는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죠.
정말 그러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저는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감정을 초극하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감정은 그렇게 나쁜 것인가요?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을 위해서도 울 수 있고, 그 일로 사형을 받는 사람을 위해서도 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고, 사람의 감정인 것입니다.
그럼 이런 반론도 가능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피해자 가족이 살인범을 사형에 처한다고 해서 정말 위안을 받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일일이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죠.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이런 일에서 피해자는 피해자의 가족뿐만이 아닙니다. 그 참혹한 살해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같이 운 사람들도 모두 피해자입니다.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1987년 6월의 승리를 가져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권인숙 성고문, 박종철 고문치사, 이한열의 죽음이 사람들 가슴 속에서 아프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다같이 아팠고, 다같이 80년 광주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모두 희생자였고 다시는 그런 희생이 없기를 바라는 피해자의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감정은 사치고 낭비고, 인권에 위배되는 나쁜 것인가요? 피해자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그 살인자에게 정의를 실현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단지 함무라비 시대의 "복수"에 불과한 것일까요? 저는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니 그냥 감옥살이시키는 걸로 만족하라고요? 그 사람을 죽이면 너도 살인자가 되는 것이라고요? 저는 참으로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고 남녀차별주의자고 고문에도 찬성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이 깊은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