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패러디를 고우영 선생님께 바칩니다.
노어老魚 청새치는 거대한 크기의 물고기였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18피트가 넘었다. 보랏빛과 은빛이 섞여 있는 몸매는 우아하고 매끈해서 오랫동안 살아온 물고기라는 걸 믿기 어렵게 했다. 그는 지난 84일동안 먹이를 찾지 못했다. 처음 40일 동안은 마놀린이라는 어린 돌고래와 함께 다녔지만 오랫동안 먹이를 찾지 못하자 마놀린의 부모는 노어에게 악운이 끼었다고 생각해서 마놀린을 다른 청새치에게 붙였다. 마놀린은 첫날 정어리 떼를 만나 세마리나 먹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마놀린은 돌아오면 늘 청새치 옆으로 와 청새치의 비늘을 닦아주고 이를 청소해 주었다. 마놀린은 5개월 때부터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준 청새치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전에도 노어가 87일 동안 먹이를 찾지 못하다가 다음 3주 동안 매일 큰 물고기들을 잡아먹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놀린에게는 그의 부모에게 없는 강한 신념이 있었다.
노어는 자신이 늙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드디어 자신의 반려를 잡아간 어부를 만나 복수를 해야하겠다고 결심했다. 내일은 먹이를 찾지 못한 지 85일째고 85라는 숫자는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든 노어는 인도양에서 거대한 고래떼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거대한 향유고래가 마치 은어떼처럼 뛰놀았다.
첫째날노인의 배는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청새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를 그 노인이 잡았을 때 해안가로 끌려갈 때까지 그 옆을 뛰어오르며 아내의 마지막 신음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노어는 그 분노를 되새기며 미끼를 덥석 물었다.
튼튼한 낚시바늘이 입 천장에 단단히 걸린 것을 확인한 뒤 청새치는 천천히 배를 당기기 시작했다. 망망대해로 나가 노인을 바다에 빠뜨리는 거다. 거기서 설령 쓰러진다 해도 저 늙은 어부도 다시는 흙을 밟지 못하리라.
밤이 되자 그가 걱정된 마놀린이 찾아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놀린은 뱃전 옆으로 뛰어올라 어부에게 외쳤다. "낚시줄을 끊어요!" 하지만 늙은 어부는 돌고래가 생쑈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둘째날
청새치는 밤새 배를 끌었지만 노인도 지치지 않았다. 노인은 다른 낚시줄을 끊어버리고 오직 청새치를 잡아가겠다는 집념을 보여주었다. 청새치는 실수로라도 물 위에 떠오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자칫 부레에 공기가 차면 다시는 물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노인의 먹이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자기 살은 단 한점도 노인에게 내어 줄 수 없었다.
그때 올새 한 마리가 낚시줄 위에 올라앉았다. 노인의 눈이 청새치에서 올새로 옮겨갔다. 청새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줄을 잡아당겼다. 방심한 통에 끌어당겨 바닷물에 빠뜨리려 한 것이다. 이 시도는 거의 성공할 뻔 했다! 노인은 이물 쪽으로 엎어질 뻔 하다가 중심을 잡았다. 노인의 오른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낚시바늘이 주는 통증은 생각보다 컸다. 24시간이 넘도록 배를 끌고다닌 탓에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그래선 안 되는 것을 알았지만 노인을 보고 증오를 다시 불태우지 않으면 더 이상 배를 끌 수 없을 것 같았던 청새치는 결국 물 위로 몸을 드러내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뱃전에 몸을 기대 가능한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에는 열대 지방의 바다에서 반사되는 검은 햇볕 때문에 검버섯이 피어 있었고 목덜미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노인의 양손에는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를 다루면서 생긴 상처들이 침식한 사막처럼 드러나 있었다. 그의 모든 것이 늙었으나 바다를 닮은 그 두 눈에는 즐거움과 불굴의 의지가 감돌고 있었다.
노어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줄을 끌고 있는 등의 고통은 한계를 넘어서서 무감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인을 지치게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요령을 깨달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점을 되짚어가며 노어는 자신을 추스렸다.
인간은 잠을 자야 한다. 노인도 더 이상 깨어있지는 못할 것이다. 노어는 배를 끄는 속도를 줄이면서 그 순간을 기다렸다. 한밤중이 되어 다시 한 번 모험을 시도했다. 물 위로 조용히 떠오른 것이다. 노인은 피곤에 젖어 곯아떨어져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노인을 바다 속에 빠뜨릴 때였다.
최후의 힘을 내어 줄을 당겼다. 하지만 노인은 물에 빠지지 않았다. 노인은 반사적으로 등을 뱃전에 기대며 노어의 힘에 저항했다. 노어는 공중으로 뛰어오르길 반복했다. 요동을 쳐서 튕겨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부레에 공기만 찼을 뿐, 끝내 노인을 떨어뜨릴 수 없었다. "그 애가 있었다면..." 청새치는 거듭 마놀린을 생각했다.
셋째날청새치는 지치고 말았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조류가 흐르는대로 흘러가다가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만일 이때 줄을 당겼다면 끌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청새치는 낚시바늘을 건드려 아프게 했다. 정신이 조금 더 돌아왔다. "고통은 대수롭지 않아." 청새치는 중얼거렸다.
노인은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이제 저항하기가 쉽지 않았다. 청새치는 조금씩 끌려가기 시작했다. 청새치는 날카로운 부리로 낚시줄을 쳤다. 끊어버리고 싶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줄을 당겨서 부리로 내리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줄은 튼튼했고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이제 긴 줄을 당길 힘은 없었다. 노인과 부딪쳐 마지막 승부를 볼 때였다.
청새치는 짧은 거리에서 줄을 당겨 노인을 쓰러뜨리고자 했다. 물 위로 몇번을 뛰어올라 노인을 노렸지만 노인은 작살을 움켜쥐고 역공을 가해왔다. 노인의 작살이 가슴 지느러미 바로 뒤에 꽂혔다. 청새치는 몸을 뒤집으며 숨을 헐떡였다. 고통이 머리를 관통했다. 노어는 머리가 아득해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물고기답게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노인은 청새치를 뱃전에 비끌어맸다. 청새치는 결코 굴복할 수 없었다. 절대 이 자에게 잡혀갈 수는 없다. 이 자의 입 속에서 사라질 수는 없었다. 청새치는 길게 포효했다. 곧 그의 포효에 반응이 왔다. 상어들이 달려온 것이다.
노인은 노를 들어 상어를 때렸지만 그 정도에 물러날 상어들이 아니었다. 상어가 청새치의 옆구리를 덥석 깨물어 40파운드의 살덩어리를 떼어냈다. 청새치는 고통보다 희열을 느꼈다.
"청새치는 지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야. 청새치는 죽임을 당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상어들은 노인의 배가 해안에 도착하기 전에 청새치의 모든 부분을 다 뜯어먹었다. 노인은 청새치의 머리와 등뼈만을 가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청새치를 잡았지만 잡지 못한 셈이었다. 청새치는 패배하지 않았다. 노어의 시체는 바다에 버려졌다. 아니, 집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그는 뼈만 남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어느 관광객이 노어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이 상어의 뼈인줄만 알았다.
돌고래 마놀린은 청새치의 곁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놀린은 그가 깊이 잠든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가 지금은 인도양에서 은어떼처럼 뛰노는 고래떼 사이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