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에 대한 이야기 *..문........화..*



<마당을 나온 암탉>과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읽었다.

두 작품 모두 실망스러웠다.

<암탉>은 글이 잘 읽히고 이야기도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다. 결말이 달랐다면 어쩌면 읽을만한 동화였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늘말나리야>는 변변한 사건도 없이 구구절절 설명만 길다.

<암탉>의 문제는 부정적인 글이라는 데 있다. 이 글은 우리가 달걀을 먹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또한 주인공 암탉 - 잎싹은 누구에게서도 진심어린 도움을 받지 못한다. 청둥오리만이 암탉에게 제한된 도움을 주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는 어린이에게 사회는 비정하고 냉혹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세상을 경계하고 불신하게 만든다. 매우 많은 국내 동화작가들이 이런 것을 어린이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열을 내는 것을 보면 나는 어안이 벙벙해지곤 한다.

어린이는 환상을 통해 세상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고민을 이겨낼 의지를 찾게 된다. 어린이에게 현실의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치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한국의 동화작가들은 이것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충분히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에게서 숨쉴 수 있는 작은 공간마저 빼앗으려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처사가 아닌가? 대체 동화책을 읽으면서도 즐거울 수 없다면, 어린이는 어디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뭐라고? 그런 건 온라인 게임에서나 찾으라고? 미안하지만 어린이들은 훨씬 즐거운 외국 동화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암탉>의 어이없는 결말. 왜 작가가 죽음을 이렇게 쉽게 다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암탉은 족제비의 새끼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동물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말이 안 되고 의인화된 관점에서 보아도 말이 안 된다. 작가는 생명을 위한 숭고한 희생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암탉은 마땅히 다음해 다시 찾아올 자기 아기 - 청둥오리를 기다리며 꿈과 희망을 가졌어야 한다. 청둥오리가 돌아와 엄마가 사라진 것을 알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왜 책을 읽는 어린이에게 이처럼 고통을 주어야 하는가? 이렇게 고통을 주는 것말고는 어린이들에게 주제를 설명할 수 없단 말인가?

우리 작은애는 이걸 읽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물어보았다. 다시 읽고 싶냐고. 작은애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늘말나리야>는 동화라는 이름이 무색한 작품이다. 이것은 해설난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어린이 성장소설이다. 그리고 성장소설로도 잘 쓴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작품은 어른이 생각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특출난 사건도 없이 어린이들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해 나가고 있다. 딸 둘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이해심 넘치는 글이지만 어린이가 실제로 생각하는 것은 모르는 글을 썼다. 하지만 어른들은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의 강요로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좋은 이야기, 어른들이 이 작품을 읽고 원하는 답변을 해줄 것이다. 어린이들은 그만큼은 영악하니까.

소희처럼 생각이 넓고 깊은 - 엄친녀같은 어린이도 있기는 할 것이다. 사실 미르도 만만치 않은 분석가다. 이 글에는 어린이들이 자신을 일치시켜 볼만한 대상이 없다. 자기들 또래 이야기인데도 사실은 자기들이 그 안에 없다.

<암탉>도 비슷한 면이 있다. 암탉은 어린이들이 아직 모르는 엄마로 자신을 대입시켜야 한다. (흠, 그렇다면 딸을 시집보낸 엄마는 죽어버려야 하는가?) 하지만 그나마 이 동화의 주인공은 "암탉"이라서 어린이들의 너그러운 상상력은 변신을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되지 않은 우리 큰딸은 이 책이 너무 재미없어서 읽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늘말나리야>는 이런 일이 아예 불가능하다.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좌절하는 어린이라니... 전래동화에서 주인공이 장삼이사의 특출난 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설정되는 이유는 그래야 대입이 편하기 때문이다. 바보 한스가 공주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늘말나리야>는 어른들이 읽으면서 어린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어린이 입장의 책이 아니다. 어린이는 화가 났을 때, 그냥 화가 날 뿐이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어린이의 세계에서 너무 멀어져 버린 것이다. 모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언젠가 너무나 한심한 바보 같은 짓을 했던 일을 생각해보라. 그때는 그게 너무나 당연했던 것이다. 화가 나면 어린이들은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내팽개치고 발버둥을 친다. 그렇게 하면 엄마가 상처를 입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엄마가 내 요청을 받아들여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가 분노를 분노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때리거나 파괴하거나 또는 입을 다물고 싶은 충동으로 경험한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브루노 베텔하임, 옛이야기의 매력, 54)

그런데 <하늘말나리야>는 일일이 어린이의 행동에 이유를 붙이고 설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의젓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만큼 지루하고 따분하다.

이원수 선생은 동화에 대해서 뭐라 말했는가?

그것들은 조금도 듣기 싫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로서 독자의 가슴 속에 스며들어야 할 것이다.

동화가 즐겁고 행복한 결말을 보여준다고 해서 어린이들이 현실은 냉혹하거나 각박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무서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어린이들이 그 세계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때 어린이들은 긍정적인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로알드 달의 지저분하고 더러운 이야기들이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비결 중의 하나다. 무서운 거인, 흉악한 마녀, 비교육적인 교장, 무식하고 사기꾼인 부모들이 등장하고, 착한 어린이는 그들 모두를 이겨버리는 것이다.

조안 에이킨은 <꿈과 상상력을 담은 동화 쓰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문학의 영역에 있어 어린이들이 만화책을 읽는 경우에도 그 내용 때문에 지루함을 느끼거나 충격을 받거나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 책은 어린이들에게 가치있는 내용을 제공해야 한다. 한 어린이가 어린 시절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은 600권 정도이므로 그 책들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이나 통찰력, 유머, 어휘력 등을 길러야 한다.

물론 어린이들을 위한 글이니까 <무조건> 해피엔딩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로알드 달의 <마녀를 잡아라>에서 주인공 소년은 생쥐 모습에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어린왕자>의 결말도 수상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이 모두 판타지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또한 필연적인 이유를 거쳐서 결말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암탉>의 경우 좋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암탉이 그 자리에서 죽어야할 필연성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상률 선생은 <동화는 문학이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실 수준에서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반영한 동화(동화라는 이름으로 읽기를 강요한 작품)에 아이들은 질려 있다. 아이들은 좀더 너른 세계를 바란다. 아이들에게 현실의 세계는 너른 세계 속의 한 세계일 뿐이다. 아이들은 현실을 더 확장한 세계에서 논다. 아이들에게 동화적 세계는 바로 현실의 확장이자 확장된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해피엔딩이 좋다.

물론 나도 내가 쓰는 동화를 통해서 저 이상적인 조건들을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지금 쓰고 있는 동화는 "역사"를 소재로 해서 일단은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있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조금만 더 부지런하다면, 다른 동화들도 더 쓸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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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이 책들은 전에 동화베스트10을 올렸을 때 청淸님이 추천해주셔서 읽은 것인데, 결과가 좋지 않은 글을 올려 청淸님께는 죄송스런 마음이다. 책에 대한 호오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너그럽게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추가2
다음의 어떤 블로거가 <무명작가의 분노>라는 제목으로 이 포스팅에 대한 논평을 했는데... "분노"라니... 책에 대한 감상평이 분노로 보인다니, 나도 반성을 해야겠다. 나보고 한국 동화를 칭찬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했는데, 음, 미안하지만 나 역시 좋아하는 한국 동화가 있다. 롤링리스트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그림책이기 때문이고, 그 포스팅에서도 우리나라 것은 절판과 몇가지 이유로 넣기가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림책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뽑을 수 있는 작품은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이다. 그림책 이야기는 어차피 따로 포스팅 할 생각이었는데, 그 글을 보고 혹 오해할 분들이 있을까 싶어 부기해 놓았다. 한국 동화들은 시간 날 때마다 차츰 읽어나갈 예정이라서 그 안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기를 바라고 있다.


덧글

  • 美本 2008/06/03 03:24 #

    <암탉>은 저희 어머니께서 지독히 싫어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들로 하여금 한도 끝도 없는 희생을 강요한다는 내용으로 받아들이셔서... 지금 제 머리속에서 스토리가 가물가물한 나머지 내용에 대해 뭐라고 더 덧붙이지는 못하겠지만, 어렸던 저로서도 책을 읽었을 때 찜찜한 느낌이 남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_=;

    중학교 때 권장도서였기 때문에 제 방 책꽂이에도 지금 한 권 꽂혀있는데,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근데 사실 내심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 초록불 2008/06/03 03:33 #

    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게 되지만 딸을 시집 보내면 끝나는 어머니의 일생이라는 건...
  • 이준님 2008/06/03 04:42 #

    1. 사실 "냉혹한 현실 대입"을 핑계로 어릴때 잔인한 이야기를 접하게 하는 건 반공동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클리세입니다. 차라리 그런면에서는 해돌이 대모험 같은 작이 쬐끔 낫지요. "간첩을 잡았다"류가 아니라 주인공은 북한 어린이인데 결국 공산당에게 일가가 적몰해서 삼족이 멸족했다라는 스토리는 "동화"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였지요.

    문제는 그런 식으로 "북한이 냉혹하다" 는걸 세상은 냉혹하다로 바꾼것에 불과하지요.

    2. 냉혹하기는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던 일제 연간의 많은 동화도 해피엔딩이지요 ^^

    ps: 마녀를 잡아라는 영화판에서는 "인간으로 돌아온다"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
  • 2008/06/03 09:1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8/06/03 10:35 #

    그런 관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것 역시 상징과 비유를 통해 어린이들의 마음에 더 쉽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흥미롭고 흡인력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죠. 블로그가 도움이 된다니 무척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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