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 오원 장승업전 *..문........화..*



간송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간송미술관은 봄, 가을 두 차례만 문을 열지요.
사진은 간송미술관 - 보화각입니다. 두산백과사전에서 업어온 사진입니다. (좌우가 뒤바뀐 것처럼 보이는군요.)

간송 전형필은 1906년 당대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위암 오세창 밑에서 배우고 우리 문화재 지키는 일에 전재산을 기울였던 위인이지요. 사립미술관으로는 두번째로 많은 국보(12점)를 확보하고 있는 곳이 간송미술관입니다. (첫번째는 말썽많은 삼성가의 그곳이죠.)

이곳의 국보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이 바로 훈민정음(국보 70호)일 것입니다. 간송이 한남서림에 있을 때, 책거간으로 유명한 이가 바삐 지나가기에 필유곡절이라 싶어 불러서 물어보니, 안동에 훈민정음이 나타났다 하여 그것을 살 돈을 마련하고자 급히 지나는 중이라 말하더랍니다. 간송이 그 책이 얼마냐 묻자, 1천원이라 했다죠. 당시 1천원이면 큰 기와집 한 채 값이었다 하는군요. 간송이 그 자리에서 1만 1천원을 꺼내 주고 "천 원은 수고비요."라고 하여 훈민정음이 간송 손에 들어왔다 합니다.

간송 미술관의 최대 위기는 한국전쟁 때였습니다. 인민군은 간송 미술관의 문화재를 모두 북으로 이송하기로 하고, 그것을 포장하게 했는데, 당시 포장을 담당했던 소전 손재형 선생과 혜곡 최순우 선생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포장을 자꾸 지연시켰다고 합니다. 결국 9월 28일까지도 포장이 마쳐지지 않자 인민군은 이송을 포기하고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포장은 1.4 후퇴 때 요긴하게 이용됩니다. 포장된 물품을 모두 부산으로 옮겼던 것이죠.

간송은 부산에 귀중한 문화재를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려 서울 수복이 되자 곧 문화재들을 다시 보화각으로 옮겼는데, 그 열흘 후 부산의 임시보관처에 화재가 일어나 전소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자료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무렵 얼마나 많은 귀중한 자료들이 사라졌을까요? 삼불 김원룡 선생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 6.25때 혜화동 로타리를 걸어가는데 거지가 피 나오는 무릎을 이상한 종이로 닦고 있었죠. 보니까 고판본 찢은 것이라서 깜짝 놀라 이게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보성중학교 뒤에 가면 산 같이 쌓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때는 별 수 없었죠.

간송이 평생을 고심참담하게 모은 장서들이 이렇게 흩어져 산일되었던 것입니다. 간송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 6.25사변 직전에는 책 수 실로 수 만 권을 산算하게 되었으며(중략) 특히 전적의 보관과 목록작성 카드 정리에 전력을 다하여 초지대로 한국의 자랑거리가 될 문고가 완성을 바라보고 확실한 걸음을 걷게 되었다. (중략) 그러나 어찌 꿈에나 생각했으리요. 6.25동란의 참화를 입어 공들여 쌓았던 금자탑이 산산이 흩어지고 정성들여 모아 놓은 총서문고는 풍비박산이 되었다. 장서목록과 카드는 산산조각이 났다. 3년 동안의 피난 생활을 마치고 고소古巢로 돌아오니 아궁이 앞에는 당판 진적들이 불쏘시개 감으로 산더미 같이 쌓여 있고 사방벽과 뚫어진 창문에는 고활자본과 내각판으로 도배를 했다. 청계천변 노점에도 내 장서가 나타나고 고물상 탁자에도 내 애장본이 꽂히었다.

간송은 해방된 후에는 재정적 압박을 받았습니다. 지주였던 그는 토지 개혁으로 수입을 잃게 되었고, 잃어버린 전적들을 다시 사들이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더군다나 보성중고등학교에서 부채를 크게 지고 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그 돈을 물어내는데도 힘겨웠다고 합니다. 이때의 고난과 스트레스가 그의 명을 재촉했던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간송은 1962년에 급성 신우염으로 별세했습니다.
이번에 열린 오원 장승업 전은 최민식이 연기해서 유명한 영화 [취화선]의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장승업과 제자들의 그림이 같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보고 나오시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 제자들은 열심히 안 했구만.

네, 저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천재를 사부로 두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승업이 그린 꽃과 새는 정말 엄청난 필력이라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하더군요. 오랜만에 눈이 호강한 하루였습니다.

덧글

  • anaki-我行 2008/05/30 21:10 #

    이럴 때는 한번씩 서울 사는 분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 초록불 2008/05/30 21:13 #

    서울에 살지 않습니다...^^;; 수도권에 산다고는 할 수 있죠.
  • 슈타인호프 2008/05/30 21:18 #

    저런 분이 정말 존경받아야 할 부자인 거죠.
  • sixtyone 2008/05/30 21:30 #

    내일까지인데 한 번 꼭 가봐야하는데 마음만 급합니다.
  • 초록불 2008/05/30 21:39 #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많더군요. 일찍 가보셔야 할 겁니다...^^;;
  • 이준님 2008/05/30 22:05 #

    1. 최민식 이전에 김성겸씨가 장승업을 연기해서 국영방송에서 방영한바 있습니다. 김성겸의 처로 나온 분이 무려 "하희라"인게 압박이지만요

    2. 한국전 연간에 소실된 문화재 이야기만 들으면 뼈가 녹는듯하지요. 저희 외가만 해도 마당에 파묻은 고서와 도자기를 홀딱 도난 당했습니다. 김모 교수의 "일기"를 보니 누가 훔쳐갔는지 대략 짐작은 가더군요.

    3. 북조선으로 반출된 조선왕조 실록판본이 나중에 북조선 번역본의 기틀이 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잘되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적어도 거지가 무릎 닦는거나 불소씨개 되는 것보다는 낫지요 ^^
  • 解明 2008/05/30 22:06 #

    저도 뉴스에서 저 소식을 보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잘 봤습니다.
  • 초록불 2008/05/30 23:28 #

    뭐, 장승업 관련 글은 없어서... 죄송스럽습니다.
  • 우아한냉혹 2008/05/30 22:33 #

    저도 여기 가봤어요!!
    교양한문 레포트쓰는 과제가 여기라서....
    그래도 꽤나 신선하더라구요 구석진 곳 경치 좋은곳에

    뭐랄까 미술관 하면 흔히 떠오르는 웅장함, 우아함보다는
    친밀함, 편안함으로 다가오는 간송 미술관은 좀 신선했습니다

    뭐...대부분이 한자들이라 아 좋네 하고 말았지만요 =ㅅ=);;
  • 나무피리 2008/05/30 23:12 #

    밸리에서 보고 왔습니다. 저도 여기 다녀왔거든요. 전시 초반에 갔었는데 그때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여유로이 볼 수 있었고요. 제자들의 그림은 아무래도 좀 약한 면이 있던 것도 같아요. 장승업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올해도 놓치나 걱정했었거든요. 글 엮고 갈게요. :)
  • 초록불 2008/05/30 23:27 #

    트랙백 감사합니다.
  • 진성당거사 2008/05/30 23:47 #

    간송미술관, 늘 갈때마다 좋은 느낌으로 가는 곳이지만, 불행하게도 시설이 너무 낙후되고 주변 야외 전시물들이 언제나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아서 아쉬울때가 많습니다.

    특히 비개관 시즌에는 보화각 마당에 닭장 쳐 놓고 기르고....올해 2월에 들어가봤을때는 마당 한켠에 통일신라시대 석탑 사천왕상 조각이 널브러져있던데, 그건 정리 잘 해놨는지....

    보화각 건물이라도 좀 어떻게 보수를 하던지 했으면 합니다. 전시 시설 자체도 70년이나 된 것이니 방범에 취약한 점도 있고 또 유물에 해가 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간송미술관 주변에 있는 선잠단터나 최순우선생 댁, 그리고 수연산방 방문도 추천합니다.
  • 초록불 2008/05/30 23:51 #

    안 그래도 돌아오면서 수연산방에서 차 한 잔 하고 왔지요.
  • 2008/05/30 23:5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8/05/31 07:40 #

    글쎄요... 떠오르는 것이 없네요.
  • 푸른화염 2008/05/31 01:44 #

    좋은 전시를 보셨군요. 부럽습니다.(간송미술관 가 본지도 꽤 되었군요 저는.... 대학 들어가면 다시 가볼 곳이 많습니다 이거...)
  • 어릿광대 2008/05/31 07:29 #

    가보고싶긴한데 시간이 촉박해서 가지 못하겠군요;; 이런;;
  • tloen 2008/05/31 09:43 #

    세금 잔뜩 걷은 예산 저런데 좀 지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