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원망 들을 겁니다."
학원이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이며, 가장 나쁜 공격 방법이다.
아이들 영어학원을 모두 끊었다.
어느 정도 기초는 잡힌 것 같아서, 그냥 각자 공부해도 되겠다는 것이 아내의 판단이었고, 나는 그냥 동의했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은 착잡한 모양이다. 그 이유는, 바로 위의 저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서너살일 때, 학습지를 하라고 방문한 외판원이 있었다.
한글을 가르치고, 수학, 영어의 기초도 가르쳐준다고 했다.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외판원도 똑같은 말을 했다.
아이들의 인생인데, 왜 부모가 지원해 주지 않는가. 나중에 아이는 원망할 것이다. 그때 왜 내게 공부를 가르쳐주지 않았나요. 그래서 난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졌고 그 결과 이처럼 찌질한 인생을 살게 되었어요. 모두 부모님 때문이에요, 라고 말할 것이라고.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무엇이 좋은지 모르니, 부모가 경제적으로 좀 힘들더라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작은 돈을 투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그 외판원은 말했다.
학원 교사도 말했다. (오해가 있을까 부연하면, 이 교사는 착한 분이고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이것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슬픈 일이라 하겠다.)
어머니처럼 말씀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당장 입에 달다고 아이들이 쉴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고 아이들을 놀리면, 결국 경쟁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더 좋은 자리를 놓칠 수밖에 없지 않느냐. 나 역시 이러는 것은 싫다. 하지만 현실이잖은가. 현실을 무시하면, 결국 아이는 어머니를 원망하게 될 거라고.
나는 그런 점에서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때와 지금이 다르긴 하겠지. 아이가 지적으로 뒤쳐지기를 바라서 학원을 그만 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자기 소질에 대해서 돌아볼 시간을 더 많이 가지기 바라서 그만두게 한 것이다. (영영 학원을 보내지 않겠다든가, 학원에는 절대 보내서는 안 된다든가 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이에게 과연 무엇이 최선인지 그것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 아이가 죽도록 공부하고 감정이 메말라진 뒤에,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대운하나 판다면?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행복하다고 해야 할 것인가?
역사학에서 가정은 필요없다고 하지만, 인생이야말로 가정이 필요없다. 오 헨리의 단편 중에는 <운명의 길>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든 동일한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똑같다고 할 것인가? 그 안에서 그가 겪은 일들은 모두 다르다. 그러므로 무엇이 최선이었는지도 각기 다를 것이다.
불행히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시간과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결정이 원망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말 속에는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가치롭게 쓸 줄 모른다는 계몽주의적 관점이 깃들어 있다. 일촌광음은 불가경이라. 과연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백발이 된 뒤에 오는 깨달음이다. 아이들을 벌써 백발로 만들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