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 책이 재밌다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책 뒤의 해설에는 "여기 수록된 26명의 27편의 작품은 문학성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으면서 아름답고 재미있읍니다."라고 되어 있으니,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선 이 동화책의 특징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는 데 있다. (줄거리가 없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는 원래 줄거리가 없는 이야기라 그렇다는...-_-;;) 27편 중 1/3이 넘는 11편이 그렇다.
벚꽃 이야기 - 방정환 : 삼각산에 놀러갔던 동무 21명이 모두 죽어 벚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나마 벚나무가 된 뒤 나비가 소식을 전해주어 한날 한시에 와락 꽃이 진다는 내용이라 다른 이야기보다 좀 낫다.
진달래와 옥순이 - 주요섭 : 가난한 집 옥순이가 어머니가 꽂아둔 진달래와 함께 죽어버린다는 이야기. 뭐 어쩌라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바위나리와 아기별 - 마해송 : 우리나라 최초의 동화작품. 바닷가에 살던 바위나리한테 아기별이 놀러왔다가 바위나리 병간호에 늦어서 감금당하고, 바위나리는 쓸쓸히 죽는다. 아기별도 바위나리 걱정에 울다가 하늘나라에서 쫓겨나고 만다. 아기별은 바위나리가 빠져죽은 바닷물에 들어가 빛을 내고, 바위나리도 해마다 바닷가에 피어난다. 죽음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끝에서 해피엔딩 흉내를 내고 있는 동화.
피라미와 진달래 - 이영철 : 집에 잡혀온 피라미와 진달래가 모두 죽어버린다는 이야기. 역시 어쩌라는 거냐?
나그네 풍선 - 이원수 : 아기한테 팔렸던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 공기들과 이야기하고 달을 어머니라 생각하여 죽어도 즐겁다고 말하는 동화.
혼자 노는 아이 - 방기환 : 엄마가 만들어준 인형을 가지고 혼자 노는 동안 엄마는 쓸쓸하게 방 안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백일홍 이야기 - 고한승 : 이것은 전래동화를 다시 각색한 것인데, 아무튼 착각한 끝에 처녀가 죽어서 백일홍이 되었다는 이야기.
부엉이와 할아버지 - 박화목 : 전쟁이 났지만 피난도 못 간 할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를 찾아오던 아기부엉이도 같이 죽었다는 이야기.
병아리 삼형제 - 손동인 : 형제가 다 죽고 셋만 남은 병아리 형제가 있었는데, 어느날 엄마가 바람이 나 달아나버리고 막내는 이웃 암탉에게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
늙은 나무의 노래 - 김요섭 : 오백년 묵은 나무가 종이가 되어 젊은 시인의 좋은 시를 인쇄했는데, 시인은 굶주림에 죽고 일본놈들이 시집을 불태워버렸다는 이야기. 뜬금없이 이야기와는 아무 관련없이 젊은 시인의 시를 간직한 소녀 이야기가 뒤에 붙어있다.
엄마노루와 소녀 - 윤사섭 : 아기 노루가 사냥 당해서 죽고 그걸 불쌍히 여기던 소녀도 죽고 엄마노루도 결국 죽는다는 이야기.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나마 파란색으로 표시한 동화가 읽어줄만한 것이고, 나머지는 어린이에게 정신적 테러를 가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닐까 의심되는 수준이라 하겠다.
저 동화책에 실린 것 중 재미있는 이야기는 그저 아래 4편 정도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재미도 없고, 읽을 가치도 없어 보이는 것들이다.
서울 손님 오던 날 - 이주홍 : 고양이 살찐이가 나오는 동화로 적절한 재미를 가진 이야기.
세동무 - 박경종 : 감투를 가지고 사람에게 잡힌 동무를 구해내고 만담을 즐기는 이야기로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
마라톤 - 한정동 : 착한 족제비가 마라톤에 나갔다가 심부름하느라 고생하다 우승하는 이야기로 나름 재미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원숭이 꽃신 - 정휘창 : 오소리가 꽃신을 주어 원숭이를 종으로 부려먹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추가
블로거 뉴스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는 관계로 조금 추가해놓기로 합니다.
위에 언급한 동화책은 1970년대 집집이 꽂혀있던 계몽사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중 마지막 권입니다. 수록된 동화들은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의 동화들이죠. (뭐, 한국 동화는 지금도 별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이들 동화는 이 시대의 암울함이 깊게 배어 있는 셈입니다. 소년소설을 쓰면서 동화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나, 동화의 환상성이 어린이를 현실도피시킨다는 개념만 가지고서는 <꼬마 니꼴라>도 <말괄량이 삐삐>도 <해리 포터>도 <나니아 연대기>도 우리나라에서는 만나 볼 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