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시대 동이족에 대한 떡밥 총정리 만들어진 한국사



1. 동이의 이夷는 대궁大弓의 결합자이다. 활을 잘 쏘는 동방 민족을 가리키는 글자다.

위 말은 후한 때 만들어진 <설문해자>에 나온다. <설문해자>는 최초의 한자 사전이다. 그래서 매우 그럴 듯하게 보이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갑골문과 금문에서 夷는 사람이 허리를 앞으로 굽히고 쪼그리고 앉아있는 형태로 시尸와 인人과 비슷한 글자로 나타난다. 이 글자가 동이족을 뜻하게 된 것은 전국시대 중기 이후로 알려져 있다. 즉 글자가 먼저 있었고, 그 뒤에 동이족을 가리키는 글자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2. 산동 일대의 동이족은 우리 민족의 갈라진 일파다. 
 
김산호의 <대쥬신제국사>를 보면 처음에 다음과 같은 지도가 나온다.
시베리아에서 발원한 우리 민족이 바이칼호로 남하한 뒤 일부는 핀란드로, 일부는 수메르로. 일부는 미대륙을 향해 떠났고, 동진한 주 세력 중 일부는 고비사막으로 갔고, 일부는 산동반도로 남하해서 오월 지방을 거쳐 티베트로 진출했고, 또 그 중 일부는 황해를 건너 한반도 중부로 진출했으며, 더 동진한 우리 민족은 만주를 석권하고 한반도로 들어간 뒤 일본까지 건너갔다는 것이 위 지도의 내용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대체 산동의 동이가 우리와 북방에서 갈라진 종족이라고 누가 주장한 것인지 궁금했는데, 최근에서야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았다.

주인공은 김상기基(1901-1977)  선생. 설마? 일본 와세다 대학 사학과를 나온 "친일사학자"의 학설을 저 "강직한" 재야사학자들이 냉큼 주워먹었다고? 그러나 사실이다. 김상기 선생의 주장은 간단하게 말하면 아래와 같다.

동이 중 한, 예, 맥이 기주岐周의 서쪽으로부터 섬서의 한성현 방면으로, 다시 하북 고안현 방면으로 이동하였다가 주가 동천할 때 한반도와 남동만주 일대로 이동했으며, 이때 일파가 산동 지방으로 내려가서 우이嵎夷, 래이萊夷, 회이淮夷, 서융徐戎이 되었다고 한 것이다. - 동이와 회이, 서융에 대하여, 동방학지 1-2, 1954-55

재야의 역사인식이라는 것이 195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 산동 반도와 회수 일대의 동이족은 우리 민족이고, 그 땅은 우리 영토였다.
4. 공자는 동이족을 흠모해서 구이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

산동 반도의 동이는 선진시대의 동이로, 이들은 우리 민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오류가 지적되어 온 것인데, 이성규 교수의 논문 이래로는 이의의 여지가 없는 정설로 굳어졌다. (이성규, 선진문헌에 보이는 '동이'의 성격, 한국고대사논총1, 1991)

산동 지방에 있던 동이족에 대한 기록이 있던 시절, 중국 북방에는 맥貊족이, 중국 동북방에는 예濊족이 기록에 남아있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의 직계조상으로 간주해도 된다. 이들은 한나라 시절로 접어들면서 "동이"로 취급되는데, 그 이유는 산동-회수 일대의 동이족이 진시황에게 접수되어 흡수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즉 본래 동이족이 사라진 뒤에 한족은 동쪽에 있는 종족들을 또 다시 동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문헌적으로 살펴보아도 이 점은 명백하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살펴보아도 명확해진다.

산동지방의 북신-대문구-산동용산의 신석기 문화를 거친 청동기문화인 악석문화와,
요동지방의 홍산-소하연의 신석기문화를 거친 청동기문화인 하가점 하층 문화는 서로 독립적인 관계라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이미 증명되어 있다. (홍산문화가 우리민족문화인지 여부를 떠나서 산동과 요동 지방의 문화가 독자적이라는사실에 주목할 것)

또한 산동지방에서 발견된 인골과 요동지방의 인골을 비교해본 결과, 양 지역의 인골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 밝혀져 있으며(기수연, 고대동이연구, 1994, 단국대 사학과 석사논문)

산동 일대 동이족에게는 이를 뽑는 발아풍속이 있었음이 확인되는데 요동 지방에는 이런 풍속이 발견되지 않으며,

요동에서는 곤두髡頭의 풍속이 발견되지만 산동 동이족에게서는 곤두의 풍속이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요동지방에서는 적석총, 석관묘, 지석묘가 주된 매장 형태인데, 이 형태들은 산동 지방은 물론 중국 전역에서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산동 지방에서는 대문구 문화 중기에 이르러 목관묘가 등장하는데 요동지방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묘제이다.

지석묘의 경우는 유일하게 산동반도 동단에서도 발견이 되는데, 물론 그 숫자는 매우 적다. 이것으로는 당시 요동지방과 산동반도 사이에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 이상으로 확대해석할 수는 없다.

또한 비파형단검도 산동 지방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볼 때 산동지방의 동이족과 요동지방의 제종족 사이에는 종족적 혈연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이제 이런 헛소리는 제발 좀 그만.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하은주 시대로부터 춘추전국시대에 걸쳐 산동반도와 회수 일대의 해변가를 중심으로 살던 여러 종족을 "동이"라 불렀었다.
2. 이들 동이족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점차 한족에 동화되었으며 진시황에 의해서 중국에 편입되어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공자가 가서 살고 싶어한 동이족도 바로 이들이다.)
3. 그후 한나라 시대가 되자 한족들은 요서 이동의 제종족을 "동이"라 호칭하기 시작했다.
4. 따라서 산동반도에 살던 동이족은 현재 우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5. 그들은 현 중국인들의 조상 중 하나일뿐이다.

추가 : 공자의 고향인 곡부도 산동이고 동이도 산동이면 어찌 되는 것인가 질문한 분이 계셔서 추가해놓는다. 아래 지도를 보면 어느 정도 거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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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 및 볼드체의 소제목은 내가 붙인 것임. 여러분은 동이에 대한 동상이몽을 지금 보시고 계십니다. 이 문제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선진시대 동이족에 대한 떡밥 총정리 [클릭] ... more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유사역사학에 심취한 대전지방법원장 2009-02-06 00:52:05 #

    ... 리 민족이라는 바보 놀음 - 황제 동이론 1 / 중국 한족도 우리 민족이라는 바보 놀음 - 황제 동이론 2 중국이 자랑하는 고대문화는 그 실체가 동이족의 문화 - 동이족에 대한 떡밥 총정리 백제의 역사가 800년이나 되는데도 공주나 부여를 포함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왕궁터를 발견할 수 없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무령왕릉 / [연합뉴스] ... more

  • 을파소의 역사산책 : 그들이 백산학회를 매식자소굴로 규정한 이유 2009-09-22 01:01:49 #

    ... 이 보이기 때문이군요.그러나, 저기의 이름들 중 김상기의 경우는 산동의 동이는 우리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일파라는 주장을 한 장본인입니다. (자세한건 초록불님의 이 포스팅 참조) 스스로를 '구이넷'이라고 칭하는 사이트에서 배척할 상대가 아니죠.게다가 저들도 믿고 있는 간도영유권 주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직인 백산학회를 그냥 ... more

  • 초록불의 잡학다식 : 광화문 현판 2010-08-16 10:46:16 #

    ... 내내는 것도 아니고 제발 좀 남의 나라 전설 가져다가 우리 것처럼 꾸며놓지 말자. 창힐이 동이고, 우리도 동이니까 다 같은 동이(올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선진시대 동이족에 대한 떡밥 총정리 [클릭]를 보자. 그리고 위 기사에는 이런 근거(?)가 하나 더 붙어있다. 강 이사장의 말에 따르면 안 박사는 귀국 후 한자도 우리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근거를 ... more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유사역사학의 영향력 시리즈 012 2011-04-26 22:07:49 #

    ... ... more

덧글

  • 슈타인호프 2008/10/29 02:06 #

    그래도 어떤 집단 사람들은 여전히 귀를 막고 산동도 우리 땅이었다고 외치겠지요(...)
  • dunkbear 2008/10/29 08:53 #

    그들은 백제의 요서진출설을 빌미로 끝까지 악을 쓰면서 버틸 것 같습니다... ㅡ,.ㅡ;;;
  • 제갈교 2008/10/29 02:22 #

    그런데 산동성 곡부가 공자의 고향이고, 선진시대의 동이가 지금의 산동성 일대와 회수 이북에서 살았다면 대체 왜 공자가 가서 살고 싶어한 것일까요? 이미 그 산동성에 살고 있는데...

    선진 시대의 동이족 거주지와 당시의 한족 거주지가 달랐던 건가요?

    아무튼 저런 지도를 보면 참 정신이 멍해집니다.
  • 초록불 2008/10/29 02:31 #

    산동성 곡부라고 해도, 그곳은 굉장히 내륙 쪽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서울에서 부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 초록불 2008/10/29 02:33 #

    이런 의문이 있을 수 있군요. 정신 좀 차리면 위치가 나온 스캔 자료를 올려드리죠.
  • 굔군 2011/02/05 04:02 #

    산동성이라고 해도 상당히 넓은 지역이죠. 단순 비교해 봐도 남한 전체와 거의 맞먹는 면적인데요.

    게다가 "산동성"이라는 것 자체가 명나라 때나 가서야 처음 생긴 행정 구역이기 때문에, 오늘날 같은 산동성에 속해 있다고 해서 고대에도 같은 권역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에러입니다.
    경주와 김해가 오늘날 같은 경상도라고 해서 고대에도 신라와 가야가 같은 나라(내지는 같은 민족)였을 거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지요.

    선진시대의 동이가 살았다는 "산동"은 현재의 산동성 전체가 아니라 "산동 반도" 일대, 즉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가 있던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초록불 님, 여기부터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생겨서 질문 드리는 것인데,
    그렇다면 제나라 자체를 동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당시 제나라의 영역 안에 "동이(9이)"라 불리던 다른 종족이 제나라의 지배 아래 함께 섞여 살고 있었던 건가요?

    그리고 제나라 = 동이라면, 공자가 동이(구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 것은 제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한 걸까요?
    왜 그랬을까요? 공자의 생애를 돌이켜 보면, 제나라와는 그다지 좋은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제나라는 공자가 살던 노나라와 인접국이라 전통적으로 이래저래 사이가 별로 안 좋았고, 특히 공자가 집권했을 때 노나라를 더욱 경계했었죠.
    뿐만 아니라 공자의 일생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안자(안영)도 제나라 사람이고, 공자가 잠시 제나라에 머물 때 제나라 대부들의 모략으로 등용되지 못하고 돌아온 일도 있었고, 훗날 계략을 써서 공자의 공직 생활을 완전히 끝장 내는 원인을 제공한 장본국(?)도 결국 제나라인데, 어째서 공자는 그런 제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 걸까요?

    *P.S - 공자는 자기 조상이 은나라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공자 본인도 자신을 동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은나라는 확실히 동이라는 기록이 있으니...)
    그리고 그냥 사견으로, 공자가 말한 "동이에 사는 군자"는 당시 제나라의 안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초록불 2011/02/05 11:05 #

    굔군님 / 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중원과는 다른 것이고 제나라는 중원에 속한 나라로 보았으니, 제를 동이라고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공자가 제나라로 가서 살겠다고 말한 것으로는 해석할 수 없겠지요. 또한 공자가 스스로를 "동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없어보입니다. 저 해석은 어디까지나, 그런 누추한 곳에 살아도 군자는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합니다.
  • 굔군 2011/02/06 15:55 #

    그렇다면 당시 제나라 안에 동이가 거주하던 영역이 따로 있었다고 봐야 되겠군요. 위 지도에 나오는 산동 반도의 "내이(萊夷)"라든지(그 곳의 지명인 "동래(東萊)"에서 유래한 명칭이겠죠? 아님 그 반대이거나), 회이(淮夷), 남이(南夷), 서이(徐夷) 등으로 불리던 종족이 중원 국가들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네요.

    그건 그렇고, 궁금증이 생겨 네이버에 올라와 있는 이성규 교수의 논문 <선진문헌에 보이는 동이의 성격>의 요약본(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2&docId=167879)을 찾아보니(원본은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 이런 구절이 있군요.

    -------------------------------------------------------
    은의 멸망 이후, 동이는 서주 왕조에 있어서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서주 시대 초기의 소위 “삼감(三監)의 난”에서 은의 잔존세력과 결합한 그들을 정벌하기 위해 주공(周公)이 대대적인 동정을 수행하였다는 것은 서주 시대 초기의 금문에서도 입증된 바입니다.


    동이가 평정된 이후 서주 왕실은 이 지역에 대규모의 봉건을 실시하여 은족을 강제 이주시킴으로써 주민 구성을 복잡하게 만든 뒤, 동이Ⅰ의 토착 세력을 와해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위 소호(小昊)의 후예라는 담(郯) 거(莒) 서(徐) 기(㠱=紀?) 등의 동이Ⅰ은 정치적인 독립을 강하게 유지하였으며, 각각 희성(姬姓)과 강성(姜姓)이 봉건되어 주변의 토착 세력과 투쟁하며 성장한 제(齊)와 노(魯)의 경우도 토착 문화를 완전히 파괴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로(齊魯) 지방의 토착 문화는 현저하게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토착 종족 동이Ⅰ은 전국시대말까지도 독자적인 문화를 간직하면서 소위 제로(齊魯) 문화의 형성에 기여하였으며, 진(秦)의 통일 이후에 비로소 완전히 해체되어 군현 지배에 편입[散爲民戶]되었습니다.
    ----------------------------------------------------------

    이에 의하면 제로 지방의 토착민은 원래 이(夷)였고, 제와 노는 중원 지방에서 이주해 온 화하(華夏)라 불리던 사람들[당시에는 한족(漢族)이란 개념이 없었으니까]이 이들을 지배한, 소위 "정복 왕조"라는 것인데, 당시 제나라나 노나라가 중원으로 분류된 것은 공가(公家)를 비롯한 지배층이 화하족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 초록불 2011/02/06 16:26 #

    굔군님 / 제가 선진시대 중국사에 대해서 깊이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중국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었고, 이들을 지배했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령 손권의 동오는 산월족과 계속 싸우는데, 이들 산월족은 양자강 남부에 대거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중국 동부 해안가의 이족도 자기 나름대로의 정치결사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과 요동-요서 지방의 종족들과는 별다른 인종적 공통점이 없다는 것은 고고학 조사에 의해서 증명되어 있습니다. (http://orumi.egloos.com/3959839)
  • 굔군 2011/02/07 12:33 #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링크하신 글이 바로 이 포스팅이라능...^^;;)

    그러고 보니, 제 환공이 공위(公位)에 오르기 전에 망명했었던 거(莒)나 담(郯, 譚) 같은 소국들이 바로 이러한 동이족의 나라였군요.
    환공이 병탄한 나라들의 수가 <한비자>에 의하면 30국, <순자>에 의하면 35국이나 되었다고 하니, 바로 이러한 나라들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동이족의 정치 결사체가 아닌가 합니다.

    생각해 보니, 산동 반도 전역이 처음부터 제나라의 영토였다고 보는 것도 에러겠군요. 따지고 보면 제나라의 수도 임치도 산동 반도에서 보면 상당히 내륙 쪽이고, 당시의 국가라고 해 봐야 작은 도시국가 수준이었을 테니...
  • 김현 2008/10/29 02:30 #

    살고 싶다는 게 그냥 그 동네 가서 살고 싶다는 게 아니라 뭐 그들의 삶의 양식 같은 걸 동경했다 뭐 그리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나저나 저 지도는 비슷비슷한게 참 많은데 볼 때마다 참 깝깝합니다.
  • 고어핀드 2008/10/29 03:01 #

    휴학하기 전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논어 강독을 했었는데요, "공자님이 구이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 는 문장의 진짜 해석은 "중원의 예가 이토록 개판이 되다니, 이런 꼬라지는 오랑캐(구이)의 땅에도 없으니 통탄스럽다." 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항상 저딴 식으로 해석하니 캐좌절 Orz
  • 나인테일 2008/10/29 05:47 #

    근데 저 이론을 100% 다 맞다고 가정해봤자... 그래봤자 한민족은 저 바이칼 호수 외계인의 후손 중에서도 그냥 방계일 뿐이고, 핀란드, 수메르, 티베트 등의 나머지 민족들에게 족보상의 우위를 주장하려고 해 봤자 우리조차도 그냥 '바이칼 호수 한민족'의 후손의 하나가 되어버려니...

    잘 쳐줘봤자 다른 민족들과 병렬적으로 대등한 관계 밖엔 안 되는 것 같습니다만 어째서 반도인들이 그렇게 뻔뻔스럽게 바이칼 호수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 초록불 2008/10/29 08:40 #

    재야의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그쪽으로는 삼촌들이 갔기 때문이죠. 우리 아버지는 맏아들이거든요. 제가 늘 재야가 유교에 빠져있다고 말씀드리는 이유기도 합니다. 장자가 쵝오거든요...-_-
  • 야스페르츠 2008/10/29 09:14 #

    공자의 넋두리는, 이상세계를 설파했던 플라톤이나 토마스 모어의 예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요.
  • 초록불 2008/10/29 09:17 #

    덧글은 사라졌지만, 기왕 쓴 게 아까워서 달아놓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은 좀 다릅니다. 근본적인 오해는 있지만, 저런 식의 것은 아니죠. 기자가 조선으로 와서 예의범절을 가르쳐서 동방의 예의바른 나라가 되었다는 전설이죠. 이것은 중국인과 한국인이 동시에 믿어버린 케이스입니다.

    산동 동이에 대해서는 전근대학자들도 믿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 그리고 이 부분은 사실상 저언혀 중요시되지도 않았답니다. 저 땅이 우리거라는 재야 망상사학이 등장하기 전에는요.
  • 풍신 2008/10/29 09:32 #

    죄송합니다. 덧글 입력 후에 신경을 건드리는 점이 있어서 지우고 다시 썼습니다.

    원래 있던 덧글: 동이+공자 떡밥의 진상이 그런 것이라면 동방예의지국이란 것도 지어낸 말이 되는 것이군요.(어릴때부터 속았었다는 느낌입니다.)

    추가하려 했던 것: 인터넷에 동방예의지국의 유래라며 돌아다니는 동이열전(공빈이 썼다는...)은 이것으로 완전히 믿지 못할 것이 되는군요. (당시 읽었을때 글 내용이 좀 이상해서 믿음이 안갔었거든요.)
  • 초록불 2008/10/29 09:43 #

    아이쿠, 아닙니다. 그야말로 써놓은 게 갑자기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그냥 올린 겁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그 공빈의 동이열전은 말도 안 되는 낚시입니다. 이미 그 거짓말을 여러분들이 논파한 바 있습니다...^^
  • 을파소 2008/10/29 09:56 #

    중원고구려비에서는 고구려도 신라를 동이라고 칭하고, 성종실록에서는 양성지가 '동이(東夷)는 일본으로써 바다로 둘러쌓인 나라이며'라는 걸 보면 우리도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동쪽 나라는 동이라 부른 사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이걸 보면 동이는 시대나 나라에 따라 지칭하는 종족이나 국가가 달라질 수 있는 용어라는 게 나오는데, '동이=한민족'이라는 떡밥에 낚여 중국사를 우리거라 우기다가 되려 우리 역사가 중국사라는 근거를 제공해주는 어이없는 짓을 저지르는군요.

    심지어 윤내현도 구분할 줄 아는 선진시대의 동이와 이후의 동이 아닙니까.
  • 초록불 2008/10/29 11:39 #

    네, 윤내현도 구분할 줄 알죠. 위에 예시로 든 단국대 석사 논문의 지도교수가 바로 윤내현입니다.
  • 회색인간 2008/10/29 10:19 #

    저 소설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응?)
  • 초록불 2008/10/29 11:39 #

    조만간 제 책이 나오시면 구입할 수 있습니다...^^
  • 제절초 2008/10/29 11:51 #

    에에 그러면 중국은 일단 자기네 동쪽에 있으면 전부 동이니... 지금은 한국이 동이고, 한국이 중국에 복속된다면 일본이 동이이며, 일본도 중국에 복속된다면 폴리네시아 군도의 사람들이 동이가 될 것이고, 그 사람들까지 복속하면 미국이 동이요, 미국이 복속되면 쿠바가 동이요, 쿠바가 복속되면 영국이 동이고, 영국이 복속되면 유럽이 동이요, 유럽이 복속되면..... 어? 결국은 중국=동이 네요. 수수께끼가 풀렸다!(...)
  • 초록불 2008/10/29 11:56 #

    세계정복을 하면 사해가 동포라는...^^
  • 서산돼지 2008/10/29 13:33 #

    기막친 비유십니다. 세계제국이 등장하면 만민이 평등하겠지요. 주인 앞에서 모두 종이 될 것이니...
  • 2008/10/29 12:2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레시오니아 2008/10/29 12:30 #

    그렇다면 태공망이 동이족이라는 얘기도, 우리와는 기실 관계가 없는 얘기란 거군요. :')
  • _tmp 2008/10/29 12:43 #

    베이징 올림픽을 보면 뭐 한국인도 이제 중화민족이니까요 ;)

    동이 타령은 이제 그만 듣고 싶습니다.
  • 2008/10/29 13:4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WizardKing 2008/10/29 16:45 #

    헛. 그러면 김구 선생님께서 백범 일지에서 공자께서도 우리 민족 사는 땅에 오고 싶어하셨다고 하신 부분은 저런 오해를 그대로 적으신 실수로군요.
  • 초록불 2008/10/29 17:04 #

    그 오해는 조선시대 유학자들도 하고 있었죠. 위에 따로 적지는 않았지만, 이 혼동의 원인은 범엽의 후한서, 동이전 서문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그 근원이 꽤나 오래된 떡밥이지요.
  • 루드라 2008/10/29 17:30 #

    마지막 정리 1번은 마치 동이족이 어느 특정한 종족을 칭하는 고유명사로 착각될 우려가 있어보입니다. 산동반도와 회수해변에 살던 여러 종족을 주나라 사람들이 동이라고 불렀다 하는게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

    그리고 은나라 갑골문에는 夷라는 글자가 없으니 동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겠죠. 夷라는 의미로 人을 사용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 초록불 2008/10/29 23:59 #

    맞는 말씀입니다. 손봐놓겠습니다.
  • 프랑켄 2008/10/29 18:21 #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글하고 상관없는 얘기지만 개인적으론 갑골문이 현대 한자의 조상이라곤 안 보이는데 말입니다. 물론 비슷한 글자도 있지만 언듯 봐서는 정말 다른 거 같은데........ 어떻게 해독했을지 궁금하네요,
  • 루드라 2008/10/29 18:44 #

    갑골문은 현대 한자의 조상이 확실합니다. 한자는 갑골문 -> 금석문 -> 전서 -> 예서 -> 해서의 형태로 발전 혹은 진화해 왔으며 현재 우리가 쓰는 한자는 해서체를 기본 형태로 하고 있습니다.(예서와 해서의 사이에 행서와 초서등이 있습니다만 이건 서예 기법의 차이 정도로 봐야 하니까 한자 형태의 변화 얘기에서는 잘 거론하지 않습니다) 이 중에서 전서 -> 예서로의 변화가 상당히 현격해서 거의 현대의 번체 -> 간체의 변화에 맞먹거나 혹은 능가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변했는지 순서를 제대로 알고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한자가 어떻게 형태가 변화해 왔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접어들어서야 발견된 갑골문을 제외한 금석문, 전서 등은 이미 예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고 이에 대해서는 심도 깊은 연구가 예전부터 유학자들 사이에 있었고 특히 청나라 때 극도로 발달하게 되고 이미 청나라 시대에 웬만한 금문은 거의 해독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갑골문과 금석문의 형태 차이는 의외로 크지 않아서 금석문을 해독 가능한 사람은 갑골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그 자리에서 절반 정도는 해독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갑골문의 최초 발견자도 바로 그런 금석문에 조예가 깊은 유학자였고 실제로 그 사람도 바로 그 자리에서 절반 정도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갑골문과 현대 한자가 서로 심하게 달라보이는 것은 이런 변화 과정을 몰라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이런 변화 과정을 조금만 공부해보면 갑골문이 현대 한자의 직계 조상이라는 건 너무 당연헤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 뚱띠이 2008/10/31 20:43 #

    제가 고딩때 저렇게 배웠으니.....
  • 파파라치 2009/02/06 10:22 #

    이들 동이족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점차 한족에 동화되었으며 ===> "한족"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진시황의 중국통일 이후에 형성된 것이니, 한족에 동화되었다는 말보다는... 글쎄 어떤 표현이 적합할까요? ^^;;
  • 초록불 2009/02/06 10:31 #

    한족은 漢나라 전에는 없다는 이야기로 종종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게 따지만 한민족도 삼한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역사적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이므로 여기에 다른 말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몰역사적인 이야기가 됩니다.
  • 파파라치 2009/02/06 10:45 #

    한족이 없었다기보다 한족으로서의 정체성은 없었다는 말이죠... 동이족이 한족에 흡수되었다는 말은 맥 족이 한민족에 흡수되었다는 말과 비슷한 위상으로 보이거든요. 한족에 흡수되었다기보다 한족을 구성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 초록불 2009/02/06 10:47 #

    이건 아마 사관의 차이일 겁니다. 저는 춘추 시대의 "제하"가 한족의 핵심이며 이들이 외연을 넓혀간 과정으로 한족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파파울프님처럼 생각하시는 게 옳을 수도 있습니다. 좀더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겠습니다.
  • 파파라치 2009/02/06 10:56 #

    파파울프가 아니라 파파라치입니다 ^^ 저는 기본적으로 중국은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하나의 문명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드린 말씀입니다. 즉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개념의 국가라기보다는 "유럽"과 같은 하나의 문명 단위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다만, 유럽은 로마제국 멸망 이후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반하여, 중국은 대체로 통일된 역사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국가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물론 저만의 뇌내망상입니다^^
  • 초록불 2009/02/06 10:59 #

    허걱... 죄송합니다. ㅠ.ㅠ

    아닙니다. 파파라치님의 말씀도 충분히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좀 더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 파파라치 2009/02/06 11:03 #

    그래서 저는 "한국이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 약간의 위화감을 느낍니다. 중국 자체가 과거 여러 나라의 역사를 통합한 하나의 문명사인데, 역사적 연원으로 독자성을 유지한 나라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죠. 만약 유럽이 16세기에 합스부르크에 의해 통일되면서 일부 국가 - 예를 들어 스웨덴 - 가 여기서 제외되었다면, 그리고 오늘날의 유럽이 중국처럼 하나의 국가로 간주되는 상황이라면, 스웨덴이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2천년 가까이 정치적 통일체를 이루어 온 중국은 오늘날에 와서는 분명 하나의 국가이지만, 문명사적으로 볼 때에는 그렇게 보기 어려운 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생각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 영원한방랑자 2009/04/26 03:59 #

    안녕하세요. 초록불님 때문에 이곳에 이글루 하나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고요..^^;;
    저는 역사에 완전 문외한 입니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관심이 들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여기까지 왔고요, 덕분에 잘못된 인식을 조금씩 수정할 수 있게되어 기쁘기도 합니다. 며칠에 걸쳐 많은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역사와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현재의 사람들의 역사를 모든 사학자들이 묶어서 생각하려는 것이 아닌가란 점입니다. 백악기에 공룡들이 뛰어 다니던 한반도에 먼저 자리 잡은 구석기인들은 과연 어디서 왔는가? 그들이 우리의 조상인가? 아님 후대에 들어온 신석기인들(배달국 사람이라 해야 되나요??ㅋㅋ)이 우리의 조상인가? (물론 이 부분은 2010(?), 2012(?)년 쯤 되면 어느정도 밝혀기젰죠? 지금 한창 조사중이니) 그리고 청동기 시대부터 먼 바다로 나가 고래를 잡고, 일본과 무역을 하면서 키운 해상세력들, 신라, 고려까지 왕성한 활동을 한 해상제국에 대한 역사는 참 찾기 힘들군요. (여기서조차...ㅠ.ㅠ)
    아~~ 죄송합니다.. 몇 가지 의문이 있어 글을 올리는데, 첫 댓글이라 잠시 인사한다는 것이 조금 장황하게 이야길 해 버렸네요.

    의문점, 1) 초록별님이 소개한 '최초의남자'(예전 네셔널지오그래픽에서 그 분이 돌아다닌 영상은 보았는데, 책으로 나온 줄 몰랐습니다. 조만간 사서 볼 예정입니다.)의 내용에 따르면, 중국의 산둥반도쪽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과 같은 계보가 되지 않을까요?

    의문점. 2) 요동에 있었던 풍습 중 '곤두'라는 것이 어릴 때 큰 돌로 이마를 눌러 머리를 ^ 키워서 외계인 형상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맞나요? 이 풍습은 신라 초기에 있었고, 헝가리의 훈족 무덤 발굴에서도 나왔다는데,(KBS 역사스페셜, 유인촌씨가 했던 것이니 상당히 오래 전의 적입니다.) 이것으로 신라왕족이 중앙아시아 내륙의 훈족(흉노족)에서 파생되어 왔다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인가요? (아직 이것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글은 환단고기 쪽에서도 없는 듯 한데?) 머리키우는(?) 풍습이 목숨을 담보하는 풍습인데 고려시대 때 원나라의 영향으로 복식이나, 머리모양의 변화만을 따라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고, 그 풍습이 아래계층에서 있었던 것이 아닌 왕족의 풍습이니 막강한 권력자들이 왔다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절대 반대이고요, 큰 땅 찾아 북으로, 북으로를 외치는 땅투기꾼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바다로 바다로를 외치는 새로운 신흥 해빠라고 할까요??ㅋㅋ

    아직 여기글을 다 읽지 못하고 성급히 질문을 드려봅니다. 부디 이 글이 쥔장에서 틀켜 답글이 달릴 행운이 있길 기원하며 정말 두서없는 질문을 올려 봅니다.(정리하지 못하고 올려서 죄송합니다.)
  • 초록불 2009/04/26 09:49 #

    반갑습니다. 합리적인 추론을 해나가는 과정이라면야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북한에서는 구석기인들이 발전해서 신석기인이 되고 우리 조상이 되었다고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 학계는 그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공룡과 인류는 동시에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만화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최초의 남자>는 간략한 책입니다. 개념을 잡는 정도의 책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한국인의 이동 경로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가설들만 존재한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

    "곤두"가 아니고 "편두"겠지요. 이런 풍습의 유사성 정도로 어떤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한두 가지의 유사성을 가지고 논한다면 갖다 붙이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보다 풍부한 증거와 자료들이 필요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결론을 유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 dyanos 2009/08/30 00:44 #

    ㅎㅎ 눈팅만 하다 잘못된 지식을 깨달을 수 있었던 좋을 글을 보고 뒤늦게 답글을 올립니다.

    저도 사실 동이 떡밥(?)에 많이 자랑스러워했다는;;

    물론 그 당시에도 증산도와 같은 종교는 싫어했습니다만, 제가 귀가 얇은 편이라 동이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우리 종족의 분파가 여러군데 있다라는 떡밥에 가슴이 떨리곤 했습니다만...

    이글과 초록불님이 올리신 다른 글들을 보니 그러한 글들이 확실히 떡밥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종종 들러서 글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굿바이 2010/06/26 01:32 #

    음 이번 글은 조금 눈에 있다 했더니 얼만 전 서비스 개시한 패온라인 이라는 게임 세계관이랑
    매우 비슷하네요. '치우의 전사들이여 깨어나라' 라는 문구에 끌려서 들어가봤었는데 야설록 이란 사람이 전체적으로 스토리 잡은 거 같던데... 전 중국인에 걍 무협작가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ㅋ 또 치우천황기도 맥이 비슷한 거 같고 다 같은데서 출발한 이야기인가요?
  • 초록불 2010/09/02 13:36 #

    야설록은 이현세 만화에 스토리도 쓰고, 얼마 전에 개봉해서 망한 <바람처럼 불꽃처럼>이든가 하는 영화의 원작을 쓰기도 했죠.

    무협소설가로 유명하고요. 뫼라는 출판사를 세워서 무협소설을 많이 출판하기도 했지요.
  • 에드워디안 2010/09/02 12:15 #

    본문과는 다소 주제가 벗어났지만, 답글 좀 달아보겠습니다. 춘추시대에 오월동주로 유명한 월나라는 전국 중기 초나라에 멸망당했는데 이 때 越人들이 대거 남하하여 인도지나반도까지 진출, 오늘날 베트남인(비엣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네요. 그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고대 越人의 모습은 동남아 인종과 흡사하지 않았을까요?

    또, 초나라도 비록 강국으로 명성이 높았지만 중원제국으로부터 蠻夷라 불리며 멸시당한 점으로 보아, 중원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문명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 초록불 2010/09/02 13:37 #

    저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베트남에도 유사역사학이 있어서 양자강까지 자기네 영토였다고 주장한다고 하더군요.
  • kinske 2011/05/19 02:38 #

    궁금한점이 있습니다. 논어에는 공자가 동이에 가서 살고싶다는 구절이 두번나오는거로 알고있습니다. 하나는 위에 인용된 글이고 다른 하나는 '뗏목을 타고 바다로 가고싶은데 나를 따라올 사람은 자로겠구나'일 것입니다. 여기에 주자가 '욕거구이'와 같은 뜻이다라고 주석을 달았는데, 주자의 의도는 '바다로 나가서 동이(주자의 인식에 현재 한반도)로 가고싶다'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자 역시 夷'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인가요? 그렇다면 근,현대의 국수주의적 유사사학자들이 없던 시절이었을 텐데 왜 주자가 자신의 조상들이 '이'를 유동적 개념으로 인식하던 걸 잊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질문으로는 김한규교수님에 의하면 제나라는 발해만을 통해서 고조선과 교역을 했다고 하시는데, 공자 이전에 이미 제나라가 산동 곶에서 (이름을 잊은)열도를 타고 고조선과 교역했다면, 이미 산동반도가 제나라에 의해 제패된 상황이라 봐도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공자가 말한 '이'가 더 동쪽의 종족을 뜻하지는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 초록불 2011/05/19 14:28 #

    주자 시대에는 이미 동이가 동이II로 바뀐 상황이니까 주자의 주석은 의미가 없겠네요. 위 6~7세기 지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시피 산동반도의 동이들은 제환공 시절에 이미 수세로 몰렸다고 생각합니다. 고대 시대의 이런 상황은... 가령 손권의 오나라 시절에 동오군은 산월이라 부르는 오랑캐를 물리치는데 애를 먹는데, 이들의 "영토"가 우리가 오나라로 표기하는 그곳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 경언o 2011/12/01 23:52 #

    그런데 참 신기하게
    유립쨔응의 학통이어받은 환십덕쨔응들은 환웅의 태백산을 백두산이라고 하더라군요
    여기서 태백산은 현재의 묘향산으로 지정된거같은데..

    유립쨔응이 바보여서 그랫을까요?
  • 초록불 2011/12/02 00:40 #

    후계자들이 바보여서 그렇겠죠.
  • 검은하늘 2012/01/06 18:14 #

    한국 7대 불가사의라는 책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지금까진 중도의 입장에서 본 분들은 많이 못 봤습니다. 특히 확실한 근거에 의해서는 더욱더 보기가 힘들었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초록불 2012/01/06 22:50 #

    그 책은 안 봤지만 지은이를 보니까 신뢰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지은이가 엉터리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보았어요.
  • 검은하늘 2012/01/07 01:05 #

    딴건 모르겠지만 화약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신라시대때 부터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이르러서 문치주의 때문에 잊혀졌다가 최무선공이 이연에게 뇌물 먹여서 명맥을 살려놨다던가... 화약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우리 과학 역사 쪽으로 신뢰할 만한 책이 있나요?
  • 초록불 2012/01/07 10:01 #

    <조선과학인물열전>(김호), <한국과학사>(전상운) 같은 책이 있고,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인물과학사1:한국의 과학자들>(박성래)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highseek 2013/07/16 23:51 #

    서울대 명예교수 한영우박사의 책에도 동이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군요.

    "...옛 중국문헌에는 이 문화권의 주민들을 동이(東夷)라 호칭하였다. 이(夷)라는 글자는 '큰 활을 가진 사람' 즉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동방인들의 특성을 드러낸 것이다."
    - 다시찾는 우리역사, 한영우, 경세원, 2003. pp-64

    이후 하은주 시대의 동이족에 대한 이야기, 36개 소국을 거느리는 동이족이 주나라와 자웅을 겨룬다는 얘기, 공자가 뗏목을 타고 군자의 나라인 구이로 가고 싶어했다는 이야기 등 동이족에 대한 이야기가 주욱 나오고..

    이후 개정판들에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진한에 의해 통일국가를 수립하면서 중국 동북 지방의 동이족은 대부분 화하족으로 흡수 동화되었으나 그 일부는 한반도로 파상적으로 이주해와 고조선과 삼한사회의 발전에 큰 자극을 주었다.. 는 식의 설명도 들어있네요.

    서울대 사학과의 명예교수면 재야사가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교수의 책에서마저..
  • 초록불 2013/07/17 10:00 #

    최신 연구성과가 반영되지 않은 탓일 겁니다. 낡은 과학 이론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 볼 수 있죠. 그리고 이런 책들이 다시 전파되면서 오해는 계속 되는 셈이죠.
  • 귀여운 가마우지 2013/11/10 23:52 #

    글 남기려고 이글루스 가입까지 했네요. [이 혼동의 원인은 범엽의 후한서, 동이전 서문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라고 위에서 말씀하셨던데, 공자가 말한 구이가 동이와 같지 않은데 범엽이 동이전을 쓸 때는 같은 것인마냥 취급해서 혼동이 생겼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동이전의 공자구이욕거 부분을 제외한 다른 서술은 조선에 대한 당대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되나요? 예를 들어 천성유순, 군자불사지국 같은 긍정적인 말이 나와서요. 동방예의지국의 근거에 대해서 찾다가 여기까지 들어왔네요.
  • 초록불 2013/11/11 00:19 #

    군자불사지국이라는 말은 원래 논어에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후한서에 나오는 말들은 산해경에서 온 것으로 부정확한 정보들의 집산입니다. 정확히 어느 종족을 가리킨 것인지 알 수 없는 셈이죠.

    다만 이 경우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지금도 혼동이 있는 것처럼 고대에도 혼동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후한서에서 이야기하는 동이가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런 착각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여하는데 일조를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이 문제는 제가 천착한 바가 없어서 이 정도만 언급하고 마쳐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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