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나라 *..문........화..*



숲 속 나라- 6점
이원수 지음, 김원희 그림/웅진주니어(웅진닷컴)


내가 읽은 책은 저 책은 아니다. 같은 웅진에서 나온 책이니 소개를 해도 상관은 없으리라.

숲 속 나라 / 이원수아동문학전집 2 / 웅진출판사 / 1983 (원작은 1949년 어린이나라)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전체 줄거리를 이야기할 작정이니, 읽고 싶지 않다면 그냥 넘기시기를. 먼저 말해두겠는데, 별로 재미는 없는 동화였다. 

줄거리
홀아버지 밑에서 크던 노마는 한 달째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다가 숲 속으로 들어간다. 숲 속으로 난 외줄기 길을 따라 어두운 숲 속을 한참 걸어가던 노마는 샘물이 부르는 노래 소리, 산새들의 합창 소리에 이어 다람쥐가 말을 거는 일까지 만난다. 다람쥐는 어린이 합창회에 노마를 데려가는데, 그곳의 어린이들은 백발에 반백도 섞여 있다. 알고보니 이들은 숲 속 나라의 주민으로 어른도 이 나라에 오면 어린이가 된다. 다만 체구만 줄어들어서 반백에 쪼그랑 얼굴까지 어린이가 되지는 않는다. 노마는 숲 속 나라에 아버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린이들과 함께 느티나무 밑둥의 문을 통해 숲 속 나라에 간다.

숲 속 나라는 서로 돕고 사랑하며, 학비 없이 학교를 다니고, 즐겁게 함께 일을 하는 나라다(원시 공산주의 사회다). 사치품을 쓰지 않는데, 누군가 부유해지면 누군가는 가난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배고프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고(학용품은 모두 학교에서 제공한다) 동무들과 재미있게 노는 나라가 숲 속 나라다. 필요한 동력은 수력발전으로 얻고 있다. 이 나라는 어린 병정이 지키고 있어서 나쁜 장사꾼의 배는 대포로 격침시킨다.

노마는 아버지도 만나고 운동회에 나가 상으로 망원경을 받는다. 멀리 있는 것이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리기도 하는 신기한 망원경이다. 이 망원경으로 사치품을 팔아서 이익을 취하려는 나쁜 모리배의 배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또 자기가 살던 고향도 볼 수 있어서 사과 파는 동무 영이를 보며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마을에 있던 동무 다섯이 노마를 찾아 숲 속 나라로 온다. 사과를 팔던 영이는 탐스런 사과나무를 보고 감탄하는데, 이 숲 속 나라의 사과들은 말을 한다. 서로 어서 먹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아이들은 평소 먹고 싶어하던 맛난 음식을 먹고 곤히 잠드는데, 영이는 사과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혼자 깨어나 사과나무 밑에 간다. 노마도 아이들을 챙겨주다가 영이를 찾아 사과나무 아래로 가서 영이와 함께 사과 한 알을 나눠먹는다.

아이들은 노마와 함께 즐겁게 지냈지만, 점점 부모님이 그리워져 부모님도 숲 속 나라로 모셔오기로 한다. 그런데 숲 속에서 모리배가 심어둔 폭력배 쇠방망이에게 붙들리고 만다. 노마는 잡혀가고 동무들은 노마를 찾지 못했다. 쇠방망이는 이웃나라와 배를 못 들어오게 하고 좋은 물건을 쓰지 못하게 하는 숲 속 나라는 나쁜 나라라 하고 장사를 못 하게 하는 자유를 방해하는 나라라면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숲 속 나라에 대한 정보를 내놓으라고 협박하지만 노마는 말을 듣지 않고, 결국 몽둥이 찜질을 당하게 된다. 노마는 감방에 같이 갇혀있는 할아버지와 친해진다.

그러나 끝내 협조를 거부한 노마와 할아버지는 악당들에 의해서 이상한 주사를 맞고 푸른 바위가 되어버리고 만다.

고향에 다녀온 노마의 동무들은 노마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고 걱정한다. 영이는 사과들의 도움을 받아 노마가 있는 곳을 알게 된다. 노마와 나눠먹은 사과가 노마가 있는 곳을 알게 해 준 것이다. 숲 속 나라 사람들은 무장을 하고 영이의 안내를 받아 노마가 바위가 된 곳에 도착한다. 악당들을 잡고 노마도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노마와 같이 왔던 할아버지도 숲 속 나라를 찾아오던 노마 아버지의 선생님이라는 게 밝혀진다.

동무들의 부모님들이 숲 속 나라를 찾아오는데, 그 중 부자인 두 집안은 숲 속 나라가 가난하다고 싫어하고 다시 나가기를 원한다(한 집은 높은 관리고, 다른 집은 큰 장사꾼이다). 결국 두 아이는 떠나가고 남은 아이들은 숲 속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망원경으로 바깥 세상을 보자 두 동무는 잘 입고, 잘 먹고 있지만 행복해 보이지는 않고, 다른 어린이들은 모두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노마와 영이는 온 세상을 숲 속 나라처럼 만들자고 다짐한다.


이 책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동화에는 비록 악당이 등장하긴 하지만, 전혀 흥미로운 적수가 아니다. 유일하게 재미있게 느껴진 부분은 사과를 나눠먹었기 때문에 동무를 찾을 수 있었다는 설정이었다. 같은 어린이나라지만 피터팬의 네버랜드에는 학교가 없다. 그러나 숲 속 나라에서는 학교가 매우 중요하다. 결국 동화의 교훈적인 부분이 얼마나 국내 작가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내가 보기엔 이 숲 속 나라는 전혀 즐거운 곳이 아니다. 동화가 쓰인 시대의 과제인 교육과 노동이 작가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는 덕분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짬짬이 노는 "이상적인 나라"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말괄량이 삐삐가 학교를 가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 글은 정부 수립 후에 불온한 작품으로 종종 취급 받았다고 한다. 숲 속 나라가 원시 공산주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카시즘적 광풍이 불던 남한 사회에서 그런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품 뒤의 해설 난을 보면 이 작품에 대한 이원수 선생 자신의 변호가 붙어 있어 옮겨본다. 이 글은 현석 임인수의 비평에 화답한 것이다.

- 주인공 노마가 숲 속 나라에 가게 되는 일에서부터 필연성의 결핍을 느꼈다는 것은 동화의 목표하는 바가 철저한 사실성을 넘어서 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 임인수 씨는, 각박한 현실하에 있는 어린이들이 숲 속 나라의 유토피아에서 감상적인 생각을 지닌 채 살고 있은들 무슨 일이 해결되겠는가 하고 적이 아쉬워한다.
- 하지만 (중략) 저학년을 상대하게 되는 동화는 하나의 꿈의 세계를 제시하는 것으로도 가히 그 직능은 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이나 무생물이 말을 하는 정도의 환상성 밖에 없는 이 작품을 놓고도 "감상적"이라는 비판이 가해졌다는 말은 참 충격적이다. 저 사람들은 <나니아 연대기>나 <끝없는 이야기> 같은 책을 보면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동시대에 나온 세계적인 동화와 비교해보면 <숲 속 나라>는 몇 수 떨어지는 작품일 수밖에 없다. 시대를 넘어서 살아남을 요소도 사실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편이다. 말기의 작품인 <잔디 숲 속의 이쁜이>와 비교해보아도 그런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해방 후 첫 동화라는 타이틀 외에 무엇을 건지겠는가? 불행히도 이 작품은 시공을 초월하여 전 세계 어린이들을 매혹시킬 작품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방 후 첫 타이틀인 이 동화가 환상 동화라는 점은 참 다행스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보다 백 배는 끔찍한 동화의 탈을 쓴 계몽주의 소설들을 많이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이원수 선생 스스로 하는 이와 같은 말은 참 주목할만하다.

나는 1960년이 지나서부터 내 시의 세계나 동화에 많은 변화가 온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사회에 대한 관심에서 좀 자리를 멀리 하고 사적인 애정 세계에 가까이 하게 된 것이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숨길 수 없으나 작품에 드러내어 다루고 싶지 않아진 것이다.

이원수 선생은 이어서 늘 그런 것은 아니고 <잔디 숲 속의 이쁜이>에서는 자유와 사랑의 이야기로 옛날 생각이 아주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변화한 이원수 선생의 생각이 이 작품 속에도 들어왔다고 여긴다. 이원수 선생 스스로도 "동화로서는 좀 색다른 작품"이라 부연하기도 한다.

이원수 선생의 동화에 대한 글을 보면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다.

아동을 꿈의 세계로 끌고 가는 동화라 해서 현실 생활과 관계 없는 장난감의 나라로 데려가서 그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판정하더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아동 문학의 임무가 수행된다고 할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이원수 선생이 현실 세계와 관련없는 동화를 싫어한 것이라고 즉자적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불행히도 목적의식이 앞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이 부분은 역시 이원수 선생의 입을 통해 무엇을 말한 것인지 밝힐 수 있다.

- 동화는 공상적이요, 상징적인 문학 형식이다. 그것은 현실의 세밀한 구상으로서 나타내지 않고 소박하게 요약된 미적 표현 속에 있는 인간 일반의 보편적 진실을 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동화는 소설이 현실적인 세계를 그리는 데 대하여 초현실적인 세계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비과학적이요 초자연적인 세계의 가정은 허위의 서술이지만, 그러한 허위가 허용되고 또 그 허위의 세계에서 진실을 설정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동화 문학이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아동의 호기심, 공상력이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원수 선생은 현실을 묘사한 것들은 동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현대 동화가 아동 생활에서 취재하여 현실 생활을 리얼하게 그린 작품은 비록 동화라 이름붙인다 하더라도 단편 소설에 속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동화에 대한 이원수 선생의 견해는 오늘날 보아도 타당하다. 특히 이런 부분은 아동심리학자들도 동의할 이야기겠다.

아동은 상상력과 호기심을 다분히 활동시켜 그러한 몽환의 동화에서 현실에 없는 것을 창조하는 의욕을 가지게 됨으로써 그것은 아동의 정신 성장에 유익한 요소가 된다. (중략) 따라서 동화의 주인공이나 등장 인물이 어른이거나 아이들이거나를 막론하고 아동의 심리에 바탕해서 사건이 만들어지고 전개되며, 아동의 입장을 거점으로 하여 씌어져야 하는 것이다.


덧글

  • 좌백 2008/06/07 18:28 #

    국민학교 때 읽은 이 분 동화 중에 저승에서 네로 황제와 세종대왕이 마라톤 경주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돈으로 사람을 부려서 중간에 함정도 만들고 가시나무도 깔아두고 등등해서 세종대왕은 피 철철 흘리면서 달리죠. 묵묵히 달립니다. 그게 이야기의 끝이에요. 어린 마음에도 '이게 뭐야,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을 했고, 지금도 참 분개스런 이야기라고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인용문을 보면 아마 60년대 이전에 쓰신 동환가보네요 -_)
  • 초록불 2008/06/07 18:42 #

    그것 참 분개스럽군요. 그런 부분만 계승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원수 선생의 글 중에 유머러스한 소년소설을 쓰는 사람들로 조흔파, 최요안이나 오영민 선생 등이 거론되어서 참 다행스럽게 보이더군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또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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