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 - 왕오천축국전 *..역........사..*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P. Pelliot, 1878-1945)가 중국 돈황 석굴에서 책명도 저자명도 없는 잔간殘簡 사본을 발견했다. 이것이 신라의 승僧 혜초가 쓴 인도기행문, 왕오천축국전이었다.

혜초는 누구인가? 혜초의 정체를 최초로 밝힌 사람은 일본인이었다.
1915년 일본학자 다카쿠스 준지로(南楠順次郞)는 밀교 문헌인 <대종조증사공대판정광지삼장화상표제집>을 통해 혜초가 신라인이며 중국 밀종密宗의 시조인 금강지金剛智(Vajrabodhi, 671-741) 삼장을 사사하고 불경의 한역 사업에 참여했음을 밝혀냈다.

이 책에는 역시 밀교승인 삼장화상 불공不空(Amoghavajra, 705-774)이 혜초를 자신의 여섯 제자 중 하나로 거론하며 그의 이름 앞에 "신라"를 놓아, 그가 신라인임을 분명히 했다.

혜초는 704년 출생하여(700년 출생설도 있음), 719년 열여섯의 나이로 당나라로 건너가 광주 지방에서 밀교승 금강지와 그의 제자 불공을 만났다. 이미 이무렵 많은 신라인들이 불법을 찾아 인도로 떠났는데, 혜초도 그런 행렬을 따라 바닷길로 인도로 간 것으로 보인다.

금강지는 남천축 출신으로 제자 불공과 함께 실론(스리랑카)과 수마트라를 거쳐 719년 중국 광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혜초와 운명적인 조우를 가진 후 금강지는 혜초를 723년(20세) 인도로 보낸다. 그는 아마도 스승의 길을 역순으로 간 듯하다.

혜초는 4년간의 구도 여행을 끝내고 727년(24세) 11월 상순 안서도호부 구자龜玆(신강 위구르 자치구 쿠차Kucha)로 돌아왔다.

733년(30세) 1월 1일부터 8년 동안 장안 천복사薦福寺에서 스승 금강지와 밀교경전인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을 연구했다. 740년(37세) 금강지의 지도 아래 경전의 한역을 시작했다. 741년(38세) 중추에 스승 금강지가 입적했다.

이후 혜초에 대한 기록이 없다가 773년(70세) 10월 장안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금강지의 제자 불공에게서 계속 경전을 배우고 있었다. 불공은 774년(71세) 5월 7일 입적했고, 혜초는 그의 제자로 공인되었다. 그는 6대 제자 중 두번째 위치에 있었다. 혜초는 대종代宗 황제에게 불공이 세운 절을 존속시켜줄 것을 청원했고,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774년 1월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1월에 웬 기우제?) 역시 대종 때 가뭄이 심하자 <하옥녀담기우표賀玉女潭祈雨表>를 올리기도 했다. 옥녀담은 주질현(섬서성 주지현周至縣) 선유사仙遊寺 주위를 흐르는 흑하黑河의 연못(지금은 없다. 이곳에 금분金盆(진펀)댐이 만들어져서 옥녀담과 선유사가 모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이 절과 기념비 등은 인근으로 옯겨졌지만 황폐한 상태라고 한다. [한겨레신문] 정수일의 실크로드 재발견4 [클릭])으로 혜초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주관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철야기도 이레 끝에 명주실 같은 감로수가 내렸다고 한다.

780년(77세)4월 15일 오대산 건원보리사에 들어가 5월 5일까지 밀교 경전을 20일간 앞서 경전의 옛 한역본을 얻어 다시 필수(경전을 번역할 때 번역어를 전수하여 필기하는 것이라 함)하였고, 그 해에 이곳에서 입적했다.

혜초는 석가모니의 탄생지를 거쳐 북인도를 종단하여 인더스강까지 나아간 뒤 카슈미르 지방으로 북상, 간다라를 거쳐 페르시아까지 둘러보고 힌두쿠시 산맥의 비단길을 따라 천산산맥을 지나 돈황으로 들어왔다. 그의 이십대 전반을 이처럼 길고 긴 여행으로 보낸 것이다. 그는 다시는 고향인 신라로 돌아오지 못했으나, 왕오천축국전 안에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적어놓아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 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일남日南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이 시는 혜초가 남천축국(서찰루키아 왕조, 543-757) 방문 때 쓴 것이다. 이 시에 나오는 "일남"은 남천축국의 지명이 아니라 지금의 베트남 중부 지방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당시 인도로 오는 중요 항구였다. 이것은 혜초가 바닷길로 인도로 왔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이것을 그저 "남쪽"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저 시의 "계림"은 원문에는 "림林"으로만 나와있다. 오언절구의 시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혜초가 신라인이 분명하므로 林이란 계림을 의미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누가 소식 전하러 숲으로 날아가리...는 말이 안 된다.)

왕오천축국전의 번역서로는 위 글의 대부분을 참조한 바로 이 책을 추천한다. 원문을 수록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상세한 주석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 10점
혜초 지음, 정수일 역주/학고재

덧글

  • 愚公 2008/10/30 10:16 #

    774년 1월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1월에 웬 기우제?
    =>당시 역법에서는 초봄이 아닐까요? 지금이야 입춘이 늦겨울인 양력 2월에 있지만
    원래 24절기 중 첫번째가 입춘이지요.
  • 초록불 2008/10/30 12:07 #

    물론 1월이면 음력절기로는 春이지요. 하지만 그 시기에도 기우제란...^^
  • Esperos 2008/11/25 01:59 #

    음력 1-3월을 봄, 4-6월을 여름, 7-9월을 가을, 10-12월을 겨울로 여겼지요. 그리고 1,4,7,10월을 孟月이라 하여 각 절기가 시작되는 달이라고 생각해서 사시제 또한 맹월에(사대부가는 仲月에) 지냈고요. 물론 실제 자연에서의 절기라기보다는 역법 숫자상으로의 개념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원래 중국역법의 기준은 동지입니다. 동지가 든 달이 언제나 子月이지요. 그러므로 중국 천문학에서는 동지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함이 매우 중요합니다. 민속학에서는 현행민속의 동지 풍습을, 예전에 동지를 새해 첫날로 여겼던 기억의 흔적이라고도 보더군요. 아닌 게 아니라 주나라 때에는 자월(그러니까 동짓달)을 정월로 계산했지요.

    현재 우리가 음력이라 말하는 체계(시헌력과, 그 직계조상뻘되는 체계)에서는 우수가 든 달을 정월로 간주합니다. 동짓달이 자월, 대한이 든 달이 축월, 우수가 든 달이 인월이 되는데 인월을 정월로 삼지요. 인월을 정월로 삼음은 하나라 때 역법이라는데, 전 하나라가 역사시대인지는 통 의심이 많아서...

    당나라 때 역법은 정말 지겹게 바뀌었는데, 천문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주술적인 이유가 있어서 더 짜증나지요. 24절기는 주나라 때 화북지방 절기를 기준으로 이름을 정했는데, 그때 입춘 무렵이면 날씨가 좋아졌나 봅니다.

    본문에서 언급한 1월 기우제는 당시 당나라 역법을 환산하고, 다시 그 지방 기후를 고려하지 않으면 당장 말하기는 뭣하군요.
  • 서산돼지 2008/10/30 10:37 #

    용맹정진이라는 말이 새삼 생각납니다.
  • 새벽안개 2008/10/30 11:10 #

    혜초의 불교인생이 그렇게 되는군요.
  • 解明 2008/10/30 11:20 #

    옛날에 읽으려다가 무슨 까닭인지 몇 장 넘기고나서 그만 읽었던 『왕오천축국전』. 어렸을 때는 '축국'만 보고 '축구의 전신인 축국에 관한 이야기인가?'라는 망상을 했었지요. 그때 봤던 학습만화의 영향 때문인지 혜초하면 속세에 있을 때 멧돼지 때려잡던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그나저나 이 일화의 출처는 어디일까요? =ㅅ=
  • 초록불 2008/10/30 12:07 #

    출처는 아마도 만화가의 상상이 아닐는지...
  • 解明 2008/10/30 13:44 #

    그런데 저말고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더군요. 그 사람들이 다 그 만화를 본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 초록불 2008/10/30 13:47 #

    잘못된 이야기가 한번 번져나간 뒤에 영영 사라지지 않는 사례가 이것뿐이겠습니까? 정비석이 명성왕후의 이름을 민자영이라고 지은 이후에 어떤 역사책에도 본명은 민자영이라고 실리던데요...
  • 싱글·하트 2008/10/31 01:12 #

    정비석이 지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그러면 진짜 본명은 따로 있는 건가요?
  • 초록불 2008/10/31 05:26 #

    현재로서는 모른다...가 정답일 것 같습니다. 사실 그후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 organizer 2008/10/30 12:22 #

    덕분에 혜초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 게렉터 2008/10/30 14:11 #

    저는 이 시에서 林을 단순히 그냥 숲으로 해석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나 기러기 같은 것이 숲으로 날아가는 심상은 唐詩에서 종종 등장합니다.

    특 히 기러기는 한나라 때 흉노에 잡힌 한인이 기러기 다리에 편지를 묶어서 보낸 것이 상림원(上林園)에서 발견된 고사가 있기 때문에, 기러기가 소식을 전하러 숲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 한나라 때 상림원에 얽힌 고사로 보는 것이 직접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숲이라는 단어에 계림을 연결해서 중의적인 어법으로 보는 것도 아주 터무니 없는 해석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어디까지나 직접 번역해서 나올 수 있는 쉬운 생각은 아니라고 봅니다. "혜초"가 출생만 신라인일뿐, 신라에 관계된 이야기거리가 워낙 없기 때문에, 굳이 이 시에 "계림"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단정적으로 정확하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 초록불 2008/10/30 16:07 #

    흠, 그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 아르핀 2008/10/30 14:13 #

    아, 마침 괜찮은 번역본을 찾고 있던 차인데 정말 감사합니다. :D
  • organizer 2008/10/30 16:58 #

    잠시 아득한 순간이 있었습니다만, 주인장에게 심려를 끼친 듯하여 죄송할 뿐입니다... (용서를)
  • 초록불 2008/10/30 17:03 #

    아이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 소하 2008/10/30 23:42 #

    저는 이것을 볼 때 불교나 인도의 작은 왕국들의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붕 뜨는 느낌이더군요. 유명세에 잔뜩 기대하고 읽어다가 실망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돈황 토노번 같은 문서자료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기를 간절히 기원할 뿐입니다.
  • 초록불 2008/10/31 05:27 #

    위에 소개한 책에는 인도의 작은 왕국들에 대한 소개도 상당히 잘 나와있습니다. 음... 이 책을 보시고 그렇게 생각하신 문제라면야...^^
  • 소하 2008/10/31 22:20 #

    아! 이 책은 아니구요. 예전에 제가 본 것은 원전이었는데, 주석이 없었던 책이라 잘 이해가 되질 않더군요. ^^
  • 소시민 2008/10/31 11:18 #

    그러고 보니 다음 달 4일부터 7일까지 덕수궁 석조전에서 '혜초와 왕오천축국전 - 세계속의

    신라인 혜초를 만나다' 라는 전시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혜초의 여정과 펠리오의 돈황 천불동 발굴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했다니 흥미롭네요.
  • 초록불 2008/10/31 11:21 #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소시민 2008/11/01 19:11 #

    다시보니 행사가 7일까지가 아니고 9일까지네요.
  • 이야타 2008/12/12 11:46 #

    혜초가 입적했다는 오대산이 우리나라 오대산이 아닌가봐요?

    중국에도 오대산에 있었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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