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가 왔다? - 풍수는 미신일 뿐 *..잡........학..*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서 풍수사를 데려다가 허무맹랑한 선전을 해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풍수는 미신일 뿐이다.

죽은 사람의 유골이 유전으로 이어진 산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거나, 지기地氣가 좋은 자리에서 장사가 잘 되고, 돈이 벌리고 한다는 이야기는 아무 짝에 쓸모 없는 미신일 뿐이다.

나는 약 3년을 관상과 풍수를 배우러 다녀보았는데(이런 오컬트한 쪽으로 관심이 있어서 다녀보았을 뿐이다) 보면 볼수록 빠져나갈 구멍이 많고 모호하기 그지 없는 눈속임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수천년을 내려오다보니, 이른바 생활풍수라는 것에서는 몇가지 참고할만한 일도 생긴다. 가령 모퉁이는 접근성이 높아서 장사가 더 잘되기 마련인데, 이런 곳을 다른 곳보다 지기가 좋다고 이야기한다든가 하는 점. 고대라면 쓸모 있었을 물길이 굽어지는 안쪽에 마을이 생긴다거나(물에 대한 접근성이 물굽이 바깥 쪽에 비해 월등히 높다), 북풍을 막아주는 산 아래 집이 생긴다든가(그 유명한 배산임수) 하는 정도의 이야기다.

하지만 오늘날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반면 좋은 무덤 자리를 쓰면 후손이 잘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려면 묘를 옮겨야 한다느니, 묘를 옮기고 누가 대통령이 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는 판이니...

오늘 방송에서 경복궁이 명당이라는 말이 나온 모양인데 그래, 경복궁이 얼마나 명당인지 한번 보자.

경복궁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처음 왕이 된 사람은 조선 6대왕 단종이다. 열일곱 살에 목을 졸려 비명횡사했다. 역시 경복궁에서 태어난 세조가 그 죽음을 지시한 사람이다. 세조의 장남은 스무살에 요절했고 차남도 스무살로 요절했다.

9대 성종도 경복궁에서 태어났다. 38세에 죽었으니 장수하지는 못했다. 성종의 아들 연산군도 경복궁에서 태어났다. 명당에서 태어난 연산군이 어떤 인물인지 우리가 다 안다. 연산군의 아들들도 모두 경복궁에서 태어났지만 어찌 되었는지 알 수도 없다.

11대 중종도 경복궁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들 중 서장자 복성군은 왕위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사약을 먹고 죽었고 장자 인종도 31세에 요절했다. 13대 명종의 장남 순회세자는 경복궁에서 태어났지만 13살로 요절했고 명종은 더 이상 후사를 갖지도 못했다. 명당 경복궁에서 후손도 못 낳은 것이다.

경복궁에서 태어난 마지막 왕은 15대 광해군이다. 왕위에서 쫓겨났다. 왕위에 있을 때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다. 영창대군은 아홉 살 나이에 펄펄 끓는 방에 갇혀서 비참하게 죽었다. 광해군의 형 임해군 역시 37세에 유배가서 의문사했다.

그리고 이 명당에 지어진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때 홀랑 타버렸다.


경복궁은 그냥 궁궐일 뿐이다. 거기서 태어난 사람도 다 희로애락을 느낀 사람들일 뿐이다. 과학을 모르던 전근대 시절의 이야기를 왜 공영방송이 황금시간대에 광고하고 있는 걸까?

풍수나 관상, 손금 따위는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하기는 좋은 이야기지만 공영방송에서 "사실입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라는 식으로 부추겨서는 안 된다. 아무리 코메디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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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이 자리를 빌어, 제가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봐준 관상에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런 건 정말 농담이고 사실 저도 술기운이 올라서 한 헛소리에 불과한 것이니 절대 마음에 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관상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한번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늑대별 2008/04/27 20:46 #

    풍수지리설이나 언제 태어났는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는 토정비결이나...미신적인 것은 마찬가지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것에 혹해 있다는 것도 답답하고 그런 걸 부추기는 언론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에휴~
  • 푸른화염 2008/04/27 20:47 #

    찔끔했습니다.. 그쪽 문제로 인하여 한탄하는 글을 쓰고 난 직후에 이걸 보니.....(ㅎㄷㄷ....)
  • catnip 2008/04/27 20:51 #

    뭔가 그런데라도 기대고 싶은 사람 심리를 이용한 장사속이라고 생각하다보니 TV에서 봐도 관계자의 사촌의 팔촌이 관련 사업을 시작하는건가..라는 뒤틀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 azurebird 2008/04/27 20:55 #

    몇군데 가보고 명당이니 뭐니 하고 마는 수준에다 논문이 (사실여부를 떠나)가진 권위를 이용해 납득시키려는 모습이 맘에 안들었습니다.
  • 한도사 2008/04/27 20:59 #

    십년전에, 국내에 있는 풍수책을 몽땅 다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지요.
    '풍수는 없다.'
  • 비안네 2008/04/27 21:16 #

    경복궁이야 명당은 명당이지요. 다만 그 명당 터가 과연 전해오는 말대로 '발복하여 사람을 복되게 하는지'를 묻는다면 회의적일 수밖에 없지만요. 제정 러시아나 몽골은 풍수 기준으로는 개차반인 곳에 조상 묘를 쓰고도 그 큰 나라를 이루었는데 사람들이 그런 점은 잘 생각하지 않더군요. 믿고 싶은 마음에 기대는 점이라면야 환빠와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 眞明行 2008/04/27 22:22 #

    좋은 글입니다. 설령 풍수지리라는게 맞다 치더라도 신수와 궁합이 맞아야 좋은 명당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옷도 사람에 안맞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풍수지리를 그렇게 잘 아는 고수라면 지금쯤 억만장자가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중이 제 머리는 못깎는다 변명할려나..)

    그나저나 오늘 소개된 안양시 모 행정구역 소재 아파트들은 홋가가 제법 뛰겠군요. 이래서 TV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 아롱쿠스 2008/04/27 22:23 #

    오류가 하나 있네요. 경복궁은 1592년에 불탔는데, 그 14년후에 태어난 영창대군이 경복궁에서 태어났을 리는 없죠^^
  • 초록불 2008/04/27 22:27 #

    아롱쿠스님 / 아, 그렇군요. 쓰다보니 깜빡... 고쳐놓겠습니다.

    진명행님 / 거기가 안양이었군요.
  • 시퍼렁어 2008/04/27 22:36 #

    풍수지리가도 먹고 살아야지요
  • 초록불 2008/04/27 22:36 #

    시퍼렁어님 / 집안에 관련자가 계시는군요?
  • 액시움 2008/04/27 22:47 #

    예전에 소개해주신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겔겔겔
  • 매드박살 2008/04/27 23:30 #

    실례대로 본다면 경복궁은 명당이 아니라 흉지...;;
  • 공석 2008/04/28 02:11 #

    그 의왕의 모 음식점 명당이라고 소개한 대목에선, 나름대로 공감을 해버렸던(...) -그 음식점 주인분껜 정말 송구한 말씀이지만, 그집 정말 허름한데다가 음식맛도 별로 없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긴 해서, 신기할 따름이었거든요.-
    문제는 안양의 아파트 단지라고 소개한 동네가 전혀 '명당'으로 불릴 만한 동네가 아니었다는 데에서, 확신을 주더군요.(OTL)
  • 공석 2008/04/28 02:19 #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음식이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테리어나 방식이 특출난것도 아닌데, 다른 곳보다 사람이 더 많이 모인다면, 그것은 아마 그 음식점의 경영이나 마케팅방식을 주목해야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현지인(?)으로, 그 집에 대해서 한 마디를 해보자면, 비록 말그대로 '산구석에 처박힌' 음식점이긴 하지만, 많은 의왕시민이 취미나 운동삼아 그 근처에서 등산을 하다가 출출해지면 "그 ○○밥집에서 밥먹고 가자"라고 말하는게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 말입니다.
    MBC는 그 전에도 "갱제야 놀자"이던가를 방영해서 논란이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이런 걸 보면 담당PD가 상당히 독특한 분인 듯 합니다.
  • Granduke 2008/04/28 03:03 #

    이젠 뭐 흔히 말하는 서브컬처의 좋은 떡밥이니...
  • 위장효과 2008/04/28 09:32 #

    다른 건 몰라도 경복궁 자체가 풍수지리설에 맞지 않게 지어졌다고 알고있었는데 그걸 명당이라고 하는 걸 보니 그 사람 정말 사기꾼이 맞는 거 같습니다.
  • 瑞菜 2008/04/28 10:46 #

    묘자리에서 최고의 명당은 "화장"이라지요?(그래서 한때 불 속의 명당이라는 말도 나왔고)
    재미있는 것은 그 말에 거의 모든 풍수가들이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참 아이러니컬한 말이지요.
    묘자리를 따지는 이유 중 하나가 시신에 여러 위해를 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함도 그 중 하나인데,
    정작 자기 손으로 시신에 "불로" 직접 위해를 끼치면 최고라니.
    실로 알조 입니다.
  • 瑞菜 2008/04/28 10:49 #

    그러고보니 궁합도 중국에서 이민족들이 청혼했을 때 그걸 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 귀지맛젤리 2008/04/28 12:54 #

    케이블에서 귀신이 어쩌고 점쟁이 데려다 놓고 사실인양 방송해주는것도 짜증나는데
    공영방송에서까찌 저런걸 보다니요.....
    혹시 피디가 박아놓은 부동산 시세조작을 위한 음모일까요??
  • 야스페르츠 2008/04/28 15:01 #

    얼마 전에 TV에서 본, '인도 주술사 사기 방송'이 떠오르는군요. 주술사가 사회자를 죽이겠다고 몇시간 동안 주문을 외웠던 황당한 방송...

    미신과 신앙이 엄청나게 발달한 인도에서조차 주술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나라는 대체 뭐하는 건지...ㅡㅡ;
  • 르젠느 2008/04/29 16:00 #

    제가 아는 지리 정도는 배산임수뿐 (...) 그나저나 저도 그거 보고 "저곳 땅값 올리고 싶어서 찍는겐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
  • Scott 2008/04/29 16:05 #

    저같은 경우는 관상이나 풍수라고 아예 무시하고 그러진 않긴 하지만..(이래저래 겪은 것도 있어서..) 방송한 것은 좀.. 보면서 거시기 하더군요.-_-;; 뭐 제가 풍수에 대해서 5년 이상 공부하고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서도.. 적어도 그런 것에 대해서 '사실'인양 방송하는건 저로써 보기가 좀 안좋았습니다. 그리고 위의 어떤 분 말씀 말마따나 경복궁 자체가 풍수지리설에 맞지 않게 지어졌다고 저도 들은바가 있는데 명당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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