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인구와 유민 *..역........사..*

이 내용은 필요에 의해 동북아역사재단의 <중국학계의 북방민족, 국가 연구>를 정리한 것입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 - 3만 호 / 15만인
<구당서> 동이전 고려 - 5부 176성 69만 7천호 / 384만 5천인
<구당서> 지리지 안동도호부 - 5부 176성 69만 7천호
<신당서> 동이전 고려 - 5부 176성 69만호 / 345만인
<삼국사기> 고구려 보장왕 27년 12월 - 5부 176성 69만여호
<당회요> 안동도호부 총장 원년 9월 14일 - 5부 176성 69만 7천호

<삼국유사> 기이편 고구려 - 고려 전성 시기에 21만 508호 / 105만 2540인

고구려 멸망 후 유민의 향방

1. 중국 
1-1 장안, 낙양 일대
    보장왕 등 지배층
1-2 요동 일대
    장안, 낙양 일대의 고구려인을 다시 보냄 (<신당서> 동이전 고려) 
1-3 농우 일대
    요동에서 보장왕 반란 후 중원과 농우로 분산 수용됨 (<신당서> 동이전 고려)
1-4 강회 이남(회수와 강남 이하), 산남(진령 이남), 경서(감숙성) 
    669년에 공지에 분산 배치

<책부원구> 제왕부 친정 정관 19년(645) - 6만호, 18만명사로잡음
<당회요> 고구려 (645년) - 요주 개주, 암주 3주의 7만인을 내지로 옮김
<신당서> 동이전 고려 (645년) - 욕살 이하 추장 3500인에게 관직을 주고 내지로 옮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669년) 3만8300호 회수 남쪽 산남, 경서 여러 주의 빈땅에 옮김 / 19만1500인
<자치통감>에는 3만8200호, <통전>에는 2만8200호 / 14만1000인
<대당특진泉君묘지> - 연남생 10만호 거느리고 투항 / 50만인

2. 일본

3. 발해 또는 말갈
<구당서>, <신당서> 고려전

4. 신라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6년 연정토 12성 763호 3543인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669년 안승 4천여호 / 약 2만인

5. 소고구려국
보장왕의 아들 고덕무가 세운 나라로 요동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됨

6. 돌궐
簡 - 715년에 고구려 유민과 함께 당에 투항

* 영주에 고구려인 城傍 - 성방은 당에 내부한 이종족을 변경 군진의 성 부근에 안치하여 원래의 부락 조직을 그대로 보전시킨 후 필요할 때 군대로 동원하는 특수한 이종족 군사집단. (<구당서> 왕사례전 - 왕사례는 영주성방 고려인이다.)



필요한 내용은 차후 보강키로 합니다. 책에 일부 잘못된 내용이 들어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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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하늘이 2008/08/30 16:17 # 답글

    돌궐로 갔던 고문간과 고공의 집단도 있지 않습니까?
  • 초록불 2008/08/30 18:33 #

    그렇군요.
  • 어부 2008/08/30 18:07 # 답글

    일본어-한국어 관계가 궁금한지라 정확한 인구 이동이 도움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 dunkbear 2008/08/30 21:53 # 답글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고작 1-2개 문장으로 나온 역사적 사실을 저렇게 풀어놓으니
    참으로 느낌이 다릅니다.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분들부터 구 소련의 이주
    정책으로 머나먼 이국까지 쫓겨난 까레이스끼들이 생각나네요... 가슴이 먹먹합니다.
  • 진성당거사 2008/08/30 22:23 # 답글

    역시 고구려 유민 가운데 남하한 사람들은 퍽 적었군요.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08/08/30 22:36 #

    아, 그건 위 자료로는 알기가 좀 그렇죠. 일단 신라는 대동강 이남의 고구려 영토를 다 차지했기 때문에 상당한 인구를 획득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 ⓧ양아지 2008/08/30 22:28 # 답글

    좋은 자료 잘 보고 갑니다~
  • 소하 2008/08/30 23:06 # 답글

    고구려 인구와 유민에 대해서 논한 논문이 있나요? 얼핏 기억나는 것으로는 중국 학자의 논문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인구사" 종류의 서적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분석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역시 사료가 부족해서 두리뭉실한 면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08/08/30 23:35 #

    <중국학계의 북방민족, 국가 연구>를 보시면 한중학자들의 수다한 논문 명이 모두 정리되어 있습니다.
  • 소하 2008/08/31 09:31 #

    아!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사과향기 2008/12/31 20:32 # 답글

    중국학계의 북방민족, 국가연구 라는 책을 보긴 했습니다만 혹시 농업,상업발전측면에서
    접근한 책이나 논문 혹시 있을까요? 인구라는게 해당 지역의 인구부양력과 직결되는데
    삼국시대 인구에 대한 여러 자료들이 중국인구와 중국의 농업,상업발전등을 고려하면
    의문이 많이 들거든요. 고려 이후부터는 대체로 중국과 한반도의 인구비율, 산업발전
    측면을 고려하면 대체로 일정한 비율인 듯 한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는 제외하고라도
    백제,신라인구가 좀 많지 않나 특히 조선시대보다 많다는 건 좀 이상합니다.
    중국의 경우 당과 명의 인구가 대락 2~3배 정도 차이가 나는 듯.
  • 초록불 2008/12/31 20:46 #

    잘 아는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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