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 소파 방정환, 그리고 이원수 *..문........화..*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두 명의 아동문학가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1899년 서울 종로구 당주동 야주개(夜珠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짓기와 그림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홉살 때 증조부가 사업에 실패하여 가난하게 살았다고 하지요. 그런데도 어린이를 위한 따뜻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열다섯에 선린상고(지금의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가난으로 2년만에 중퇴해야 했답니다. 다행히 열아홉에 천도교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의 셋째 따님과 결혼하여 처가 덕을 좀 보았습니다. 보성전문을 나와 일본 동양대학을 다녔습니다. 귀국한 후 어린이운동에 나서서 1923년에 [어린이] 잡지를 만들고 그해 5월 1일 어린이날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어린이]라는 말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만든 말이라고 하지요.

어린이날은 1927년에 5월 첫째 일요일로 옮겨졌다가 1939년 일제가 금지해 버렸습니다. 해방이 된 후 1946년에 5월 5일로 새로 정해졌지요. 올해는 86주년 어린이날이랍니다.

그때 만들어진 결의문 7조가 있었습니다. 들어보셨는지요?

첫째, 씩씩하고 참되고 인정 많은 사람이 됩시다.
둘째, 거짓말 하거나 나쁜 말 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셋째, 반드시 손수건과 수첩을 가지고 다닙시다.
넷째, 광고지를 찢거나 벽에 낙서하지 맙시다.
다섯째, 나무와 풀과 동물을 사랑하고 구호합시다.
여섯째, 나쁜 구경 다니지 말고 좋은 책을 읽읍시다.
일곱째, 솟는 해와 지는 해를 잊지 말고 보기로 합시다.


소파 선생은 1931년 7월 9일 갑자기 코피를 쏟고 입원하여 2주만에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돌아가실 때 간호하던 처조카에게 남긴 말은 유명하죠.

"가야겠어. 문밖에 나를 데리러 검은 마차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와 있어."

소파 방정환 선생은 그 명성보다 작품이 적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지만, 서른셋의 짧은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적은 것도 아닙니다. 특히 [칠칠단의 비밀], [동생을 찾으러]. [소년 사천왕] 등의 탐정소설을 쓴 한국추리소설의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1957년에 동화작가 이원수 선생은 소파 방정환 선생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일부 인용하겠습니다.

내가 소파 선생님을 알고 그의 넓은 사랑과 좋은 교훈을 즐겨 받게 된 것은 30여년 전의 어릴 때였습니다.

일본 사람의 정치 아래서 멋 모르고 자라난 나에게 조선 사람의 가엾은 처지와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겨레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넣어주신 분이 이 소파 선생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때 시골(경남 양산)서 살았기 때문에 선생을 직접 만나 뵈올 수도 없었으나 그때 소파 선생이 책을 만들어 팔아서 장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책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좋은 정신을 넣어주려고 갖은 애를 쓰며 내던 [어린이]라는 잡지를 읽으며 선생을 대하는 것과 다름없는 기쁨을 받아왔던 것입니다.

소파 선생은 동화를 잘 하기로 유명하지만 소파 선생이 내가 사는 시골에 동화를 하러 오셨을 때 그 때의 반가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중략) 그 다음날 뒷산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놀이를 간 소년회 사람들과 같이 선생님은 나를 붙들고 간곡한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때 나는 퍽도 불우한 소년이었으므로 나는 소파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크게 힘을 얻었습니다. (중략)

[고향의 봄]이란 동요는 내가 열다섯 살 때 선생이 내시는 잡지에 실린 것인데 그중에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이 귀절은 내가 처음 썼을 때는 복숭아꽃 살구꽃 다음에 진달래와 또 무슨 꽃 이름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아기진달래라고 선생께서 고쳐주셨습니다.

아기진달래! 얼마나 재미있고 귀여운 이름입니까? 내 노래 속에 이런 귀여운 꽃 이름이 있게 된 것은 소파 선생이 그 아름다운 마음에서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략)

이렇게 소파 선생과 인연을 맺은 이원수 선생은 주로 편지를 통해 소파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발표된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이원수 선생이 들어가 깜짝 놀란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사실 이 문제가 나온 것이 제법 되었습니다. 2002년에 이원수 선생이 친일시를 썼다는 사실이 "발굴" 되었죠.

이원수 선생은 [고향의 봄]이 [어린이]에 당선되어 발표된 후 학급신문에 일제를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교사한테 혼쭐이 나기도 하고, 25세였던 1935년에는 독서회에서 반일문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년의 옥고를 겪기도 했습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일제가 광기로 미쳐나가던 1942년과 1943년에 친일글 다섯 편(동시 2편, 자유시 1편, 수필 2편)을 쓴 것은 사실입니다.

이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이오덕 선생이 이에 대해 거론한 글이 있습니다. 역시 발췌해 봅니다. 강조는 제가 했습니다.

이원수 선생의 일제 말기 친일 시,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글쓰기연구회 회보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2002년 11월호)

선생의 친일 시는 우리 민족 앞에서 크나큰 죄를 지은 것이다. 여기서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다. 참으로 안타깝고 섭섭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 더 실망하지는 않는다. 이원수 선생이 쌓아 놓은 문학의 업적이, 선생의 그 전과로 하여 무너진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선생의 문학을, 우리 겨레 어린이문학을 떠받치는 가장 든든한 기둥으로 되어 있다고 보고, 또한 선생의 사람됨을, 이 세상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맑고 바르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분으로 언제나 가까이 하여 왔던 지난 모든 날들을 결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중략)

나는 일제시대부터 6·25 남북 전쟁 무렵까지 선생이 하여 온 일에 대해서는 작품과 책으로 알 뿐이다. 그런데 1953년부터는 편지로, 전화로, 만나서 주고받는 말로, 함께 한 여행이나 그 밖의 일로 선생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 대하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만큼 불의와 부정을 싫어하고, 어떤 권력 앞에서도 굽히거나 타협하지 않고 올바르게 살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만난 적이 없다. 작품으로도 그렇다. 4·19 때 독재자에 항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동화로 쓰고 동시로 쓴 사람은 이원수 선생뿐이었다.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을 불태운 사건을 동화로 쓴 사람도 이원수 선생뿐이었다. 남북 분단의 비극과 통일을 애타게 바라는 우리 겨레의 슬프고 애끓는 바람을, 선생은 여러 동화작품에서 훌륭하게 그려 보였다. 이래서 선생의 문학은 우리 겨레 어린이문학의 가장 올바른 줄기를 잇고 그것을 튼튼하게 지탱해 주는 기둥으로 되어 있다고 한 것이다.

선생은 이처럼 올곧게 살았고, 우리 어린이문학에서 그 아무도 따를 수 없는 높은 경지의 작품을 많이 발표하였는데도 세상살이에서는 언제나 푸대접을 받았다. 권력과 손잡기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공만을 이념으로 하는 군사독재 폭력 정권에 붙어서 그 반민주 정치를 추종하고 찬양한 모든 문인들에게 따돌려져서 음으로 양으로 냉대를 받는 처지로도 되었으니, 이에 따라서 물질 생활면에서도 여간 어려운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선생은 단 한 번도 자신이 가는 길과 아주 어긋난 사람의 손을 잡은 일이 없었다. 마지막에 죽음과 싸우는 끔찍한 병을 앓으면서도 광주 사건을 소식으로 듣고 분노했던 것이다. (중략 - 이원수 선생은 1981년 1월에 71세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보존하는 그 자리에는 선생의 빛나는 모든 작품뿐 아니라 일제 마지막에 썼다는 그 친일 동시까지도 있는 그대로 죄다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더 큰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신 선생도 저승에서, 생전에 스스로 깨끗이 보여 주지 못했던 것을 우리가 하여 준 일에 대해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선생의 작품을 읽게 되는 우리 아이들까지도, 세상의 어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더 깊게 더 넓게 생각하게 되고, 더 참되게 깨닫고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을 완전무결한 성인군자처럼 살아간 위인에게서보다도 결함이 있었던 사람, 자기와 비슷한 점이 있었던 사람한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듯이, 나도 한때 잘못했지만 그것을 뉘우치고 바르게 살면 얼마든지 큰 일을 할 수 있구나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도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원수 선생은 우리 겨레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정한 분으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저도 이오덕 선생처럼 생각합니다. 친일행위를 한 이상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전에 실리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죠. 하지만 이원수 선생은 친일을 통해 부를 획득하고 지위를 높인 분이 아닙니다. 또한 강연회에 나가고 친일단체에 적극 참여한 분도 아닙니다. 칠십 평생을 어린이를 위해 살아온 분을 너무 쉽게 폄하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독재에 대항한 것이 친일을 덮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친일을 한 것이 독재와 싸우고 어린이를 위해 노력한 것을 덮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전히 이원수 선생을 존경하는 작가로 손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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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제갈교 2008/05/05 02:27 #

    방정환 선생님이 친일 인사였다는 말도 어디서 들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비록 요즘 초딩이라 비하한다고 해도)들을 위해서 일하신 방정환 선생님과 이원수 선생님을 5월 5일이 되면 기억해야 겠네요. ^^
  • anaki-我行 2008/05/05 02:29 #

    이런 말은 좀 그렇습니다만...
    소파선생님은 일찍 돌아가신 것이 어찌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살짝 드는군요...;;;
  • 현재시제 2008/05/05 02:34 #

    포스팅의 내용이야 항상 굉장하시지만

    초록불님도 자녀분이 계실텐데, 내일 (오늘이구나..) 하루 '봉사'하시려면 어서 주무셔야죠!! ^^;;
  • 초록불 2008/05/05 02:39 #

    anaki-我行님 / 사실 많은 지식인들이 만주사변 이후, 그리고 대동아전쟁기에 일제에 굴복하고 있죠. (이 부분, 저는 "굴복"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 소파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저명 인사로 그 역시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과연 자신이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초록불 2008/05/05 02:46 #

    제갈교님 / 방정환 선생 친일론은 그야말로 근거없는 모함입니다. 애초 발단이 된 책이 있는 모양인데, 제가 보질 못해서 일단 그에 대한 이야긴 유보해 놓겠습니다.
  • 푸른화염 2008/05/05 02:53 #

    여담입니다만, 친일 인명 사전 덕에 저도 친일파의 후예가 되었더군요.(제 은사님의 은사님의 은사님, 그러니까, 사조도 한참 윗대 사조가 되시누만요.. 무튼, 그분이 최승희와 함게 친일 인사로 이름이 올라간 조택원 선생이시거든요.... 제가 무용으로 무대에 서면 주 레퍼토리로 삼는 한량무도 그분의 신노심불로라는 작품에서 나온거고.....) 저거 발표된 날 친구가 "친일파가 만든 무용을 한국 무용이라고 추는 걸 보자니 역겹다."라는 말까지 하더군요.
  • 초록불 2008/05/05 02:57 #

    푸른화염님 / 우리는 친일파가 만든 국가를 가지고 있기도 하죠. 에... 조택원 선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특별히 드릴 이야기가 없군요.
  • 슈타인호프 2008/05/05 07:22 #

    그 곰돌이 그려진 이원수 아동문학전집이 전에 있었는데(물론 헌책방에서 모아온 거라 많이 비어 있었습니다)....참 읽으면서 감명 많이 받았었죠. 요새도 가끔 청계천에 있긴 있던데, 집에 공간이 부족해서 손은 못 대고 있습니다.
  • 초록불 2008/05/05 09:30 #

    슈타인호프님 / 그렇군요. 아깝네요. 그게 웅진에서 전집으로 발간한 것인데, 저는 두 권 밖에 갖고 있지 못합니다.
  • 슈타인호프 2008/05/05 09:56 #

    초록불//원하신다면 구해드릴 수 있습니다만......요샌 전질은 거의 없긴 한데, 초록불님이 필요하시다면 낱권으로라도 구할 수 있는대로 구해보겠습니다. 아마 별로 비싸진 않을 겁니다^^;
  • 이준님 2008/05/05 09:59 #

    1. 이원수 선생이 70년대 쓴 동화같은데 보면 "미친 사람"내지는 "나쁜 햇님" 같은 쪽이 은근히 "반공"주의자를 빗댄게 많았지요. 착한 까마귀인지 까치인지를 쏘아죽이는 나쁜 포수 아저씨가 동네에서 미친놈 취급받는 지체 장애인인데 이 아저씨가 늘 하는 말이나 주인공 동물을 죽이고 하는 말이 "으헤헤 간첩을 잡았다~"입니다. -_-;;

    2. 계몽사 문고에서도 동화집에 방정환편이 따로 있었습니다. 소싯적에 꽤 개그로 들었던 -그중 하나는 무려 국영방송 심형래판 개그로 소개된- 미련이 나라 연작과 -_-;;; 가끔 실화 감동수기로 변신했던 "몇천미터 달리기 대회에서 꿋꿋히 달린 어린 소년" 이야기가 바로 방정환 선생님의 동화더군요

    ps: 다른 이야기지만 최승희가 친일 인명 사전에 오른 내역도 개그이지요. 최승희의 실제 사생활이나 북조선에서의 행적보다도 더 잘 연구되고 밝혀지기 쉬웠던게 일제 연간의 행적이었습니다. -_-;;그런데 그 사람이 "북한"을 택했다는 이유로 이상하게 그런 혐의에서 빠져있었습니다.(심지어 마봉춘판 드라마에서도 그 이야기는 빠져있고 정 반대로 왜곡하더군요) 하기야 북조선에서 숙청될때도 "친일" 혐의는 들어있지 않았습니다만
  • 초록불 2008/05/05 10:11 #

    슈타인호프님 / 전집이야 뭐...^^;; (주머니가...-_-) 보고싶은 건 28 아동 문학 입문 / 30 아동과 문학이죠. 그 외에 몇 권 더 있긴 합니다만...
  • 슈타인호프 2008/05/05 10:26 #

    다행이네요. 지난주에 갔던 그 집에 28권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그거 말고도 한 10권 내외는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요즘 부모들이 애한테 이원수 전집 같은 걸 사줄 것 같지는 않으니 다음에 갈 때도 아마 있을 겁니다. 연락드리지요^^
  • 나그네 2008/05/05 12:16 #

    방정환 선생의 친일파 논란은 어느 정신없는 이의 개념없는 글소리에 불과합니다. 이를 정신줄 놓은 네티즌들이 너도나도 아는체하면서 '방정환은 친일이다'라고 하는 것이지요.

    개념들은 밥 말아먹고 다니는듯 합니다. 한숨만 나오지요.
  • savoury 2008/05/05 16:03 #

    어릴 때 집에 이원수 전집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의 판화인지는 모르겠지만... 판화로 이루어진 삽화가 굉장히 멋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동화책 삽화 중 최고에요.
    이원수 선생님 동화는 상당히 현실적이라 읽으면서 상당히 암울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들이 어쩜 그리 고난에 가득찬 생을 사는건지... 가장 좋아했던게 개미 이야기였어요. 그나마 좀 밝은 느낌이었거든요. 사실 주인공 개미도 별별 고난을 다 당하긴 합니다만...
  • 초록불 2008/05/05 16:20 #

    savoury님 / 잔디 숲속의 이쁜이 입니다. 아주 좋은 동화죠.
  • dunkbear 2008/05/05 19:46 #

    잡설이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처지를 보고
    소파 선생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하아....
  • 나루 2008/05/06 20:20 #

    공과 과는 분명히 분리해서 봐야하겠지요. 그건 그렇고 지금 어린이날이 5월 첫째 일요일이 아니라 정말 다행입니다.(응?)
  • トンヒdonghee 2008/05/07 00:18 #

    방정환선생님이 동양대학을 나오셨다니 뭔가 벅차네요.
    (왜? ㅠㅠ) 그냥. 일본유학을 통해 세계를 넓히신 인물들을 보면
    윤동주님을 비롯해. 나도 왠지 그래질거같아서 허허-
    멋집니다. 방정환님.
  • 진성당거사 2008/05/23 00:21 #

    1.
    이오덕 선생께서는, 그리고 초록불님께서는 제가 생각하는 부일(저는 친일이란 말보다는 이 말이 더 맞는거라 생각이 듭니다.) 행위와 그 행위자에 대한 처분에 대해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매번 초록불 님의 글에 감탄하게 됩니다. (여길 들락거린지 거의 2년째입니다만 언제나 새롭구요.)

    2.
    이원수 선생의 '장편동화' 중에 1960년에 발표된 '민들레의 노래'라는 작품이 있는데, 1960년대에 저술된 동화작품 치고는 글 수준도 상당할 뿐 아니라 4.19 직후의 당시 사회현실에 대해 정말 놀라울 정도의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어 퍽 놀랐습니다.

    3.
    글 잘 읽었습니다.
  • 초록불 2008/05/23 08:45 #

    고맙습니다. 민들레의 노래를 읽어보겠습니다.
  • 람람 2014/09/11 15:42 #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이원수 작가님 검색하다 들어와보니 초록불님 이글루스네요 ^ㅅ^
  • 초록불 2014/09/11 15:46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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