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4월 19일날 썼던 일기.
지금 보니까 문장도 엉망이고, 지나치게 감상적이네요. 아무튼 그때 나는 대학 1학년, 열아홉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양해하고 읽어주기 바랍니다.
그냥 그 시절의 4월 19일은 어땠나, 그런 기록으로 글자 바꾸지 않고 그냥 적어봅니다. ------------------------------------------------------------------------------
나와 종☆는 당구를 한 게임 치고 황급히 학교로 돌아왔다. (종◎는 그때 집으로 가더라.) 난 점심을 못 먹고 행사에 참석해 있었다. 햄버거 하나를 간신히 먹고 스크럼에 끼었다. 우리들은 수유리까지 평화행진을 하려 했다. 학생회장이 전경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페퍼포그 차는 점잖은 경고를 했다.
"친애하는 서강 학우 여러분.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입니다. 어서 학교로 돌아가십시오. 여러분과 충돌하기 싫습니다. 어서 학교로 돌아가십시오."
그때 돌 몇 개가 전경에게 날아갔다. 삼민투위 위원장이 황급히 돌을 던지지 말라고 외쳤다. 동시에 최루탄이 터지고 스크럼은 무너졌다.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최루탄 가스에 범벅이 되어 - 죽을둥 살둥 하며 - 허위적거리며 교문으로 쫓겨들어왔다. 얼마를 헤매고 나서 나는 수돗물에 세수를 거푸거푸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다시 나갈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영○이 누나가 지나갔다. 같이 내려갔다. 돌을 주워오라 했다. 돌을 줍다가 페퍼포그 개스를 들이켰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풀밭에 엎어져 있었다. 다시 수돗가로 가서 씻었다. 얼굴이 온통 화상을 입은 듯 따끔거렸다. 목구멍에서는 그을음 냄새가 나는 듯하고 타는 듯한 느낌도 났다. 지★이가 밑에 있었다. 같이 돌을 던졌다. 다시 교문을 나서다가 최루탄에 쫓겨 들어왔다. 이마 위로 뜨거운 기가 휙휙 스쳤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후문으로 가자고 그랬다. 다시금 스크럼이 짜이고 행렬은 후문으로 향했다. 잠시 끼었다가 견딜 수가 없어서 대열에서 이탈하여 C관(학생회관)으로 들어갔다. 세수를 하고 문학반에 들어갔다. 휴지를 챙겨 넣었다. C관 식당에소 용△와 또 누군가를 만났다. 잠시 이야기를 했다. 정신이 좀 든 뒤에 후문으로 갔다. 후문에서는 아직 충돌이 없었던 것 같았다.
훈▲가 돌을 줍고 있었다. 나는 돌을 날랐다. 돌을 내려놓는 순간 최루탄이 터졌다. 우리는 다시 교문 안으로 쫓겨 들어왔다. 그러나 정문과는 달리 여기서는 강한 서풍이 우리를 도왔다. 정문에서는 강한 서풍 때문에 최루탄이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지만 후문에서는 우리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더구나 전경들은 최루탄마저 떨어졌다. 우리들은 조금씩 전진할 수 있었다.
전경들도 돌을 집어던졌다. 우리는 야유했고.
그러나 우리는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전쟁이란 용어는 부당하다. 우리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경이 우리의 적은 아니다. 우리의 적은 반민족적, 비인간적인 것들이니까. 제도의 부산물이 우리의 적은 아니다.
우리는 뒤쪽으로부터 최루탄을 받았다. 황급히 교문 안으로 다시 밀려들어갔다. 몇 차례의 시소 끝에 우리는 완전히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둘이 붙잡혔다. 그 중 하나는 2학년 경□이 형이었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없어서 R관(이공관) 화장실로 갔다. 다시 나왔다. 얼이 빠져 있던 정■이가 보이지 않았다. 정■이 좀 챙기라고 했던 현▽는 그 자리에 있었다.
정■이가 내 옆으로 왔다. 정■이는 정말 대단했다.
지랄탄이 터졌다. 우리는 다시금 쫓겼다. 전경들은 후문 바로 앞에 포진했다. 우리는 스크럼을 짜고 다시 정문으로 향했다. 소운동장에 모여 구호를 외쳤다. 애국가를 부르고 해산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진 것은 아니다. 그렇게 깨져도 콧물눈물 있는대로 다 흘려도 그 누구도 추한 모습이 아니다. 다섯 번, 열 번 끝까지 끝까지 나가는, 쫓겨 들어올지라도 다시 나가는 젊음은 결코 지지 않고, 젊음으로 이루어진 대학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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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부연 설명
- 1985년부터 학내 상주 경찰이 물러나고, 교내에 경찰이 진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데모대가 교문을 나서면 도로 양쪽을 차단하고 학생들을 다시 교문 안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교문 안으로 경찰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최루탄은 얼마든지 쏘았지요. 최루탄에는 유탄발사기로 쏘는 일반적인 최루탄과, 손으로 던지는 수류탄 같은 사과탄, 페퍼포그차에서 발사하는 지랄탄이 있었습니다. 지랄탄은 땅에 떨어지면 이리저리 뒤틀린 곡선을 그리면서 달려나가기 때문에 지랄탄이라고 불렸죠. 가스를 들이키면 구토 증세를 유발합니다.
- 유탄 발사기의 최루탄은 45도 이하로는 발사하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이 무렵에는 시위가 오래 가면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을 겨눠서 쏘았다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각도를 낮춰서 발사하면 매우 위협적이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만들었죠.
- 이 행사는 제가 처음 참가했던 데모였습니다.
- 그리고 다 아시겠지만, 이때 대통령은 29만원 전두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