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 북한의 문인들 2 *..문........화..*



전에 이태준에 대해서 쓰겠다고 말하고 참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 조금 정리해보자.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지금 읽어도 훌륭한 글쓰기 지침서라 흔히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태준의 소설들은 지금 읽어도 훌륭한 소설이라 말하는 것이 옳겠다. 그가 월북한 후, 김일성 대학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했다 한다.

"러시아에 체호프, 프랑스에 모파상, 미국에 오 헨리가 있다면 조선에는 이태준이 있다."

이태준은 전가족을 데리고 월북했다. 그의 월북은 매우 뜻밖의 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정지용은 그가 월북한지 모르고 그의 집에 놀러갔다가 당황해서 조국의 서울로 돌아오라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소남(둘째딸), 소명(맏딸), 부인 이순옥, 유진(차남), 이태준, 소현(막내딸), 유백(장남). 뒤에 보이는 현액에 "상심루"라고 적혀 있다. 이 집은 성북동에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는 이름의 찻집으로 남아있다. 성북동에 가시는 분들은 한번 들러보기를...

그의 월북 결심에는 1946년의 소련 방문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부인이 황해도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의 신사라 불렸던 이태준이 갈 곳이 아니었다.

처음 그곳에 도착하여 이태준은 매우 큰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런 큰 환대가 이태준을 북한에 머물게 했다고도 한다. 그저 다녀오려고만 했다는 것이다. 이태준은 소련파의 지원을 받아 편안한 북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카프계 문인들은 유미주의적이고 부르조아적인 냄새를 풍기는 이태준을 싫어했다.

이태준은 1956년에 숙청되었다. 소련파의 몰락과 같은 때이다. 카프계의 선봉이었던 한설야는 카프에 반대 성향을 지녔던 구인회에 속했던 이태준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한설야의 비판을 필두로 이태준 문학은 철저히 부정당했고 이태준은 해주 황해도일보사의 인쇄공으로 쫓겨났다.

그는 1964년부터는 대남심리전 소설을 쓰는 비밀작가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같은 대작가가 시키는대로 이념 소설을 써야했을 그 심정이 내게는 너무나 아프게 다가온다. 그는 10년 뒤 평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다시 한번 사상비판을 겪고 강원도 장동 탄광지구로 쫓겨났고, 이곳에서 아내 이순옥이 뇌혈전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이태준의 최후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비극은 그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아이들은 모두 김일성 종합대학에 진학했고, 이태준이 숙청될 때 같이 숙청되었다. 맏딸 소명은 소련에 유학 중이었으나 불려와 남편과 강제로 이혼당한다. 그 남편은 홧병으로 6개월 후 사망했다고 한다. 차녀 소남은 반동작가의 딸이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매질을 당하며 살다 이혼 당하고 탄광 노동자와 재혼했으나, 그도 낙반 사고로 죽었으며 결국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장남 유백은 독신으로 지냈다고 한다. 차남 유진은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하고도 오지에 근무해야만 했다. 막내 소현도 강제로 이혼 당했고, 두번째 남편은 남파 간첩이었다고 한다.

단 하나, 마음에 위안이 되는 사실은 이처럼 철저히 부정당한 이태준이 북한 문인들 사이에 여전히 문장의 신으로 살아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금서로 지정된 이태준의 글도 몰래 읽히고 있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구가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에게 북한은 거대한 감옥에 불과했다. 뛰어난 재주를 지녔던 화가 김용준은 9.28 서울 수복 때 월북했다. 이태준과의 친분이 월북을 결심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1967년 자살했다. 그가 자살한 이유는 김일성의 초상화가 실린 신문을 파지로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북한에서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의 초상화는 절대 파지로 내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얼굴이라면 접어서도 안 된다. 우리도 이미 보지 않았던가? 김정일의 초상화가 비에 젖는다고 울부짖으며 뛰어가던 북한의 여대생들을...

물론 1967년은 이태준이 최종적으로 숙청된 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백석 - 북한의 문인들 [클릭]

추가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는 이런 글이 있다.

오래 살고 싶다.
좋은 글을 써보려면 공부도 공부려니와 오래 살아야 될 것 같다. 적어도 천명을 안다는 50에서부터 60, 70, 100에 이르기까지 그 총명, 고담의 노경 속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가을을 지나 농익은 능금처럼 인생으로 한번 흠뻑 익어보고 싶은 것이다.

이태준은 52살에 숙청되었고 원하지 않는 선전선동의 글밖에 쓰지 못했다. 그리고 남긴 작품도 없다. 저 글을 읽으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핑백

  • 초록불의 잡학다식 : 백석 - 북한의 문인들 2008-04-21 23:39:00 #

    ... 들었다. 이태준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광산노동자로 죽었다는 글도 어디선가 보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찾는데로 올리도록 하겠다. 이태준 - 북한의 문인들 2 [클릭]) 시인 백석은 평북 정주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월북작가는 아니다. 고향에 남아있던 재북작가라 할 수 있다. 백석의 시는 아름답다. 한편 감상해보자. 나 ... more

덧글

  • 치오네 2008/04/18 22:49 #

    아, 이태준...

    뭐라고 리플을 달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강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대학 때 교수님 한 분이 이태준의 광팬이셨던지라, 종종 눈으로 허공을 긁으시면서; 이태준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셨지요) 이념 소설을 쓰는 비밀 작가로 활동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백석 이야기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이태준도 그런 글을 썼을까요? 생각하니 정말...
  • 제갈교 2008/04/18 23:02 #

    사진 보니까 주위에 전부 부인이고 아들, 딸이라 유독 큰 것도 있지만 당시로서는 꽤 훤칠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인이시군요. :)
    북쪽 작가는 백석 시인과 카프 계열 일부 문인밖에 몰랐는데 덕분에 이태준 씨도 알게 되었네요. :)
  • 루아™ 2008/04/18 23:12 #

    현대문학사를 공부하다보면, 월북 문인들의 말로를 보게 되는데 거 참 뭐랄까..:(
    어떤 의미에서는 참 대단합니다-_-;
  • 풍신 2008/04/18 23:27 #

    사진 보면 멋진 분이란 느낌이 드는군요. 북한에 대해선 짜증만 나는군요.
  • dunkbear 2008/04/18 23:32 #

    작가 본인도 그렇지만 그 자녀들의 비극은 참....
  • 아롱쿠스 2008/04/19 00:08 #

    이국적인 마스크를 가진 분이군요...

    위의 작은 사진을 보면, 스페인 시인 로르카를 약간 닮기도 했습니다.
  • 루드라 2008/04/19 00:12 #

    북한은 다른쪽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창작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지옥에 가장 가까운 곳 같군요.
  • 식인양떼 2008/04/19 02:02 #

    이태준을 숙청시킨 한설야도 결국은 숙청당하고 비참하게 죽었으니..

    거참 송아지가 웃을 일입니다....
  • 초록불 2008/04/19 02:12 #

    식인양떼님 / 오직 김일성만 살아남았죠.
  • 이준님 2008/04/19 05:33 #

    1. 대학교때 이태준의 작품들을 접하고 꽤 환희에 찼던 생각이 나는군요. 사실 이광수류의 "계몽"적+ 구시대적 문장 시대를 넘어 현대문학의 새 장을 연 사람이 바로 이태준+ 현진건이라고 보면 됩니다.(단편 '토끼'에 보면 현진건에 대한 소회가 잠깐 나오지요)

    2.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이태준의 "동화"만 어린이들 대상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진짜 동화부터 성인 소설중에 재미있는 걸 편집한 건데 -_-;;) 일제 연간의 된장남인 박태원(이 사람도 월북후에 아주 일이 황당하게 진행되었지요) 이나 일부 "이념 과잉-친일이건 그 반대건"의 작품들과는 달리 진솔한 생활 이야기. 민중의 고통과 투쟁, 공포물등등 해서 꽤 다채로운 작품들이 있지요. 모든 공통점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들어 있다고 할까요. -이런건 21세기의 한국 작가들에게도 극히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기도 합니다.

    3. 특히 제가 마음에 드는건 이미 몰락해 가는 구세대에 대해서 당시 작가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요. "해방 전후"의 마지막 장면이나 일제 연간에 많은 작품들에서 묘사하는 구시대의 퇴장에 대해서 아주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4. 이 사람이 월북전에 가장 논란이 심했던 작품이 바로 중편인 "해방 전후"이지요. 일제 연간에 지식인의 비참한 삶-양심상 친일하기도 그렇고 경제력도 없는 삶-을 그린 "토끼"의 후속작인데 여기서 의외로 "해방이 되어도 혼란하고 만세도 안 부르는 풍경"을 캐치하면서 "아는 사람을 통해서 구해온 라바울 전기 원고나 쓰면"서 "전쟁 독려안한다고 경찰에게 매일 혼나면서" "억지로 참가한 대동아 문인대회에서의 자기 분열적 모습"과 당대의 풍경-일본인보다 더 악질적인 조선인 장교나 서툰 일본어로 더듬거리는 만주인 문학가와 대변되는 말끔한 일본어로 농담따먹기 까지 하는 조선인 문인들의 모습을 대비하기도 하지요. 의외로 "친일에 대한 변명"이 전혀 없어서 더 인간적입니다.

    참고로 이태준은 별별 해괴한 죄로 숙청되지만 그 많은 "죄" 중에서는 친일은 없었습니다
  • 이준님 2008/04/19 05:40 #

    5. 이태준 자신은 사실 전쟁때부터 이미 대남 심리전 관련 작품을 썼습니다. (사실 1946년 연간에 발표한 소련 기행같은 건 그나마 읽을만한 기행문입니다만 전쟁중 발표한 "미국 대사관"류는 거의 슨상님때 마봉춘 특별 기획드라마에서나 볼수 있는 선전선동류 작품이지요. 역설적으로 이 작품이 "반동"으로 몰려서 숙청된건 개그이지만요)

    6. 이태준 일가의 최후는 북한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초록불님 말씀은 지금도 북한에서 전해오는 거의 "전설"적인 이야기지요. -보통 이런류의 이야기나 북한의 사정상 신빙성은 거의 맞다고 보면 됩니다.- 박정희때 "남한"의 공식 기록대로 "영장없이 체포되서 일가가 행불되었다 -_-;;는 류보다는 신빙성이 있을겁니다.

    7. 이태준 숙청에서는 한설야-안막- 최승희 트리오가 있다는게 정설입니다. 물론 이 세사람 역시 한큐에 숙청되었지요. 이태준 숙청 관련 일을 안 후부터는 마봉춘에서 최승희 띄워주는거 보고 분통이 터지더군요. -_-;; 참고로 북한에서 현재 이 트리오는 "공식 복권"이 되긴 했습니다.

    8. 오래전에 신동아에서 구월산 유격대가 전쟁중에 이태준을 구하려는 임무로 북파되었다는 떡밥이 돌기도 했습니다. -_-
  • 이준님 2008/04/19 05:40 #

    ps: 관련 이야기는 보충해서 트랙백으로 하겠습니다.
  • 어릿광대 2008/04/19 07:02 #

    왠지 안타깝다고 할만한 인물인듯 합니다 에휴
  • 초록불 2008/04/19 08:46 #

    이준님 / 이태준의 숙청에 최승희가 관련 되었다는 건 전혀 모르는 이야기네요.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 하늘선물 2008/04/19 11:13 #

    이태준씨가 쓴 문장강화는 정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 역사궁금이 2008/04/19 15:58 #

    이태준이 대학졸업논문으로 쓴 한국문학사인가? 그 책이 대학교 교재로도 쓰였던 적이 었던데, 대학생이 쓴 글을 대학생이 교재로 배울 정도면 그 재능은 정말이지 ㄷㄷ
  • 아텐보로 2008/04/20 15:09 #

    사진을 보니 자녀들이 꽤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이었던것 같은데 성인기가 정말 아주 비참하게 흘러갔군요.......ㅡㅡ;
  • 나루 2008/04/21 23:05 #

    북한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더욱 더 강화되는군요...... 뭐 하기야 그쪽에 관한 이야기는 대체로 이런 것들 뿐이니..
  • 진성당거사 2008/05/23 00:08 #

    참.......이태준 옛집의 이름은 '수현산방'이 아니고 '수연산방'(壽硯山房)입니다. 중학생 때 이 곳을 처음 찾고 이 집에 완전히 반해버려서 (순수히 고택 그 자체만을 - 솔직히 찻집 서비스는 별로여서요) 언젠가 나중에 꼭 이 집과 똑같은 집을 짓고 살겠다는 결심을 한 뒤 대딩이 된 지금까지 계속 구체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전 이태준의 무서록 초판을 가지고 있는데, 수연산방 옛집에도 이 양반이 쓴 글에 배어있는, 그 특유의 깔밋한 맛이 있는 것 같거든요.
  • 초록불 2008/05/23 00:12 #

    무서록은 최근에 보았습니다. 초판을 가지고 계시다니 원본을 가지고 계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면 참 부러운 이야기네요. 그 중 한 구절을 따서 보강을 해놓을까 생각만 하고 아직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오래 살고 싶다. 오래 살아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내용인데... 그 부분 읽으면서 그의 실제 인생을 생각하며 울컥했습니다.
  • 진성당거사 2008/05/23 00:13 #

    네. 1941년 박문서관에서 발행한 판본입니다.
  • 초록불 2008/05/23 08:44 #

    헉! 그 귀한 것을... 대단하십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구경이라도 하고 싶네요. (아내가 이태준의 팬이라 펄쩍 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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