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몽골 공주들 *..역........사..*



25대 충렬왕부터 고려의 왕비는 몽골인이었다.

25대 충렬왕의 비는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 홀도로게리미실忽都魯揭里迷失.
무려 쿠빌라이(재위:1260-1294)의 딸이다. 1297년 39세의 나이로 사망. 상당히 권위적이어서 충렬왕도 무서워 했다고 한다.

홀도로게리미실의 아들 장璋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26대 충선왕이다.
충선왕부터는 몽골 이름도 가지고 있는다. 충선왕의 몽골 이름은 익지례보화益智禮普化(젊은 황소 또는 황소 한쌍이라는 뜻이라 한다)라 한다. 쿠빌라이는 이 외손자를 무척 총애했다고 한다.

홀도로게리미실이 죽자 충렬왕은 충선왕에게 양위를 해야했다. 충선왕은 즉위하자 원이 고쳤던 제도를 다시 고려 것으로 바꾸는 등의 일을 한다. 이때문에 그는 8개월만에 폐위를 당하고 만다. 왕위는 다시 충렬왕에게 돌아갔다.

충선왕의 비는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 보탑실련寶塔實憐으로 쿠빌라이의 2남이자 황태자였던 친킴眞金의 장남 진왕晉王 카말라甘麻刺의 딸이다. 친킴의 세째 테무르가 원의 2대 황제 성종(재위:1294년~1307)년이다. 또한 친킴의 아들 예순테무르(재위:1323-1328)가 6대 황제 태정제가 되기도 한다.

충선왕과 보탑실련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충선왕도 바람깨나 피웠고, 보탑실련도 지지 않고 바람을 피웠다. 충렬왕은 충선왕을 견제하기 위해 보탑실련을 개가시키려고 했다. 그를 잘생긴 왕족과 붙여서 이혼하고 새로 결혼하게 하려 한 것이었다. 충선왕은 본래 야속진也速眞이라는 몽골 여인과 사랑에 빠졌었고 즉위하여 고려에 돌아와서도 보탑실련은 팽개치고 다른 여인들만 취했다. 그런 질투가 충선왕을 물러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 충렬왕의 저런 시도는 물론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이혼과 개가를 추진한 희한한 일인 것만은 틀림없겠다.

충선왕은 의비懿妃 야속진也速眞이라는 몽골녀와 사이에서 도燾라는 아들을 얻었고 이이가 27대 충숙왕이 된다. 충숙왕의 몽골 이름은 아랄눌특실리阿剌訥特失里다. 야속진은 충선왕이 세자로 원에 있을 때 만난 여인이었다.

<용재총화>에 따르면 충선왕은 원나라에 머물다가 여자 하나를 사귀었는데, 정이 깊었다고 했다. 귀국한 뒤 그녀를 잊지 못해 이제현을 보내 동정을 살피게 했다. 이제현은 그녀가 젊은이들과 술집에서 어울려 논다는 "거짓보고"를 했다. 사실 그녀는 충선왕을 잊지 못해 밥도 먹지 못하고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거짓 보고에 속은 충선왕은 분노하고 그녀를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다음해에 이제현은 왕을 기만했음을 고백했는데, 이때는 이미 충선왕의 마음이 식었던 것인지 그녀를 부른다든가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충선왕의 바람기는 이런 정도였다는 이야기일까...

27대 충숙왕은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몽골 공주만 셋과 결혼을 했으니...
첫번째 왕비는 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 역련진팔라亦憐眞八剌였다. 충숙왕은 이미 이때 홍규洪奎의 딸과 결혼한 사이여서 역련진팔라를 싫어했다. 싫어한 정도가 도를 넘어서서 역련진팔라는 충숙왕에게 맞아죽었다는 이야기가 원나라에 들어갈 정도였다. 역련진팔라는 쿠빌라이의 6남 후게치의 손녀였다.

충숙왕은 역련진팔라가 죽은 후 원에 불려가 자칫 왕위를 빼앗길 뻔하다가 원 황제가 바뀌는 통에 간신히 살아난 뒤 새 장가를 간다.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 금동金童이었는데, 이때 나이 17세였다. 충숙왕은 31세. 금동공주는 다음 해 아들을 낳고 죽고만다. 연이어 몽골 공주들이 죽어나가니 큰일이었다. 금동공주는 친킴의 차남 다르마발라의 장남으로 위왕魏王 아무가阿木哥의 딸이었다.

다행히 이때 원나라는 6대 태정제가 죽고 왕위 계승을 둘러싼 내란 중이어서 이 문제를 문책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충숙왕은 왕위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다 원의 황제계승전이 문종 툭 테무르의 즉위로 안정되자 충숙왕의 왕위는 박탈되고 장남 정禎이 왕위에 올랐다. 28대 충혜왕이다.

28대 충혜왕은 몽골 여인의 소생이 아니었다. 바로 역련진팔라 공주 전에 결혼했던 홍규의 딸이 어머니 명덕태후明德太后다. 하지만 그 역시 몽골 이름은 가지고 있었다. 보탑실리寶塔失里라 부른다. 충혜왕이 몽골 공주의 아들인 용산원자를 제치고 왕위에 오른 것은 원의 문종 즉위의 공신인 승상 엘 테무르가 그를 귀여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충혜왕은 14살 때 원에 가서 엘 테무르와 만났는데, 엘 테무르가 그를 친아들처럼 귀여워했다고 한다.

왕위를 빼앗긴 충숙왕은 원으로 들어가 다시 몽골 여인과 결혼했다. 세계가 확인되지 않는 경화공주慶華公主 백안홀도伯顔忽都가 그녀다. 아마도 쿠빌라이의 후손이 아닌 모양이다. 충숙왕은 충혜왕의 지지자인 엘 테무르 사후에 다시 왕위를 차지했다.

충혜왕은 충숙왕이 죽은 뒤 다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왕위에 오른 충혜왕은 충숙왕의 왕비였던 백안홀도를 강간했다. 백안홀도가 반항하자 신하들을 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누른 뒤 강간했다하니 이런 인간말종이 또 있을까 싶다. 백안홀도는 원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충혜왕은 그녀가 말을 사지 못하게 마시馬市를 금지시켜버렸다. 결국 충혜왕은 원이 보낸 사신에 의해 체포되어 압송되고 만다. 황음무도의 일인자인 그는 역시 아버지 충숙왕의 후비인 수비 권씨도 겁탈했고, 외숙모와도 관계했다. 이러다보니 주위에도 무뢰배들만 들끓었던지, 남의 예쁜 아내를 잡아오라는 명을 받은 부하가 먼저 겁탈을 하고 들여보내는 일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무렵 원의 황제는 마지막 황제(11대)였던 순제 토곤 테무르妥懽怗睦爾였다. 그의 제2황후가 바로 그 유명한 기황후였다. (기황후의 아들 아유시리다르는 북원의 황제가 된다.)

충혜왕은 결국 황음무도한 행위를 버리지 못해 원에 의해 유배를 당하게 되고 유배 도중 죽고 만다. 충혜왕의 뒤를 이어 여덟살 난 장남 흔昕이 충목왕에 올랐다가 재위 4년만에 죽었기에 왕비가 없다. 충목왕의 어머니는 덕녕공주德寧公主 역련진반亦憐眞班으로 쿠빌라이의 7남 오그룩치의 증손녀였다.

역련진반은 충혜왕이 죽었을 때, 성년의 몸으로 홀몸이 되었고 그 때문인지 신하들과 통정을 했다. 배전裴佺과 강윤충康允忠이 그 대상이었다. 역련진반은 충목왕과 장령옹주를 낳았는데, 장녕옹주長寧翁主는 원나라 노왕魯王에게 시집을 갔다. 그녀는 1368년 명태조 주원장이 북경을 공격할 때 행방불명 되었다가 후일 발견되어 고려로 돌려보내졌다. 장녕옹주는 행실이 나빴다 하여 내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공민왕은 그녀를 역련진방의 궁으로 보내 같이 살게 해주었다. 역련진반은 1375년(우왕 원년)에 죽었다.

충목왕의 뒤를 이은 충정왕도 열두 살에 즉위하여 재위 3년만에 죽고만다. 역시 왕비가 없었다. 충정왕은 희비 윤씨의 소생으로 몽골 공주를 어머니로 두지 않았다.

31대 공민왕(몽골이름:백안첩목아)은 충혜왕의 동생으로 어머니도 명덕태후 홍씨로 같다. 왕비는 노국대장공주徽懿魯國大長公主 보탑실리寶塔失里로 충숙왕비 금동공주의 조카가 된다. 즉 위왕 아무가의 손녀다. 공민왕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에 원나라에서 결혼했다. 충정왕 원년의 일이다. 공민왕은 충혜왕 이후 자신이 왕위에 오를 줄 알았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때문에 몽골 공주와 결혼하여 정치적 세력을 얻고자 한 결과, 보탑실리와 결혼하게 된 것이었다. 정략적 결혼이었지만 그후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고려의 왕은 아니었지만, 고려왕만한 대접을 받은 이로 심왕瀋王 고暠가 있다. 고는 충렬왕과 정화궁주 왕씨 사이에서 낳은 강양공 자滋의 아들이었다. 강양공은 충렬왕의 장남이었으나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다. 왕위는 충렬왕과 홀도로게리미실 사이의 아들 충선왕이 물려받았던 것이다. 이 강양공의 아들이 고暠였다. 1314년 충숙왕 즉위년에 세자로 책봉된 뒤 원나라에 인질로 보내졌다.

1316년 심왕의 자리에 있던 충선왕이 심왕의 지위를 왕고에게 물려주었다. 이로써 왕고는 "심왕 고"라고 불리게 된다.

이 심왕이라는 것은 본시 심양왕瀋陽王으로 충선왕이 받은 지위였다. 충렬왕 34년(1308)에 원 무종武宗을 황제를 만드는데 공헌을 했다하여 내려진 지위였다. 1310년에 심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심왕의 지위는 충숙왕 - 심왕 고 - 탈탈불화脫脫不花(왕고의 손자)로 내려갔으며 이들은 항상 고려의 왕위를 놓고 고려왕들과 불화를 빚었다. 기황후가 심왕 고를 총애한 탓도 크다.

이 심왕 고의 왕비는 눌륜공주訥倫公主였는데, 친킴의 장남 카말라의 둘째 중샤이의 딸이었다.

덧글

  • 제갈교 2008/10/19 17:07 #

    충숙왕과 충혜왕...orz...
  • 피그말리온 2008/10/19 17:38 #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몽골식 이름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무슨 암호문 같기도 하고.....ㄷㄷㄷ
  • 초록불 2008/10/19 17:39 #

    저도 암호문 같아서 정리 중입니다...^^
  • dunkbear 2008/10/19 17:53 #

    진짜 암호로 써도 될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
  • 한언 2008/10/19 17:51 #

    심왕을 쭉 심양왕으로 알고 있었는데 중간에 이름이 바뀌는거였네요
  • Fedaykin 2008/10/19 17:56 #

    홀도로게리미실이 쿠빌라이 막내딸인가 그래서 충렬왕이 원나라 황제 계승 순위 3위였나, 하여튼 꽤 높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유목민족은 원래 막내딸에게 유산을 몰아주고 어쩌고 하는만큼 고려에 대한 쿠빌라이의 인상이 특별했다 뭐라하던데 진실인지는 모르겠군요. 그정도로 고려를 이뻐했을 이유도 없고 말이지요.
  • 초록불 2008/10/19 19:18 #

    일단 남은 사료로 볼 때는 쿠빌라이는 고려를 굉장히 높이 평가했습니다. 당 태종도 정벌하지 못한 나라 운운 하면서...

    충렬왕은 서열 7위였는데, 그게 왕위 계승 서열은 아닙니다...^^
  • azurebird 2008/10/19 17:57 #

    어린시절을 원에서 보낸 왕도 많네요.
  • DHKH 2008/10/19 18:53 #

    음...혹시 고려만 원나라의 공주들과 혼인을 하였나요? 원의 지배를 받은 국가들 중에 고려같이 다른 나라역사중에도 몽고의 공주들과 혼인을 한 사례는 없을까요?

    음...

    갑자기 질문 댓글이 되어서 죄송...;;;
  • 초록불 2008/10/19 19:21 #

    음... 제가 아는 한은 이처럼 조직적으로 원 황실과 혈연을 맺은 국가는 없는 것 같습니다.
  • FELIX 2008/10/19 19:09 #

    나름 얌전한 한국 왕실의 이단아죠. 충혜왕은.
    그나저나 저 심양왕이라는 지위는 정확히 어떤 것인가요? 실재의 영토를 다스렸는지 궁금합니다.
  • 초록불 2008/10/19 19:23 #

    이게 학자마다 약간 의견이 다른 모양입니다. 언제 정리를 좀 해보겠습니다.

    원래 요동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었는데, 실제 영토를 다스린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더군요.
  • 아문 2008/10/19 19:14 #

    몽골에서 고려왕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다고 알고 있어요 쿠릴타이에도 참가할 자격이 되었다던데..
    내일 학교가서 물어봐야할 듯
  • 초록불 2008/10/19 19:24 #

    그런 이야기도 있더군요.
  • 헤노 2008/10/19 19:23 #

    우음 몰랐던 사실이로군요. 몽골식 이름이 있어다라는 것은요.
  • 박양 2008/10/19 19:43 #

    지금 입장에서야 다르겠지만, 당시에는 원나라에서도 꽤나 파격적인 대우였다고 알고 있어요. 황실의 공주들을 시집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것이니까요. 특히 제국대장공주의 경우에는 쿠빌라이칸의 친딸이니까요. 그 이후에는 점점 격이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요. 공주들이 시집와서 횡포(?)를 부린 것도 많았지만, 공주의 부마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정치적으로 잘 조정했던 예도 있었다고 하네요. 특히 충선왕의 경우는요.
  • 초록불 2008/10/19 20:13 #

    왕비의 격이 떨어지는 건 관점의 차이일지 모르겠습니다. 야속진과 백안홀도 공주를 빼면(야속진은 어차피 황실이 결혼시킨 여자도 아니죠.) 모두 쿠빌라이의 자손들이고, 공민왕의 왕비만 봐도 당금 황제와 6촌이었으니까요.
  • 박양 2008/10/19 20:24 #

    음..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요.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황제의 친딸과 조카 혹은 육촌 정도의 인척들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어쨌든 황실의 직,방계의 공주가 하가했다는 것은 원이 고려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듯 해요.
  • 아브공군 2008/10/19 21:26 #

    으아.... 복잡해.....
  • 초록불 2008/10/19 21:27 #

    저게 좀 복잡합니다. 좀 더 들어가면 결국 고려사를 모두 보게 된다는...^^
  • 自重自愛 2008/10/19 21:33 #

    트랙백했습니다.
  • 초록불 2008/10/19 22:36 #

    고맙습니다. 참조해서 오류를 수정해 놓았습니다.
  • Ezdragon 2008/10/20 01:57 #

    경주 이씨 익재공파라서 익재공의 이름이 나오니 살짝 놀랐습니다.
  • 초록불 2008/10/20 10:59 #

    저는 국당공파입니다...^^;;

    익재 선생은 고려말의 거목이라 안 나오면 그게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죠...^^
  • 이준님 2008/10/20 12:33 #

    ..저도 익재공파이지요 -_-;;

    고려왕실과 몽골 관련 이야기를 하면 쌍팔년도 미-중공 합작(!!!) 미니리시즈 마르코 폴로가 생각나네요. 고려왕(아마 우리나라 더빙으로는 충렬왕?으로 나왔을겁니다)이 우정 출연해서 벌이는 행각때문에요
  • 루드라 2008/10/21 00:21 #

    꽤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나는데 고려왕이 나왔던 건 전혀 기억이 안나네요. 예고편에 나오는 약간 야한 장면을 본편에서 잘라 먹었던 건 기억납니다. ^^;
  • 애프터스쿨 2009/03/25 14:46 #

    뭐랄까, 고려는 당시의 원나라 입장에서는 정말 특별대우를 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능.. 뭐 작은 나라고 변방의 나라라서 신경을 안썼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ㅎㅎ;;

    노국대장공주 ㅠㅠ...
  • 이야타 2009/09/27 14:33 #

    초록불님~~ 죄송하지만, 심양왕은 충숙왕이 아니라 충선왕이 고려국왕과 겸직하고 있던 게 아니었나요???
    자중자애님 블로그에 그렇게 나오더라구용;;;

    충선왕이 고려에 가기 시러서 충숙왕한테 고려국왕자리를 물려줬는데,
    또 혹 머리 굵어졌다고 -_-; 아빠 말 안 들을까봐 경쟁 관계를 맹글어놓는다고
    심양왕 자릴 충렬왕 서자(원래 적장자였건만;;) - 강양공 인가요??? - 의 아들한테 물려줬다고 그러더라구요;;;

    초록불님 말씀이 맞는건지 자중자애님 말씀이 맞는 건지 헷갈리네요 ㅜㅠ 뭐지뭐지~~

    그나저나 간만에 들어왔더니 블로그 새단장하셨네요%%

    댓글란 느무느무 귀여버요 ㅋㅋㅋ 토갱이~☆
  • 초록불 2009/09/27 14:38 #

    아, 제가 틀린 겁니다. 한 군데를 잘못 썼네요. 충선왕이 맞습니다.
  • 파랑나리 2010/11/29 22:42 #

    몽골이름이나 만주이름 기타 중국과 가까운 다른 종족의 이름을 한자로 음차한 게 아니라 정말 원문 그대로 보고 싶습니다.(가령, 공민왕의 몽골식 이름을 백안첩목아가 아니라 빠이엔티무르 이렇게요. 아니 빠이엔티무르도 백안첩목아의 북경식 발음일 뿐인가?)

    오늘날 몽골사람들이 한국에서 착취당하고 몽골인과 한국인의 틔기(이거 순수한 우리말이에요. 한국어에서 한국어의 비중을 높이자는 취지로 쓴 것뿐이에요.)가 천민취급 당하는 걸 고려시대의 현실과 견주하면 격세지감이 절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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