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독*이 실제로 심각하지 않고 그건 그저 인터넷 상의 우익들이 설레발을 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왜 난 좌파라고 부르면서 설레발 치는 우익에도 넣어주시는지요? 내 정치적 지향성은 워낙 기괴망측해서 나 자신도 좌우가 구분이 안 되는 판인데...)
그럼 정말 그런지 한 번 볼까?
그 수많은 다양한 환독을 일일이 다 다룰 수는 없다. 여기서는 그저 가림토 떡밥 하나만 분석해보겠다. 분석의 틀로는 <네이버>를 이용했다. 그리고 대략 지난 1년간만 다뤘다.
2007년 10월 10일 강원일보 [언중언]한글의 뿌리 조광래 논설실장
가림토 문자의 흔적은 인도, 몽골, 일본 등 단군조선과 교류가 있었던 나라들에 남아 있다. 특히 인도로 건너가 산스크리스트어와 구자라트어, 몽골에서는 파스파문자의 모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가림토는 일본에도 전해져 신대문자(神代文字)인 아히루(阿比留)문자가 됐다.
언론사 논설실장이 쓴 컬럼이다.
2007년 11월 2일 전자신문 [이달의 우수게임] 10월상 수상작 피그캔 ‘돌려라 한글퍼즐’
나쁜 한글언어를 봉인하는 가림토 나무가 누군가에 의해 벌목 당한 후 한글이 심각하게 손상되기 시작한 것. 게이머는 심각한 언어 오염으로 ‘언령계’가 사라져 한글도 사라지고 채팅도 할 수 없게 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컴퓨터 게임에도 가림토는 들어있다. 프로게이머 김동수의 아이디도 가림토다.
2008년 6월 1일 데일리안 박정희 대통령을 조명하다 황천우 (소설가)
또 한글이 가림토 문자를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일부의 내용 등)는 함구합니다.
박정희 = 친일파 = 우익인데, 가림토는 역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침투하는군요.
2008년 7월 16일 연합뉴스 신간소개 <광개토대왕비> 정현웅
광개토대왕비를 연구하던 사학자 홍민우 박사가 중국에서 의문의 실족사를 당하고, 그의 제자인 진성규 기자는 홍 박사가 떠나기 전 맡긴 비밀금고 속에서 그의 일기와 가림토 문자를 확인한다.
가림토에 걸린 소설이군요.
2008년 10월 11일 부산일보 [잠깐 읽기]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外 김건수 기자 -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최경봉·시정곤·박영준
기원전 2181년 만들어진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 또한 모양과 소리값이 한글을 너무 빼닮아 깜짝 놀랄 정도. '환단고기'에 나오는 이 글자가 한글과 일본 신대문자, 몽골 파스파문자 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 또한 논란이다. 주류 사학계는 '환단고기' 자체를 객관적 사료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 소개다. 부산일보에만 이런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주요 일간지에 모두 소개되었다.) 실제 이 책에서는 가림토 문자라는 것이 있었을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고 논박하고 있다. 그런데 책 소개는 왜 이 모양일까?
부산일보에는 특히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가림토 문자가 나왔다고 하는 기사의 출처도 부산일보인데, 그 기사의 사진이라는 것이 요 모양이다.

이른바 문화일보 떡밥인 "단속사 비석"(1995년 10월 9일에 보도되었다고 하지만 확인하지 못했다)과 마찬가지로 저 부산일보 보도 2003년 3월 13일 부산일보 훈민정음 이전 한글 '가림토' 발견 역시 그후 어떤 보도도 없고, 논문도 없고, 사진도 구해볼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가림토의 실존 주장에는 저 기사들이 인용된다.
살펴본 바와 같이 <가림토> 떡밥 하나에만도 언론계, 게임계, 학계, 문학계가 모두 퍼덕대고 있다.
사람들은 <환단고기>가 단지 증명되지 않은 책이고(사실 증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안에는 일부 사실도 들어있을 것이므로(그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일일이 반박하거나(보통은 헐뜯는다고 말한다)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하는 짓을 굳이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어차피 황당한 부분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황당한 부분>이 무엇인지가 문제인 것이다. 이유립이 처음에는 연토관삭한 문자라고 규정했던 가림토가 어느날 훈민정음의 전신으로 변해버렸는데, 이보다 황당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런데도 이 황당한 것을 믿는 위 기사들을 보라.
도킨스는 비합리적인 것을 믿는 사람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 역시 그런 점 때문에 환독을 걱정한다.
* 환독 : 환단고기가 사회에 끼치는 해독의 줄임말
덧글
'민족' 이란 단어만 들어가면 좌우구분없이 모두 파닥파닥하는 현실.
그러고보니 김운회교수가 프레시안에서 새 연재를 또 하고 있더군요.
예를 들어 시청자들이 TV의 사극들을 보면서 원작자나 방송작가들이 꾸며낸 얘기를 역사적 인물들의 진짜 행적 줄로 착각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막상 드라마의 원작인 '바람의 화원'의 작가는 엄연히 자신의 소설이 '만약 신윤복이 여자였다면...'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는 팩션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막상 그 원작을 기초로 하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걸 모르고 사실이라고 착각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 제 어머니께서 신윤복이 정말 여자였냐고 물어보셨을 정도니... -.-;;;)
'태왕사신기'는 사실상 판타지인데도 실제 역사였거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진짜 문제는 (왜 그런지 저는 전혀 이해를 못하겠지만) 상당수의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이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판타지라고해도 한단고기 같은 위서를 차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른바 <우리 민족>이 아시아를 석권했다는 설정이란, 일제의 극우사가들이 이미 <일본 민족>이 아시아를 석권했다는 설정을 빌려온 것으로, 환단고기와는 별개로 이미 성립했던 망상이죠. 환단고기는 그 망상을 <우리 것>으로 둔갑시킨 것에 불과하고, 요즘 나오는 재야의 황당 주장들은 일제 극우사가들의 주장과 중국사를 우리 것으로 둔갑시킨 두가지 요소를 결합한 것에 불과합니다.
근본적으로 환단고기의 사상은 열등감과 증오심에 있기 때문에 소설로서 그런 것을 차용한다는 것이 답답할 뿐이죠.
소설가의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해선 안 된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런 것을 했을 때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쓸모" 때문에 암암리에 환빠는 우리 사회에 붙어 있을 수 있는 게 아
닌가 합니다.
ps:그럴싸 해 보인다는게 치명적....
뭐, 애초에 '설정은 설정일뿐 믿지말자'라고는 하지만 그게 가져오는 파괴력이 만만치 않거든요.
오늘 이런 뉴스를 봤습니다.
http://media.daum.net/foreign/europe/view.html?cateid=1044&newsid=20081016153504812&p=yonhap&RIGHT_TOPIC=R1
...그리고, 이 글에서 기자(인지 뭐하는 인간인지)는, 영화 글라디에이터를 역사적 사실 자체로 생각하고 있다는게 증명되지요. 사고의 오염의 폐해는 막대합니다.
뭐 인터넷 질앗히따위도 '언론'이라 자칭하고 있으니 말이죠...
헌데, 연합뉴스 기자가 저러는 것은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