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부인의 별세 *..문........화..*

[한국일보] 김동인 부인 김경애씨 별세 [클릭]

살짝 날짜가 지났다. 잘 모르고 있다가 오늘 안 탓이다. 김동인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평양의 부호 자제로 태어나 문재가 조선 최고였으나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마약에 찌들고, 한때는 변절한 이광수를 찾아가 차라리 죽으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돌아오기도 했던 그 역시 30년대말부터는 적극적인 친일파로 살았던 일. 그리고 한국전쟁 통에 얼어죽고 만 그 비극적인 죽음까지.

그리고 국내 대표 문학상 중 하나인 동인문학상. 또한 그 주최가 조선일보라는 점도.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기리는 김동인 선양사업 추진을 원주시가 하고 있다는 점도.
[강원일보] 원주]‘김동인 문학세계’ 기린다 [클릭]

그래, 김동인이 우리 문학에 남긴 흔적은 거대하다. 1920년대부터 30년대까지 썼던 글들. 나도 좋아한다. 그러나 선양사업에는 그의 친일행각도 꼭 같이 넣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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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Freely 2008/05/27 23:27 # 답글

    친일...이었군요;
  • 초록불 2008/05/27 23:31 #

    1945년 8월 15일에도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청탁을 할 정도로 친일이었죠.
  • 우석양 2008/05/27 23:31 # 답글

    한때 찬란히 빛낮던 이들이기에..그들의 변절이 더욱 더 받아들이기 힘든것 같애요.
    하지만 그 시절의 많은이들이 친일이라는 화두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독립을 외친 이들이 더욱 더 빛이 나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군요..-_-;
  • 달산 2008/05/27 23:32 # 답글

    근대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좋아하게 되었던 작가 중 한 명이 김동인이었지만; 알면 알게 될 수록 작품 외적인 면으로 '짜게' 식어갈 수 밖에 없었더랬지요.-_-; 부잣집 아들네미의 상징 금테안경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 찬별 2008/05/28 00:08 # 답글

    아, 그렇게 인생이 파란만장했군요. 가만, 김동리 선생과 살짝 헷갈려서 -_;
  • savoury 2008/05/28 03:52 # 답글

    참 이상한게, 서정주의 시 몇 편을 굉장히 좋아하면서도 서정주라는 이름을 들으면 시보다 친일 행각이 먼저 떠오르는데, 김동인은 친일 행각을 알면서도 소설부터 떠오릅니다. 어릴 때 김동인의 소설을 처음 보았을 때 받았던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지...
  • RLamiel 2008/05/28 04:20 # 답글

    근대소설사에서 이렇게나 제대로 미쳐봤던 사람이, 그리고 미친 댓가를 이렇게나 톡톡히 받은 사람이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 어릿광대 2008/05/28 07:19 # 답글

    친일이었을줄은 몰랐네요.
  • 초록불 2008/05/28 08:29 #

    이상하게도 이광수, 서정주는 친일의 대명사로 쉽게 거론되는데, 김동인은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 홍월영 2008/05/28 08:47 # 답글

    김동인도 그랬군요....
  • 위장효과 2008/05/28 08:48 # 답글

    그런데 그 아들은 어떻게 의대다녀서 교수까지 되셨는지가 학교 다닐 때 내내 의문이었습니다. 정말 있는고생없는 고생 다하면서 다른 곳도 아닌 그당시 의대를 마쳤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건데요.-저희 교수님이시거든요. 이제 정년퇴임하실 때 됐던가??? 뇌수술, 특히 혈관쪽 수술에서는 정말로 대가중 한 분이셨죠.-
  • 진성당거사 2008/05/30 23:42 # 답글

    말년에 마약의 정신적 충격 탓에 정상적 사고가 불가능해져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김동인은 친일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했었습니다. 위에 초록불님이 언급하셨듯 1945년 8월 15일 아침에도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서 국민문학 청탁을 넣었었습니다.

    아, 그런데 1950년대부터 60년대 중반까지 '사상계'가 동인문학상을 제정해 수상을 했었던게 저는 늘 좀 걸리더군요. 장준하가 예전에 최남선 타계 직후 '춘원 및 육당 추모강연회'가 포함된 '육당과 춘원의 밤' 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주최했던 것도 약간 씁쓸하구요. 지금 관점으로 보면 사상계는 1950년대에서 60년대 초반까지는 정작 친일 문제에 많이 관심을 가진 편은 아니었던 듯 한데, 초록불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즘 저희학교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비치된 사상계 과월호들을 몽땅 다시 읽어보고 있는 중이라서 뜬금없이 생각나 여쭈어봅니다.)
  • 초록불 2008/05/30 23:51 #

    여러가지 생각이 있지만, 좀더 조사가 필요한 것들이라 아직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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