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문........화..*



어제 좌백님으로부터 불의의 초청을 받고 댁에 방문했다.

"불의의"라고 쓰는 것은 아래와 같은 이유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진산님이 이런 말씀을.

"어제 좌백이 오라는 전화 받으셨죠? 술 취해서 기억도 못 하던데."
"헉!"

그때 좌백님이 손님 한 분과 함께 들어왔다.

"어제 저한테 전화한 거 기억에 없으시다면서요?"
"네. 얼음칼님과 XX님께 전화 드린 건 기억나지만..."

진짜였다.

"으... 무척이나 간곡하게 꼭 오시라 해서 왔는데..."
"어, 진짜 많이 취했었나 보군요."

그렇긴 하지만 매우 유익한 자리였다. 어제 모임에는 한예종의 여러 교수님들께서 참석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단소 연주를 듣는 기회가 생겼다. 이 블로그를 드나든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엄청난 음치에다가 음악적 조예는 담을 쌓은 인물인데, 비단보에서 꺼내는 단소가 벌써 비상해 보이더니 입에 대고 음이 나오는 순간, 오 이것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확 받아버리고 말았다.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나는 인적없는 어느 깊은 고궁의 그늘 아래 서 있다. 천천히 나뭇잎이 떨어진다. 오후의 햇살이 부드럽게 궁궐의 담장에 어린다.

연주가 끝나고 여쭤보니 그 단소는 평조단소라는 낮은 음을 내는 단소이며 연주한 곡은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이라 하신다. 연주를 하신 분은 곽태규 교수님.
바로 이분이시다. 사진은 오마이뉴스에서 업어왔다. 사진으로 보면, 어제 연주한 단소가 사진의 저 단소와 동일한 것 같다. 직접 악기를 만드신다 한다.

그러자 진산님이 "대학 때 단소를 배워야했는데 도무지 소리가 나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다"라고 말했고, 종국에는 그 플라스틱 단소를 꺼내놓게 되었다. 그런데 곽태규 교수님이 이 단소를 집어들고 입을 대자, 다시 여기서 신묘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연주가 끝난 후 진산님은,

"이럴 리가 없는데, 저 단소는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하는데... 단소에 오늘 날짜를 새겨놓아야겠네."

라고...

다만, 어제 마오타이 주를 두 잔이나 마시는 만행을 저지름과 동시에 요즘 나날이 하찮아지는 체력 때문에 부득이 11시경에 실례를 무릅쓰고 일어나 먼저 돌아오고 말았다. 역시 체력이 국력... (어째 마무리가...-_-;;)

덧글

  • 2008/08/15 15:0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8/08/15 15:08 #

    이제 한국에 계신 거면 날 잡아 맥주라도 한 잔 해야죠. 언제 왕림 좀...
  • 착선 2008/08/15 15:10 #

    단소라..풍취을 느끼셨네요. 국악은 꽤나 접하기 어려워서.. 라이브로 말이죠.
  • 슈타인호프 2008/08/15 15:19 #

    저도 학교 음악시간에만 단소를 만져봤지만 도저히 소리 자체가 나지 않더군요.

    진산님과 비슷한 과인지도....;
  • Bluegazer 2008/08/15 15:23 #

    처음 문방구(...)에서 단소를 사서 아무리 낑낑대도 바람 스치는 소리만 나길래 포기했는데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덕에 처음 소리를 냈을때의 기분은 잊혀지지가 않네요
    입을 좀 양쪽으로 많이 당기는 것이 요령이더군요.
  • 루드라 2008/08/15 16:02 #

    그런 부러운 자리를 가지시다니...
  • kane 2008/08/15 16:14 #

    엇 혹시 좌백님과 진산님이 무협 작가분들 아니신가요? 초록불님도 무협지 작가분이신가 보네요.
  • 초록불 2008/08/15 16:37 #

    아직 무협소설은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한 작품 발표할지도... 제 책은 좌측을 보시면 찾을 수 있습니다...^^
  • akpil 2008/08/15 16:29 #

    명필 ...
    저는 '악필' 입니다. akpil ...
    =3=3=3=3=3
  • 푸른화염 2008/08/15 16:33 #

    단소나 대금 등은 소리를 제대로 내는대만 수개월이 걸리는 법이지요.
    그나저나 명인으로부터 단소 독주의 대표 레퍼토리인 요천순일지곡을 들으셨다니 부럽습니다.
    (대금으로 연주하는 것도 있습니다만, 전 단소로 독주하는 편이 더 좋더군요.)
  • 초록불 2008/08/15 16:46 #

    어제 사실 국내에서 제일 잘 분다는 풀피리도 같이 감상했는데 그 이야긴 적지 못 했습니다.
  • 좌백 2008/08/15 16:36 #

    작가도 할만한 거라는 생각을 어제 했습니다. 작가 아니면 누가 집에 와서 그런 음악을 들려주겠어요(핫핫핫) 하지만 계속 안 쓰면 조만간 잊혀진 작가가 된다고 진산이 위협을...T_T
  • 초록불 2008/08/15 16:39 #

    어제는 정말 좌백님 덕에 귀가 호강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불러주십시오.
  • 아트걸 2008/08/15 17:24 #

    제가 국악 전공자라서 덧글을 안 달 수가 없네요. ^^; 다른 분들께도 견문(?)을 넓히실 기회가 될까 하여 몇 자 적습니다.
    단소 소리 내는 게 초심자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긴 합니다만...플라스틱 단소는 그나마 대나무보다 소리 내기가 훨씬 쉽답니다. 워낙 보급형으로 설계되기도 했고요..(초등학생들도 불어야 하니까요.) 악기의 재질상 소리의 깊이가 얕긴 해도, 바람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은 대나무보다 넓거든요. 그래서 아마 곽교수님께서는 그 플라스틱 단소가 더욱 껌(..)이었을 겁니다. ^^
    제가 중학교 특기적성 단소 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플라스틱 단소 소리는 잘 내던 아이들이, 저의 대나무 단소로는 쩔쩔 매더군요.
    전문가들이 직접 만드시는 악기는 일반 사람이 소리 내기 훨씬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관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단소를 꽤 오랜 기간 연주했는데, 대금 전공하는 친구의 단소를 불려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지요.
  • 좌백 2008/08/15 17:48 #

    그 이 교수와 곽 교수가요,,,청계산에 같이 가자고 하는군요. 같이 가지요^^(날짜는 언젤지 모릅니다, 물론)
  • 초록불 2008/08/15 17:57 #

    불러주시면 기꺼이 동행을...^^
  • 회색하늘 2008/08/15 19:17 #

    헉!
  • 찬별 2008/08/15 20:27 #

    예전에 다니던 서당의 동문회에서 대금+민요를 듣다가 달나라를 왔다갔다 했던 적이 있었죠. 무슨 느낌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아요...
  • ㆍㅅㆍ 2008/08/15 21:31 #

    후 먼나라 이야기네요. 부럽습니다 ㅠ_ㅠ
  • 아레스실버 2008/08/15 21:42 #

    플라스틱 단소는 정말로 소리가 나지 않아서 곤란하지요. 그런데 한 방에 해치우시다니... 대인!
    대나무 단소가 더 소리가 잘 나서 시험 볼 때는 다들 빌려서 한 것 같아요. (학창시절 이야기)
  • 사오시안트 2008/08/15 23:26 #

    곽태규 선생님의 단소는 일절이죠. 한예종에는 참 좋은 교수님들이 많아요. 퉁소가락을 부활 시키고저 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국악계와 데면데면한지 오래되어서 잘 모르겠네요.
  • kunoctus 2008/08/26 02:07 #

    같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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